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19
“자자 국장님· 피디가 뭔가 착오를 했나봅니다· 저희 쪽에 출연을 안 할리가 없지 않습니까·”
“그럼 저놈이 말한 건 뭔데??”
“제가 한번 확인해보고 적절하게 조치 취하도록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십쇼·”
국장의 노성이 울려퍼지던 회의는 그렇게 다른 부장이 수습해줌으로써 어떻게든 끝이 났다· 그러나 그것은 그 회의만 끝났다는 것일 뿐· 니카이도와 뮤직 스테이션 피디 팀은 마치 사형장에 끌려가는 듯한 분위기를 띄고 다른 회의실로 터벅터벅 자리를 옮겼다·
“너만 들어와봐·”
“···네 알겠습니다·”
들어가기 싫다는 감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대답을 남긴 채 피디가 부장의 뒤를 따라 들어가고· 문이 닫기자마자 고성이 흘러나오기 시작한 뒤·
“니카이도 씨 진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하신 거에요·”
“무슨 생각이라뇨?”
“아시잖아요·”
‘뭘 알아·’
은근슬쩍 자신을 비웃는 듯한 다른 직원의 이야기에 니카이도는 으드득 이를 갈았다· 뭘 ‘아시잖아요’ 인가· 뭘 깨끗한 척인가· 죄다 자신과 비슷하게 업체들 돈이나 끌어모으고 있는 녀석들이·
그런 인상은 회의실의 고성이 끝난 후 더 강해졌다· 피곤한 얼굴의 피디에게 불러져 부장 앞에 섰을 때 튀어나온 이야기가 바로 이것이었으므로·
“너 왜 그딴 식으로 일처리를 해·”
“···네?”
“너 이 새끼야 너한테 스폰서 따오라는 지시도 하나도 없었는데 왜 니 혼자 튀어나가서 그런 짓을 하고 있냐고!”
니카이도는 어이가 없었다· “다들 그러고 있지 않습니까?” 라는 말이 턱끝까지 튀어나올 정도였다· 부장도 피디도 아까 옆에서 중얼거리던 그 놈도 그 옆에 있던 놈도· 다 똑같이 자신과 비슷하게 하고 있지 않은가· 다 비슷하게 스폰서 금액 해먹으면서 남는 돈 얼마는 위로 보내고 뒷돈 차고·
“어!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건데?”
그런 돈이 다 어디에서 났겠는가· 그런 지식이 어디에서 생겼겠는가· 위에서 넌지시 ‘이런 식으로 한번 해서 돈 울궈내봐라’ 라고 말하던가 아니면 직접 보여주었기에 배운 것 아닌가·
지금 저기서 자신을 ‘그러게 왜 그랬냐’ 라는 식으로 쳐다보고 있는 피디놈은 당장 3년 전만 해도 자신과 콤비를 이루어 스폰서에게 돈을 뜯어냈었다· 그 돈의 40%가 어디로 갔겠는가· 피디의 주머니에는 들어가지 않았던 것이 분명했는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니카이도는 침묵했다· 어찌되었든 붙어만 있으면 되니까· 그렇게 된다면 기회는 온다· 기회가 오지 않아도 그래도 월급은 받아갈 수 있고 경력을 쌓을 수 있다·
“다 제 잘못입니다·”
“그걸 알면···후 나가봐·”
그리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던 일은 다른 식으로 불거졌다·
“니카이도 너 잠시 출장 좀 갔다와라·”
“네?”
“1팀에서 센다이 쪽 인력이 필요하다고 하더라· 내가 전화는 해 둘테니까 잠시 갔다와· 이번 일 머리 식힌다고 생각하고·”
바로 다음 날 그를 부른 피디의 첫 번째 말에서· 니카이도는 즉시 국장의 부장의 차장의 피디의 속셈을 읽어낼 수 있었다· 너무나도 뻔히 보이는 수작이었으니까·
‘내가 간 사이에 증거 치워버리겠다 이거지? 이러고 징계해고하면 그냥 전부 다 내가 한 일로 되니까·’
그룹 사운드를 출연시키지 않을 수는 없다· 지금 이 시기에 뮤직 스테이션만 나오지 않는다면 분명 이야깃거리가 나올 수 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그룹 사운드는 그들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니카이도 자신을 자른다·
그리고 거기에 엮어서 니카이도가 도호쿠로 간 사이 자신들이 했던 더러운 짓거리도 같이 묶어서 버려버린다· 증거를 지우고 조작한 다음 이것도 저것도 다 저놈이 했어요! 하는 식으로· 전형적인 꼬리자르기·
‘내가 그렇게 뻔히 당해줄 것 같아?’
