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0
“딸· 밥 먹어야지·”
혜인은 문을 두드려보았다· 하지만 열리지 않는 문· 기색 조차 없다· 어젯밤 수연이 방에 들어간 이후로 이 문은 단 한번도 열리지 않았다· 심지어 등교시간까지·
‘무슨 일 있는 걸까?’
퇴원 이후로 수연은 단 한번도 제시각에 일어나지 않은 적이 없었다·
항상 일어나야 하는 시각보다 더 일찍 일어나 이불을 개고 커피를 마신다던지 하는 잡일을 먼저 처리하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키고 빗자루로 이런저런 곳을 청소하고· 그러다가 혜인이 일어나면 혜인이 차린 밥을 같이 먹고· 항상 그랬는데·
그 루틴이 깨졌단 말인가·
‘방문은 열지 말아달라고 했는데·’
어젯 밤에 작업을 하다가 늦게 잔 걸까? 그래서 아직까지도 자고 있는 걸까? 그런데 이제는 일어나야 학교에 갈 텐데· 혜인은 잠시 망설이다가 문 손잡이를 잡았다·
만약 수연이 자고 있다면 학교에 연락해서 조금 늦는다고 하자· 하루쯤 지각한다 해도 별 일 없을 것이다· 수연이 대학을 평범하게 진학할 것도 아니고···
‘그러고 보니 수연이는 예대를 가려나?’
갑자기 발전해버린 생각을 하며 혜인은 문을 열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수연아!”
헤드셋을 낀 채로 노트북 화면에 골똘히 몰입하고 있는 수연· 눈 밑이 퀭하게 내려온 것이 설마? 혜인은 수연에게 달려가 어깨를 툭툭 쳤다· 느릿하게 혜인을 바라보는 수연·
“아 엄마· 방문 열지 말라고 부탁드렸···”
“수연아! 지금 아침이야· 설마 밤 샌거니?”
“예?”
반쯤 내려온 눈으로 노트북 가장자리를 응시하더니 눈이 번쩍 뜨이며 소스라치게 놀라는 수연· 마우스로 이것저것 움직이더니 바로 헤드폰을 내려놓고는 샤워실로 급하게 뛰어들어간다·
“수연아 오늘 학교 쉬어! 밤 새 놓고 무슨 학교야· 엄마가 선생님한테 말할게·”
“아뇨 학교 가야돼요· 출석을 빼먹으면 안 되니까···”
우당탕! 하는 소리가 화장실에서 들리고는 “악 차거!” 하는 수연의 비명이 들린다· 사고 이후로는 항상 침착하고 정리되어 있던 애가 오늘은 왜 저러는지· 하지만 왠지 자기 나잇대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해서 혜인은 웃음이 나왔다·
* * *
[돌아오라 잿빛의 나날이여]
조회수 12853회 / 1일 전
아직 가사는 붙이지 않은 곡입니다·
감사합니다·
– 와···
– 유튜브 곡 들으면서 뭔가 울컥한 건 처음이네요· 아름다운 가사가 붙기를 기원합니다·
– 어떤 느낌으로 쓰신 건지 알 것 같아요 ㅠㅠㅠ 허밍 진짜 대박
– 왜 나는 이런 어른이 되어버렸을까? 왜 나는 이렇게 늙어버렸을까?
ㄴ 염병떨고있네 씨발 lol 중2병이냐
ㄴ 그냥 지나가세요 제발
ㄴ 이런 새끼들때문에 우리나라 인터넷이 이모양 이꼴인거임· 이제는 조금만 감상적이어도 중2병이냐고 지랄을 함 ㅉㅉ·
– 정식 발매 기원 1일차
– 근데 약간 곡명이 옛날 느낌 나는 듯
ㄴ 흠;; 그정돈가
– 이분 프로인가요? 알고리즘으로 들어왔는데 진짜 미쳤네요
– 요즘 아이돌 노래 밖에 없어서 진짜 지루한데 이런 노래 나와주니 정말 감사 ㅠㅠㅠ
[요즘 좀 회사일에 지치고 그랬는데 이 곡 들으면서 힐링이 되는 느낌이 드네요 옛날 학교 다닐 시절의 저는 너무나도 활기찼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곡이 완성될 날만을 기다리겠습니다]
[취소 / 댓글]
세현은 댓글창에 글을 써 놓고 입력을 누를지 말지 망설였다· 너무 주접으로 보이는 것 아닐까? 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대부분 다 그러고 있지 않은가·
– 애들의 소리가 들리는데 이게 사라질때 멀어지는 효과가 나는 걸 보면 등교길이나 하교길 같네요· 아마 잿빛의 나날이라는 것은 그때 당시에는 지루하다고 느꼈던 어린 시절인 것 같습니다· 멜로디도 허밍도 어린 시절을 추억하게 만드네요·
가사도 나오지 않은 곡을 가지고 벌써부터 추리를 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걸 보면 세현은 아직 양반인 셈·
오타쿠인 누나와 살면서 오타쿠가 벌이는 오만 주접 행각들을 보고···나는 절대 저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했던 세현이었다·
성인이 다 되어가지고 티켓팅에 열을 올리고 굿즈를 사고· 자기 인생부터 살아야지 왜 남의 인생을 챙겨주는가? 세상에서 제일 쓸데 없는 것이 연예인 걱정이라고 했는데·
하지만 그 다짐은 아주 처참하게 깨져버렸다· 누나인 세윤과 같이 갔던 주현의 콘서트에서 본 여고생 밴드· 메인은 주현이었지만 세윤과 세현은 밴드가 잘 보이는 곳에 앉았고· 그렇기에···그들에게 빠져들 수 밖에 없었다·
“야 그 곡 들었어?”
