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1
인베이전 프롬 서울(Invasion from Seoul)· 락 씬에서 인베이전이라고 하면 당연히 떠오를 수 밖에 없는 브리티쉬 인베이전(British invasion 비틀즈로 대표되는 영국의 락 밴드가 미국 음악 시장에 충격을 준 사건)에서 이름을 따온 이름이다·
굳이 From Seoul을 붙인 것은 이 밴드 오디션을 통해서 선발된 밴드가 서울 인베이전으로 불릴만한 파급력을 가지길 원해서일까· 일개 방송국의 오디션 따위에 ‘인베이전’의 칭호를 붙이다니 어찌 오만하다고 하지 않을 수 있는가 하고 명전은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명전만 한 것이 아닌 듯 했다· 1회 인베이전 프롬 서울은 나름 락 애호가들에게는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지만 대중적으로 뭔가 크게 되진 않았다고 들었다·
제작진은 ‘더 좋은 밴드를 뽑고 더 큰 규모로 일을 벌이면 더 확실하게 반응이 올 것이다!’ 라는 뉘앙스의 기사를 냈다지만 명전은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대충 알 수 있었다·
‘더이상 락이 대중에게 먹히지 않는 시대야·’
“예전의 락은 곧 음악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락은 음악의 한 갈래일 뿐이다·” 라는 배철수의 말처럼 음악시장은 더 이상 락 밴드가 모든 것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시장이 아니다·
하지만 제작진이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리고 한국 락의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이냐 같은 건 지금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지금 명전에게 중요한 것은 ‘엄마’가 출연해보라고 요청한 그 오디션에서 어떻게 우승하느냐지 그 다음 일이 아니기 때문에·
“오디션 나가신다고요?”
“뭐 그렇게 되긴 했죠·”
커피를 홀짝이는 명전을 보며 주현은 이것도 먹으라며 쿠키를 밀어주었다· 꽤나 비싼 쿠키였고 맛도 있었기에 아무런 의도가 없다면 감사히 먹었을 명전이었지만···이제는 그 호의가 어디에서 나오는 지 알기에 굳이 손대고 싶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왜 안 먹어?”
“지금 배 불러서·”
“나 빼놓고 다이어트 하는 거 아니지? 너 진짜 뺄 곳도 없어·”
오랜만에 녹음을 하고 싶다며 밴드를 부르고는 커피나 한잔 하자며 데려온 주현이 데려온 카페· 그 카페에서 이서는 주현이 밀어준 과자를 냉큼 받아먹고 있었다· 흐뭇한 웃음을 짓는 주현을 보고 명전은 나이 먹을 만큼 먹은 양반이 저러고 싶나라는 생각을 했다·
‘아닌가? 이 모든 게 그냥 나의 과잉대응일 뿐인가? 그냥 30대 청년이 후배들을 위해서 뭐 먹이고 싶을 뿐인 걸까?’
물론 주현은 불순한 의도로 행동하고 있는 것이 맞았지만 천 길 물속 조차 모르는 명전이 한 길 사람 속을 알 수 있으랴· 명전은 그렇게 고민하다가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는 선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자고 마음먹었다·
“최근에 밴드 오디션이라고 하면 그 서울 인베이전인가 그건가요·”
“네· 뭐 아신다거나 그쪽 관련해서 하시는 일이라도 있으신지·”
명전의 질문에 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도 방송가에 오래 있긴 했지만 모든 것을 다 아는 건 아니었다· 이 밴드를 소개시켜준 박휘석 피디라면 방송가에 어느정도 연줄이 있으니 그런 것들을 잘 알지도 모르지만·
“저는 그냥 노래만 부르고 다니는 사람이라 그런 건 잘 몰라서 뭐라고 말씀드리기는 그렇긴 한데요·”
주현은 짜증이 나기도 했다· 아무리 미성년자라도 그렇지 이 정도로 신호를 주면 생각은 해볼 법 하지 않나· 내가 당장 뭐 하자고 했나? 밥 먹고 좀 보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잖아·
하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그도 고생을 상당히 했던 만큼 방송가에 발을 들여놓은 후배들을 위해서는 조언을 해 줘야 한다· 괜히 이상한 것에 말려들어서 하지도 않은 말을 했다 뭐 그런 고생을 하지 않도록·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카메라가 켜진 상태에서는 방송국 피디들이 묻거나 시키는 것에 대해서는 무조건 세번 생각하고 하세요·”
“네?”
현아의 물음· 서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있고 이서는 아무 생각 없이 과자를 먹고 있었다· 명전은 주현의 말이 무엇일지 생각해보았다· 방송가 놈들이 악랄한 것은 유명하긴 하다만 그걸 세 번 까지 생각할 필요가 있나·
“악편 때문인가요?”
