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93
관객들도 동요를 보이고 있지만 보다 더 큰 웅성임은 밴드들에게서 나온다· 그 누구도 ‘울림 스톤즈’가 ‘그룹 사운드’를 지목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은 매우 당연했다· 보는 눈 듣는 눈이 있는 사람 모두가 그룹 사운드를 강력한 우승후보로 점쳐왔기 때문이다·
1라운드에서 관객 점수 62점을 받고 2라운드에서 16등으로 통과했다 한들···그 점수나 등수가 밴드의 실력을 나타내는 것은 아니다· 그런 것으로 말할 수 없는 ‘진정한 실력’· 그룹 사운드는 그 진정한 실력의 소유자라고 진작부터 참가밴드 사이에서 평가받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다른 밴드들 뿐만 아니라 ‘울림 스톤즈’의 멤버들도 잘 알고 있었다·
“형 미쳤어요? 무슨 생각이에요?”
피디의 예상에 없던 그림이었기 때문인지 잠시 중단된 촬영· 그 사이 울림 스톤즈는 촬영장 한 구석에 모여 격렬하게 의견을 나누고 있었다·
자신들의 상의 없이 상대를 ‘그룹 사운드’로 결정지어버린 리더 정우진· 울림 스톤즈의 멤버들은 도저히 리더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대체 어떻게 올라온 패자부활전인데 혼자서 이런 일을 저지르고 앉아있는가·
“지금이라도 빨리 가서 취소한다고 해· 잘못 말했다고·”
“아니 씨발···! 그게 말이 되냐구요!”
“이미 저지른 일이야· 수습할 생각을 해야지 그렇게 화만 내고 있으면 어떻게 할 건데?”
기타가 으르렁거리며 우진에게 달라붙었다· 그를 떼어내며 말을 거는 베이스이자 우진의 여자친구인 황은지· 하지만 은지 또한 전혀 남자친구를 이해할 수 없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무튼 오빠· 진짜 무슨 생각이야? 아까는 다 생각하고 있는 게 있다면서· 그게 이거야? 우리 엿먹이는 거? 이럴 거면 패자부활전 준비는 왜 하자고 했는데?”
그런 은지의 말· 하지만 우진은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생각하고 있는 거 뭐요· 그냥 무턱대고 오디션 갔다가 좆발리는 거? 형· 정신차려! 포맷 이야기 들었잖아요· 그냥 완전히 1:1이라니까? 은지 누나 말대로 지금이라도 가서 피디한테 빌라고요· 잘못 말했다고!”
“너희들 그때 기억 나냐?”
재민이 폭발하기 직전 뜬금없이 던져진 우진의 질문· 타이밍을 뺏듯이 들어온 이야기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다·
“어떤 때요·”
“그때 밴드 파이오니어 때 있잖아· 쟤들 하차했을 때·”
“···그거는 결국 별 근거 없는 거로 마무리된 거 아니었어요? 뭐가 있어요?”
우진의 말에 드럼을 맡은 멤버가 질문을 던졌다· 우진은 대답 대신 웃음을 돌려주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게 있어· 증인도 있고 계획도 있고· 당장 조금 있다가도 한번 찔러 볼 거고·”
“형· 정신 차려요·”
그러나 기타는 그의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그 말에 기타를 노려보기 시작한 우진· 하지만 기타는 그런 것 상관 없다는 듯 계속 말하기 시작했다·
“그게 뭐가 됐든 왜 자꾸 그런 요행에 기대려고 해요? 그게 안 통하면 어떻게 하려고· 그럼 이제 쟤들 상대해서 발리게?”
“안 통할 수가 없다고·”
“아니 무슨 뭔 말도 안되는···!”
