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2
‘뒷 일은 생각하지 않는다라·’
집에 와서 노트북을 앞에 둔 채 명전은 이서의 말에 대해서 생각해보았다·
옛 시절의 추억· 난로에 도시락을 데워 먹던 어린 시절· 그 시절의 명전은···
‘기타 아니면 안 된다 같은 생각을 하긴 했었지·’
물론 머리가 커지고 나서도 기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은 마찬가지였지만 그 때는 그게 더 심했던 것 같은데·
“홍일아· 나는 비틀즈가 되거나 혹은 절벽에서 몸을 던지거나 둘 중에 하나만 하겠다·”라고 말했던 것 같은 기억도 있다· “씨벌 그게 뭔 소리여” 라고 홍일이가 대답했었지·
그때 당시에는 왜 그렇게 생각했을까?
왜 실패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았을까?
앞일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은채로 그저 ‘나는 기타로 성공하겠어!’라고 외칠 수 있었던 계기가 무엇일까?
그 다음으로 명전은 옛날에 보았던 고시엔 경기 하나를 떠올렸다· 두 투수 다 결승전에서 15회 완투를 하고 다음날 또 9회까지 완투를 했던가· 대회 내내 950개의 공을 던지고 결승전에서는 이틀 간격으로 24이닝을 던지고·
그들을 지탱했던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
팔은 아프지 않았을까? 여기서 이렇게 자신을 혹사하면 그 다음은 어떻게 될까 하고 생각해보지 않았을까? 미래에 대한 걱정은?
마지막으로 명전은 얼마 전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아무 생각 없이 투자자 앞에서 말을 내뱉고· 뒷 일이 어떻게 되는지는 생각하지 않은 채 현재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그 사람· 십대와는 살짝 거리가 멀긴 하지만···
그 사람은 왜 그렇게 행동했던 걸까?
뒷 일이 두렵지 않았던 걸까?
닥쳐오지 않은 미래보다 맞닥뜨린 현재가 더 중요했던 것일까?
떠올린 생각 중 하나는 중립적이고·
하나는 긍정적이고 하나는 부정적이다·
공통점은 있다·
감정에 자신을 내맡겼다는 것·
이성보다는 감정으로 행동했다는 것·
그런 삶의 방식을 좋다고 나쁘다고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다른 것일 뿐·
그렇기에 명전은 그 찬란함에 대해서 노래할까 싶었다·
모든 것을 내팽겨친 채로 단지 던지고 싶고 지금이 아니면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렇게 자신을 불태워버리는 사람들·
화염이 지나간 후 숲이 다시금 살아날지···폐허가 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아무튼 불꽃 자체는 아름다운 법이니까·
하지만 그는 잠시 생각한 후 그러지 않기로 했다· 불꽃은 찬란하다· 찬란하고 찬란하지만 동시에 덧없지 않은가· 한번의 불꽃을 위해서 인생을 불태우다니· 그 불꽃이 그만큼 가치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데·
그 대신 그 다음을 이야기하기로 했다·
화마가 휩쓸고 난 다음의 숲을·
불타버린 재가 양분이 되어 새로운 싹을 피울지도 모르고···혹은 그대로 죽어버린 숲이 될지도 모르지만· 누군가는 그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는가·
인생을 전부 내던질 필요는 없다는 것을· 순간의 감정에 모든 것을 내맡길 필요는 없다는 것을·
내던진 자의 슬픔에 대해서 노래함으로써·
명전은 다시금 키보드를 잡았다· 느린 템포의 단조 곡인 것은 이전 곡과 같다· 구성도 동일하다· 드럼 키보드 기타 베이스·
하지만 박자는 살짝 위태위태한 5분의 4박· 멀리서 아련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를 반복적으로 넣는다· 불안감과 긴장감을 조성하기 위해서·
악기의 비중은 어떻게 둘까· 명전 자신이 기타를 잘 다루니 이번 곡에서도 기타를 메인으로 둘 것인가?