“그렇죠· 방송국 편집이라는게 악랄한 부분이 있긴 하지만 오디션은 더 해요·”
주현은 옛날 일 하나를 떠올렸다· 사귀었던 오디션 출신 아이돌 한명이 말해주었던 이야기다· 자신은 분명히 쓸데 없는 주제에 “별 관심 없어요·”라고 대답했었는데 돌고 돌아 보니까 그 대답이···
[Q· 주목하고 있는 다른 참가자가 있나요?]
[A· 별 관심 없어요·]
로 예고편에 나가버려서(특정할 수 있는 단서를 다 준 채로 면피용 모자이크만 했다고 한다) 몰매를 맞고 어떻게든 해명을 했더니 정작 본편에는 그런 장면이 없었다는 이야기·
“그런 일이 있어요?”
“실제로 있는 일이에요· 제가 직접 들었던 이야기고· 물론 그 오디션 프로는 너무 과해서 욕을 많이 먹었다고 하지만···”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비슷한 일이나 약간 강도가 낮은 일 정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할 수 있는 게 2024년의 방송가 사람들이다· 한번 두번 생각하라는 것으로는 부족하고 세번 생각하는 것이 맞다·
“물론 너무 두려워할 필요는 없죠· 적당히 자극적인 말도 해 줘야 방송에 들어가고 인기도 끄니까요·”
“음악을 잘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그런 현아의 말에 주현은 고개를 저었다· 방송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착각하는 부분이 바로 저 지점이다·
방송은 애초에 공정한 경쟁이 아니다· 제작측에서 밀어주고 싶은 쪽은 분량을 더 주고 영 아닐 것 같은 쪽은 분량을 줄인다· (조작까지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 경우는 범죄 취급을 받아서 요즘엔 좀 줄어들었긴 했다)
그러나 어찌되었든 최종 결과에는 개입하지 못하더라도 최종 결과를 내는 과정 자체에는 타인이 개입할 수 있는 것이 방송이다· 음악만 잘 한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
“스타성을 보여주지 않으면 분량을 받을 수 없죠· 물론 여러분들 같은 경우는 인원 구성이라던지 외모라던지 하는 부분이 이미 스타성이긴 하지만요·”
좋아하는 이서와 쑥쓰러워하는 현아· 별 생각 없어 보이는 서하를 두고 명전은 당연히 그렇겠지 하고 생각했다·
물론 이목의 집중 정도는 다르겠으나 요즘 세상은 미소녀 여고생 4명이 모여서 밖에서 막춤을 춘다거나 고래고래 소리만 지른다고 해도 다 쳐다보면서 응원하는 세상이다·
그런데 그런 애들이 제대로 된 음악을 한다? 그리고 실력도 좋다? 음악도 근본이 있는 음악이다?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고 분량을 안 줄 수 있겠는가· 현대 문명에 어둑한 명전이라도 그 정도는 알 수 있었다·
* * *
락 밴드 오디션 프로그램인 인베이전 프롬 서울 – 약칭 인베이전 – 1회의 룰은 아래와 같았다·
1· 참가 대상 밴드들은 10분 가량의 퍼포먼스를 녹화한다·
2· 녹화된 퍼포먼스는 일정 시간대에 유튜브로 방송되고 이 때 시청자들은 각 밴드의 퍼포먼스에 대해서 투표를 한다·
3· 이를 통해 선발된 16개의 밴드들은 본선에 진출하여 경쟁한다·
4· 이 때 ‘멘토’들은 각 밴드를 선발하여 일종의 프로듀싱을 하고 그를 통해 계속해서 경쟁해나가는 방식을 취한다·
5· 각 편마다 탈락자를 내는 방식으로 방송이 진행되며 이 때 투표는 현장 관객 20% 온라인 관객 50% 전문가 30%로 결정된다·
물론 이 룰이 2회차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은 아니다· 1회차가 흥행했더라면 그대로 적용될 확률이 높으나 1회차는 오디션 프로 치고는 범작이라는 결과를 내면서 방영이 종료되었기에·
무엇보다 방식이 달라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본선 진출’ 부분이었다· 1회에는 유튜브 스트리밍을 통해 사전에 참가 밴드들을 시청자의 손을 통해서 걸러냈으나 2회에서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이 대세였다·
이 이유는 단순하다·
시청자들은 자신이 보고 있는 사람들이 특별하기를 원한다· 자신과 같은 시청자들이 투표해서 뽑은 사람이기를 원하는 게 아니라 전문가들이 심사해서 이미 ‘특별한 실력을 가졌다’ 라고 검증받은 사람들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 편이 여러모로 편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신의 안목에 대해서 신뢰하지 않는다· 자신의 귀 눈 혀 그 외 기타 등등은 좋아한다는 신호를 보냄에도 불구하고 뇌 정확하게 말하면 ‘나는 높은 예술 감각을 가지고 있소’ 라고 요약되는 ‘체면’이 거부하는 것이다·
“나는 이거 좋아하는데?” 라고 방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옆에서 “그거 좆구린데 왜 좋아하냐?” 라고 하면 ‘근데 거짓말이고 사실 걔들 별로 안 좋아했어’ 같은 태도를 취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르면 자신이 좋아하게 된 밴드가 ‘시청자 손에 의해서 뽑혀올라간 밴드’ 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 보다 ‘전문가들에 의해 뽑힌 특별한 밴드’ 라고 꼬리표가 달려있는 것이 여러모로 좀 더 좋아하기 쉽다·
* * *
아무튼 그런 까닭에 명전은 [인베이전]에 대해서 대비를 하고 있긴 했지만 완전히 확실하게 대비를 하고 있진 못했다· 박휘석 음악감독이나 보이밴드 류진을 통해서 얻어온 소식도 ‘포맷이 변경될지도 몰라요·’ 같은 불확실한 소식들 뿐이었으니·
게다가 다음 행선지가 오디션으로 정해졌다 한들 아직 공고만 되었을 뿐 참가신청을 받고 있지도 않는 오디션에 참가할 수는 없는 일이다· 명전도 그것을 알았기에 우선 해야 할 일부터 하기로 했다·
“뭐 사지?”
