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46
“어떻게??”
이서는 수연을 바라보았다· 흔들림 없는 단호한 시선은 그냥 던진 말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두가지 방법이 있지· 첫째 지금 있는 자작곡 2개에 베이스 솔로 라인을 넣어보는 것· 하지만 이쪽은 내 생각에는 좀 별로일 것 같다·”
“왜?”
“일단 우리 곡은 베이스에 중점을 두고 만든 곡이 아니니까·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이스 솔로 라인을 넣거나 베이스를 좀 더 강조하는 쪽으로 편곡을 해볼 순 있겠지· 하지만 너무 수고로운 작업이야· 게다가 하나를 고치다 보면 곡 전체를 고쳐야 할 수도 있고·”
명전은 자신이 만든 곡이 완벽한 밸런스를 가지고 있고 그렇기에 하나를 빼는 순간 붕괴해버린다···그런 생각 같은 건 딱히 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연주하다가 약간씩 손을 대는 게 아니라 전체적인 라인을 손보려는 작업은 방대한 수정을 요구할 때가 많다·
수정이 잘 되면 모르겠으나 고치다보니 뭐가 조금씩 이상하다···이러다보면 이제 뭐가 뭔지 모르는 상태로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그렇게 고친다 해도 딱히 효과가 있을 것 같진 않아·”
“그럼 두 번째는?”
“두 번째는 커버곡을 다른 거로 선택하는 거지· 베이스 위주로·”
이번에 그들이 선택한 곡은 서하의 취향이 약간 반영된 Guns n Roses의 Sweet Child O Mine· 어느 정도 궤도에 올라있는 상황이긴 했지만 완전 다 익힌 건 아니었다·
“스케줄을 좀 빡빡하게 잡으면 못할 일은 아니긴 해·”
“그럼 두번째로 가는 게 좋은 거 아니에요?”
“아니 연습할 시간이 있다는 거지 시간 안에 연습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게 아니니까·”
현아의 물음에 서하가 대답했다· 명전 또한 같은 생각이었다·
“저 말이 맞아· 그게 문제지· 연습을 제대로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거·”
연습할 시간이 있다는 게 연습을 완벽하게 할 수 있다는 말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물론 명전은 저 시간이면 다 외운 후 며칠은 놀 수 있겠지만 다른 아이들은 다르지 않은가·
“이대로 커버곡을 계속 연습하면 꽤나 괜찮은 퀄리티로 연주를 할 수 있을 거야· 커버를 넘어서 나름 우리 색깔을 넣을 수도 있을 거고· 하지만 그건 예상이고 지금 당장 연주에 들어간다고 하면 영 시원찮은 퀄리티겠지·”
명전은 이서를 바라보았다· 그가 말을 하면 할수록 시름이 조금씩 커져가는 얼굴·
“그런데 만약 새로운 곡을 정해서···뭐 어떤 곡을 할지는 대략 내가 떠오르는 곡이 있긴 한데· 아무튼 새로운 곡을 정해서 연습을 했는데 그게 잘 안 됐다· 무대에 오를 퀄리티가 아니다· 그럼 돌아갈 길이 없는 거지·”
“그렇다는 이야기는···그렇게 하긴 힘들다는 거겠네· 그냥 하던대로 하는 게 나을지도···”
이서가 푸념같이 흘린 말에 명전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 이야기는 아니야·”
이서가 그렇게 받아들였을지는 몰라도 명전은 그런 의도로 이야기하지 않았다· 명전이 이야기하고자 한 것은 좀 다른 방향이었기에·
“내가 만약 그런 의도였다면 그냥 너에게 가만히 버티라고 했겠지· 네 실력은 이미 충분하다고· 굳이 이런 이야기를 하지 않고· 그렇잖아· 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미리 이야기를 하고 하지만 너는 이래서 할 수 없다···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이서는 가만히 그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수연이는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제시한 것에 대해서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고 그러면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하니 그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한다는 걸까?
