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55
“안녕하세요~ 저는 우리 밴드 그룹 사운드의 베이시스트인 최이서라고 합니다· 오늘 제가 찍는 영상은요 아무래도 첫 유튜브다 보니까! 저희 연습 영상을 보여드리려고 해요·”
“소맛님 뭐 해요?”
“아~! 소맛님 아니라니까요· 이서라고 해 이서라고! 지금 유튜브 영상 찍는 중· 어디다가 올리려고·”
“올릴 데가 있어요?”
“수연이 유튜브에 올려보고 반응 좋고 이제 밴드가 더 커지면 우리 밴드 유튜브 만들어서 거기 올리는 걸로·”
“굳이 남의 유튜브에 올릴 필요 있나요? 지금부터라도 올리면 되는 게···”
“봐 주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이런 건· 기껏 올렸는데 조회수 10이고 100이고 이러면 슬프잖아· 다른 유튜브를 활용해서 일단 개척을 해 놓고 그 다음 계속 이어나가는거지· 응? 이게 전략이고 이게 영업인거지·”
연습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명전이 본 것은 하라는 연습은 안 하고 셀카봉을 들고 이것저것 말을 하고 있는 이서·
“뭐하냐? 맨날천날 놀고만 앉아있으려고 하고· 연습이나 들어가자·”
“아니 지금 유튜브 찍는다고오~ 구독자분들 여러분 이 채널의 주인이 원래 저런 모습의 사람이거든요· 유튜브 찍을 때 막 사근사근하고 차분하게 안녕하십니까? 이러면서 막 그러는 거 자체가 이게 좀 가식적인···”
명전은 한숨을 푹 쉬고는 이서의 핸드폰을 팍 뺏어들었다· 둘려달라고 앵겨붙는 이서· 나머지 둘이 흥미롭게 쳐다보는 와중에 명전은 이서에게 핸드폰을 돌려주고는 물었다·
“무슨 생방송이라도 하는 줄 알았네· 뭐 하는 거야?”
“내 생각에 우리도 이제 슬슬 유튜브 같은 걸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밴드 유튜브·”
“그거랑 이게 무슨 상관이야·”
“무슨 상관이냐니! 뉴진스 못 봤어 뉴진스? 그 유튜브에 실제 여고생 컨셉으로 뭐 올리고 막 그랬잖아· 뭐더라? 아무튼 그런 거·”
뭐라뭐라 횡설수설하기는 하는데 명전이 이서의 이야기를 대충 요약해보자면 이랬다· 뉴진스가 신곡을 냈을 때 진짜 여고생인 것 마냥 컨셉을 잡고 일종의 페이크 다큐멘터리를 했고 그게 성공하지 않았느냐·
그렇다면 우리도 그런 걸 해보는 게 어떤가? 거기에다가 우리는 실제 여고생이기도 하고 실제 밴드 파이오니어 도전 과정을 찍는 거니까 오히려 좀 더 효과가 증폭될 것이다·
“그거 그냥 브이로그 같은 거 아냐? 뭐~ 도전 브이로그· 수능 백일 전 브이로그 이런 거·”
살짝 어처구니가 없어진 명전의 심정을 서하가 대신해서 말해주었다·
“어···어? 그런 거···는 아니지 않나?”
“최이서· 너 혹시 배터리가 탈착식이면 편하지 않을까 생각해본 적 있어? 이제 핸드폰 뒤에 뚜껑이 열리고 배터리가 탈착식으로 들어가는 거지·”
“오···그렇게 생각해본 적은 없는데 괜찮은 거 같아·”
명전의 질문에 아무 생각 없이 자연스럽게 대답을 하는 이서· 그 대답에 명전은 아무 말 없이 천장을 쳐다보았다·
이게 세상이 이렇게 되어도 되는 건가? 아무리 젊은 애들이 옛날 문물에 대해서 모른다고 해도 말이지· 아주 나중에 가면 삐삐 같은 거 보고 “왜 이런 거 썼지?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는 게 훨씬 편한데·” 같은 이야기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뭐 이서의 과거에 대한 존중 결여 문제를 빼놓고 보자면 아이디어는 괜찮아 보였다· 밴드 파이오니어 도전 과정을 유튜브로 담는다···그 뿐만 아니고 그냥 밴드의 삶 자체를 유튜브로 담는다라·
‘일종의 도전기 같은 게 되는 건가?’