기타는 다시 소리를 질렀으나 은지의 손에 뒤로 잡아끌려갔다· 남은 밴드원의 우려 섞인 시선 속에서 우진은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안 통할 리가 없어·”
남들에게 말한다기보다는 자신에게 확신을 주려는 듯한 느낌의 중얼거림· 그 모습에 밴드 멤버들은 잠시 굳은 채로 우진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밴드 파이오니어 이후로부터 사람이 이상해졌다·
* * *
다시금 재개된 녹화· 새로운 장면을 뜨려는지 스태프들은 상대 밴드에게 이전과 똑같은 장면을 녹화하게 만들었다·
“그룹 사운드를 선택하겠습니다·”
“정말인가요!!”
아까 들었던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화들짝 놀랐다는 듯 반응하는 MC· 저것이 프로인가· 명전은 머리를 꼬며 생각했다·
‘도대체 어떤 생각인 걸까·’
울림 스톤즈· 기억에 남지도 않는 밴드고 그렇게 잘 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이서가 이야기하기를 “저 사람들 밴드 파이오니어 때도 같이 했었대! 바이테일러드 때도 왔었고!” 라고 하던데· 그 말인 즉슨 볼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억에 남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그럼 우선 2MAJOR와 COTRA의 대결! 그에 앞서서 각오 한 말씀 들어볼까요!”
MC의 진행을 뒤로 한 채 스태프의 안내에 따라 단상에서 내려가 무대 뒤 쪽으로 향한다· 울림 스톤즈도 그들의 뒤를 따라왔다·
“저 사람들은 왜 우리를 지목한 걸까?”
“모르지 나도·”
이서의 속삭임에 명전은 심드렁하게 대답하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움찔하는 울림 스톤즈 멤버들· 그러나 리더는 아까처럼 맹렬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내가 뭔가 했나?’
명전은 기억을 헤집어봤지만 딱히 떠오르는 일은 없었다·
“자! 그럼 경연 곡의 선택은···!”
MC의 외침과 함께 무대 스크린에서 룰렛이 돌아가다 곡 하나를 가리킨다· 꽤나 유명한 아이돌 곡·
“곡이 선택되었습니다! 이제 2MAJOR와 COTRA는 해당 곡으로 진검승부를 겨루게 됩니다· 과연! 살아남는 밴드는 누가 될 것인가? 관객들은? 또 밴드들은? 멘토들은? 온라인 투표는? 어떤 밴드를 선택해줄 것인가?”
이어지는 녹화· MC는 계속해서 진행을 하고 앞선 차례의 밴드들은 리액션을 보였다· 소감과 각오· 이 자리에 오게 될 수 있기까지의 팬들에 대한 감사·
그런 말을 주고받으면서도 패자부활전의 대결 상대가 된 두 밴드들은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그들 사이의 긴장감은 뒤쪽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명전에게까지 전해질 정도였다·
“자 그럼!! 다음 순서···떠오르는 신성 그룹 사운드와!! 그들에게 도전장을 던진 지옥에서 돌아온 울림 스톤즈!! 지금 바로 만나보겠습니다!!”
“저 앞쪽으로 가서 서주세요~”
MC의 외침에 밴드들을 안내하는 스태프· 무대 위에 양 리더를 중간에 놓고 일렬로 죽 늘어선 동안 스크린에서는 영상 자료가 재생된다· 급하게 준비한 것이 느껴지는 ‘그룹 사운드’와 ‘울림 스톤즈’의 무대 영상·
명전은 하품을 하려다 필사적으로 표정을 갈무리했다· 밴드 좌석이나 세트 뒤쪽이라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무대에서 그렇게 하기는 좀 그랬기에·
“하수연 씨·”
그러므로 그 타이밍은 명확한 기습이었다·
남들이 다 쳐다보는 무대· 표정 관리도 할 수 없고 회피조차도 할 수 없다· 타인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받아내야 하는 시점·
“한승고에서 일진으로 유명하셨죠? 애들 괴롭히고 학폭도 하시고·”
정우진이 말을 내뱉었다·
‘통할 수 밖에 없다·’
수연의 표정을 보며 우진은 생각했다·
나름 면밀하게 계산된 타이밍· 전 시즌 패자부활전의 진행방식도 참고하고 앞선 팀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도 보았다·
그리고 상대의 대답도 계산했다·
첫째 부인· “그런 적 없어요·” 라던가 “무슨 말씀 하시는 거에요?” 같은 반응· 아니면 둘째 분노· “미쳤어요?” “뭐라는거야 씨발새끼야?” 같은·
둘 중 어떤 반응이 돌아와도 좋다· 아니 어떤 대답을 해도 좋다· 녹음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적 없다 부인하면 거짓말을 하고 있다며 몰아세우고 화를 내면 증거가 있다고 반문한다· 이야기가 잘 돌아가면 증인이 있다는 말로 협박해서 미션을 포기시키고 잡아떼거나 화를 내거나 아무튼 반응을 보이면 녹음을 통해서 증거를 만들고 그것으로 더 옭아맨다·
그것이 우진의 계획이었다·
무대 뒤라거나 길가에서 만나면 얼버무리고 도망칠 수 있겠지· 하지만 이 무대 위에서는?