‘아니야·’
기타는 정말 최소한으로만 둔다· 중간중간에 들어가는 사운드로만· 그리고 스트링을 조금 넣는다· 살짝 장송곡의 느낌이 나게끔·
‘라이브는 뭐 어떻게든 되겠지·’
영 안되면 이 곡은 라이브 안 하면 될 일이다· 그리고 키보드는···스트링과 같이 곡을 따라오게끔 만들고·
중요한 것은 드럼과 베이스다·
우선 드럼에는 5분의 4박으로 모자라 끊임없는 변박을 준다· 서하가 연주가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고생을 좀 해 줘야지·
이에 반해 베이스는 튀지 않는 리프로 화려함 없이· 오로지 리프에 기반한 연주만· 단조로운 기반 위에서 드럼이 춤출 수 있도록·
‘너무 장송곡 같은가·’
만들어놓고 나니 너무 처지는 느낌이다· 드럼이 춤추고 베이스도 살아있긴 하지만···보컬 라인이 들어간다고 해도 처진 것을 살릴 수는 없을 것 같다· 애초에 그 정도로 부를 생각도 아니고·
곡의 전체적인 그림을 다시 한번 조망해본다· 춤추는 드럼 아래서 연주되는 단조로운 베이스· 간혹 가다 스트로크만 연주하는 기타· 그리고 불안하게 들려오는 사이렌·
일단 배경· 화마에 휩싸여 불타버린 피안을 묘사하기 위한 파도 소리를 넣어본다· 희미한 철썩임과 대해에서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 뱃고동 소리도 약간·
그리고 곡이 시작할 때 키보드 트레몰로를 넣어본다· 떨려오는 느낌을 주기 위해서·
밑작업은 이걸로 된 걸까· 그렇다면 다음은 어떻게 할까· 곡에서 지속적으로 느껴지는 회한을 내버려 둘 것인가 해소할 것인가·
‘내 음악적 취향은 그대로 내버려두는 것이지만···’
그렇게 가면 너무 암울한 곡이 되어버리겠지· 듣는 재미도 없고· 그렇다면 어떻게 할까?
명전은 팔짱을 끼고 DAW를 쳐다보았다· 기타를 넣는 것이 무난하고 자신도 있다· 하지만 너무 무난한 선택이고 재미도 없다· 기타는 최소로 넣고 이 곡에서 자신의 역할은 보컬로 한정하고 싶은 것이 명전의 생각이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를 줘야 된단 말이지···그렇게 고민하던 명전은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그리고 악기를 넣었다·
블루스 스케일의 트럼펫을·
듣는 사람이 회한을 극복해낼 수 있도록· 슬픔을 승화시키는 블루스처럼 결국 불탄 숲에도 비가 내리면 새싹이 필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수 있도록·
* * *
“어떤가요?”
“이건···너무한데·”
앨범 세션을 위해서 오랜만에 만난 수연· 그런 수연이 들려준 노래를 듣고 채호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연 학생이 몇살이라고 했지요?”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아니 근데 고등학생 2학년이 이런 곡을 만들면···나 같은 늙은이는 무슨 곡을 만들란 말입니까?”
수연이 들려준 이야기에 의하면 이 곡은 젊은 사람들이 순간의 감정에 모든 것을 맡기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의미로 쓴 곡이라고 했다· 과연 그것이 곡으로 가능한지는 둘째치고 일단 발상부터가 좀 남달랐다·
‘저 나이 때는 모든 것을 불사르겠다 그런 곡을 쓰지 않나? 사랑에 인생을 바치겠다· 노래에 모든 것을 바치겠다· 그런 노래·’
인생 전체로 보면 너무나도 사소한 일들· 하지만 그것을 너무나도 중대하게 여기고 그를 위해 모든 것을 걸겠다고 하는· ‘하수연’은 분명 그런 연령대였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써 온 곡은 왜 이렇게 동년배같은 느낌인지· 나이를 먹어도 몇배는 더 먹은 것 같은 아이지만 실상은 여고생이라·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요·”
“아니 그 정도 맞아요· 겸손해 하지 말고 평가를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내가 이렇게 후학을 칭찬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니까·”
“교수님 뭐 하세요? 무슨 문제라도·”
그렇게 둘이서 이야기를 나누던 와중 끼어들어온 드럼 세션· 호근은 양해를 구하고 그에게도 노래를 들려주었다· 드럼이 감탄하는 사이 하나둘씩 모여드는 사람들·
“이게 수연 학생이 만든 거라고요?”
“나는 저 나이때 뭐 했냐·”
“이건 천재다 천재·”
“배운지 1년밖에 안 됐다고 하지 않았어요? 이게 진짜 재능이네·”
그런 세션들의 반응에 살짝 얼굴이 빨개지는 수연· 호근은 박수를 쳐 주의를 환기하고는 세션들을 자리로 다 돌려보냈다·
“어떤 식으로 발매할 겁니까?”
