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1
명전은 뻐근한 목을 이리저리 당기며 교실 바깥으로 나섰다· 분명 눈을 뜨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책상에 고개를 처박고 잠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계속 자면 목디스크 올 텐데···’
목베개라도 사야 할까?
그런데 교사들 앞에서 목베개를 한 다음 “그거 왜 했어?” “잘때 목디스크 올 것 같아서요·” 라고 하면 절대 용납해주지 않을 것 같은데· 아니 ‘하수연’은 MZ 세대니까 아무튼 용납을 해 주려나 하고 명전은 MZ에 대한 과대해석을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 이럴거면 왜 개학을 한 거지· 나 때도 이랬던가?’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그때는 겨울방학을 마치고도 뭔가 수업을 했던 것 같은데···아무튼 뭔가 가르치고 이랬던 거 같은 기억이 있었다·
그 때문에 명전은 겨울방학이 끝나기 전에 아이들의 수준을 올려놓고자 했고 그 때문에 좀 가혹하게 몰아친 감이 있었는데···정작 개학을 해 보니 아무것도 안 하고 며칠 후부터 봄방학이 또 있다고 한다·
“진짜 이럴 거면 개학 왜 했지·”
뭔가 담배를 피고 싶어져 명전은 무의식적으로 바지에 손을 넣었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 담배· 언젠가 어느 편의점 하나를 뚫어야겠다고 생각하며 그는 바람이나 쐴 겸 테라스 쪽으로 향했다·
“안녕·”
“어 그래·”
“어디 목 아프냐?”
“아프긴 한데···”
“어···수연아 이거 먹을래?”
“괜찮아·”
테라스로 가는 길 그동안 안면을 익혀놓은 아이들에게 손을 흔들어주자···돌아오는 반응들· 그 중에는 얼마 전 그가 사과했던 아이도 있었다· “아니 이렇게 막 사과할 정도는 아닌데···” 라고 했던가·
과자를 먹고 있다 건네는 남자아이에게 고개를 저으며 명전은 테라스의 문을 열었다·
“응? 연수?”
테라스에 모여 있는 여자애들· 명전은 대충 손을 흔들어주고 난간에 기대어 학교 바깥을 바라보았다· 그래도 살짝 숨통이 트인다고 생각했을 때 옆의 아이들 속 누군가가 그의 이름을 불렀다·
“연수· 요즘 찐따들한테 막 사과하고 다닌다며?”
흘긋 쳐다본 아이는 4반의 권지혜였다·
오며 가며 그에게 인사를 하고 시비인지 뭔지 애매모호한 이야기를 자꾸 해대는 아이· 예전 수연의 기억을 뒤져봤었을 때는 희미하긴 하지만 뭔가 친구였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한···좀 친했던가···애매한 느낌·
“걔들이 왜 찐따야·”
“흐흫크킇흫흐흫···연수 성격 다 죽었네? 예전이었으면 그런 찐들 바로 싸다구 후렸을 거면서· 왜 그렇게 착한 척 하고 그래·”
터벅터벅 다가오더니 명전 앞에 서는 권지혜· 뭔가 위압적인 분위기를 내고 싶어하는 것 같은데 명전이 보기에는 그냥 고등학교 여학생이 가오를 잡는 것으로밖에 안 보였다·
“밴드 같은 거 한다매· 방송 데뷔하려고 밑밥 깔고 과거 세탁할라고? 그래서 일부러 찐들한테 아이고 제가 옛날에 학폭 좀 했는데 봐주세요~ 하고 좀 빨아주고?”
“그런 면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겠네· 그런 이유가 아니었다면 사과해야겠다고 생각을 떠올리지조차 못했을테니까·”
그런 명전의 대답에 지혜는 과장되게 오~ 하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깔깔거리며 비웃는 주위의 아이들·
“그거 완전 개 별로인 거 알아? 안 받아주면 어떻게 할 건데? 그럼 방송 안 나갈라고?”
“뭐 그렇게 될 수도 있고···”
명전은 그렇게 대답한 후 손을 흔들어 인사한 후 교실로 다시 향했다· 인생은 참 길지만 저런 패거리질에 낭비할 시간은 없음을 저 애들이 알아야 할 텐데·
“쟤 진짜 요즘 왜 저럼?”
