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4
모 위키에 적혀 있는 이야기· [방문객이 적다고 할만한 수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많다고 하기에도 적합하지 않다]· 클럽 파라독스를 요약한 가장 적절한 문장이다·
홍대 인디 밴드 씬에 있어 파라독스의 역할은 일종의 입구에 가까웠다· 밴드이기만 하면 오픈마이크에 받아줌으로서 다양한 장르를 포괄하고 그를 통해 씬에 사람을 유입시킨다·
그 다음은 파라독스에서 꽤나 단련된 사람들을 각자의 영역으로 나눠 다른 클럽으로 보낸다· 이를테면 메탈은 MM으로 재즈는 리버홀으로· 그렇게 사람들을 분류해서 보내고 혹시나 코어한 분위기에 지친 사람들은 다시 붙잡아놨다 새로운 장르로 보낸다·
그럼으로써 ‘모두의 고향’ 역할을 하는 것이 클럽 파라독스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파라독스’의 단골은 몇명 없었다· 왜냐하면 다들 잠시 들렀다 가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런 파라독스도 점점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었다· 가장 큰 것은 어느 순간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돌기 시작한 일종의 소문·
‘토요일 16시에 파라독스에 가면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말을 들은 사람들 대부분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무시했다· “아니 애초에 파라독스 영업시간이 18시부턴데 16시에 거길 왜 가냐?” “이게 나폴리탄 괴담인가 뭔가 그거냐?” 같은 이야기를 하면서·
하지만 다녀온 사람 몇몇이 “야 진짜 좋아· 재밌고·” 같은 이야기를 남기고 계속해서 토요일 16시에 파라독스를 방문하기 시작하자···사람들의 궁금증은 더욱 더 커졌다·
그리고 레밍들마냥 점점 토요일 16시에 파라독스를 방문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마치 선두에서 무엇이 있는지는 잘 모르는 채 그저 선두에 서서 따라가기만 할 뿐·
그러나 분명 레밍과 16시 파라독스의 차이점은 있었다·
레밍들은 단체로 낭떠러지에서 사망하지만 파라독스는 공연을 한번 보고 나면 한명이 둘이 되고 두세번 후면 세네명으로 늘어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늘어난 사람은 분명 한둘이 아니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많아진거야·”
“그러게· 이젠 뭐 앞에서 애들 보려면 십분은 빨리 나와야겠네·”
공연 전 아윤은 클럽 바깥으로 잠시 나오며 주위에 안 들릴 만한 목소리로 살짝 푸념했다· 그런 그녀의 푸념을 받아주는 친구들· 그녀와 친구들이 최근 덕질을 하기 시작한 밴드 ‘그룹 사운드’가 이 클럽에서 공연을 시작한지는 약 한달 정도 된 상황·
분명 첫 날 공연때는 너무 이른 타임 공연이라고 코빼기도 비치지 않던 사람들이 이제는 꽤나 많이 모여 있었다·
그리고 점점 늘어나기도 했고·
아윤이 그룹 사운드의 첫 공연을 보러 왔을 땐 진짜 몇몇 사람들 밖에 없는 상태였다· 아윤과 “진짜 재밌어?” 하고 반신반의하며 온 친구들 왠지 모르게 있는 어르신 한두명 술 취한 대학생 두어 명 이 시간에 클럽이 왜 열었나 하고 와본 사람 몇명·
오픈마이크 당시 몰렸었던 사람과는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수준·
하지만 지금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도 공연을 보기 위해 와 있다· 처음과는 확연히 달라진 규모· 그냥 한번 와본 것 같은 사람 진짜 애니에서 나왔던 것처럼 마냥 벽에 팔짱을 기대고 있는 힙스터 남자 미성년자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외부에서 주류를 반입해 온 사람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아윤이 보기에도 관객들의 구성이 상당히 다양하다는 것이었다· 왠지 ‘락 들을 것 같이 생긴’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던 오픈마이크 때와 달리 지금은 연령대나 패션에서 드러나는 성향이 상당히 다양해 보였다·
그래도 아직 뭐 클럽을 가득 메울 수준은 아니라는 것에 아윤은 감사함을 느꼈다· 아니 감사해야 하는 건가· 자신이 좋아하는 밴드가 성공하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닐까·
‘그런데 또 이 아이들이 떠버리면 그때는 이렇게 와서 못 보잖아···?’
팬으로써 가져야 할 자세는 과연 무엇일까· 잘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렇게 가까운 사이에서 볼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욕심일까?
상당한 내적 갈등을 겪고 있던 아윤을 깨운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언니들! 여기서 뭐 해요? 안 들어가세요?”
“헉!”
요즘 유행하는 히메컷 머리에 초록색 베레모를 쓰고 재킷을 걸쳐 입은 귀여운 모양새의 베이스 최이서· 체격은 좀 귀엽다고 하긴 무리가 있었지만 아윤의 눈에는 그런 것 조차 너무 귀여워보였다·
“헉···헉! 이 이서야···”
“왜요왜요? 안 들어가세요?”
