Chapter 279
“그럼 그냥 캐릭터 카드를 캡쳐하면 되는 거 아냐? 그러면 이제 그 사람의 핸드폰이라던가 컴퓨터라던가· 거기에서 볼 수 있잖아? 굳이 돈을 안 들여도·”
“뭣·”
“취소해라···방금 그 말···!”
“말을 취소하라고? 하면 안 되는 뭐 금기 같은 이야기였던 건가?”
“아니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닌데···”
기세등등하게 ‘드립’을 외쳤다가 통하지 않는 것에 머쓱한 표정을 짓는 이서· 수연은 그런 이서를 한번 쳐다보았다가 앞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굳이 입으로 내지 않아도 ‘둘은 완전 다른데요?’ 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현아가 있었다·
“그렇지 않나?”
“완전 다른데요···”
“뭐가 달라·”
“아니 기본적으로 그런 카드 같은 건 영상도 있고 카드별로 성능도 다르니까···”
“영상이야 그냥 유튜브로 보면 되는 거 아닌가· 카드별 성능 같은 거도 뭐 다른 거로 대체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대체하는 건 수집하는 거랑 아예 다르지···않나? 아닌가?”
긴가민가 하고 있는 이서와 충격을 받은 듯한 표정의 현아· 두 명의 모습을 보며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물론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것은 아니었다· 누구나 다 수집욕구를 가지고 있으니까·
하지만 결국 디지털 쪼가리 아닌가· 거기에 그렇게 몇십 몇백만원치의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있을까? 어차피 게임에서 보나 핸드폰 갤러리에서 보나 똑같을 것 같은데···
“그렇게 따지면 우리도 돈 못 벌지· 굳이 앨범을 왜 사?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로 들으면 되는 건데· 비싼 앨범 사가면서 곡을 들을 이유가 없잖아·”
그렇게 침묵에 잠겨버린 거실· 그 고요를 깬 것은 서하의 목소리였다·
“그래도 앨범은 가격이 저렴하니까·”
“가성비로 따지면 3만원 3백만원이나 0원 3만3천원이나 비슷하지· 후자가 더 가성비 안 좋지 않나? 한푼도 안 내도 되는데 3만 3천원이나 내고 시디플레이어 사고 그렇게 해가지고 듣는 거잖아·”
“비율로 보자면 그렇긴 한데···”
“그리고 사실 너도 비슷하잖아· 너도 쿼드 코텍스(Quad Cortex· 웬만한 아날로그 이펙터를 다 재현할 수 있는 디지털 멀티 이펙터) 쓰면 되는데 굳이 이 악물고 페달보드 들고 다니면서 아날로그 세팅하고 아날로그 페달 찾으러 다니고···쿼코가 신품도 250만원인데 너 얼마전에 센타우르 94년 7천달러 주고 샀다며?”
“그게 어떻게 같은 거야· 완전 다르지·”
“남들이 보기에는 똑같거든·”
그렇게 말하는 서하의 이야기를 수연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서하 자신도 음악을 하니까 잘 알 것 아닌가·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펙터의 차이는 한국에서 미국과의 거리만큼 크다· 그게 두개가 완전 똑같다고 하는 건···
“어차피 아날로그 회로가···디지털로 재현 되는데 과학적으로는 다른 게 하나도 없는 거죠···”
“그게 아니라니까· 그냥 딱 들어보면 소리가 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만큼 오타쿠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구요···그냥 연출을 보고 끝나는 거랑 소장하는 거랑은 아예 다르니까···”
현아의 말에 수연은 잠시 멈춰 생각을 해 보았다· 저렇게 말해도 아날로그와 디지털 이펙터가 동일하다고 생각이 되진 않았다·
디지털과 아날로그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인간이 미처 다 인지할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요인이 작용하여 만들어지는 아날로그 이펙터의 소리와 프로그램을 사용해서 깔끔하게 나오는 디지털 이펙터의 소리가 어떻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같다고 생각하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해시키려면 싸움만 나는 것처럼 이 문제도 비슷한 것 아닐까· 수연 자신은 수집욕이고 뭐고 그냥 그렇게 그림 보고 영상 보면 똑같은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다를 수가 있는 법이니까·
“···무슨 말인지는 대충 알겠는데 그래도 그림 하나 뽑는데 수백만원 쓰는 건 너무한 거 아닌가?”
