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83
“완전 라이브는 당연히 아니지· 본편에는 녹화 방송이 올라갈 건데 예선 공연 자체는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치뤄진다는 거에요·”
그럼 그렇지 하고 명전은 생각했다· 예선을 완전 라이브로 치른다는 것이 가능키나 하겠는가· 만약 참가팀이 50팀이라고 한다면 각각 10분씩 공연해도 앞뒤로 세팅시간 5분씩 20분이다 하면 1000분이다· 이 정도면 정규 프로 하나 정도 나오는 시간·
“그런데 관객 앞에서 라이브로 치뤄지는 것도 불가능 할 것 같은데요· 밴드가 얼마나 많은데···”
“그거야 내가 피디가 아니니까 아니니 알 수가 없지· 하지만 라이브로 치뤄진다는 건 확실한 것 같아요·”
그 뒤로 몇가지 이야기를 더 한 후 힘내라는 덕담 한마디와 함께 통화를 종료하는 박휘석 피디· 명전은 천장을 잠시 쳐다보았다·
‘완전 라이브가 아니라고 해도 어떤 방식으로 치뤄질 지 도저히 짐작이 안 가는데·’
라이브 방송이 아니라고 할지언정 시간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1천분이 방송으로 송출되지 않는 것일 뿐이지 녹화가 되어야 하는 점은 똑같다·
‘어떻게 하려는 걸까?’
* * *
제 1회 인베이전 프롬 서울 방송은 아예 흥행이 박살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엄청나게 흥행하지도 않았다· 락 씬 자체에서는 꽤나 흥미를 불러일으켰고 음악에 대해 관심이 많은 사람은 재미있게 봤다지만 그것이 전부·
1회 인베이전을 통해 발굴된 밴드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유명세를 좀 타긴 했지만 뭔가 거창하게 ‘인베이전’ 이라는 이름을 따와 붙인 것 만큼 활약도가 있진 않았다·
인베이전을 만든 방송국인 Mtown에서는 도대체 왜 이런 결과를 맞이했는지 궁금해했다· 음악성이 걸출한 밴드들을 가져다놓고 흥미로운 경연을 보여주었다· 밴드 풀도 좋고 경쟁 구도도 좋았고 나온 음악도 좋았고 비주얼도 좋았고 아무튼 다 좋았다·
그런데 흥행에는 실패했다· 뭐가 문제인가· 고민하던 경영진은 어떤 이유인지 알아내기보다는 확실하게 2회를 흥행시킬 수 있을만한 인력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부정적인 감정이 중요하다니까·”
윤동욱 피디는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그가 누구인가·
Mtown이 만들어낸 전설적인 오디션 프로그램의 시즌 2를 담당했던 그리고 그 시즌 2를 흥행시켰던 피디다· 그가 맡았던 시즌 2는 그야말로 전 국민이 그 프로그램을 본다고 할 정도의 흥행을 기록했다·
그리고 부정적인 반응 또한 엄청날 정도였다· 대표적인 장면이라 하면 탈락한 연습생들이 눈물을 흘리며 퇴장하는 롱테이크 장면과 그 후 즉시 나가는 본인 및 다른 연습생의 탈락 소감 인터뷰가 있다·
이는 방심위의 권고 “이런 식의 잔인한 프로를 내보내도 되는가!” 하는 수많은 디스 기사를 불러왔다· 인터넷에서 사람들이 윤발놈 개새끼 죽이니 마니 이러는 것은 네거티브 반응으로 기록하기도 뭣한 수준이었다·
그로 인해 시즌 2의 역사적인 흥행에도 불구하고 Mtown은 윤동욱을 하차시킬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성공을 위해서라면 독약인 것을 알면서도 먹어야 할 때가 있는 법· 경영진은 다른 업무를 하고 있던 윤동욱 피디를 인베이전의 메인 피디로 올려놓았다·
“그게 무슨 소리에요?”