“뭐 지금 이시간까지는···내가 리더로써 너희들을 이끌어왔지· 다들 잘 모르기도 하고 별 의견이 없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우리가 밴드로서 제대로 기능하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이 자아를 가져야 한다·”
“자아?”
이서의 물음에 수연은 머리를 살짝 꼬았다·
“당장 반대의 목소리를 낸다거나 뭐 너희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밴드를 이끌어나가야 한다거나···그렇게 하라는 이야기는 아니야· 하지만 본인이 원하는 어떤 방향이 있다면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가 결정되기 전까지는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해·”
그렇게 하지 못해서 망한 밴드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두룩하다· 누군가의 의견이 묵살되고 누군가의 의견은 과대평가되고·
결과가 좋으면 과정이 어찌되었든 좋은 일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긴 인간관계의 갈등은···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만드는 법이다· 핑크 플로이드(Pink floyd)가 왜 해체되었는가·
로저 워터스가 수없이 많은 명곡을 만들고 밴드를 성공의 길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밴드 구성원들은 독재자를 받아들이지 못했다·
“네가 하고 싶은 방향이 있다면 네 목소리를 내· 그 길이 어떤 길인지는 다른 사람이 보여줄 수도 있지· 하지만 그 길을 가보고 싶다면 가보고 싶은 사람이 목소리를 내야 하는 거지 다른 사람들이 대신 결정해줄 순 없다·”
명전의 단호한 말에 이서는 생각에 빠져든 모양새였다· 현아는 그런 이서를 걱정스럽게 쳐다보았고 서하는 별다른 표정을 짓지 않았다· 오히려 이제야 올 것이 왔다는 느낌·
“새로운 곡을 하게 되면 Sweet Child O’ Mine은 폐기인가?”
“그렇진 않겠지만···어떻게 될지는 모르겠네· 사실 원래 이런 이야기는 좀 지나고 나서 하려고 했던 거긴 한데·”
서하의 물음에 명전은 머리를 쓸어올리며 대답했다· 명전이 생각하기에···이 아이들에게 자아를 부여하는 것은 조금 이른 일일지도 몰랐다· 이리튀고 저리튀고 하는 것 보다 일단 성공을 위해서 쭉 달려가고 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래서야 재미가 없지·’
혼자 하려고 했으면 애초에 밴드를 이룰 필요도 없었다· 그냥 명전 혼자 다 해먹고 베이스나 이런 멤버들은 세션으로 부르면 될 일·
하지만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생각한 것이 깨어난 첫 날의 일이 아닌가· 즐기기 위한 음악을 하겠다고· 성공을 하니 뭐니 오디션에 나가느니 마니 유튜브를 하니 마니···이런 건 사실 곁다리로 들어오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럼 나는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 생각하는데· 내 실력을 보여주고 싶기도 하고···진짜 뒤질때까지 연습했단 말이야· 그런데 저런 글이나 인터넷에 쓰고 앉아있고·”
“음· 다들 찬성해?”
이서의 말에 명전은 다른 두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고개를 끄덕이는 두명·
“연습이 지금보다 훨씬 힘들어질텐데· 공연을 실패할 수 있는 리스크도 있고·”
“뭐 실패해도 다음이 있으니까요! 우리 실력이 어디 가는 게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긴 하지·”
명전이 수십 년 동안 살아오면서 느낀 것은···인생도 밴드도 음악도 모두 다 길게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지금 이 순간 무조건 해야 하는 일이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인생에 있어 단 한번만 찾아오는 기회란 건 없기 때문에·
“그럼 어떤 곡 해야 할까?”
