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320
이틀 뒤·
“그거 처음 보는 옷 같은데· 새로 산 거야?”
뭔가 특별한 디자인은 아니지만 상징적인 로고와 세개의 줄이 선명하게 그려져 있긴 한 봄버 자켓· 이서는 그런 봄버 자켓을 입고 옆자리에 반쯤 누워 있는 수연을 슬쩍 쳐다보며 말했다·
“응·”
“연수하가 자기 손으로 옷을 사는 날이 오다니 세상에·”
수연이 숙소에서 입고 다니는 옷 중에는 아무런 특징이 없는 하얀색 티셔츠가 몇개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그냥 무지티인 것처럼 보이지만 수연의 집에 몇번 가본 이서는 그게 무지티가 아니라 너무 많이 빨아서 프린트가 다 사라진 티셔츠라는 걸 잘 알았다·
이서는 그 모습을 보고 도대체 왜 그렇게 옷을 입고 다니냐 돈을 아끼려고 그러는 거냐는 식으로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거기에 대해 돌아온 답변은···
“다른 옷 사기 귀찮잖아·”
“아니 옷 사는 게 뭐가 귀찮은···”
“옷이야 있는 거 입으면 되는 거고 그 시간에 연습이나 하는 게 훨씬 낫지·”
오히려 자신은 왜 이서와 서하가 옷 입는 걸 가지고 경쟁을 하는지 모르겠다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것이 수연이었는데· 그런 수연이 옷을 사다니 정말이지···
“내가 어지간해서는 눈물이 안 나는 사람인데 눈물이 다 나네·”
“내일 지구 멸망하는 거 아님?”
“역시 지구 온난화가 오는 이유가···”
사람 생각은 역시 다들 비슷한 것인지 이서의 말에 동조하는 멤버들· 수연은 뒷자석을 슬쩍 흘겨보고는 말했다·
“광고 따내러 가는데 다른 회사 옷 입을 수는 없잖아· 어차피 이런 날씨에 입을 옷도 드물고 해서 하나 샀지·”
“와 그럼 그 지겨운 바람막이 그만 보는 거야 이제?”
“아니 지겹다니·”
“날 안 추우면 무조건 그거만 입고 다니는데 그럼 그게 안 지겹겠어? 나는 무슨 우리 회사 근무복인 줄 알았다니까 그 바람막이가·”
“어? 그거 각자 다른 거 아니었어요? 똑같은 거 두개 세개씩 있는 줄 알았는데!”
“아니에요· 그냥 이번 겨울 내내 그거 입고 다닌 거에요·”
감탄인지 탄식인지· 숙소에 같이 살지 않아 수연의 현실을 잘 모르는 정 차장이 반쯤 신음소리를 흘렸다· 수연은 그 이야기를 듣고 헛기침을 잠시 한 후 말했다·
“아니 멀쩡하게 입을 수 있는 게 있는데 왜 다른 옷을 살 필요가 있어· 어디 구멍난 곳도 없잖아?”
“너 몰랐냐? 그거 허리쪽에 완전 다 닳아서 헤졌던데·”
“헤졌다고 못 입는 건 아니잖아?”
“와 진짜 우리 할머니도 안 할 소리 하네· 환갑 넘긴 우리 할머니도 그런 옷은 버리라고 할 걸?”
수연은 미간을 찌푸린 채로 이야기를 듣다가 할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못 들은 척을 하며 창밖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서는 궁금했다· 수연이 어머님조차 저러지는 않았고 집이 못사는 것도 아닌데· 도대체 왜 저러는 것일까·
“메이크업만 조금 손보고 올라갈게요·”
그렇게 이야기가 오가는 가운데 세워진 차· 정 차장은 그렇게 말하며 내린 뒤 뒷자리에 다시 탑승했다· 다른 차로 같이 따라온 다른 회사 직원들도 같이 타 멤버들의 화장을 손봐주었다·
“아니 미팅인데 굳이 이렇게 할 필요가 있을까요·”
“아직 결정된 게 아니니까요! 첫 인상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거 다들 아시죠?”