“리이슈···악기랑 빈티지 악기는···수천만원씩 차이나잖아요···”
그런 현아의 말에 수연은 결국 납득을 했다· 대상이 디지털 그림과 영상이기 때문에 납득이 힘든 것일 뿐 결국 누군가는 가치를 둔다는 점에서 같은 것이겠구나 하고·
“대략적으로는 알겠네· 그러니까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거지· 형태가 어찌되었든 소유하고 수집한다는 거에 가치를 두고 있으니까 그게 얼마가 됐든 이제 돈을 써서 보유를 한다는 거네·”
“마···맞아요· 절대···그런 식으로 단정지을 수 있는 그런 일이 아니라구요·”
마치 자신의 일처럼 약간의 감정을 담아 강변하는 현아를 보며 수연은 생각했다· 처음에는 모르는 것 이해 안 되는 것도 그냥 받아들이고 납득하려고 해왔었는데· 시간이 지나고 세상살이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초심을 잊어버린 모양이었다·
‘오랜만에 하나 배웠네···’
“그러면 이제 다음 코너를···”
“근데 말이지·”
“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연에게는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의문이 있었다· 돈을 지불하고 캐릭터를 뽑는다 그것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다르니 이해할 만 했다· 하지만···
“그 가챠라는 게 좀 도박적인 느낌이 있지 않나? 이야기 들어보면 확률이 뭐 0·01%? 0·015%? 너무 확률이 낮지 않나? 그래도 뽑는 건 자기가 생각하기에 한번에 뽑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인 거겠지?”
“그렇지 뭐· 그래서 여유도 없는데 그냥 돈 쓰다가 파산하고···”
“그런 거 보면 한번 물어보고 싶긴 하네· 확률이 굉장히 낮다는 건 알고 있을텐데 무슨 심리로 그렇게 낮은 확률에 도전하는 건지· 로또도 보통 5천원치 만원치만 사잖아? 될 때까지 하는 게 아니고·”
수연은 그런 의문을 담아 현아를 바라보았다· 이런 ‘오타쿠 개론 101’ 같은 걸 하는 걸 보면 그런 의문에 대답해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하지만 현아는 왠지 모르게 입을 꾹 다물고 있었고 그 이야기의 대답은 아예 다른 쪽에서 나왔다·
“저기 있잖아·”
“어디?”
“저 언니 저번달에 몇백만원 썼을 걸 트레트레 모바일 게임에· 그래서 현아 언니 요즘 정산금 나올때까지 뭐 맨날 컵라면만 먹고 살아야된다 그러잖아·”
이서의 말에 수연은 현아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현아가 이리저리 눈을 돌리며 시선을 피하는 걸 보면서 수연은 생각했다· 그래 왠지 모르게 자기 일처럼 화를 내더라니· 진짜 자기 일이었구나 하고·
* * *
얼마 뒤·
“오늘 무슨 날인가? 왜 이렇게 밀리지?”
“도쿄가 하루이틀 밀리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받아들여·”
이서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수연과 멤버들은 카나마치 역으로 향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트레트레 1권의 배경이 카나마치 역이었으므로· ‘성지순례 영상’은 순서대로 찍어야 된다는 것이 현아의 견해였다·
“점심은···가서 드실 건가요···?”
“방금 전에 아침 먹었잖아·”
“그 음식점···중요한 곳이 있어서···”
[‘깊은 물 안으로 빠져버리는 것 같다· 이대로 나는···아니 그럴 수는···’
죽지 마라·
살아라·
네가 먹어왔던 수많은 시간과 너를 살리기 위해 노력했던 목숨을 떠올려라·
과연 지금 이 자리에서 끝나기 위해 너는 구차한 목숨을 지금까지 연명해왔는가?]