반응하는 순간 걸릴 수 밖에 없고 걸리지 않더라도 증거를 자기 스스로 만들어내는···마치 거미줄과도 같은 완벽한 계획·
우진은 그렇게 생각하며 ‘하수연’의 반응을 기다렸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 반응에 우진은 말을 한번 더 던졌다·
“저기요 하수연 씨· 전직 일진이셨잖아요· 학폭 해 놓고 방송 뻔뻔하게 출연하고· 윤지민 김지원 이서연 성주희· 왜 모른 척 하시나요?”
그런 말에도 불구하고 수연은 반응하지 않았다· 마치 자신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일이라는 듯 아무 말 없이 앞을 바라보고 있는 수연·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우진은 생각했다·
일진에 학폭을 해 놓고도 뻔뻔하게 개과천선 한 척 하며 음악을 하겠다고 기어오는 인간· 자신은 아무런 잘못을 하지 않았다고 확신하는 전형적인 인간쓰레기·
그것이 그가 보는 ‘하수연’이었다·
게다가 이전에 ‘밴드 파이오니어’ 건으로 하차까지 했으니 억하심정이 쌓여 있을 게 분명했다· 그러니 반응할 수 밖에 없는데·
“이전에도 한번 걸려서 하차하셔놓고· 이번엔 안 걸릴 거라고 생각하셨나요?”
그는 그런 생각을 하며 한번 더 수연을 흔들었다· 욕설이든 부인이든 어떤 식으로든· 청소년기에 남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 ‘일진’의 반응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침묵이었다· 우진이 생각지도 못했던 경우였기에 그의 표정이 점점 굳어져갔다·
그렇다·
우진은 평범한 상상력을 가진 평범한 인간이기에···‘하수연’에게 있어 한가지 중요한 점을 간과했다· 그것은 바로···
지금의 ‘하수연’은 이전의 ‘하수연’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이 새끼였나?’
처음에 들었을 때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흘려넘겼다· 그냥 헛소리 하는구나 싶었지만 두 번째 이야기에 명전은 확신했다· 이 놈이 밴드 파이오니어 때 심사위원에게 이야기를 흘린 놈이었다고·
그 때 반응하려던 입과 표정을 잡아챈 것은 ‘서명전’의 나이에 쌓인 경험과 직관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수연’이라면 무조건 반응했으리라·
‘지금 나를 떠보고 있다·’
머릿속을 지나가는 벼락과도 같은 깨달음· 굳이 이 시점 이 순간에 자신에게 이런 말을 꺼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리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저런 말을 하는 이유란?
