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2
“방금 녹음한 걸 한번 들어보자고·”
명전은 그렇게 말하고는 스튜디오로 들어갔다· 살짝 주눅든 표정으로 들어오는 아이들· 그리고 재생되는 곡· 일반인이 듣기에는 별 문제 없이 무난하게 진행되는 수준·
하지만 명전의 표정은 그리고 다른 아이들의 표정은 달랐다· 아무 말 없이 나머지 셋을 쳐다보는 명전과 은근히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하는 다른 아이들·
“사운드가 어때·”
“어···잘 안 맞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해?”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하는 셋· 명전은 머리를 한번 쓸어올린 다음 한숨을 한번 쉬고 말했다·
“맨 처음에는 서로 맞추는 것만 해도 힘들었고 당장 할 일이 급했으니까 어느정도 넘어가는 면이 있었고· 사실 두 번째도 마찬가지였지· 게다가 카피 곡이니까 아무래도 사운드 레퍼런스도 있었고·
근데 너희들이 만져서 완성시킨 곡을 이제 녹음하고 공연하겠다고 생각하니까 이게 마음만큼 잘 안 되지? 내가 좀 더 돋보였으면 좋겠다· 좀 더 주목받고 싶다· 그런 생각으로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건가? 그래서 자꾸 멋대로 튀어나가고 이런 건가?”
과거의 명전이었다면 그냥 바로 엎어버렸겠지만···지금의 ‘하수연’은 그럴 필요까지는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엎지는 않더라도 따끔한 질책은 필요하다·
“지난 공연 지지난 공연에서는 그냥 넘어갔을 일이지· 그렇게 생각하지?”
“어···어 아 아니·”
무의식적으로 긍정의 대답을 했다가 화들짝 놀라 다시 부정을 하는 이서· 명전은 살짝 웃고는 다시 말을 시작했다·
“첫 번째 공연은 학교 축제· 솔직히 말해서 부담 없이 쳐도 되는 레벨· 그 때는 축제 사운드 환경 자체가 워낙 안 좋다보니 제대로 들리지도 않았을 거고 그래서 사람들이 잘 몰랐을 거야· 게다가 그런 것을 알 정도의 레벨도 아니고 말이지·
두 번째 공연은 결국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잖아· 규모가 크긴 했지만 본질적으로 그 사람들은 음악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냥 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거고···그렇기 때문에 그 곡을 듣고 싶어하는 거지· 그래서 두 번째 공연때도 그렇게 너희들을 몰아붙이진 않았어·”
그 말에 이서는 살짝 숙이고 있던 고개를 홱 들었다· 내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 ‘그렇게 몰아붙이진 않았다’? 하지만 수연의 표정은 너무나도 진심 같아 보였다· 오히려 자신이 너무나도 아이들을 놀려둔 것 같아 죄책감을 가지는 듯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세 번째 공연· 오픈마이크· 첫 번째 공연과 두 번째 공연 세 번째 공연의 차이점이 뭐라고 생각해?”
“규모인가?”
“규모는 오히려 오픈마이크 쪽이 작지· 저기는 많아봐야 수십명? 진짜 많으면 백명인가·”
“그 정도로 작아?”
“어···제가 알 것 같은데· 리스너들의 성향 아니에요?”
대화를 주고 받고 있는 둘을 내버려둔 채 대답하는 현아· 명전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둘을 향해 설명했다·
“학교 공연은 글쎄···한 5백명쯤 되었을라나· 훨씬 더 됐을 수도 있지· 저번 공연은 250명 정도 됐을 거고· 이번은 뭐 작게 잡아서 50명이라고 하자·
그럼 점점 더 줄어드는데 이번 공연에 심혈을 기울여야 되는 이유가 뭘까? 정답은 리스너의 성향이야·
그냥 학교에 있던 사람들 전부를 끌고 온 학교 축제· 애니메이션 좋아하는 사람들인 애니메이션 공연· 그거랑 다르게 클럽 오디션은 그 클럽에 죽치고 사는 살면서 음악만 듣는 사람들을 관객으로 두고 공연을 한다·”
명전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명전같이 나이가 많은 사람도 소위 말해 ‘홍대병’이니 ‘인디부심’에 대해서는 들어본 바가 있다· 라이브 클럽 한 구석에 처박혀서 무슨 평론가라도 된 양 구는 관객들·
“자신들의 기준에 맞으면 열광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무시하고 반응을 보이지 않고· 다 들리게 비난까지 일삼는 사람들도 있어·”
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이 공연에 와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마냥 구는 사람들· ‘이런 음악 들어주는 거 우리밖에 없어’ 라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들· 서하도 익히 많이 봤던 사람들이다·
물론 라이브 클럽의 관객들 대부분이 그런 것은 아니다· 소수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런 관객들이 있다는 걸 경험해보지 못한 아티스트는 처음 그들을 겪었을 때 심한 충격을 받는다·
“정신 차리자· 날은 꽤 남았지만 연습할 시간은 좀 부족해· 다들 일정이 있다며? 그만큼 연습의 강도를 높였으면 좋겠어·”
명전은 기타를 한번 훑고는 연습실 구석으로 걸어가 메트로놈을 켰다· 똑 딱 똑 딱 거리기 시작하는 메트로놈·
“처음부터 다시 해보자· 곡 그대로의 연주만 해· 다른 기교 넣으려고 하지 말고· 기본부터 완벽하게 하고 그 다음으로 넘어가는 거야·”
* * *
[연습끝남??]