‘감정이 과한데·’
멤버들이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는 동안 수연은 그런 생각을 하며 만화의 한 장을 더 넘겼다· 적어도 1권은 처음부터 끝까지 쭉 비슷한 분위기였다· 뭔가 조용할 날이 없이 감정 그 자체를 독자에게 밀어넣는다는 느낌·
‘뭐든지 처음은 강렬한 게 중요하니까 이렇게 만든 것일수도···’
그래도 자신의 취향은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수연은 책갈피를 끼웠다· 나머지는 숙소에 가서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에·
“여기야?”
“네···!”
인근 유료 주차장에 차를 대고 난 뒤· 몇분을 걸어 도착한 곳은 그냥 보기에는 완전 평범한 카페였다· 수연은 왜 여기에 온 것인지 궁금했다· 카페 바깥에 작게 놓인 뭔가를 보기 전까진·
“여기서 사고 났나?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안타깝네·”
자그맣게 놓인 분향소· 누구인지 모르겠지만 명복을 빌어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수연은 향로에 선향을 꽂으려고 하다가 흠칫했다· 향로는 향로가 아니었고 선향은 선향이 아니었다· 금속처럼 보이는 향로에서는 전기불이 빛나고 선향은 그냥 종이였다· 그리고 영정사진은 자세히 보니 영정사진이 아니라 무슨 만화 그림이었다·
“뭐여 이거·”
“아 그거···테루 군 빈소네요···이번에 이벤트로 한다던데···”
“테루 군은 또 누군데?”
“트레트레 등장인물···”
현아의 말에 수연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니까 이게 실존인물의 빈소가 아니라 만화의 등장인물이 죽은 거란 말이지· 자세히 보니 표지판도 붙어 있었다· [실제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니 안심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아오···설마 이거 때문에 여기 오자고 한 건 아니지?”
“어느 정도는 맞긴 한데···여기가 1권에 나오는 그 카페에요···”
“여기라고?”
수연은 눈을 가늘게 뜨고 안을 슬쩍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면 만화에서 나온 것 같기도 한 인테리어였다· 단지 만화에서는 창문이 와장창 다 깨져있고 안에 있는 것도 완전 개박살이 난 상태였다는 것이 문제지·
“그럼 여기 그 썩은 케이크도 파나?”
“썩은 케이크를 왜 팔아?”
“네 팔아요···그 만화에 보면···나와요·”
그런 대화를 나누며 카페에 들어간 수연과 아이들· 작은 카페는 그 규모에 맞지 않게 사람들이 바글바글 차 있었다· 현아가 주문을 하는 사이 수연은 카페 내부를 슬쩍 쳐다보았다· 만화 캐릭터 판넬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람들· 영 못 먹을 비주얼의 케이크를 두고 뭔가와 같이 사진을 찍는 사람들·
“테이크아웃 해야 할 것 같은데···시간도 오래 걸린다네요···”
“뭐 들고 나가서 마시지· 안쪽도 뭐가 있는 것 같은데 보고·”
현아의 이야기에 그렇게 대답하고는 수연은 슬쩍 안쪽을 쳐다보았다· 더 많은 사람들과 더 많은 판넬· 이게 카페인지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인지· 이서는 이미 판넬 근처로 다가가 요란하게 셀카를 찍고 있었고 서하는 심드렁한 상태로 서 있었다·
“우린 밖에 나가 있을까? 현아보고 받아오라고 하고·”
“그럴까·”
카페 내부를 다 봐갈 쯤에 서하가 건넨 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꼰 후 대답했다· 아무래도 안에 있는 애들은 아직 한참 해야 할 일이 남은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미리 나가있겠다고 이야기를 하러 들어간 안쪽에서는 현아와 이서가 다른 사람들에게 잡혀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뭐 하냐?”
“아 이 분들이 말을 거셔서· 중국인인데 트레트레 팬이냐고 물어보더라·”
“중국인이?”