“사람들이 몰입하기 위해서는 긍정적인 감정만을 줘서는 안 돼· 부정적인 상황을 주고 그게 개선되어가는 걸 보여줘야 제대로 몰입이 되는 거지· 그런 점에서 인베이전 1회는 너무 부정적 감정이 부족했어·”
동욱은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아름다운 경쟁? 공정하고 정의로운 과정? 다 좋은 이야기다· 하지만 그런 것으로는 사람을 몰입시킬 수 없다·
“그렇다고 이런 방식대로 라이브를 하면 무조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이야기가 나올 텐데요·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그렇게 말한 것은 김지원 피디였다· 윤동욱을 메인 피디로 발탁하긴 했으나 메인 피디의 폭주를 조금이나마 막아낼 참으로 Mtown이 붙인 사람이다·
지원은 동욱이 제시한 예선 방식이 참으로 황당하다고 생각했다·
홍대 강남 신촌 그 외 다른 지역에서 이루어지는 라이브· 보장된 관객들이라고는 자발적으로 지원받아 초청되는 관객단 30명 뿐·밴드들은 그들 앞에서 라이브를 하고 점수를 받아야 한다·
초청된 관객단 외에도 행인들 또한 투표가 가능하며 중복은 걸러진다· 점수는 5점 만점이며 총합과 평균 둘 다 중요하다· 이 점수와 녹화된 영상을 보고 평가하는 전문가 점수 둘을 합쳐 예선 진출이 결정된다·
공연 시간은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다· 밴드의 공연 시간은 준비시간까지 합쳐서 45분· 그 이상을 넘기면 자동 탈락된다· 공연 순서는 랜덤으로 결정된다·
‘무조건 말이 나올 수 밖에 없는 방식이야·’
지원은 그렇게 생각했다· 중복을 거른다고 해도 팬들이 와서 투표하는 것은 어떻게 막는가? 사람들 없는 9시 타임에 걸리는 것은 또 어떻게 하고? 위치 선정은 또 어떻고? 처음부터 끝까지 전부 논란 투성이인 방식·
“감당을 왜 해?”
“네?”
“공정하잖아· 랜덤· 그거면 되는 거지·”
하지만 동욱의 대답은 속칭 ‘알빠노’ 였다· 누가 오디션 참가하라고 칼 들고 협박이라도 했나? 불리한 조건이 있더라도 음악 잘 하면 되는 일이다·
“우리는 공정하게 랜덤으로 돌렸어· 안 좋은게 나왔다? 극복하는 건 밴드가 알아서 해야 할 일이지·”
“욕은 어떻게 감당하시려고요?”
“지원아· 너 아직도 방송을 모르냐? 욕을 먹는다는 건 노이즈가 발생한다는 거야· 노이즈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본다· 이런 당연한 사실을 모르다니 아직 멀었구만·”
동욱은 쯧쯧대며 담배를 한대 더 물었다· 그가 뿜어내는 연기를 지원은 켁켁대며 흩어냈다· 동욱은 웃음을 흘리며 다시 입을 열었다·
“어차피 방송 나가는 건 본선부터· 랜덤 돌려서 안 좋은 시간 장소 걸려서 탈락하는 애들? 걔들 어차피 원래부터 안 될 애들이고 시청자들은 걔들의 병신같은 모습만 볼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그거만 보여줄거거든·”
“···그럼 기존 팬들이 와서 투표하는 건요? 그건 어떻게 막아요?”
“그걸 왜 막아?”