천연덕스럽게 슬쩍 달라붙는 이서와 횡재했다 생각하는 아이들· 이런 운이 있나 싶어 입고 있던 그룹 사운드 티셔츠에 사인이라도 해달라고 하려는 찰나 뒤에서 말이 들려왔다·
“안 들어가냐?”
“어 잠시만· 여기 어···팬? 팬분들이라고 해도 될까요?? 팬~ 팬분들이 계셔서·”
이서의 옆으로 고개를 내민 것은 기타 하수연· 최이서보다 하수연을 더 좋아하는 아윤의 친구들이 격하게 반응하는 사이 아윤은 이서에게 가방에서 준비해 온 선물 하나를 건넸다·
“이···이거!”
“응?”
“키링인데! 키링· 걸고 다니면 이쁠 거 같아서···”
애니메이션 마스코트 키링· 이서는 아주 자연스럽게 키링을 자기 재킷에다가 걸고는 사진을 찍어달라는 듯 브이자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는 이내 사라지는 두 사람·
“사진 찍었어? 와 부럽다·”
“너희는 사진 안 찍었어?”
“어···사진 찍어봐야 인생에 남는 거 없고 진짜 중요한 건 기억과 감각이다 이러면서 악수를 해 주더라고· 막 덕담도 하고·”
“응??”
신종 거절법인가? 근데 코멘트가 좀 묘하지 않나? 덕담은 뭐지? 아윤은 그렇게 생각했다·
* * *
“왜 악수만 해 줘?”
“중요한 순간은 기억에 남기는 거야· 핸드폰 쪼가리니 뭔 이상한 기계니 뭐니 이런 거로 찍은 다음 처박아놓고 안 보는게 아니라·”
“아니 사진 찍기 싫으면 말을 하지·”
“찍기 싫은게 아니라니까···어휴 말해봐야 뭐 하겠냐·”
오늘도 또 영문 모를 소리를 하는 수연· 이서는 그러려니 하며 대기실에 들어섰다· 메트로놈을 대기실 중앙에 둔 채 살짝 맞춰보고 있던 현아와 서하가 둘을 맞이했다·
“일단 뭐 오늘 공연은 그냥 예정대로 하고· 이전에 말했듯이 오늘 공연 다음에 이제 정부지원사업 관련 이야기를 좀 해볼텐데요· 혹시 정말 갑자기 시간이 안 되는 사람? 없지?”
셋을 불러모은 다음 수연이 꺼낸 이야기는 수개월동안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왔던 ‘정부지원사업’ 관련 이야기였다·
‘드디어 이 이야기를 하는 건가···’
원래라면 지금쯤 이미 심사에 들어가는게 정상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몇개월 가량 밀린 관계로 이번달 말에야 온라인 심사에 들어간다던가·
이어지는 수연의 이야기· 온라인 심사 이후에는 뭐 top 8을 선정해서 다시 오프라인 경연 후 마지막으로 2팀을 선정한다···뭐 그런 이야기· 그 말에 이서는 이전에 서하에게서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그 지원사업···밴드 파이오니어? 그거 관련해서 이야기 들은 적 있어?”
“뭐 나는 이야기를 꽤나 듣긴 했으니까· 참여하는 사람도 근처에 있고 지인도 있었고·”
연습이 잠시 쉬는 사이 합주실 바깥에서 만난 이서와 서하· 살짝 어색해진 분위기에 이서는 급하게 질문을 던졌다· 다행히도 서하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 질문을 받아들었다·
“전에 말했지? 아는 오빠 밴드가 그냥 광탈했다고·”
“그랬던가?”