“몰라· 뭐 잘못 처먹었나보지·”
수연이 사라진 후 그렇게 뒷담을 나누는 아이들 사이에서 권지혜는 표정을 굳히고 테라스의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수연이 저지랄하는 거 좀 꼴보기 싫은데 주희 선배한테 말할까?”
“돌았냐?”
그러던 와중 던져진 한 아이의 제안· 그러나 다른 아이들이 뭐라고 대답하기도 전에 지혜가 정색하며 말을 끊었다·
“뭔 자퇴까지 해 놓고도 선배니 뭐니 지랄이야· 좆퇴물년 그냥 신경쓰지 말고 쟤도 그냥 냅둬·”
“아니 권지 니 아까 쟤 저러고 다니는거 뭐 별로 안좋아하는 거 같더만·”
“야· 그래도 친구가 씨발 잘 살아보겠다는데 거따대고 지랄을 하게?”
지혜는 테라스 구석으로 걸어들어가 전자담배를 물었다· 내뿜은 숨에 색은 있었지만 냄새는 그다지 나지 않았다·
* * *
“여기요·”
“삼천원입니다·”
핸드폰을 꺼내든 후 어디에 찍어야 할 지 이리저리 찾는 남자· 서하는 “이쪽에 찍어주세요·” 라며 카드기를 가리켰다· 계산을 한 후 나가는 남자·
서하는 다시 의자에 앉은 후 핸드폰에서 음악을 재생했다· 왼쪽만 낀 에어팟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은 Pantera의 Walk· 엄청날 정도로 좋아하는 곡은 아니었지만 꽤나 자주 듣는 곡이긴 했다·
수연이 5~80년대의 블루스를 좋아하듯이 서하 또한 흘러간 음악을 좋아했다· 8~90년대 메탈의 전성시기에 나왔던 음악들· 블루스만 딱 짚어서 좋아하는 수연과는 다르게 메탈이라면 다 섭렵하는 게 좀 다른 점이었지만·
‘하지만 난해한 음악은 좀 그렇단 말이지·’
인터넷의 사람들···특히 현아가 부르기를 ‘세상을 왕따시키는 여자’ 유서하· 하지만 그런 서하에게도 친구는 있다· 같은 음악 취향을 공유하는 친구들·
그리고 세상 모든 것을 비웃는 데에 특화된 친구들· 누구는 이래서 음악이 병신이고 누구는 이래서 쓰레기다· 하지만 내가 듣는 음악은 좋다· 일반인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음악· 뭐 내가 병신이라고? 나는 내가 병신임을 아니까 너보다 내가 낫다·
한때는 같이 계속 어울렸었다· 점점 애들의 취향이 서하로써는 이해하기 힘든 쪽으로 파고들어가기 시작해도 뭐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는 그 아이들과 껄끄러워졌다· 특히 작년에 수연과 현아 이서와 밴드를 결성하고 난 뒤로는 더· 왠지는 모르겠지만·
서하는 잠시 그렇게 곡을 듣고 있다가 다른 곡으로 돌렸다· 그녀와 밴드원들이 녹음한 첫 곡· ‘그날의 너’· 그리고 드럼을 치는 시늉을 하며 상상으로 연습을 했다· 좀 더 그루비한 연주를 위해서·
그러던 와중 웅- 하며 우는 핸드폰· 화면을 열어보니 와 있는 카톡 메세지·
[요즘 뭐함?]
[요즘 뭐]
서하는 살짝 망설이다가 답장을 보냈다·
[별 거 안하긴 하는데]
[밴드 하고 있어]
[아 lol 보긴했음]
그 말에 서하는 잠시 멈칫했다· 봤다고? 그녀의 연주를?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지는 듯한 느낌·
[고생하지말고 돌아와라 메탈으로]
[뭔 고생?]