정 차장은 그렇게 말하며 “기선제압을 해야 하니까요!” 같은 이야기를 했다· 과연 그것이 통할지 수연은 의문이 들었다·
* * *
삼선모양의 로고와 불꽃 모양의 로고·
하시야마의 회사를 상징하는 그런 마크·
그 마크가 떡하니 붙어 있는 집무실에서 하시야마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상대방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틀 전의 결정에 대해서 후회를 하고 있었다· 너무 성급한 결정이 아니었을까 하고·
‘뭔가 보인다고 생각하긴 했는데···’
그룹 사운드·
유명한 밴드이긴 했다· 그도 이름을 들어봤고 노래까지 들은 적이 있으니까·
하지만 본사든 일본지부든 간에 그의 브랜드는 힙합과 스트릿 문화에 큰 연관이 있지 밴드와는 그다지 연관이 없다· 그렇기에 하시야마 자신은 그룹 사운드에 대해 그냥 ‘유명한 노래를 부른 밴드’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그런 그룹 사운드를 불러오게 된 것은 3팀 수석의 추천도 분명 지분이 크긴 했지만· 무엇보다 사진을 보았을 때 디자인을 하는 사람 특유의 제6감에서 느껴지는 감각이라고 해야 할까·
‘뭔가’ 보인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성공의 실타래를 휙 잡아챈 듯한 그런 느낌·
하지만 이틀이 지난 후 지금에 와서 보면 뭔가 의심이 드는 것이다· 그때 들었던 것은 그냥 그때 당시의 변덕이 아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이· 그리고 감각이 밀려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한 것은 나이가 든 사람 특유의 보수성·
“3수석·”
“네·”
“3수석은 어떻게 생각해· 이 애들· 우리한테 어울릴 것 같아?”
“글쎄요 저는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만·”
“혹시 3수석이 이 친구들 팬인 건 아니고?”
“부정할 수는 없겠습니다·”
하시야마는 약하게 코웃음을 쳤다· 역시 그런 것이었나· 하지만 3수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애들이 현재 일본에서 가장 뜨거운 아티스트인 것은 부정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현재까지 어떤 브랜드와도 콜라보 협업 협찬 등을 하지 않은 것을 보았을 때 상당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구요·”
“내가 물어보는 건 그런 게 아니야· 이 애들한테 그 정도의 가치가 있을까? 하는 거지·”
“충분히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떤 점에서?”
그 말에 3수석은 안경을 슥 치켜올리고는 자신의 앞에 놓인 자료를 훑어보며 말했다·
“일단 그룹 사운드 자체가 상당히 드물게 전연령적 인기를 얻은 밴드라는 점이 있기도 하겠고· 게다가 음악도 뭔가 요새 젊은 아이들이 생각하는 그런 ‘락 밴드’ 같은 고리타분한 음악을 하지 않는다는 점도 조금 꼽을 수 있을 것 같구요·”
“계속해 봐·”
“그리고 이 애들은 한국인이기도 하니까·”
“한국인이면 뭐·”
“아무래도 조금 쿨한 이미지가 있죠· 케이팝 아이돌들과 비슷하면서도 훨씬 다른 영역에서 쿨-한 느낌· 실제로 그렇지 않습니까· 아이돌과 비슷한 외모에 아이돌보다 훨씬 나은 실력· 하지만 뭔가 신비한 그런 이미지·”
“음 일단 3수석이 이 애들을 좋아한다는 것은 알 것 같긴 하네·”
하시야마는 그렇게 말하며 이틀 전 받았던 사진 자료 몇장을 훑어보았다· 확실히 3수석의 말대로 한명은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힘들 만큼의 외모를 가지고 있긴 했지만·
‘이거 보정 아닐까?’