지원은 정신나갔냐는 듯 동욱을 쳐다보았다· 동욱은 단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우리는 그냥 시간 장소를 랜덤으로 보내기만 하면 돼· 그걸로 우리 책임은 끝이다· 팬들이 몰려가서 투표를 했다? ‘자발적 행동’을 어떻게 막을 건데? 게다가 그 정도의 열성 팬층이 있으면 그런 팬층이 시청자로 붙어주면 그 자체로 이미 이득이야·”
“팬층이 없는 밴드는 손해잖아요·”
“그러니까 이런 식으로···”
동욱은 샘플 몇개를 틱틱 쳤다· 메이크업을 받은 밴드들의 얼굴· 혼신의 보정이 가해져 누구나 미남미녀로 보이는 사진이었다·
“예선 참가 밴드가 확정되고 나서 이 사진을 바이럴 더해서 쫙 뿌릴거야· 그럼 이제 밴드는 조또 몰라도 얼굴만 보고 좋다고 중얼거리는 미친 애들이 와르르 붙을 걸· 어필 영상도 찍을 거고· 물론 그건 자기들이 알아서 지들 돈 내고 찍어야겠지·”
그런 동욱의 말에 지원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느낌밖에 들지 않았다· 방송 초반 어그로를 위해서 저렇게까지 한단 말인가· 왜 그가 맡았던 시즌 2가 대성공했는지 그리고 욕도 엄청난 규모로 먹었는지 알 것 같은 느낌이었다·
* * *
참가 신청이 종료된 다음 발표된 방식에 명전은 난감함을 넘은 황당함을 느꼈다· 이걸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공정함은 개나 줘버렸군···’
사실 다른 의미로 보면 또 공정하다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다 망할 확률이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 그거야 추첨을 돌리기 전의 이야기고 추천을 돌린 다음은 어떻게 하는가? 쓰레기 장소 쓰레기 시간을 뽑은 사람은 그냥 자기 운이나 탓하면서 탈락하면 되나?
“이거 너무한 거 아냐?”
명전의 심정을 그대로 대변해주는 이야기가 옆에서 튀어나왔다· 어처구니 없다는 듯한 이서의 말투· 자신이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계속 확인을 하고 있는 현아·
“인터넷은 완전 개판이야·”
서하는 자신이 읽던 커뮤니티를 슬쩍 보여주었다· 사전 사진 촬영때 스튜디오에서 슬쩍 봤던 사람들의 얼굴이 상당한 창작과정을 거쳐 인터넷에 실려 있었다· 그 밑에는 [대박이다] [솔직히 얼굴합 보면 얘들이 최고인듯] [여기 보컬 진짜 와꾸 미쳤다] 같은 댓글들·
“음악도 들어보기 전에 일단 얼굴 보고 결정하는 건가·”
“원래 저쪽 판은 저러니까·”
한때 아이돌도 파 봤다는 듯 이서가 아는 척을 했다· 얘는 안 해본 게 뭘까 하고 생각하며 명전은 인터넷 게시글을 좀 더 뒤져보았다· 바이럴 마케팅이 성공적이었던 건지 ‘인베이전’ 관련 글들이 꽤나 많았다·
그리고 그 중에는 밴드의 음악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으나 대부분은 얼굴과 ‘케미’에 대한 이야기였다·
“밴드 오디션인데 이래도 되는 건가?”
“이번 시즌 메인 피디가 그 아이돌 오디션 하던 사람이라잖아· 그래서 그런 거 같은데·”
“그런가···”
‘그룹 사운드’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들도 있었다· 일단 팬들이 올린게 분명한 [우리 애들 미모봐 ㄷㄷㄷㄷ] 같은 글· [얘들은 여자 밴드인가?] 하는 글이나 음악 관련 글·
하지만 분명한 것은 긍정적인 반응이던 부정적인 반응이던 그 수가 적다는 것이었다· 정확한 수치로 말할 수는 없지만 평균 정도에서 머무는 느낌·
“예선 통과 가능할까? 이런 방식이면 솔직히 자신 없는데·”
“그렇긴 하지·”
전문가 평가도 붙긴 한다지만 기사를 보면 그 비중이 높은 것 같지 않다· 그리고 아무리 우리가 음악을 잘한다고 한들 영 안 좋은 시간에 안 좋은 지역에 걸려버리면 어떻게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악조건을 극복하면 더 빛나는 법이지· 그런 것을 극복하는 게 오히려 더 드라마틱해서 방송에 더 나올지도 모르고·”
명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아무튼 더 생각해봐야 소용이 없다· 다음 주면 예선 라이브가 시작되니 연습만이 답인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