아무리 창작물이 빼어나다 한들 현실에서 일어나는 일이 주는 실제감보다는 못한 것이 사실이다·
명전과 아이들이 정부지원사업에 도전하고 하나둘씩 단계를 밟아가며 우승하고 앨범을 내는···그 과정을 제대로 찍어내 유튜브에 올릴 수 있다면 명전의 유튜브 또한 꽤나 성장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괜찮은 거 같긴 하네·”
“그렇지? 한번 해 보자니까·”
확실히 명전의 유튜브가 최근 성장세가 주춤하긴 했다·
초창기에야 1일 1개의 영상을 올렸고 그래도 3월 초까지는 2~3일에 1개씩은 영상을 올렸었는데· 3월 초부터 지금까지는 워낙 뭐 일들이 많아서 영상을 올릴 틈이 없었다·
= 이분 어디가셨나요? ㅠㅠㅠ
= 눈나···나 추워···켁켁켁
= 새로운 기타 곡을 연습해야· 하는데· 곡이 올라오지 않고· 있군요· 어디 아프신·곳은·ㅇ벗는지· 궁금합니다· 모쪼록 잘 지내시길·
댓글창에는 영상 좀 알려달라는 아우성들이 많았으나 구독자는 확실히 늘어 2만명 후반대까지 붙었다· 수익도 식비 정도는 나오긴 했지만···에코렉과 퍼즈페이스 빅머프 등을 되찾았음에도 불구하고 명전의 페달보드를 복구하려면 아직 갈길이 먼 상황·
“뭘 하면 되는데?”
“자 그럼 처음부터 다시 영상을 찍는 거야· 아까 내가 찍은 그 부분부터 다시· 아니다 그냥 이렇게 영상이 나가는 것 자체가 더 재미있을 것 같아· 이게 더 자연스럽잖아···”
* * *
담배불이 살짝 붙었다가 쌀쌀한 봄바람에 훅 꺼져버린다· “아이 씨발~” 소리와 함께 다시 켜지는 라이터· 이번에는 불을 제대로 붙이려는지 담배에 빨간 빛이 옮겨 붙자마자 훅 들이쉬는 소리가 난다·
“희성아· 거기 스튜디오 몇시부터 쓸 수 있다고?”
“잠시만요· 확인해볼게요·”
쭈그려앉아 핸드폰으로 스케줄을 확인하는 희성· 그러는 동안 남자는 담배를 깊이 들이마셨다 내뱉었다·
낮임에도 불구하고 길가에 자욱이 퍼지는 담배 연기· 길을 오가던 사람 몇몇이 담배 냄새에 인상을 찌푸리고 일부는 그를 쳐다보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얼굴을 찌푸리며 시선을 되돌려주자 아무 일 없다는 듯 쫄아서 가버리는 행인들· 그런 모습이 자못 유쾌해 그는 낄낄 웃었다·
“형 3시라는데요? 3시 픽스·”
“3시? 왜? 저번주에 11시라고 하지 않았나? 오전에 뭐 빈다고 예약 안 들어오면 우리가 쓸 수 있게 해준다며·”
“그때 그거는 비었을 때 가능하다는 이야기였죠···아무튼 다른 팀이 어제 예약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거기 촬영부터 해야 할 것 같다고 3시부터 가능하다는데요·”
“아니 뭔···우리가 거기를 몇번을 이용을 했는데 시발 우리 편의를 봐 줘야 할 거 아냐· 진짜 단골 대접 조또 안해주네·”
단골 대접이랑은 다른 거 아닌가 하고 희성은 생각했지만 대답을 하진 않았다· 말해봐야 딱히 바뀌는 것은 없기 때문에·
“경윤이는?”