샤워를 한 후 머리도 말리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운 이서· 그녀를 맞이한 것은 친구의 카톡이었다·
[ㅇㅇ]
머리를 틀어올린 뒤 이서는 의자에 앉았다· 무릎 위에 올린 베이스에서는 묵직한 무게감이 느껴졌다· 넥을 보면 어···스트링을 교체해줘야 할까? 내일 합주 쉬니까···오늘치 연습을 하고 줄 풀어놓고 내일 교체를 하자·
[연습어떰]
[개빡세]
[lol]
[그러게 뭐하러 밴드함??]
[하수연 성격상 존나 빡세게 굴릴게 뻔한거아님??]
[수연이 성격이 왜]
[좆같잖아]
[키사마]
[수연쨩 요즘에 야사시하다고!! 죽고싶냐코라!!]
이서는 키득거리며 카톡을 잠시 한 뒤 베이스를 튕겼다· 그냥 생각나는 리듬에 따라 슬랩을 한번 넣어보기도 하고 살짝 필인을 넣어보기도 하고·
하지만 뭔가 만족스럽지 않은 느낌· 뭐라 말해야 할지 모를 살짝 빠진 리듬감···
오늘 합주만 해도 그랬다· 수연이는 전체적인 합주 밸런스 문제를 계속 지적했고 개인의 연주를 딱히 지적하지는 않았지만···하지만 이서 본인도 알만한 문제를 수연이 모를 것 같지 않았다·
[하수연이 멘탈 안털디?]
[털리긴 했지]
합주실 공연장에 들어가기 전의 수연과 들어간 다음의 수연은 완전 다른 사람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였다·
학교에서 보면 대부분 고개 숙이고 반에서 자거나 멍하니 담요 덮어쓰고 애들 손에 이끌려 급식 먹으러 가고· 반에서 아이들 사이에서 늘어져서 대답 대충대충 던지고·
하지만 음악을 할 때는 완전 달랐다· 목소리를 가라앉히고 조곤조곤히 “리듬감있게 제대로 쳐·”나 “지금 튀어나오려고 하지 마· 네가 메인인 파트가 아니라고· 자아를 죽여·” 같은 소리를 할 때 보면 시선을 마주할 때 마다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걔가 너무 몰아붙이는 거 아님?]
[스트레스 많이 받는 거 같은데 좀 쉬어]
[연습해야지 뭘 쉬어]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 또한 밴드원을 생각해주기에 하는 일이겠지· 이 밴드를 자신의 밴드라고 받아들였기에 밴드의 실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이라고 이서는 생각했다·
‘힘든건 사실이긴 해· 하지만 받아들여야지· 수연이 뿐만 아니더라도···현아 언니나 서하 언니 둘 다 나보다 수준이 높은 게 사실이야· 그걸 따라가기 위해서 나는 계속해서 노력해야 해·’
* * *
명전은 힘겹게 트렁크에서 기타 2개를 들어올렸다· 그를 본 기사가 “어이구!” 라 외치며 짐을 들어주려 했지만 명전은 고개를 저어 거절했다· 어차피 스튜디오 안까지 따라오지도 못할 텐데 들어줘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아니 펜더면 충분하지 뭐하러 탐앤더슨을 가지고 오라고 하는 건지·’
기타의 무게에 신음하며 명전은 속으로 푸념을 내뱉었다· 준홍의 소개로 맡게 된 세션· 꽤나 금액을 준다기에 “아 그정도면 무조건 해야죠~” 같은 소리를 했지만 당장 컨텍을 했을때 나온 소리가 “써나 앤더슨 가져오셨으면 좋겠는데요·” 였다·
“펜더면 되지 않을까요?”
“아 저희 쪽은 펜더를 별로 안 좋아해서·”
‘그러면 씨발 기타를 왜 부르냐? 좆같네·’
같은 소리는 하지 못했다· 결국 세션은 클라이언트가 왕 아니겠는가· 아무리 명전이 잉베이 말름스틴에 근접할 정도의 펜더주의자라 한들 돈 주는 클라에게 개길 수는 없다· 하지만 당장 써나 앤더슨을 살 수도 없는 상황·
결국 명전은 준홍에게 “다음에 갖다드릴게요·” 하고 준홍의 스튜디오에 들러 연주할 약속까지 잡고 나서야 겨우 기타를 빌릴 수 있었다·
전화를 걸고 다 왔다고 말한 뒤 몇분· 건장한 남성 한명이 내려오다가 기타 두개를 지고 그에엑 거리고 있는 명전을 보고는 후다닥 뛰어와 기타를 받아들었다·
“아니 말을 하시지···!”