“맨 처음 이야기 나왔을 때 했던 거 같은데· 아무튼 어···내 기억엔 올해 지원금이 밴드 당 상금만 600만원· 앨범 제작비 400만원· 기성 뮤지션이랑 콜라보 제작 지원에 페스티벌 공연기회까지· 이거보다 혜택이 좋은 사업이 몇개 없어·”
“헉· 미쳤네·”
토탈 천만원에 콜라보에 페스티벌이라· 이서는 왜 수연이 이 사업에 한번 지원을 해보자고 한지 알 것 같았다·
“게다가 이 사업은 신인 밴드들 대상이거든· 5년· 그러니까 보이기로는 경쟁도 그렇게 빡세지 않지·”
“그렇겠네·”
“게다가 예선도 그냥 녹화 떠서 온라인으로 보고· 그러니까 허들이 진짜 낮아보이지· 근데 그거때문에 경쟁이 오히려 치열해· 왜냐하면 해볼만해보이니까·
작년만 해도 온라인 예선에 백팀 넘게 참가했다고 했던가· 게다가 이제 올해는 빈집일거라는 이야기도 있어서 올해가 더 치열할 것 같기도 하고···”
‘대충 그랬던 이야기 같은데·’
결론은 뭐 올해는 상금도 오르고 확실한 우승후보도 없고 이래서 엄청 치열할 것 같다 이 이야기 아닌가·
하지만 이서는 그런 것 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그들이 열심히 하면 되는 일 아니겠는가· 결국 궁극적인 승리는 실력자들이 거머쥐는 법이다·
* * *
“이 시간에 공연한지도 꽤 됐죠? 한달 쯤 됐던가요? 뭐 그렇게 안 된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뒤죽박죽인 저희 세트리스트를 들어주셔서 항상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해드리고 싶습니다·”
또 곡 하나가 끝나고 차분한 목소리가 공연장에 퍼져간다· ‘뒤죽박죽인 세트리스트’ 에서 터져나오는 관객석 곳곳에서의 웃음소리를 보면 관객들은 그것 또한 이 밴드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마치 신청곡을 트는 라디오를 듣는 것처럼 미리 정해진 몇개의 곡 외에는 맥락 없이 튀어나오는 곡들· 밴드 곡이라는 것을 제외하면 공통점이 없다· 메탈이 나올 때도 있었고 제이팝이 나올 때도 있었고 애니메이션 곡이 나올때도 있었고 블루스가 나올 때도 있었다·
그리고 그 연주들은 대다수가 100%가 아니었다· 7~80%의 퀄리티를 보여주는 곡들· 원곡에 비하면 미흡한 부분이 많았고 이런저런 빈 곡도 존재하는 그런 연주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곡들을 관객들이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지금 관객들 앞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기타의 연주 실력이 컸다고 대다수의 관객들은 생각했다·
“그리고 또 미안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아요· 오늘도 갑자기 난데없이 예정에 없던 커버곡을 치고 싶어져서요· 제가 새로운 장비를 구한 까닭에···오늘 연주에 이걸 꼭 써 보고 싶어서 이렇게 세트리스트를 바꿔버리게 됐는데요· 좀 연습을 하긴 했는데 미흡할 수도 있으니 미리 사과말씀부터 드리겠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같은 응원이 이어진다· 수연은 손을 살짝 풀더니 현아를 보고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그 신호와 함께 섬세하게 터치되기 시작하는 현아의 커즈와일 키보드·
Us and them
And after all we’re only ordinary men
몽환적인 소리와 함께 원래는 색소폰 소리가 들려왔어야 할 자리를 기타가 메운다· 원래는 없었던 딜레이와 패닝이 들어간 기타 톤은 사람들의 감각을 묘하게 만들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꽤나 신나는 곡에 이리저리 흔들리던 관중들은 이번에는 또 묘하게 사람을 침착하게 만드는 멜로디에 조금씩 움직임이 잦아들어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또한 잠시· 수연이 페달을 밟으며 교체한 톤은 순간적으로 잠에 취한 듯 잠들어버린 관객의 분위기를 순식간에 되살리며 곡에 몰입하게 만들었다·
Forward he cried
from the rear
And the front rank
died
드럼의 필인과 함께 웅장한 사운드가 배경에 깔린다· 호소력이 짙은 목소리가 정원 이백명이 약간 안 되는 클럽의 무대를 가득 채워낸다·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인 일·
관객들이 그 감각을 온전히 다 느끼기도 전에 치솟았던 소리는 전부 사라지고 몽환적인 피아노만이 다시 남는다·
Listen son
said the man with the gun
There’s room for you
inside
그리고 한번 더· 관객들은 물 밖에 건져졌다 다시 물 안으로 들어간 듯한 느낌을 받으며 절제된 감정의 격류를 온전히 받아들였다·
이어지는 나레이션과 기타 솔로· 빈슨 에코렉을 사용해 극한까지 끌어올린 공간감은 스피커를 통해 관객들로 하여금 클럽 내부가 우주라도 된 것 마냥 광활하게 느껴지게 만들었다· 수 없이 가까이에 붙어 있는 사람들이지만 닿을래야 닿을 수 없는 것 같은···
우주 한 가운데 던져진 상태로 어딘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으며 막연히 은하를 맴도는 느낌·
“너무 잘하는데? 쟤들이 고등학생이라고?”
그 사운드에 관객들이 압도되어있는 동안 관객석 맨 끝· 벽에 주루룩 붙어 있던 사람들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어· 이번에 밴드 하기 시작했다던데·”
“뭔 말도 안되는···진짜?”
그 말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되묻는 여성과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는 남성·
“쟤들 우리가 이길 수 있나? 지금 상태로도 솔직히 자신 없는데·”
“참여하는 거 확실히 맞대?”
이야기가 이리저리 오가는 가운데···이제까지 입을 열지 않고 있던 키가 큰 남자가 입을 열었다·
“이젠 더는 떨어지면 안 돼· 이제는 정말로···”
어떻게든 해야 돼· 그 말은 그 남자의 입에서 잠시 맴돌다 떨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었습니다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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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입곡
1· Pink Floyd – Us and The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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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 디스커버리 -> 밴드 파이오니어로 바뀌었습니다·
(실제 시행하고 있는 사업이므로 수정하는 게 나을 것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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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반부 일부가 수정되고 있습니다 ㅠㅠ
요즘 이런 일이 잦은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