이제는 그런 생각까지 하며 하시야마는 시계를 바라보았다· 곧 올 시간인데·
[“디렉터님 레이블 에코사운드에서 손님이 오셨습니다·”]
“응 들어오라고 그래·”
그 소리를 듣자마자 자세를 확 고쳐잡는 3수석·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문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통유리를 통해 계단으로 누군가가 올라오는 모습이 보이고 문이 열리고· 한명씩 순서대로 들어오기 시작한 다음·
마지막에 들어온 사람을 보고 그는 무의식적으로 숨을 들이쉬었다·
허리보다도 더 내려오는 폭포수같이 쏟아지는 머릿결· 차갑다 못해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할 정도의 무기질적인 눈· 미처 숨기지 못한 따분함이 눈꼬리에 남아 있는 표정은 왠지 그렇기에 더 매혹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그리고 그 밑으로는 최근 출시한 회사의 상품들이 줄을 잇고 있었다· 그가 야심차게 출시했던 오리지널 라인업· 봄버 자켓 스웨터 팬츠···디렉터인 자신이 전면적으로 푸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대치만큼의 매상은 올리지 못한 그런 [에브리데이] 라인업의 제품들·
하지만 그 순간 그는 생각했다· 그러한 실패를 되돌릴 수 있을 것 같다고·
“안녕하세요 그룹 사운드 하수연입니다·”
“어···하시야마입니다· 앉으시죠·”
그렇게 멍하니 생각에 빠졌던 사이· 사무실에 자리잡은 네 명의 인사가 이어진 후· 그를 깨운 것은 마지막 ‘그 사람’의 인사였다· 그는 다급히 정신을 차린 후 자리를 안내했다· 비즈니스 예절에 어긋나는 행동을 할 정도로·
“감 감사합니다!”
“아 네· 어···그룹 사운드라고 하셨죠·”
“네 맞습니다! 저는 정유영 차장이구요·”
“그럼 이 분들은 죄송하지만 제가 사람 이름을 기억을 잘 못해서요·”
미처 표정을 숨기지 못한 채 3수석이 어처구니 없다는 감정을 담아 그를 바라보는 가운데· 하시야마는 얼굴에 철판을 깔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 말에 상대방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쾌활하게 대답했다·
“네! 이쪽부터···”
“최이서입니다·”
“정현아입니다!”
“안녕하세요 유서하입니다·”
“하수연입니다·”
‘하수연·’
하수연 하수연이라· 그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상대방의 얼굴을 기억했다· 하수연· 다른 아이들도 다 좋다· 아까 전까지만 해도 의심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충분히 광고 모델이 될 수 있다·
그리고 하수연 이 사람이라면·
‘충분히 될 것 같다·’
아까 보여주었던 이미지· 무기질적이면서도 뭔가 도시적인· 누구나 따라할 수 있으면서도 누구나 따라하고 싶을 것 같은· 그런 알 수 없는 그렇기에 알고 싶은 그런 분위기·
“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제안 사항을 조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불과 몇분 전까지는 3수석에게 ‘이게 맞냐’ 라고 질문을 던진 하시야마였지만· 이제는 알 수 있었다· 이건 맞다고· 그리고 그는 이어서 생각했다· 과연 그의 육감은 옳았다고· 아직 죽지 않았다고· 분명 될 것이라고·
모두가 행복했다· 긍정적인 반응을 돌려받은 정 차장도 뭔가 잘 되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그룹 사운드도 자신의 ‘뮤즈’를 찾은 하시야마도·
단지 방금 전까지 정 반대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3수석만이 조금 황당할 뿐이었다···
* * *
“저희의 제안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기존에 판매되고 있는 제품이 아닌 그룹 사운드의 디자인을 통해 에디션 콜라보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반응이 돌아왔다고는 하지만 기업과 기업간의 일은 당연하게도 협상과 협상의 연속이다· 그렇기에 수연은 그다지 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일이 빠르게 진행될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은 일단 다음 미팅때 만나서 논의를 하시죠· 일단은 이렇게 마무리를 하시고·”
“감사합니다!”