댓글을 작성할지 말지 갈등하던 찰나 불쑥 들어온 누나· 무턱대고 턱턱 걸어오더니 댓글창을 보고 연신 웃어댔다·
“옛날 학교 다닐 시절의 저는 너무나도 활기찼는데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요? 프하핳ㅎㅎ흫헣ㅎㅎ헉ㅎ킇ㅎㅎ헉···”
“뭘 웃어?”
어깨를 한대 세게 때리자 “악 아퍼!” 라고 하며 슥 물러나는 세윤· 세현은 댓글을 지워버린 후 누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왜?”
“너도 그 곡 들었나보네· 엄청 좋지? 나 진짜 눈물났어· 여기 봐봐· 눈시울 뻘거진거·”
“아니 내가 왜 당신 눈시울을 봐야하는데·”
투닥투닥대던 남매는 잠시 상황을 종료하고 다시 한번 곡을 들어보기로 했다·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이 곡을 어떻게 영업해야 할지 포인트를 떠올리기 위해서·
하지만 재생되지 않는 곡·
“뭐지?”
몇번 더 눌러봤지만 여전히 재생되지 않는다· 그리고 새로고침을 했을 때···보이는 것은 비공개 처리된 영상이라는 메세지 뿐·
“아니 이거 왜 이래??”
그리고 남매는 몇분 후 커뮤니티에 올라온 메세지를 볼 수 있었다· [실수로 영상을 올렸습니다 ㅠㅠ] 라고 되어 있는 공지를·
영상을 빨리 다운로드 받아놓을 걸 하는 후회를 해 봐도 이미 늦은 시점이었다·
* * *
“전에 말했던 것처럼 Ep를 만들 생각이야·”
파라독스 공연을 위한 정기연습일· 하지만 왠일인지 수연은 연습을 빨리 끝내고는 근처 카페로 향했다· 무슨 일인지 몰라 옹기종기 따라가던 세 명· 그런 그들에게 수연은 그렇게 말하고는 커피를 쭉 빨아들였다·
“EP?”
“기억 안 나?”
“전에 그런 이야기 한번 하긴 했지만···”
EP가 뭐지? 이서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들어본 이야기 같긴 한데·
“EP는 통상적으로 4~7곡 정도 넣는 음반을 말하는 거야·”
난감해하는 이서에게 들어온 서하의 설명·
“그럼 EP는 앨범이 아닌 건가?”
“정확하게는 좀 다르지···수록곡 갯수에 따라서 1개부터 3개면 싱글· 4개부터 7개면 EP· 일본에서는 미니앨범이라고도 부르고· 그리고 8개 이상이면 앨범·”
“갯수에 큰 의미가 있나? 다 똑같은 앨범이고 음악이고 아냐?”
“있긴 해·”
서하는 종이 한장을 쓱 끌어오더니 뭔가를 적었다· 싱글 EP 앨범의 차이라고 하며 이런저런 것들을 적어나가기 시작하는 서하·
“외국에서는 ‘앨범’을 정규 커리어로 쳐줘· 왜인지는 뭐 복잡한데 아무튼 다른 거는 다 부가적인 거···말하자면 외전 같은 걸로 봐·”
“한국은 좀 다르지 않나?”
“한국은 싱글이고 EP고 다 커리어로 보지· 예를 들어 극단적으로 보면 우리가 EP 2개에 싱글 1개를 냈다? 그럼 한국에서는 그래도 음반 좀 낸 밴드잖아· 그런데 외국에서는 아무것도 한 거 없는 밴드로 봐·”
“왜 그렇지?”
