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3
음악감독 김재훈은 담배를 꼬나물고 싶다고 생각하며 눈 앞의 여자아이를 바라보았다· 살짝 눈을 감은 채 음악을 듣고 있는 아이·
딱 봐도 중고등학생 정도는 되었을까···고3이나 대1은 분명 아닐 것 같은 외모· 아직 다 자라지 않았고 어린 기가 빠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저런 외모라면 분명 나이가 충분히 들었을 때는 아이돌···배우 정도까지도 가능하려나 생각되는 그런 얼굴·
하지만 음악은 얼굴로 할 수 없다· 정확히는 얼굴로 할 수 있는 분야도 있지만 지금 재훈에게 필요한 것은 할 수 없는 분야였다·
‘임준홍 이 시발새끼···못 하겠다 하면 못 하겠다고 해야지 이렇게 뒤통수를 쳐? 뭐 내가 잘못 대해준 것도 없는데?’
분명 제대로 잘 가고 있던 드라마의 스케줄· 하지만 그 스케줄은 조연배우 중 한명의 논란으로 완전 어그러지고 말았다· 배우는 하차하고 그 씬은 다 들어낸 다음 새로 찍어야 하는 상황·
작업반 쪽에서는 어떻게든 작업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서 세팅된 그대로 배우만 바꾸자! 라는 이야기를 했지만 작가와 메인 PD는 전혀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스토리 전체를 수정하고 씬도 전부 삭제한다· 극 완성도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좀 더 열심히 일하자·
그건 좋다· 뭐 열심히 일하고 노력하자는 거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문제는 음악은 거의 마지막 단계에 들어간다는 거고···그건 재훈에게 주어진 작업 시간이 촉박하다는 것을 의미했다·
‘그 때문에 아무튼 손에 닿는 세션 아무나 부른 거였는데···’
임준홍은 그와 사적 친분이 있진 않지만 여러번 작업해서 안면도 있고 부탁도 들어줄 수 있을만한 사이·
그 때문에 일단 와달라고 이야기했으나 다른 스케줄이 있단다·
그럼 다른 사람이라도? 소개해줄만한 급의 세션들은 다 일이 있어 못 갈것 같은데요· 아! 싸고 괜찮고 실력있는 사람 있어요· 세션 처음 해보는 사람이긴 한데···실력은 제가 진짜 보장합니다· 분명 잘해줄 겁니다· 괜찮나요? 준홍씨가 추천했으면 괜찮죠· 밑에 애한테 연락 해보라고 할게요·
그러고는 딱히 체크하지 않았다· 임준홍이야 뭐 실력이 검증되었으니 그 양반이 추천하는 사람도 뭐 어느정도는 되겠지·
그 다음 잊어버렸다 도착한 기타리스트를 보니···
심기가 점점 불편해지는 재훈의 얼굴을 보며 주변 스태프들은 자신들에게 튈 불똥을 우려했다·
이 여자애는 “아 이런거 못할 실력이면 그냥 집에 가세요· 임준홍 씨발···” 이라는 소리만 듣고 말겠지· 하지만 그 다음 신명나게 줘 터질 예정인 것은 자신들 아닌가·
‘아오 시발···’
‘아니 뭔 준홍인지 전홍인지 그 새끼는 책임감도 없나?’
‘얘가 임준홍씨 제자인 거 아냐?’
‘뭐 얘랑 떡이라도 쳤나? 밀어주는 거 보니까· 근데 그거 불법 아닌가? 개 민짜같은데·’
어처구니 없는 생각들을 떠올리고 있는 스태프들 사이에서 음악이 끝날 때 까지 가만히 눈을 감고 있던 수연· 음악이 끝나자마자 한번 더 음악을 튼다·
달라진 것은 손의 포즈· 다리 위에 올려놨던 손은 살그머니 모여 조금씩 박자를 맞추고 있다·
몇 분 안 되는 시간이지만 재훈은 그 시간조차 아까웠다· 스태프 중 한명에게 눈짓으로 새로운 사람을 빨리 찾아보라는 눈치를 주었다· 스태프 중 한명이 슬쩍 사라짐과 함께 눈을 뜨는 수연·
“코드악보는요? 아까 달라고 했는데·”
“돌겠네···”
재훈은 마지못해 코드악보를 건네주었다· 수연은 건네주는 악보를 책상에 올려놓고는 펜을 들어올리며 말했다·
“준비됐습니다· 가시죠·”
시작되는 음악· 복고풍 드라마의 주제에 맞는 90년대 락발라드 풍의 OST· 살짝 녹슨 것 같은 보컬의 목소리가 초중반에 읊조려지다가 후반부에 폭발하는 곡·
도대체 뭘 하는지 보자···하고 들여다보는 스태프들 앞에서 수연은 이것저것 뭔가를 적었다· 끼적끼적대는 폼과 쓰여지는 글씨가 뭔가 옛스럽다는 생각에 당황하는 스태프들·
“이정도면 될 거 같은데· 작곡가분 있나요?”
