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299
“···네! 이렇게 1위 후보 전부 살펴보았는데요· 과연 오늘의 1위는 누가 될까요!”
“아 정말 저도 궁금해지는데요· 발표가 정말로 기대됩니다!”
10월 1주차 일요일 오후· 생방송으로 송출되는 음악방송의 무대 위에서·
항상 그러는 것처럼 하린은 MC 세 명의 뒤에 서서 순위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다· 긴장을 감추기 위해 싱글싱글 웃음을 지으면서·
“언니 얼굴 너무 굳었다·”
“그래? 긴장한 거 보여?”
“웃으면 좋지· 웃으면 북이 온다던가 뭐라던가 하지 않았나?”
“복·”
“이윤서 진짜 한국어 언제 다 배우냐?”
“좀 가르쳐 줘 그럼 니가·”
“니가?? 잘 모루쉬나본뒈 그거 미쿡에서는 위험한 표혀니에용·”
멤버들이 잡담을 나누는 사이 하린은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베리어스 멤버들을 눈에 담았다·
‘베리어스···’
5세대 아이돌의 필두라고 평가받는 베리어스지만 경력 자체는 이제 3년차에 접어들 정도로 짧은 편이었다· 곧 4년차를 마감할 아우로라와는 1년이 넘게 차이가 날 정도로·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리어스는 처음부터 한국 여자아이돌 시장을 지배했다· 마치 원래부터 자기들 자리였다는 것처럼·
그리고 하린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베리어스의 멤버들을 싫어하는 건 아니다· 몇번 이야기를 나눠보진 않았지만 싹싹한 애들이었으니까· 하지만 하린은 그들이 ‘원탑’이라는 인식이 너무나도 싫었다· 뒤집어버리고 싶었다· 기존의 질서를 무너트리고 싶었다· 마치 그녀의 우상 ‘하수연’이···한국 음악계를 송두리째 뒤흔들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그럼 10월 1주차! 이번주 1위의 주인공은 누가 될까요? 결과 보여주세요~!”
“네! 모든 점수를 합산한 이번주 1위! 과연 이번주 1위는 누가 될까요?”
항상 그렇듯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음악’이 흐르고· 평소와는 달리 하린의 몸은 긴장으로 뻣뻣하게 굳어들었다· 언제나처럼 ‘1위 하면 좋고 아니면 뭐~’ 가 아니라 진짜 이번에는 이겨야 했으므로·
그리고 사정을 아는 주위 아이돌들이 베리어스와 아우로라만을 쳐다보기 시작할 즈음···MC를 맡은 신인 아이돌 삼인조가 대본 시트를 들고 결과를 발표했다·
“네 이번주 1위는 축하드립니다! 아우로라 [Lean on You]!”
“와! 대박!”
종이 폭죽이 확 터지며 이름 모를 누군가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하린은 주먹을 꽉 쥐고 기뻐하며 본능적으로 베리어스 쪽으로 가려는 고개를 어떻게든 돌려세웠다· 지금 이 상황에서 쳐다보고 웃기라도 하면 바로 인성 어쩌고 저쩌고 하면서 논란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이걸로 3승 0패·’
금요일 승· 토요일 승· 그리고 일요일 승· 3:0· 확실한 승리·
물론 베리어스도 할 말은 있다· 2주차에 접어든 상황에서 아우로라가 모든 걸 다 걸고 맹공을 펼쳐왔으니···충분히 그럴 수 있지 않느냐고· 게다가 그룹 사운드까지 동원했으니 당연한 결과 아니겠냐고· 게다가 점수 자체는 상당히 비슷했으니 비등비등한 것 아니었냐고·
“소감 한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언니 빨리 빨리·”
“아 내가?”