그는 이를 으득 갈았다· 자신이 잘리는 건 확정일 것이다· 가만히 놔두면 모를까 센다이로 보내버리는 시점에서 그에게 희망은 없다· 징계해고든 손해배상이든 터지겠지· 회사에서 멀쩡히 걸어나갈 수 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자신만 죽을 생각도 전혀 없었다·
* * *
가해자들끼리 서로 죽이고 죽이는 그런 아무래도 좋은 이야기와는 무관하게· 시간을 조금 아니 더 많이· 한참 전으로 돌려 빠르게 훑어보자면·
그룹 사운드는 협찬을 받은 적이 없는 밴드였다· 이때까지 단 한번도· 의상도 장비도 그 외 기타 등등도· 어떤 것도 지원받은 적이 없었다· 그룹 사운드가 들고 나온 물건들은 전부 회사 차원에서 구매하거나 혹은 멤버들이 원래부터 가지고 있던 것이었다·
협찬이 들어온 적이 없는가 하면 그것은 절대 아니다·
이제는 하다하다 못해 공항에서 귀국하는 것까지 협찬 광고로 내보내고 수익을 받으려다가 공항을 통제했다는 구설수에 오른 사람이 있을 정도로· 한국은 협찬이 활발한 나라다· ‘방송’이라는 이야기만 나오면 뭘 빌려주겠다는 사람들이 줄을 서고 각종 브랜드들은 협찬용 사무실을 따로 운영할 정도로·
그리고 그룹 사운드는 21세기에 보기 드문 ‘실력파’ ‘미소녀’ ‘(전직)미성년’ ‘밴드’라는 4가지 요소를 전부 가지고 있는 그룹이었다·
당연하게도 ‘제발 협찬을 받아주세요’ 같은 제안은 수도 없이 쏟아졌다· 그룹 사운드에 소속사가 생긴 직후부터· 종목도 다양했다· 의류는 물론이요 가방도 악기도 음향기기도 그 외 기타 등등···너무 많아서 셀 수 없을 정도로·
하지만 정 차장은 그 모든 것을 거부했다· 왜냐하면 이것이야말로 그녀의 주 종목이었으므로· 어떻게 돌아가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협찬을 받는다는 건 그 아티스트의 ‘급’을 결정하는 행위이기도 해·’
정말 배금주의적 표현이지만· 소위 말해 ‘길바닥 브랜드’의 협찬을 받고 다니는 아티스트와 ‘근본 브랜드’ 내지 ‘명품 브랜드’의 협찬을 받고 다니는 아티스트가 있다고 쳤을 때·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을 할까·
물론 그 아티스트가 ‘길바닥 브랜드’를 좋아해서 그럴 수도 있다· ‘명품 브랜드’ 등의 협찬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내친 것일수도 있다· 사실 ‘명품 브랜드’를 받은 쪽은 ‘명품 브랜드’의 다리를 잡아가면서 겨우겨우 받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뒷면의 사정은 알 수 없고 결과만이 존재한다·
아티스트가 착용한 물건 받은 협찬을 보고 ‘급’을 판단하는 사람이 결코 적다고는 할 수 없다· 그렇기에 4세대의 1티어 아이돌이 데뷔하기도 전에 5대 럭셔리 하우스와 협업을 해 엠버서더 자리에 오른 것이다·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있기 때문에 정 차장은 ‘제일 처음 받는’ 협찬 내지 광고를 최정상급으로 올리고 싶었다· 본인들은 어떻게 생각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그룹 사운드는 그녀의 자식이나 작품과도 같은 것이었으므로·
그리고 정 차장이 생각하건데·
‘이제는 때가 됐어·’
그룹 사운드는 이제 최소 A급· 혹은 S급의 광고를 받을 수 있는 레벨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다음을 논해야 한다· 그 다음이란···
‘그럼 어디 쪽이랑 컨택을 해봐야 할까?’
플러스펜을 입에 물고 비죽이며· 정 차장은 턱을 괴고 모니터를 한참 바라보았다· 거기에는 수많은 사진이 띄워져 있었다· 팬들이 찍은 사진이나 공식적인 사진들· 이렇게 보면 참 이쁘긴 하지만 정 차장은 보면 볼수록 곤란하긴 하다고 생각했다·
“우리 애들 진짜 통일성 없게 입는다·”
“그죠?”
“아니 제가 보기에는 이서랑 서하만 어떻게 해도 될 것 같던데요·”
“그건 아닐 걸· 수연 님을 어떻게 해야 되는 거 아냐?”
“왜 다른 애들은 그냥 부르고 수연 님은 수연 님이라고 해?”
“김 과장님도 지금 그러고 있잖아요·”
사장의 딸에 대한 호칭으로 자기들끼리 뭐라고 떠들고 있는 직원들· “수연 님은 좀 논외로 쳐야지·” “아니 솔직히 나이는 분명히 저보다 한참 어린데 뭔가 저희 아빠뻘 같다고 느껴질 때가 있단 말이에요·” 같은 이야기들이 오가는 가운데·
“자자 그건 어찌됐든 좋고·”
“그럼 수연 님이라고 부르는 걸로?”
“사장님 딸이니까 님자 붙여야지· 돈 주는 분이 갑인 거야·”
그렇게 정리를 한 후 정 차장은 모니터를 다시 한번 바라보았다· 직원들의 말이 다 맞다고 생각되긴 했다· 서로 완전 상반되게 입고 다니는 이서와 서하의 이미지만 어떻게 뭉뚱그리면 하나의 카테고리 안에 들어갈 것 같기도 하고· 혹은 더울 때 외에는 포멀 그 자체로 입고 다니는 수연만 어떻게 하면 될 것 같기도 하고·
“어떤 브랜드가 좋을까? 이야기들 해 봐·”
“셀린느!”