그리고 수연은 곡이 끝나자마자 펜을 내려놓았다· 따로 더 할게 없다는 듯한 태도·
“지금 담배피러 갔는데···요·”
“오면 이야기 들어보고 별 거 없으면 녹음 그냥 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리고 이거 여러분들이 일렉만 들고 오래서 일렉 들고 왔는데 제 생각에는 어쿠스틱이랑 나일론 둘 다 필요할 것 같거든요· 지금 들어가있는 미디가 댐핑이 별로라서·”
재훈은 저 새끼 어디까지 하나 두고보자는 심정으로 스태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곧잘 하는데 실력이 과연 그걸 받쳐줄까?
그리고 수연은 펜더를 꺼내들었다· 그 모습에 스태프 중 한명이 입을 열었다·
“아니 저희 앤더슨···”
“이건 펜더로 녹음하는 게 더 나아요·”
“허 참·” 하는 재훈을 두고 펜더를 이리저리 만지는 수연· 그 때 담배를 피다 소식을 들었는지 급하게 뛰어올라오는 작곡가·
“아니 뭐야· 준홍씨는요? 오늘 온다면서? 얘는 또 누군데?”
“우리 잘난 임준홍씨가 얘를 대타로 보냈답니다· 에? 박선생· 얘가 녹음 하겠대· 자기 기타 칠줄 안다고·”
황당하다는 듯 수연을 쳐다보는 작곡가· 그리고 작곡가를 쳐다보던 수연은 “뭐 의견 있으세요? 강조해줘야 하는 부분이라던가·” 라고 말했다·
“아니 어···D브릿지 3마디부터 빌드업 올라갈 부분이거든···요·”
“그럼 여기부터 드라이브 걸고···아니 그 이전부터 걸어야 하나· 여기부터 방방방 하면서 올라가게·”
“음···거기부터는 아니고· 약간 좀 더 짧게 했으면 좋겠는데· 그대신 좀 빠르게 치고 올라가는 쪽으로·”
수연을 보자마자 불신을 표하던 작곡가· 하지만 수연의 말에 어느새 어떤 식으로 곡을 연주해야 할지 수연과 토론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저음부를 잡고 짧게 탁탁탁 이렇게 뭐 해달라는 건가요·” “아···마 그럴 거 같은데?” 같은 의견이 오가며 진지해지는 토론·
그리고 스태프들의 시선이 ‘쟤 진짜 농담 아니고 세션 할 수 있는 거 아냐?’ 같은 식으로 변해갈 때 쯤 수연은 펜을 내려놓았다·
“오케이· 이제 들어갑시다· 기사님!”
* * *
헤드폰을 낀 채로 악보를 보고 앉은 수연·
“소리 한번만 내 볼게요· 이펙터 아웃풋 괜찮나요?”
“괜찮습니다~”
수연에게 쏟아지던 의문의 시선은 점점 긍정적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처음 세션에 들어오는 연주자들은 – 애초에 이런 레벨의 녹음에 세션을 처음 하는사람들이 들어오지도 않지만 – 자신이 녹음을 위해서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녹음에 어떤 연주를 넣어야 할지도 잘 모른다·
그저 오라니까 왔고 “이런 식으로 기타를 연주해주면 좋을 것 같은데···” 라는 말에 몇번이고 기타를 치면서 시간을 잡아먹은 다음 감도 잘 안잡히는 상황에서 어떻게든 연주를 마치고 나간다· 그런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수연은 달랐다· 분명 세션은 처음이라고 들었는데 세션을 수십년은 한 것 마냥 들어오자마자 음악을 듣고 코드악보를 보고 라인을 만든 다음 작곡가의 의견을 반영한다· 경력이고 뭐고 모르겠으나 일단 하고 있는 폼새 자체는 꽤 믿음직스러워보인다·
“싸비 백킹부터 들어갈게요·”
이른바 악곡의 클라이막스 파트라고 할 수도 있는 부분 싸비· 수연은 기타를 몇번 땡겨보더니 곡을 시작하라고 손짓을 했다·
이내 재생되는 음악· 수연은 발으로 리듬을 타며 간단한 백킹을 넣기 시작했다· 스트럼 스트럼 스트럼·
그리고 재훈은 컨트롤 룸 안에서 들려오는 기타소리를 듣고 있었다· 내질러지는 90년대풍 락발라드의 클라이막스를 배경으로 조금씩 들려오는 백킹 소리·
특별할 것 없는 백킹 스트럼 소리지만 재훈은···살짝 위화감을 느꼈다·
뭔가 느껴져야 할 것이 느껴지지 않는···뭐가 문제지?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문제는 없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으면 안 되는데· 왜 문제가 없지?