하지만 미팅의 결과는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긍정적인 답변을 돌려받은 것이었다· 정 차장이 가지고 간 제안서가 거의 대부분 수락되었고 몇개는 조금 더 협업 차원을 높여보자는 이야기까지 들을 정도로·
그렇기에 정 차장은 매우 바빴다· 수연이 일을 도와줘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하지만 이내 수연 또한 바쁜 신세가 되고 말았다· 밴드와는 관계가 없는 아니 있다고도 할 수 있는 그런 일로·
“어 아사노 씨· 오랜만입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나야 뭐 잘 있지· 내 일때문에 전화를 한 건 아니고·”]
요 근래 영 소식이 없다가 갑자기 걸려온 아사노 쇼헤이의 전화· 나이가 조금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안부를 묻는다던지 하는 그런 일은 다 라인으로 하는 아사노에게서 걸려온 전화에 수연은 의아함을 느끼면서도 반갑게 받아들었다· 수연 자신에게는 상당히 도움을 준 사람이었으므로·
“아사노 씨의 일이 아니라면·”
[“아 뭐· 부탁···? 이라고 하긴 그래· 이런 건 부탁이라고 할 수가 없지· 부탁이라는 건 내가 뭔가 신세를 지는 느낌이잖아? 하지만 이거는 그냥 의사를 물어보는 거니까 음·”]
“무슨 일이 있으시기에 그런 말까지 하시는지·”
[“일단 내 일은 아니고 나도 전해주는 입장이긴 하거든·”]
그런 식으로 계속해서 말을 돌리는 아사노· 수연은 도대체 이 양반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궁금했다· 무보수 세션이라도 뛰어달라는 것인지 아니면 뭐 돈이라도 빌려달라는 건지·
“말씀하시죠·”
[“어 음· 데이즈드는 아나? 아니 좀 바보같은 질문이긴 하네· 당연히 알겠지·”]
“당연히 압니다·”
데이즈드·
현세대에서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 중 한명이자···힙합을 하는 래퍼에서 모두가 사랑하는 R&B 아티스트로 성공적인 전환을 한 가수· 락 밴드가 아닌 탓에 수연의 관심사에서는 조금 벗어나있긴 했으나 그런 수연조차도 꽤나 자주 그의 음악을 들어봤고 또 가끔은 일부러 듣고 싶어서 찾아볼 때가 있는·
그런 레벨의 뮤지션이었다·
“지금 투어 돌고 있다고···알고 있는데요·”
[“어 그렇긴 해· 이제 일본 온다고 하는데· 근데 어떻게 알았어?”]
“아· 저희 밴드 멤버가 알려줬습니다·”
정확히는 서하가 “데이즈드 일본 오면 한번 가볼까~” 같은 이야기를 했었더랬다· 정작 진짜 갈 마음은 없어 보이긴 했어도·
[“아 그러면 이야기가 쉽겠네·”]
“네?”
[“그 어떤 사정인지는 몰라도· 내가 듣기로는 거기 세션 밴드 기타리스트가 일본을 못 온다고 하더라고·”]
“아···네·”
남들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인 것처럼 목소리를 낮춰 전달하는 아사노· 수연은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도 왜 자신에게 그런 이야기를 해주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인터넷 애들 말마따나 데이즈드 숏이라도 치라는 걸까?
하지만 답은 아사노가 뱉어낸 다음 문장에서 바로 알 수 있었다· 그것도 상당히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서·
[“그래가지고 거기서 세션을 찾고 있다고 하는데· 데이즈드 쪽에서 자네를 일본 투어만이라도 기타 세션을 서줬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가능할까?”]
“···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아악!!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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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가 일부 수정되었습니다! 다시 읽으실 필요는 없습니다!!
—
후반부가 전면 수정되었습니다!!
다시 읽으셔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