“EP로 생각하고 있긴 한데요·”
녹음이 끝난 후 다과상이 어느새 준비된 스튜디오 밖에서 호근은 커피를 들어올리며 물었다· 그 말에 답하는 수연·
“정통 밴드라면 정규 앨범부터 내야지·”
“그렇긴 한데 지금은 좀 빨리 앨범을 내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어서요·”
그렇게 말하며 수연은 사정을 설명했다·
자신의 밴드는 현재 파라독스에서 공연을 하고 있는데 최근에 정부지원사업에서 떨어졌다· (수연은 이 부분을 호근에게 상세하게 늘어놓았고 호근은 상당히 분노했다) 그리고 주현의 콘서트에 세션 밴드로 참여했는데 그게 계기가 되어서 팬들이 꽤나 많이 모여들고 있다는 이야기를·
“그런 부분이 있어서 조금 빨리 일을 진행하려고 하거든요· Ep를 한 4~5곡 정도 해서· 프로듀싱 좀 붙이고 홍보도 하고·”
“일리있는 생각이긴 한데···”
정석적인 루트라고 호근은 생각했다· 물론 예전의 밴드들이 하던 방식은 아니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변화해버린 음악 산업인데 아쉬운 놈이 따라가야 하는 법이다·
“어떤 레이블에 낼지는 정했습니까? 레이블도 꽤나 중요한 요소긴 해서·”
“우리 레이블은 어때요? 음악 엄청 좋던데· 내가 많이 팔아줄 자신이 있지·”
호근의 말에 갑자기 사냥감을 발견한 사자마냥 달려드는 사람들· 서로 자신의 레이블에 오라고 난리치는 세션들이었지만 수연은 “이미 레이블은 정했어요·” 라는 대답으로 다 물리쳤다·
“근데 문제가 있어서·”
“어떤 문제?”
“레이블이 좀 인디라서 홍보가 안 되는 상황이라·”
아~ 홍보···같은 소리가 이어진다· 아마 이 사람들도 별다른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만약 ‘곡과 앨범을 띄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있으면 락이 왜 이 꼴이겠는가? 이미 그 방법 쓰고 락 전성시대 왔겠지·
“그 문제는 어딜가도 다 마찬가지긴 하겠지· 지금 내가 이렇게 앨범 내는 것도 뭐···몇장이나 팔리겠어요? 그래도 음악 활동은 계속 이어가야 하니까 하는 거고·”
“그래도 교수님 앨범은 좀 잘 팔리는 편이죠· 저는 얼마전에 냈던 거 알아보니까 육백장 팔렸더라고요·”
“그 정도면 그냥 안 내는게 이득 아냐?”
인디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세션들의 대화· 명전은 그가 아무리 홍보를 하지 않는다 해도 음악이 저 정도로 안 팔릴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아무튼 홍보 자체는 해야 했다· 존재를 모르는데 어떻게 구매를 하겠는가· 바이럴마냥 수요 없는 공급을 돌리지는 않더라도 “이런 곡이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정도는 되어야 사람들이 존재를 아는 법·
문제는 “이런 곡이 있습니다· 한번만 들어보실래요?” 를 어떻게 하냐는 것인데·
“우리끼리 이야기해봐야 답 안나오긴 해~”
세션 중 한 사람의 이야기를 계기로 슬슬 파장되는 커피 타임· 명전은 어떤 식으로 홍보를 돌려야 할지 계속해서 고민을 해 봤지만 뭔가 뾰족한 수가 없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뾰족한 수는 많았다· 대부분이 좀 그렇다는 거지·
‘예를 들어 뭐 음원 사재기라거나 바이럴 같은 거 돌리면 충분히 뜰 만 하지·’
요즘엔 틱톡 바이럴인가? 하는 게 대세라고 했던가· 아무튼 돈을 어떻게든 끌어와서 그런 바이럴에 부어버리면 홍보는 잘 될 터·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다는 것이 명전의 솔직한 마음이었다·
“이거 근처 사람들한테 들려줘도 되죠? 뭐 미공개곡이라서 공개하면 곤란하다던가 그런 거 없어요?”
“전혀 없습니다· 듣고 표절만 안 해주시면 돼요·”
“우리도 상도덕이 있지~”
그런 말을 남기고 헤어지는 세션들· 명전은 딱히 좋은 생각을 떠올리지 못한 채 그냥 집으로 향할 수 밖에 없었다·
* * *
어쩌면 그것은 필연이었을지도 모른다·
“여러분· 오늘 방송은 여기까지 할···까 하는데· 음· 더해달라고요? 방금 카톡 소리 뭐냐고요? 그러게요· 뭐지· 재현이형이 왜 이 시간에 카톡을 보내· 무슨 노래를 보냈는데? 틀어달라고요? 어 잠시만요· 이거···틀어도···돼요? 답장이 없네· 그냥 틀어도 되지 않을까요? 한번 들어볼게요·”
명전의 곡이 흘러흘러 들어가 메이저 기획사의 보이밴드 멤버에게까지 흘러 들어가···느닷없이 시청자가 수천명이 넘는 인스타 라이브에서 그대로 재생되어버린 것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아니;; 비축분 쌓다가 연재시간을 깜빡했네요 ㅠㅠ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