이서의 대답에 수연은 현아와 일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쳐다보았다· 확실히 중국인처럼 생긴(인종차별적인 의미는 아니었다) 외모· 현아와 비슷한 옷인 걸 보면 저것도 무슨 만화 관련 티셔츠인 것 같은데···
“저 사람들도 그 만화 팬이래?”
“응· 성지순례 하러 일본 왔다네· 5박 6일동안 도쿄 성지순례만 하고 이제 저녁 비행기로 간대·”
“5박 6일동안 그 만화 나오는 코스만 돌았다고?”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며 엄청난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중국인은 일본에 입국하려면 비자까지 필요할 텐데· 그 비자를 받고 5박 6일동안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오로지 이 트레트레라는 만화에 나오는 장소만 꼬박 돌았단 말인가·
‘어떻게 저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정도만 보자면 수연이 기타를 치는 것과 비슷했지만 사실 수연은 갈래가 약간 다르다고 생각했다· 수연은 기타를 순수하게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재능이 있어 잘 치기 때문에 좋아하는 것도 있었고 또 일이기 때문에 열심히 하려는 것도 있었으며 세계 최고가 되리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것도 있었다· 즉 그런 ‘좋아함’이 어느정도는 이득이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만화를 좋아하는 것은 어떤 이득도 되지 않는다· 만화를 그리는 것도 아니고 좋아하기만 하는 데 그걸로 무슨 밥벌이를 하겠는가· 도리어 손해만 될 뿐이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좋아할 수가 있을까?
“이서·”
“왜?”
“나 저사람들한테 뭐 하나만 물어봐주라·”
“뭐?”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이 만화를 좋아하는 거냐고·”
“그런 질문은 왜 하는데?”
“진지한 거니까 빨리·”
이서는 투덜대면서도 수연의 말을 중국인들에게 그대로 옮겨주었다· 그리고 저쪽에서 들리는 대답은 약간은 서툴렀지만 진정성이 느껴지는 일본어였다· 어떤 캐릭터가 보이는 행보에 정말 감동했고 지금이 아니면 이렇게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이렇게 했다고· 돈이 많이 들었지만 절대 후회하지는 않는다고· 왜냐하면 자신 인생 최고의 만화이니까·
“인생 최고의 만화라고?”
“응·”
그 대답을 듣고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인생 최고의 만화라· 이런 만화를 두고 인생 최고라고 하기에는 더 많은 만화들도 있고 삶도 너무 많이 남아 있다· 인생 최고를 논하기에는 너무 이르지 않나· 마치 여섯살 꼬맹이가 불량식품을 먹고 “아폴로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야!” 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일 아닌가·
“저 생각합니다· 트레트레 최고의 장점 솔직함입니다· 감정 안 숨김· 이야기가 솔직해요· 서로가 서로에게 진심으로 부딪혀요·”
그렇게 생각하던 수연은 어눌한 일본어로 구사된 중국인의 말을 듣고 뭔가 감이 오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솔직함·
1권을 봤을 때도 그랬다· 마치 종이 밖으로 넘쳐흐를 듯한 감정이 느껴지는 만화라는 것이 수연이 받은 느낌이었다· 그것이 저 사람들에겐 솔직함으로 느껴지는 것일까· 그렇기 때문에 저 사람은 만화에서 받은 교훈을 토대로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기 위해서 돈을 들여 일본까지 날아온 것일까·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등장인물들이 다 그런 느낌이죠! 싸울 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서로 진심을 부딪힌다! 가짜 화합 같은 건 하지 않고 진실된 감정만을···”
그리고 이어진 현아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수연은 뭔가 감이 오는 느낌을 받았다· 진실된 감정· 솔직함· 숨기지 않음···
‘어떤 노래를 만들어야 될지 뭔가 감이 오는 기분이긴 한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아아악! 1분 지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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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빈_291 님 10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보고 있으시다니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 화 다다음 화 다다다음 화(ry 도 재미있게 보실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네르푸 님 1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미있으시다니 감사하지만 짧은 느낌이라니요!
불초 작가 더 노력해서 포만감을 느낄 수 있게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오늘의 추천곡입니다!
Jeff Beck – Cause we’ve ended as lovers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