“아 하나만 들어주세요· 괜찮습니다·”
기타를 받아든 사람과 함께 올라간 스튜디오는 준홍의 스튜디오보다는 작은 느낌이었다· 뭔가 녹음을 뜨고 있는 드럼· 누가 들어오는지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옹기종기 모여 있는 사람들·
“저는 언제 들어가면 될까요?”
“드럼 뜨고 감독님한테 말씀드릴게요· 그럼 말해주실거에요· 저쪽에서 잠시 세팅좀 하시고 계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앞쪽으로 다시 가버리는 남자· 꼬라지를 보아하니 드라마 OST 같은 걸 뜨는 모양이었다·
‘익숙하지···’
요즘에 점점 저런 현상이 많아진다고 하던가· 드라마 회차 나오자마자 OST 작곡 들어가서 녹음 몇십분 전에 악보 나오고 뭐 아무 이야기도 듣지 못한 채 녹음에 들어가야 하는 상황·
근데 그렇게 생각하니 어처구니가 없어진 명전이었다·
‘아니 근데 임준홍 이 새끼는 존경하는 스승의 제자! 막 이러면서 지랄지랄하더니 무슨 낭떠러지에 새끼 던지는 사자도 아니고 이런 현장에 바로 밀어넣나? 여기서 삐꾸치면 그냥 바로 끝인데·’
‘평범한 기타 천재’ 같은 애들은 절대 이런 현장에서 제대로 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익숙하지 않고 호의적이지도 않은 환경이니까·
저기서 초조하게 스튜디오 안을 바라보는 감독이나 근처를 오가면서 잡일을 하거나 연락을 취하는 스태프들· 전부 다 세션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시간도 촉박한데 헛수고 하고 있으면 얼굴 찌푸리는 건 당연지사요 “아니 씨팔!” 이라고 욕하는 것은 평범한 일이다· 그지랄하던 음악감독 못 버텨서 울며 튀어나간 피아니스트 한명때문에 전체 OST 녹음 망했던 일도 있다· 그때 감독 양반 그 다음주에 보니까 눈에 완전 멍 들어있던데·
명전은 그런 생각을 하며 기타를 정비했다· 준홍이 빌려준 탐 앤더슨 드롭 탑 쇼티· 천만원 가까이 하는 가격의 기타· 인토네이션도 짱짱하고 톤도 좋고···싱험(싱글 픽업 험버커 픽업)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것도 좋다·
‘단지 펜더가 아닐 뿐이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와중 아까 전 그를 데리고 왔던 남자가 그의 앞에 왔다·
“녹음 들어가시죠·”
“네·”
“아니 근데···괜찮으시겠어요? 너무 어리신데···”
“괜찮아요· 음악 들을 수는 있는거죠?”
“네· 감독님이 들려주실 거에요·”
그 말에 명전은 기타를 가지고 감독 앞에 섰다· 감독은 ‘이거 뭐하는 놈이냐···’ 라는 시선으로 쳐다보다가 다시 그를 데려온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가씨 뭔데요? 여기 왜 들어왔어? 기타 뭐야?”
“세션 기타리스트분이에요·”
“임준홍이는?”
“못 오신다고 하셨잖아요· 이 분이 대신 오신다고 해서 감독님이 오케이를···”
“야이 씨발놈아· 뭔 어린애를 데려와서 녹음을 씨발···!”
갑자기 펜을 남자에게 집어던지더니 일어나서 후 하며 숨을 내쉬는 감독· 질겁한 스태프들이 물러선 가운데 명전은 태연하게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코드 악보 주세요·”
“응?”
“녹음 하셔야되잖아요· 코드 악보 주십쇼·”
“아니 뭔 아가씨 세션은 서본 적 있어? 임준홍 이 사람 안되겠네· 뭔 대타 구한다더니만 이상한 여자애를 데려와가지고···”
잠시 씩씩대더니 핸드폰을 집어들어 전화를 할 기세의 감독· 명전은 머리를 한번 더 꼬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코드 악보 주세요· 녹음 해야 될 거 아닙니까· 음악도 들려주시고·”
“···장난할거면 빨리 나가요· 진짜 아가씨가 녹음하러 온 거 맞아요?”
“맞다니까요·”
명전은 손을 위아래로 흔들었다· 감독은 어처구니 없다는 듯 손을 쳐다보다 핸드폰의 시계를 쳐다본 후 다시 한숨을 쉬고 악보를 건네주었다·
“아니 씨발 이게 뭔···좆같은 일 음악감독 몇년 하면서 많이 겪었다 싶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 보네 내가·”
그렇게 한숨을 쉬며 자포자기한 상태로 늘어진 감독· 눈이 죽은 걸 보니 그가 녹음을 할 수 있다고는 절대 믿지 않는 것 같았다·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하긴 하겠다만은·’
명전은 그 시선에 반박하는 대신 옆 스태프를 쳐 음악을 틀어달라고 했다· 그에게는 호흡하는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저녁에 술 한잔 마시는 정도의 일에 불과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