하지만 하린은 마이크를 잡고 입을 열기 전 잠시 생각했다· 이것저것 갖다 붙일 이유는 많긴 하겠지·
하지만 이제는 무의식적으로든 의식적으로든 알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아 이렇게 저희 아우로라의 린 온 유! 많이 사랑해주셔서 감사하구요 스태프분들도 그렇지만 특히 저희 도와주셨던 그룹 사운드 여러분 정말 진짜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들던 소위 1티어 혹은 4강 혹은 1황 아니 그게 뭐가 되었던···그 모든 질서는 이제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 * *
그렇게 급작스럽게 시작되었던 두 아이돌의 대결은 아우로라의 3:0 승리로 끝났다· 더 지속될 수는 있었지만 최소한 순위를 가릴 수 있는 형태로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10월 1주차에 차트 괴물 남돌이 컴백을 했기 때문에·
그리고 호사가들은 두 그룹의 대결에 대해 많은 곳에서 이야기를 주워섬겼다·
<스퀘어>
[이색·히들은 위기감좀 느껴야된다]
맨날 신비주의 어쩌고
그런데 뭔 아우로라한테도 따잇
주가 떨구는 건 작전이냐
좀 제대로 좀 해라
이론상으로는 아우로라가 베리어스를 이길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왜냐하면 팬덤의 크기나 열정 홍보 전략과 범위 유명세···그 모든 것들이 전부 다 큰 폭으로 차이가 났으므로·
크림 엔터테인먼트는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곡으로 승부를 보려고 했지만 [Lean on You]와 [Blind Sight] 두 곡의 퀄리티가 비슷한 상황에서···아우로라가 이길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질 수 밖에 없었다· 차이를 극한으로 좁혀나간다 할지라도 그걸 역전시킬 방도가 없던 것이다·
하지만 모두들 잘 알듯이 형세는 역전되었다· 크림 엔터테인먼트와 아우로라만이 쓸 수 있는 일종의 ‘사기템’을 활용해서·
– 벨선족 개같이 털렸긔 lol
ㄴ 2주차면 내려갈만하지 뭔 개같이 털려
ㄴ 벨족이들 말로는 VFS 컴백 전까지 그냥 2주 1위는 확정이라던데? lol
– 이번에 진짜 아우로라 칼 갈고 나온거 느껴지더라···곡도 엄청 좋았음
ㄴ 솔직히 곡도 곡인데 그사빨인거 인정해야지 그사 붙으면서 갑자기 팡 터지고 갓반인픽 된 거 아냐
ㄴ 그사 안붙었어도 얘들 곡 좋았어서 1위 충분히 먹었을듯
ㄴ lol 제정신임??
– 아우로라는 홍대방향으로 매일 세번씩 절해야 함 솔직히 그사가 만들어준 거 아님? 팬들 화력이 다른데 갓반인픽 만들어준게 그사잖아
ㄴ 111111111
ㄴ 2222222
ㄴ 벨줌마 정신차려요 남탓하지말고
ㄴ 차단함
비율은 다르지만 대부분의 음악방송은 음원/음반/시청자 투표/방송 출연 횟수 등으로 순위를 집계한다· 그리고 아무리 베리어스가 이길 줄 알고 적당히 컨디션을 조절해가며 홍보를 했다 한들 체급이 있으니 다른 모든 면에서 아우로라를 앞설 수 밖에 없다·
그러니 다른 부문에서는 전부 베리어스가 아우로라를 압도했으나···단 하나 음원 부분만큼은 아우로라가 베리어스를 앞섰다· 원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흔히 말해 ‘스밍’을 돌리는 팬들의 규모조차도 베리어스가 훨씬 컸으므로·
하지만 거기에서 끼어든 변수가 바로 그룹 사운드였다·
– 아이돌 노래 전혀 안 듣던 우리 형부도 린온유 듣길래 그 노래 어케 아냐고 하니까 그룹사운드 이야기 나와서 들어봤다더라
ㄴ lol 진짜 미쳤다
– 나도 돌노래 안듣는데 콜라보했다길래 공연무대 보고 들어보니까 어 괜찮은데? 해서 듣게됨 그룹사운드 유입이 엄청 커
– 솔직히 한국 원탑 밴드가 무대에 서줬다는데 안 볼 사람이 누가 있음? 없음 lol
ㄴ 11111111
ㄴ 22222 그치그치
대중픽 국뽕픽 갓반인픽 어쩌고 저쩌고 픽· 밴드의 황무지인 한국에서 출발해 밴드의 나라인 일본에서 [Kingdom]을 터트려버린 시점에서 그룹 사운드의 위상은 그야말로 끝도 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룹 사운드가 엮인 시점에서 게다가 작곡까지 그 ‘하수연’이 했다고 하니· 아우로라의 화제성은 마찬가지로 폭발적으로 올라갔고· 결국 체급이 뒤집히는 ‘자이언트 킬링’이 일어나고 만 것이다·
즉 스퀘어 엔터테인먼트와 베리어스만을 빼고 모두가 행복했다· 크림 엔터테인먼트는 스퀘어를 이겨서 좋았고 아우로라는 베리어스를 이겨서 좋았다·
“너 그거 어디서 났냐?”