“방금 도착했다던데요· 오라고 할까요?”
“그래· 스튜디오로 바로 오라 그래· 이준성이는?”
“오고 있대요·”
“그 새끼는 뭐 씨발 뭘 오고 있대? 이제야 일어나 있겠지· 하여간 뭔 외부에서 사람 데려와봐야 쓸모가 없다니까· 밴드를 무슨 개 좆으로 알아· 음악을 할 자세가 안 되어 있어· 누구는 인생 갈아가면서 이러고 있는데 지는 뭐 집이 잘 산다 이거지· 아오 씨발새끼·”
남자의 계속되는 투덜거림에 희성은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 되었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분명 같이 밴드를 시작할 때만 해도 멋있고 괜찮은 형이었는데·
그렇게 희성과 남자는 묵묵히 스튜디오로 걷기 시작했다· 그러던 와중 갑자기 그에게 던져진 물음·
“희성아· 뭐 그 빌린다는 애들한테 다음에 빌리면 안 되냐고 물어보면 어떨까? 우리 급하다고·”
“네? 당연히 안 되지 않을까요?”
“아니 뭐 별로 급한 일도 아닐 것 같은데· 우리는 지금 오늘 아니면 시간이 없잖아· 급해봐야 우리가 더 급하겠지 걔들이 급할까? 견적 한번 보고 비켜달라고 하자·”
“안 될 것 같은···”
“야 새끼야! 말이라도 해 보는 거지· 씨발 뭔 그렇게 부정적이야?”
갑자기 욕 세례를 얻어맞은 희성· 길가의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가운데 남자는 “아니 새끼 진짜 말귀 못알아듣네···” 등을 중얼거리며 계속해서 걸었다· 희성은 그 뒤를 묵묵히 따라갔다· 흔히 있는 일이었기에·
“유서하?? 너 왜 여기 있어?”
“윤이형?”
희성과 남자가 도착한 곳은 홍대의 어느 스튜디오 앞· 이미 도착해있던 경윤은 누군가와 같이 서 있었다·
“희성아· 저거 서하 아니냐?”
“어···맞네요?”
“쟤가 왜 여기 있냐?”
경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사람은 유서하· 홍대 인디 씬에서 나름 기대받던 드럼 유망주· 드럼 실력도 아가리도 둘 다 좋아 조금만 더 성장하면 홍대 메탈씬의 기둥이 될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었던···다른 밴드의 형 말을 빌리자면 ‘산삼보다 좋다는 고삼 여고생’·
‘노리던 형들도 많은 걸로 알았는데 왜 갑자기 온 거지? 그런 사람들 피해서 도망간 거 아니었나?’
뺀질나게 홍대 라이브클럽 등을 뚫고 돌아다니던 애였는데 작년 하반기부터 갑자기 사라져서 나타나지 않기 시작했다· 그 때문에 무슨 해괴한 소문이 다 돌던 참이었는데·
“여기 왠일이야?”
“아···저 오늘 녹음하러 왔어요·”
“진짜? 녹음?”
“오· 서하냐?”
“어? 규식 오빠· 희성 오빠· 오빠들은 여기 왠 일이에요?”
서하를 만나자마자 목소리를 살짝 깔기 시작한 규식· 그런 모습을 은근히 한심하게 생각하며 희성은 서하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도 녹음하러 왔지· 우리 여기 단골이라· 오전에 비어 있다길래 좀 무료로 쓸 수 없을까 하고 왔는데···너는 뭐 녹음하러 왔어?”
“어···저희 밴드 파이오니어 녹음하러 왔어요· 오빠랑 언니들은요?”
밴드 파이오니어· 그들 또한 해당 지원사업에 참가하기 위해서 이 녹음실에 온 상황이었다· 그렇게 이야기가 이어지려는 와중 스튜디오의 문이 열렸다·
“서하· 안 들어오고 뭐해·”
“아 잠시만· 아는 분들이 있어서· 금방 들어갈게·”
문을 열고 바깥을 내다본 사람은 이마가 살짝 까진 채로 머리를 길게 넘긴 여자아이· 상당한 외모에 희성과 규식이 살짝 멈춘 사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스튜디오에 들어가버렸다·
“누군데?”