“루이비통 같은 게 더 낫지 않나?”
“락 밴드가 명품 엠버서더 되는 건 조금 그런 느낌 아니에요? 뭔가 ‘저항!’ 같은 이미지가 삭제가 되니까···”
“그게 언젯적 이야기에요· 애초에 저항이니 뭐니 할 거면 돈 많이 벌면 안 되지· 다 기부하고 그래야지·”
“내가 수연 님한테 들었는데 핑크 플로이드가 거의 반쯤 사회주의자로 채워진 밴드인데 그 사람들도 기부 안 한대·”
포괄적 저항· 사회주의· 기부· 어쩌고 저쩌고· 브레인 스토밍을 빙자한 아무말파티를 보는 느낌을 받으며 정 차장은 계속해서 키워드를 메모해나갔다·
하지만 뭔가 뚜렷하게 오는 건 없었다· 어쩌면 각각 입혀보던가 혹은 외주 업체의 손을 빌려 기업 측에 공격적으로 피티를 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어떤 브랜드에서 빌려줄지는 모르는 일이니까·
그렇게 정 차장이 모니터를 노려보며 머릿속에 낀 안개를 헤집어가는 사이·
“안녕하세요·”
“수연 님! 잘 오셨다· 방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들었냐면 수연 님 정신연령이 박 대리 아버지보다···”
“과장님!”
“왜요· 정신연령이 뭐·”
언제 온 것인지 모르게 사무실에 슥 들어와 왠지 모르게 ‘나이’에 이상하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는 수연을 보고· 그리고 그녀가 입은 옷을 보고 정 차장은 눈을 번쩍 떴다· 그러고 보니 저게 있었다·
‘확실한 S급 티어···라고 할 수 있고· 우리 멤버들 이미지를 다 포괄할 수도 있고···’
게다가 사례도 있다·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그런 브랜드· 정 차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직원들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수연의 손을 잡았다·
“수연 님!”
“에 네·”
“우리 패션쇼 한번 할까요?”
“제가요?”
물론 진짜 패션쇼를 나가자는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런 브랜드도 아니니까·
* * *
도쿄 시내의 어느 빌딩·
“흠·”
그는 팔짱을 끼고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정말 수없이 솟아오른 마천루들과 길을 바삐 다니고 있는 차와 사람들을· 세상에는 저렇게도 사람이 많은데 어째서 왜 그들의 제품은 매출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는 것일까· 왜 그들은 우리의 제품을 사지 않는 건가·
아예 안 사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제품 라인업에는 스테디셀러가 너무나도 많았으니까· 그러므로 매출이 하락하거나 회사가 망할 리는 없었다· 그 또한 그런 이유로 고민을 하는 것은 아니었고·
하지만 영원한 라이벌을 물리칠 수 없는 것은 분명 문제였다·
다들 의식하지 않는다고는 하지만 회사의 직원이라면 누구나 의식할 수 밖에 없는 라이벌· 그들과 엎치락 뒷치락하던 ‘그 브랜드’는 몇년 전까지만 해도 몰락하는 듯 싶다 다시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들은 아직 뭔가를 개발해내지 못했는데도·
‘뭔가 새로운 그림이 없어·’
그렇기에 그는 생각했다· 뭔가 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고·
물론 독자적 권한을 받았다 한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는 그냥 일개 국가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물살 자체를 바꿔버릴 힘은 가지고 있지 않다· 하지만 일본에 한해서만큼은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만큼 뭔가 해낼 역량은 분명 있었다·
“디렉터님 3팀 수석님 오셨습니다·”
“들어오라고 해·”
3팀이라고 하면 외부와의 협업 및 홍보를 담당하는 부서· 그와는 자주 보는 사이이지만 최근 결정 사항에 대해서는 어제 보고를 마쳤을 텐데· 오늘은 무슨 일일까 하며 그는 수석 팀장을 맞이했다·
“웬 일이야·”
“아 디렉터님· 오늘 들어온 제안이 하나 있는데· 브랜드 이미지 제고에 꽤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아서요 제가·”
“뭐길래 그래?”
“방금 오퍼가 들어왔는데요 여기에서는 자기들이 피티를 한번 할 수도 있다고 하거든요· 밴드이긴 한데···”
그렇게 말하며 수석은 자료를 주욱 늘어놓았다· 4명의 여자 아이가 들어간 사진· 이리저리 사진들과 자료가 있는 가운데·
“이건 누군데?”
“이 팀 리더랍니다·”
뭔가 심드렁한 표정으로 그들의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는 그런 여자아이· 분명 이쁘지만 모델은 아니다· 모델은 아닌데 분명 아닌데···
왠지 모르게 끌리는 아우라가 있었다·
그들의 옷에 박힌 상징 삼선에 너무나도 어울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