“석준아·”
“예~ 지금···잠시만요~ 네?”
싸비의 백킹을 끝내고 다음 파트로 넘어가겠다는 수연의 신호· 그 말에 장비를 잡고 있던 석준이 한번 더 재생을 하려다 재훈의 말에 멈추었다·
“방금 녹음한 거 다시 한번 틀어봐·”
“네? 별 문제 없는 거 같던데···”
“아니 다시 한번 틀어봐·”
그 말에 눌러지는 재생 버튼· 들려오는 배킹은 그가 듣기에도 별 문제가 없었다· 석준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는 듯 재훈을 쳐다보며 왜 그러냐는 표정을 지었다·
“아니 이거 밸런스가 왜 다 맞냐?”
“네? 어 그러네·”
분명 한번에 녹음이 들어갔고 수정을 한 적은 없다· 하지만 몇십 초 동안 들어간 스트럼은···마치 녹음 후 보정이라도 한 것 마냥 처음부터 끝까지 모난 부분 없이 정확하게 밸런스가 맞고 있다·
“이정도면 뭐 그냥 바로 곡에 올려도 될 것 같은데요·”
“일단 다음 진행해봐·”
재훈은 그렇게 말하고는 살짝 물러나 뒤에 섰다· 그리고 계속 진행되는 녹음·
아르페지오도 멜로디를 보좌하는 오브리카토도 브릿지의 화음 부분도 그 외 다른 기타가 들어가는 부분들도·
재훈과 작곡가 둘이 컨트롤 룸에 서서 계속 들어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번의 멈춤 없이 쭉쭉 치고 나가는 녹음·
“이거 제대로 녹음 되고 있는 거 맞나? 우리 뭐 최면 같은 거 걸린 거 아닌가?”
작곡가의 중얼거림· 재훈은 컨트롤룸 유리창 너머로 수연의 모습을 쳐다보았다·
잠시 손을 푼다며 주먹을 연신 쥐었다 폈다 하다 “솔로 세팅 좀 할게요·” 라고 말하며 앰프를 만지기 시작하는 수연·
“이게 말이 되나?”
“뭐가요?”
“이렇게 녹음이 빨리 되는 게·”
“뭐···흔치 않은 일이긴 하죠·”
재훈의 물음에 작곡가는 그렇게 대답한 뒤 장비를 잡고 있는 석준에게 말을 걸었다· “저 세션 이름이 어떻게 된다고요?” “하수연이라고 하던데요···”
재훈은 그들의 대화를 흘려들려들으며 생각했다·
실력 있는 세션···이를테면 저 아이를 추천해준 임준홍 본인을 데려온다 한들 이렇게 녹음이 빠르게 진행되진 않을 것이다·
준홍의 실력이 부족한 것은 아니다· 애초에 실력이 부족했다면 부르지도 않았을 테니까·
하지만 작곡가의 요구를 캐치하고 곡에 들어가면 좋을만한 요소 또한 제시하고· 뭔가 부족하다 라는 생각이 안 들 정도의 퀄리티로 ‘이렇게 단시간에 녹음을 따는 것’이···준홍에게 가능할까·
재훈은 그 부분에서 선뜻 ‘가능하다’고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왜냐하면 이런 작업은 경험이 필요하니까·
드라마 OST의 취지는 드라마를 홍보하는 것· 그런 OST의 취지를 살리기 위해 뭔가 익숙하고 듣기 쉬운 느낌을 주고 그러면서도 기존과는 다른 차별적인 분위기 또한 줘야 한다·
그러면서도 음악 장르적인 문법을 따라야 하고 이렇게 시급한 현장이라면 듣자마자 어울리는 연주 또한 만들어내야 한다·
그런 일을 저렇게 쉽게 해내려면 천재성만 있어서는 안 된다· 경험 또한 있어야 한다· 이런 일을 수십 수백 수천번은 해 보고 수도 없이 연습을 해서 듣자마자 정답을 찾아내는 그런 압도적인 경험·
‘그런데 저 애는 그걸 하고 있단 말이지· 역시 임준홍이 추천한 사람인가· 술이라도 한잔 사줘야겠는데·’
잔뜩 시간을 아꼈다고 생각하며 재훈은 웃었다· 이미 그가 스태프들 앞에서 준홍을 씨발놈이니 뭐니 욕한 것은 다 잊어버린 상태로·
“마지막 솔로 들어가겠습니다·”
그런 가운데 세팅이 마무리되었는지 수연이 기타를 두어번 튕기고는 말했다· 그리고 재생되는 음악·
이윽고 차분한 피킹과 함께 확연하게 펜더라는 것을 알 수 있는···드라이브가 들어간 클린톤의 기타 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