“내가 생각해놓은 게 있어· 마음에 들지는 모르겠는데 잘 모르는 사람들이 보기에 실력이 확 나온다···라고 생각할 수 있는 곡이 있지·”
씨익 웃는 수연을 보고 왠지 이서는 그 웃음이 불길하다고 생각했다· 한번 고생해봐라 같은 느낌···
* * *
클럽 파라독스(Paradox)· 개업한지 30년이 넘어가는 홍대 라이브클럽의 자존심 중 하나이자···신인 밴드들의 등용문이기도 한 곳·
밴드기만 하면 어떤 장르를 해도 다 받아주는 곳이기에 어느 날은 어쿠스틱이요 어느 날은 랩메탈이고 어느 날은 제이락인데 어느 날은 데스메탈인···단골들의 말을 빌리면 ‘개짬통’이자 그래서 더 매력있다고 일컬어지는 장소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파라독스는 며칠 전부터 ‘홍대 밴드씬’과 그 ‘신인 애호가’들에게 주목을 받고 있었다· 바로 오늘 오픈마이크를 통해 모습을 드러낼 신인 밴드 ‘Group Sound’ 때문에·
“아니 왜 술을 안 팔아요· 맥주 먹으러 왔다고!!”
“오늘 첫 공연이 여고생 밴드 공연이라 그때까지는 술 안 팔기로 했어·”
“여고생이 공연을 한다고? 헉 시발·”
아무 생각 없이 와 술을 찾다가 갑자기 소식을 듣는 관객들이나
“저기···여기가 파라독스 맞나요?”
“네 맞습니다~”
한번도 와보지 못한 밴드 씬에 어찌저찌 발을 들이는 사람들이나
“오늘 걔들 온다고?”
“어· 타임테이블 확인했음·”
홍대에 발을 여러번 들이다 못해 뉴웨이브가 일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고인물들도···다 가지각색의 이유로 파라독스의 오픈마이크 첫 타임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여기에 첫 타임을 기다리고 있는 그룹이 하나 더 있다·
“아!! 시발 미치겠다· 너무 긴장되는데?”
“미칠 것 까지야 있나요···”
베이스를 이리저리 튕기다가 갑자기 소리를 빼액 지르는 이서· 깜짝 놀란 현아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한다· 명전은 그것을 보고 피식 웃은 후 무대 바깥쪽을 슥 보았다· 엄청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오픈마이크 치고는 꽤 와있는 관객· 7~80명 정도 되려나·
“다들 준비 되셨나요·”
4명이서 잡담을 나누는 와중 대기실을 노크하고 들어오는 남자· 꽤나 세월이 느껴지는 외모에 ‘나는 메탈팬이다!!’ 라고 주장하는 듯한 패션·
“네 저희는 준비 완료됐습니다·”
명전의 말에 남자는 손으로 OK 사인을 보내더니 입을 열었다·
“제가 파라독스를 운영한지 근 30년이 넘어가는데 여고생 밴드는 진짜 난생 처음입니다· 여러분 덕분에 파출소에도 갔다왔어요· 여러분 나가기 전까지 술 팔면 안 된다고 하더라고요·”
“그런가요? 아 이거 우리가 팔아드려야 하는데~ 아쉽다· 그지?”
이서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나머지· 오너는 덩달아 피식 웃었다·
“여러분이 세 곡을 준비했으니···시간은 미리 고지됐던 대로 30분 드릴거에요· 들어가면서 세팅 시간 합쳐서 5분· 중간중간에 페이스 조절 하시면서 인사도 하시고 뭐 멘트도 좀 치시고· 그러시면서 어필도 좀 하고· 그렇게 진행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공연의 진행 방식에 대해서 말하더니 갑자기 명전을 보면서 말을 우물거리는 오너·
“왜 그러시나요?”