명전은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여 상대에게 반응하지 않으려 노력했다· 상대가 어떤 말을 하던 간에·
‘이게 아닌데·’
우진은 생각을 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렇기에 협박이 언제 가장 잘 통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협박은 상대가 자신의 무기를 두려워 할 때 성립된다· 총을 들이밀고 “쏜다!” 라고 할 때· 칼을 들이밀고 “찌른다!” 라고 할 때· 그 때 협박당하는 사람은 앞으로 일어날 일을 두고 두려워하고 협박하는 사람은 그 두려움을 통해 원하는 것을 얻게 된다·
이는 즉 협박을 하는 사람은 역설적으로 무기를 사용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다· 쏘거나 찌른 다음은 얻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그리고 그렇기에 협박을 하는 사람에게 제일 꺼려지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다·
지금이 바로 그 상황이었다· 우진은 이미 ‘나는 네가 한 짓을 알고 있다’ 라는 무기를 들이밀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상대의 반응·
이 때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터트려야 하나?
윤동욱 피디라면 “오히려 좋다!”를 외치며 그룹 사운드를 끌고 갈 수도 있었다· 시청률에 미친 사람이니까· 게다가 ‘기권’이나 ‘일부러 패배’ 같은 게 아니라면 무조건 다른 팀을 붙이겠지·
그럼 아무런 의미가 없다· 중요한 건 울림 스톤즈가 상위 라운드에 진출하는 것· 정의구현 같은 건 우진이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터트리지 않는다?
그게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차후에 써먹을 수도 있으니까·
‘그럼 우리는 어떻게 쟤들을 이기고 올라가야 하지?’
그 순간 우진의 머릿속에는 그 생각이 불어닥쳤다· 그도 잘 알았다· 자신들의 실력이 그룹 사운드에 견줄 수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믿었다· 상대를 흔들고 기권승이나 고의패배를 노려 다음 라운드에 올라가겠다고·
애초에 그렇게 판을 짜 왔다· 패자부활전 이전에 학폭을 터트리지 않았던 것도 대결 직전에야 학폭을 이야기한 것도···다 이 타이밍을 위해서였다· 상대를 흔들어 확실하게 라운드를 승리할 수 있는 타이밍·
하지만 이렇게 되면···어떻게 해야 하나·
우진은 갑자기 눈 앞의 시야가 넓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나에만 몰두하고 있던 감각이 확장되면서 끝없이 넓어지는 듯한 느낌·
“정우진 씨?”
“아 아 네···”
MC의 말이 들려왔다·
“그룹 사운드를 지목한 것에 대한 각오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어···”
우진은 눈 앞을 바라보았다· 넓은 무대· 그리고 그들을 내려보고 있는 다른 밴드들· 어둠 속에 가려진 관중들· 아리송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상대 밴드와 너 지금 뭐하는 거냐는 느낌으로 그를 쳐다보는 울림 스톤즈의 멤버들·
따지고 보면 허술한 계획이었다· ‘상대는 자신의 말에 반응한다’ 는 전제를 깔고 간 계획· 하지만 우진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왜 그랬을까?
어째서 상대가 자신의 계획에 무조건 걸릴 것이라고 생각했을까?
“열심히···하겠습니다·”
우진은 그 물음에 당장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 대신 그는 어떻게든 목 안의 무엇인가를 끄집어내려 노력했다· 하지만 결국 꺼내든 말은 그 두 단어 밖에 없었다· 열심히 하겠다·
“그렇습니다! 패자부활전에서 이길 것이라면! 우승 가능성을 입증하기 위해 최강의 상대를 선택하겠다는 그 포부!”
그의 선택을 포장해주는 듯한 MC의 멘트· 이후 돌아가는 룰렛· 우진은 마지막으로 기도했다· 자신들이 유리한 쪽의 곡이 선정되길 바라면서·
“선정된 곡은···바로 이 곡입니다!!”
하지만 룰렛에서 나온 곡은 정 반대였다· 197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사이케델릭 락 곡· 우진도 들어보긴 했지만 특유의 감성을 잘 살릴 자신은 없는 곡· 쳐다보지 않아도 밴드원들이 탄식하는 것이 느껴졌다·
우진은 고개를 든 채로 곁눈질로 수연을 바라보았다· 수연 특유의 무감정한 표정·
하지만 그에게 그 표정은 조소로밖에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