“저희 밴드 리더요·”
“서하 너 밴드 해?? 그래서 홍대 안 왔구나? 밴드 하느라·”
그러고 이런저런 잡담이 이어진다· 뭐 어떻게 밴드 하게 되었냐 하는 음악은 뭐냐 인원 구성은 어떻게 되냐···호기심 20% 서하에 대한 성적 관심 30% 그리고 경쟁자에 대한 적대감 50%으로 가득찬 질문에···서하는 겨우겨우 대답을 이어나갔다·
“여고생 4인조 밴드라고? 장르는 블루스 제이팝 애니 음악 얼터락···? 뭔···너는 메탈을 해야지 뭔 이상한 걸 하고 앉아있냐?”
“형· 서하 여기 있잖아요·”
“야· 서하가 그런 거 가리는 애냐? 서하야· 너 왜 그래· 너 지금 그러고 있으면 안 된다니까· 그때 오빠가 키워준다고 했잖아· 뭐 이상한 친목 밴드 같은 거 하면서 시간낭비 같은 거 하지 말라니까?”
진정으로 서하를 아껴준다는 듯 열렬히 감정을 토해내는 규식· 경윤 또한 “재능낭비 하면서 아마추어들이랑 놀지 마·” 같은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니 저희 다 음악 잘 한다니까요·”
“고등학생이 잘해봐야 뭘 얼마나 잘한다고· 너 정도 되는 애들이어야 진짜 잘하는 거지· 야· 오빠 봐라· 어차피 그 시절 친구들 진짜 도움 안 돼· 어차피 음악 할 거면 밴드 하고 음악 하고 하면서 인맥 쌓고 그러는 게 진짜 도움이 되는 거라니까·”
희성은 이 촌극이 도대체 언제까지 갈지 궁금했다· 서하는 전혀 생각도 없는 것 같고 쟤들이 하는 음악을 들어본 적도 없는데···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건지·
게다가 다른 사람들은 눈치를 채지 못한 것 같지만 서하의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서하· 아직도 이야기 안 끝났나? 이미 녹음 시작했어·”
그러던 와중에 다시 열리는 스튜디오 문· 아까 봤던 여고생이 뚜벅뚜벅 걸어와 그들 앞에 섰다·
“아 금방 갈게·”
“금방 오려면 아까 왔어야지· 죄송한데 녹음을 해야 돼서요· 애좀 데려가겠습니다·”
그러더니 서하를 데리고 들어가려는 여고생· 상황이 종료되기 직전 갑자기 규식이 입을 열었다·
“저기요· 저희도 밴드 하는 사람들인데·”
“네·”
“혹시 녹음 참관 가능할까요? 아주 잠시만요·”
왠지 모를 적대감과 경쟁자를 제끼기 위해 정탐을 하자는···그런 무의식적 생각이 바탕이 되어 나온 규식의 질문·
“네? 오빠 아니 저희 그 지원사업 녹화해야 하는데···”
“잠시 보는 건 괜찮잖아· 그것도 안 돼?”
원래라면 서하가 거절해야 할 상황· 그러나 그래도 지인이고 연장자라 그렇게 칼같이 거절 하지도 못하는 미묘한 상태·
“왜 참관하시려고요?”
“아니 뭐 궁금해서요· 새로운 신인 밴드라고 하고 뭐 실력도 궁금하고·”
규식의 말투에는 미처 숨기지 못한 감정들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다 알아챌 수 있을 만큼 진한 흔적들이었으나···
“뭐 그러시죠·”
왠지 모르게 수연은 살짝 웃음을 지으며 그들의 참관을 허락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혹시라도 헷갈리실 수 있으실까봐 다시 한번 안내드리자면 이 글은 주5일 연재입니다·
즉 내일과 모레는 연재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