“뭐 그런 것들이 그다지 중요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아무튼 나는 이번 EP는 그냥 내가 총괄해서 만들려고 하거든·”
수연은 그렇게 말하며 사유를 설명했다· 시간이 부족하고 의견 받아서 진행하면 통일성이 없고 기타 등등· 꽤나 납득이 가는 이유였기에 이서와 아이들은 별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한 곡은 이미 나왔어· 한번 들어봤으면 좋겠는데·”
이어폰을 내미는 수연· 이서는 먼저 이어폰을 받아 곡을 들어보았다·
그리고 두 가지 충격에 휩싸였다·
첫 번째·
‘이건···’
너무나도 이서의 취향에 딱 맞는 음악이었다· 약간 일본 애니메이션이랄까 그런 쪽의 느낌도 많이 나고· 나지막히 퍼지는 허밍과 브릿지마다 아련하게 들려오는 아이들의 이야기는 뭔가 알 수 없는 노스텔지어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가사가 없는 건···”
“그래· 이서 네가 만들어줬으면 좋겠어·”
“응!”
이전에 이서 자신이 작사했던 가사가 마음에 드는 걸까? 작을 이번에도 맡기겠다는 수연에게 이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두 번째·
“제목은 좀 너무 늙은 느낌 아냐?”
“음?”
그 말에 왠지 모르게 화들짝 놀라는 수연· 이서는 살짝 이상하다고 생각하면서 말을 이었다·
“돌아오라 잿빛의 나날이여···뭔가 너무 돌아오라 청춘아 뭐 이런 느낌 아냐?”
“그런가· 나는 약간 일본 풍의 제목을 지었다고 생각했는데· 애초에 레퍼런스도 그 쪽에서 잡았고·”
그 말을 들은 이서는 약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소년이여 신화가 되어라]나 [소년이여 내게로 돌아와] 같은 느낌인가· 말하고 보니 다 소년이지만···
“근데 한국어로 옮겨놓으니까 뭔가 너무 늙은 노래 같아· 帰れ 灰色の日々라고 하면 뭔가 있어보이는데···돌아오라 잿빛의 나날이여 이러면 뭔가 좀 나이 든 분이 청춘을 되새기는 느낌이잖아·”
“뭐 그럼 이름은 바꿔야겠네···”
왠지 모르게 한번 더 당황하다가 시무룩해진 목소리로 대답하는 수연· 그때 봤었던 어머님이 지어준 제목인가? 그렇다면 탈룰라일 것 같다고 이서는 생각했다·
* * *
‘음반유통을 어떻게 할 것인가·’
노래를 만들기도 전에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이 좀 웃기긴 했지만 아무튼 중요한 부분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창작물이라는 것은 만든다고 다가 아니니까· 남에게 알려져야 하니까·
그리고 홍보도 홍보지만 유통도 문제가 있었다· 디지털 싱글도 아니고 EP 정도면 실물 음반을 찍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음반을 직접 만든다고 하면 CD 케이스 구매하고 CD 사와서 굽고 프린트 부착하고 내부 속지 넣고 기타 등등···그런 작업을 일일히 다 하거나· 혹은 그런거 해 주는 업체와 직접 컨텍을 해서 가격협상을 하거나·
그런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그걸 언제 다 하겠는가? 레이블에 맡기지· 그런데 레이블에 맡기자니? 이런저런 문제가 걸리고·
‘EP를 발매하자니 이런 문제가 생기네···’
여러모로 골치가 아픈 상황이라 명전은 골머리를 싸맬 수 밖에 없었다· 그냥 레이블을 들어갈까? 들어가면 아무래도 EP 뿐만 아니라 홍보나 여타 다른 부분에서 장점이 많을 텐데·
‘하지만 또 들어가자니 이런저런 부분이 걸린단 말이지·’
일단 레이블에 들어가게 되면 그 레이블의 음악적 성향에 제약을 당할 수 밖에 없고 음반을 원할 때마다 낼 수도 없다· 그 외 다른 문제들도 많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블을 들어가는 것 자체가 편한 것 또한 사실이기에···명전은 여러모로 고민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수연아· 저녁 먹자·”
“네·”
한숨을 내쉬기보다는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예를 들어 밥 먹기 같은· 명전은 그렇게 생각을 하며 식탁에 앉았다· 꽤나 먹음직스럽게 구워진 고기·
“그러고 보니 전에 엄마가 말했잖아·”
“어떤 거요?”
“앨범· 혹시 만들 계획 있냐고·”
“네·”
“아직도 있어?”
“음···있긴 하죠· 만들려고 곡도 작곡하고 있구요· 전에 밤샜던 게 그 곡 만들려고 했던 거라서요·”
명전의 대답에 얼굴이 밝아지는 혜인· 왜 그러냐고 명전이 묻기 전 혜인이 먼저 말을 꺼냈다·
“잘됐다· 엄마가 얼마 전에 레이블을 하나 샀거든· 그쪽에서 앨범 내면 어떨까?”
···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