“그 음방 출연료 정산받자마자 샀지· 이쁘지? 아라이 카즈키 시그니쳐임·”
“우리 음악엔 5현이 필요가 없는데?”
“너는 꼭 필요한거만 사?”
그룹 사운드는 돈을 많이 받아서 좋았다· 난데없이 생긴 공돈에 다들 뭔가 하나씩 바뀌거나 새로 생기거나 했다· 수연은 아주 여유롭게 도대체 어디에서 구했는지 모를 쿠바 마호가니 원피스 바디의 기타 하나와 사운드 실험용으로 막 굴릴 기타 하나를 주문했다·
그리고 수연은 그걸로 모든 일이 다 끝난 줄 알았다·
“너 기타는 언제 온대?”
“몰라· 빨리 오겠지 뭐·”
수연은 루페(확대경)를 끼고 회로도와 기타의 배선을 대조하며···이서의 질문에 대충 대답했다· 뭐 언젠간 오지 않겠는가· 그 전까지는 이런 식으로 사운드 실험을 계속 해나가야 할 듯 했다·
‘이번 라이브때 한번 제대로 실험을 해봐야겠지· 어떤 반응이 오는지···’
수연에게는 딱 그 정도의 일이었다· 일정을 잡아먹어야 할 정도로 귀찮았지만 돈 많이 받았으니 좋은· 하지만 그 일은 의외의 수연이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조금씩 발을 뻗치고 있었다·
[[4K라이브] 아우로라 ‘Lean on You’ Feat· 그룹 사운드 별도녹화 | Aurora Lean on You feat· Group Sound ONE TAKE STAGE]
조회수 250만회 | 1주 전
– 내 알고리즘에 도대체 왜 케이팝이 뜬 줄 몰랐는데 밴드를 보고 알았어
ㄴ 마찬가지 심정임
– 나는 아우로라를 보러 왔는데 약간 미안한 이야기지만 밴드 아이들밖에 안 보여· 기타 치는 여자애는 신 그 자체인걸
ㄴ 그룹 사운드라고 하네·
ㄴ 동양권에서는 꽤나 인기 있는 밴드야
– 밴드의 실력이 엄청난데· 곡을 한번 들어봐야겠어
원래 그룹 사운드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그런 영역의 사람들이 그룹 사운드를 시야에 넣기 시작했다·
* * *
하지만 그것은 나중의 일· 현재 단계에서는 나비가 일으킨 미약한 날갯짓 정도 밖에 되지 않는 그런 것·
그룹 사운드 멤버들은 그런 일과는 전혀 상관 없이 열심히 연습에 매진하고 있었다· 돈을 번 것은 좋았지만 연습해야 할 시간이 그만큼 사라지기도 했기 때문에· 조금 더 높은 비중으로 조금 더 확실히 합주 연습을 해 나갔다· 최상의 퀄리티를 위해서·
“좀 쉬자· 20분 휴식·”
“오케이~”
다년간의 연습이 몸에 익은 것일까· 쉬자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바람에 흩날리는 허수아비들처럼 늘어지던 멤버들도 이제는 차분히 몸을 풀며 할 것을 하러 가는 사이·
수연은 연습실 구석에 놓인 컴퓨터를 잡고 잠시 들여다보았다· 최근 라이브 투어에 대해 생긴 생각을 조금 구체화하고 싶었기에·
“뭐 해?”