“그 혹시 진짜 명전선생님 제자···”
또 그건가· 명전은 대답 대신 천장을 쳐다보았다· 요 근래 기타 관련해서 만나는 놈들 대부분이 이런 질문이나 던지고 앉아있으니 진짜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아니 씨발 그가 무슨 반 고흐인가? 왜 죽고 나서 ‘헉 명전선생님 왜 이렇게 일찍 떠나셨나요’ 같은 소리나 하고 있단 말인가· 그런 지랄 하지 말고 살아있을 때 음악이나 들어주던가·
물론 들었다 해도 ‘그 서명전 선생님의 곡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고??’ 같은 소리나 하면서 못들은 체 했겠지만· 뻔한 일이지·
“아 알겠습니다·”
그런 명전의 태도에 오너는 왠지 자기혼자 알아차렸다는 듯 인사를 하고 대기실을 나갔다· 무슨 일이냐고 물어보는 아이들의 시선에 명전은 따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 * *
“안녕하세요· Group Sound입니다· 반갑습니다· 여러분들하고는 처음 뵙네요· 아니 사실 저희는 이런 무대를 서는 거 자체가 처음이니까요· 첫 번째 무대는 학교였고 두 번째 무대는 애니메이션 공연이었죠·”
공연의 시작· 이서는 현아와 서하의 세팅을 도우며 수연이 무대를 진행해나가는 것을 곁눈질했다· 능숙하게 관객들의 질문에 대답하며 세팅시간을 벌고 있는 수연·
“너무 이뻐요!!”
“이쁘다고요? 감사합니다· 근데 여고생은 원래 이쁜 거 아닐까요? 인생의 황금기니까· 그래도 뭐 객관적으로 제 외모가 좀 출중하긴 합니다· 부정하진 않겠습니다· 아무튼 뭐 저희 공연이 좀 이래저래 소문이 나서 들으러 오신 분도 많은 것 같은데 곡 수는 적지만 일단 실망시켜드리지 않기 위해서 최대한 노력을 하겠습니다만···”
그 사이 완료된 세팅· 이서는 베이스를 잡고 무대의 전면으로 향해 모니터 스피커를 밟고 섰다· 누군가 한명이 “베이스도 이쁘다!!” 같은 소리를 외치기에 이서는 고개를 숙여 감사의 인사를 표했다·
손가락을 몇번 오무려 오늘 자신이 어떤 곡을 쳐야 할지를 생각해본다· 체력적 문제가 있긴 했지만 난이도가 엄청나게 어렵지는 않은 곡· 하지만 그에 반해 베이스의 존재감은 엄청나게 드러낼 수 있는 곡·
그리고 이서는 신경을 집중했다· 마치 물에 빠진 듯 주변의 소리가 조금씩 희미해지는 감각· 수연이 뭐라고 떠드는 소리는 딱히 신경쓰지 않았다· 이서가 집중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므로·
첫 번째 곡에 대해 공연 이전의 수연은···그렇게 말했었다·
“커버곡을 첫 번째로 배치할거야·”
“어 베이스 임팩트를 주기 위해서는 마지막으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순수하게 ‘쟤 실력이 사실 저랬구나!’ 하는 임팩트만 생각하면 그렇겠지·”
수연은 펜을 빙글 돌렸다· 손에서 벗어난 펜은 30분 남짓하는 공연의 순서가 적혀 있는 A4 위에 떨어졌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초반 곡 2개는 아마 ‘베이스는 별로네···’ 하고 생각하면서 들을 확률이 높지·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부터 커버곡을 가져가야 해·
그리고 더 중요한 건 우리는 실전경험을 쌓고 밴드를 홍보하기 위해서 오픈마이크를 한다는 거야· 네 실력을 보여주고자 하는 게 아니고· 그걸 잊어서는 안 돼·”
그 말에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었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으니까· 결국 그들이 이 공연에 나온 것은 ‘Group Sound’ 라는 밴드를 알리기 위해서니까·
말소리가 끝나고 잠시 정적이 찾아든다·
그 후 드럼스틱이 교차되며 내는 충격음이 들려온다· 탁 탁 탁 탁·
‘하지만 적어도 첫 곡은 내 무대니까·’
시작 신호와 함께 이서는 거칠게 베이스를 튕겨냈다· 그 움직임에 따라 16비트의 강렬한 퍼즈톤 베이스 라인이···스피커에서 뛰쳐나와 플로어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삽입곡
1· Guns n Roses – Sweet Child O’ Min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