[lol 이상한 애니송이나 치고있더만]
서하는 이 애가 원래 이런 애라는 것을 알긴 했다· 이 애 말고도 다른 애들도 그랬다· 자기들끼리도 서로 디스를 하고 네 음악 구리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런 니 음악은 더 구리다고 이야기를 하고·
그런 애들이었으니 저런 ‘고생하지 말고’ 같은 이야기는···놀랍게도 꽤나 순한 편이었다·
[기타는 좀 치던데 나머지는 다 허접이고]
[그정돈 아님]
[뭐가 아니야 lol]
[호랑 너는 메탈 해야됨]
[이상한 거 하지말고 메탈이나 해]
이상한 거· 서하는 잠시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상한 건가? 그런 건 아닌 것 같긴 했는데·
예전의 서하였다면 [너도 좆같은 거 만드느라 고생하지 말고 노가다나 하러가라] 같은 말로 되받아쳐 줬을 것이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이기도 했고 그런 말을 해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지만 왠지 모르게 서하는 그렇게 되받아치기가 껄끄러웠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단지 그냥 그렇게 하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기타가 너무 잘쳐서 기타에 붙어살아야지]
[다른애들은 뭐 잘 늘고 있음]
[lol]
[아니 뭐 진지하게 할거면 쩌리 두명 버리고 가는게 맞는거아님?]
[베이스 그냥 씹유기하는게 맞겠더만]
“···뭐?”
서하는 자신도 모르게 말을 내뱉었다· 그 말에 움찔하는 편의점 내 손님· 서하는 급하게 입을 막고는 손님에게 고개를 숙였다·
[그게 뭔 소리야]
[아 lol 맞지않나 솔직히]
[소신발언) 솔직히 개팩트임]
서하는 순간 화를 낼까 아니면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고민했다·
이서는 충분히 노력하고 있는 애다· 충분히 노력을 하고 있음을 넘어서 손이 부르트도록 베이스를 치고 남는 시간에 수연이 만든 곡에 대해서 작사까지 하고 있는 애다· 자비로 레슨을 받고 새벽까지 베이스를 연습하면서 실력이 일취월장하고 있는 애다·
그런 애를 쩌리라고 한다고?
[야 열심히 연습하는 애야]
[연습이야 하겠지 못해서 그렇지]
[다른 사람들한테도 못 따라가더만]
[너 그 학교 축제 영상만 본 거 아냐?]
[그거 외에 따로 연주한 게 있음?]
화가 잔뜩 난 상태에서 서하는 다른 연주 영상을 보내주려고 하다가···그냥 관뒀다· 어차피 무슨 말을 해도 결국 [그래도 다른 사람들 못따라가는 건 맞구만] 이라는 소리밖에 나오지 않을 것 같아서·
[아무튼 뭐 당분간 메탈은 안 할거임]
[lol 고생해라]
왠지 모르게 몸에 열이 오른다고 생각하며 서하는 이서에게 카톡을 보냈다·
[이서야]
[??]
조금 늦게 날아오는 카톡· 서하는 “쉴때는 핸드폰만 붙잡고 있음 으흐흫ㅎㅎ” 같은 소리를 이전에 했었던 걸 떠올렸다· 그렇다면 쉬진 않고 있다는 건데·
[연습하고있어?]
[ㅇㅇㅇㅇ]
[어제 수연이가 가르쳐준부분이 좀 막혀가지고]
[지금 쳐보고 있는데 좀 되는거같기도???]
서하는 이서를 처음 봤을때를 떠올렸다· 연습실 한 구석에서 베이스를 뚱땅뚱땅 치고 있던 애· 현아와 수연의 발목을 붙잡고 있다고 느낄 정도의 실력이었던 애·
하지만 이서의 실력도 많이 늘었다·
꼬맹이 시절부터 피아노를 쳤던 현아와 초등학교 시절부터 교회에서 드럼을 쳤던 서하와는 아직도 간극이 크긴 했지만···베이스를 시작한지 이제 1년이 넘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엄청난 발전 속도였다·
[우리 열심히 하자]
[??]
[열심히 하는 건 당연한 거 아님?]
서하의 카톡에 이서는 뜬금없는 소리를 한다는 듯 답장을 보내왔다· 그렇지· 열심히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 카톡이나 키보드를 할 시간보다 악기를 붙잡고 있는 시간이 더 길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지·
‘이번 공연에 애들을 초대해볼까···’
서하는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자신의 친구들도 이런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입곡
1· Pantera – Wal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