“글쎄···”
웹사이트의 홈페이지를 쳐다보며 그렇게 말하는 이서에게 명전은 그런 말 밖에 해 줄 수 없었다·
결국 악기라는 것은 본인의 만족· 자기가 원하는 사운드를 내는 것이 최고의 악기인 법이다· 명전 또한 당시의 벌이로 치면 수천만원짜리 기타도 살 수 있었지만 굳이 펜더 커스텀 샵의 블랙 스트랫을 들고 다닌 이유가 있다· (물론 커샵 블랙 스트랫 또한 현재가 천만원이 넘어가는 고가 기타다·)
“만약 여기가 일본이라면 직접 가서 쳐보라는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을텐데·”
“그런가?”
“오챠노미즈라던지 가면 악기점 엄청 많으니까· 아니면 이시바시 같은 데 가면 되고· 어찌되었든 한국처럼 눈탱이 맞을 염려가 없으니까 말이지·”
한국의 악기 상가라고 할만한 곳은 낙원상가밖에 없다· 그리고 낙원은 ‘서명전’ 일 때에도 은근슬쩍 어떻게든 해쳐먹으려던 장사꾼들이 즐비하던 곳이다· 요즘은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뭔가 찜찜한 감이 있다·
당장 가서 ‘한번 쳐 봐도 될까요?’ 이러면 바로 짜증부터 내는 곳이 낙원이다· 친절한 곳도 많다지만 낙원에 뺀질나게 드나드는 사람들이 아니라면 그런 가게가 많은지 친절한 가게가 많은지 알기 힘들다·
그에 반해 일본은 한국에 비하면 거의 천국이라고 할만한 악기 시장을 가지고 있다· 악기 골라야 되는 사람이 오챠노미즈를 가면 악기 고르다가 밥때 놓쳐서 굶어죽는다는 말이 왜 나왔겠는가·
“굳이 뭐 한국 웹사이트에서 보지 말고 이시바시라던가 구매대행 웹사이트 쪽도 봐· 다른 건 몰라도 펜더나 희귀매물 같은 건 거기 통해서 구하는 게 싸지·”
명전의 말에 화면이 뚫어져라 워윅의 프렛리스 베이스 – 잭 브루스가 크림(Cream) 재결성 공연때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이었다 – 를 보던 이서가 눈을 돌렸다· 살짝 맛이 간 것 같은 표정에 명전은 당황했다·
“왜 그래?”
“오늘 악기를 사는 건 포기해야겠어· 낙원에 사고 싶은 악기가 너무 없거나 비싸·”
“그럼 어쩌려고· 이제 애들 올 텐데·”
오늘 일정은 정산금을 가지고 낙원에 가서 쇼핑을 하는 것이었다· 비싼 감이 있지만 낙원밖에 만져보고 악기를 살 곳이 없으니 출혈을 감수하면서· 그리고 장비 업그레이드도 하고 커피나 마시면서 오디션을 어떤 식으로 준비해야 할지도 생각해보고·
명전은 오늘을 그렇게 보낼 생각이었지만 이서의 생각은 조금 다른 듯 했다·
“오늘은 백화점에 갈 거야·”
“···뭐? 가서 뭐 하게·”
“오디션용 옷 사야지· 그리고 좀 있으면 이제 완전 여름인데 수영복도 사고· 수연이 너도 여름인데 놀러가야 할 거 아냐·”
···수영복? 내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23년 10월 9일 23:49 – 일부 내용을 수정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