“자료조사·”
그렇게 모니터를 들여다보는 수연의 머리 위로 내려앉는 무거운 중량감· 수연은 그렇게 심드렁하게 대답하고는 스냅을 줘 고개를 젖혀 이서의 명치를 가격했다· “께엑!” 하는 소리가 들려오는 사이 수연은 다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뭐 새 곡이라도 만들게?”
“아니· 이번 라이브에서···”
갖가지 앨범의 커버와 제목이 떠 있는 모니터· 슬쩍 다가온 서하는 밴드는 다르지만 그 앨범들에 공통점이 있다는 것을 찾아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수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
“우리가 라이브 앨범이 없잖아· 라이브 앨범을 하나 만들까 하는데·”
“라이브 앨범?”
명치를 한대 맞았던 이서가 그 부위를 문지르며 슬며시 일어나 반문하는 사이·
“있잖아 그거· 어쿠스틱·”
“그거도 라이브긴 하지만···뭔가 좀 라이브 앨범이라기보단 너무 뭔가 음· 컨셉트 앨범 같은 느낌이라고 해야 하나·”
서하의 대답에 수연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쿠스틱 앨범은 어쿠스틱 앨범이지 라이브 앨범은 아닌 것 같다는 게 수연의 생각이었다· 물론 엄밀히 말하자면 라이브가 맞긴 했지만·
“내가 말한 건 이런 거·”
수연은 컴퓨터를 조작하여 몇개의 앨범아트를 띄웠다· 올맨 브라더스 밴드의 at fillmore east· 제임스 브라운의 Live At The Apollo· 그레이트풀 데드의 Cornell 5/8/77· 피쉬만즈의 98·12·28 男達の別れ 등·
다들 역사에 길이 남을 라이브 음반이다·
“야 이건 너무 목표가 높은 거 아냐?”
“원래 꿈은 크게 잡아야지···아니 진짜 이 수준으로 만들자는 게 아니라·”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얼마 전 서머소닉 2027때를 떠올렸다· 여러가지를 느끼게 해준 공연이었지만 수연 자신의 음악적인 문제를 제외하고 느낀 가장 큰 것이라고 한다면·
바로 라이브에 대한 사람들의 갈증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수연은 그 외국인이 찍은 직캠이 그렇게 조회수가 높을 줄 몰랐다· 그런게 있다 수준으로 여겼을 뿐· 그런데 조회수가 높은 것도 모자라 그걸 보고 가입을 했다는 사람들까지 마구 등장하는 걸 보면서···
수연으로서는 실감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사람들이 얼마나 라이브를 갈구하는가를·
“거창하게는 말고 한번 떠보자는 거지· 라이브마다 다 떠가지고 어떤 공연이 제일 좋은가 한번 보고· 제일 좋은 걸 한번 발매하는 식으로·”
“그거 좋은 것 같은데요···”
“재밌겠네·”
두 명의 대답을 들으며 수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뭘 좀 아는구만· 하지만 정작 쾌활한 대답이 나와야 할 이서에게서는 조금 다른 성격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니 그러면 라이브마다 다르게 해야되는 거 아냐?”
“원래 맨날 그랬잖아·”
“아니 원래 맨날 그러는 정도면 연수 니가 이런 말을 할 리가 없잖아· 그냥 녹화 떠가지고 발매했겠지·”
그런 이서의 말에 수연은 대답 대신 씨익 웃음을 지었다· 들켰다는 듯한 느낌으로·
“나 안해·”
“뭘 안해· 다 동의했어·”
“야! 민주주의는 소수의 의견도 존중해야 하는 거야! 대한민국은 어쩌고 아무튼 그런 거의 자유가 있는 나라라고!”
“포기···하세요···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