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67Chapter 167
사뭇 진지한 얼굴로 빗자루를 휘두르고 있는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번의 동작에 나의 초식들을 떠올리듯 곰곰이 생각하고 토론하는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을 흐뭇하게 바라본 객주가 나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
“아무튼 대단한 무공을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이들도 모두 감사하고 있을 겁니다·”
띠링·
[화향루 꼬마 직원 ‘아명’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화향루 객주 ‘하진’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화향루 꼬마 직원 ‘초야’에게 선행을 베푸셨습니다·]
[화향루 꼬마 직원···
기분에 따라서 일을 저질렀을 뿐인데 어쩌다 보니 객주를 포함한 화향루의 아이들에게 선행을 베푼 상황이 되었다·
한 번 나에게 감사를 표했던 아명도 선행에 대한 중첩이 된 것인지 임무의 마무리까지 남은 선행의 횟수는 총 1회· 하지만 지금 장막 뒤의 감시자가 나에게 주었던 임무보다 더 신경 쓰이는 부분이 있었다·
“저 괜찮으면 제 방의 안내를 부탁해도 될까요? 내공을 쓰니 조금 피곤해져서요·”
“아아! 제가 눈치 없이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군요! 곧장 방으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시죠·”
일단 개인적인 시간이 필요했다· 정확히는 다시 도산검림의 비고로 돌아가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었다·
나는 객주를 따라 화향루의 가장 높은 층까지 올랐다· 그리고 최상층에 있던 고급스러운 문이 열리자 한 사람이 사용하기에는 과하게 넓은 방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곳입니다· 필요한 것이 있으시다면 언제든 여기에 있는 종을 두 번 울려주시지요· 그럼 바로 달려오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 참 조금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오늘 밤에는 푹 쉬고 싶으니 아무도 방을 찾아오지 않았으면 합니다·”
“오호··· 내공을 사용했으니 운기조식이 필요할 수 있을 것 같군요· 알겠습니다· 그럼 내일 아침에 뵙겠습니다·”
사실 마력을 그렇게 허투루 사용한 것이 아니라 운기가 필요한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적당한 오해를 해주니 굳이 정정하지는 않기로 했다·
“그럼·”
꾸벅·
객주가 뒷걸음으로 방을 나서며 문을 닿자마자 나는 곧장 방에 있던 넓은 나무 창문을 조심스레 열었다·
해가 지고 완전한 어둠이 깔린 늦은 밤· 다행히도 한 번 다녀왔던 길이라 다시 도산검림의 비고를 찾아가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
“어우··· 뭔가 추워지는 것 같지 않나?”
“해가 떨어져서 그런가?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나도 좀 추운 것 같구먼·”
해가 지고 어둑어둑해진 밤에 비고를 찾아오니 여전히 장기를 두며 사담을 나누고 있는 민머리의 무사와 마른 체형의 무사가 보였다·
문지기들도 때에 맞춰 교대가 이루어지는 것 같았지만 내가 찾아오는 이 시간이 저 두 무사가 비고를 지키는 시간인 것 같았다·
“그나저나 자네도 무공 좀 할 줄 아나?”
“물론이지· 뭣도 없었으면 내가 무사로 취직을 어떻게 했겠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왕년에 ‘비룡각’이라 불리던 각법의 고수였···
나는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들었다· 무공의 성취를 이야기하며 허세를 부리고 있었지만 나의 시선에서는 그저 운동을 좀 해본 아저씨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역시 그렇게 강한 무인들이 아니야·’
그들이 무공을 제대로 수련한 강자들이었다면 내가 스멀스멀 방출하는 마력에 ‘춥다’ 정도의 반응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웬 놈이냐!’ 호통치며 내가 있는 곳에 무기를 던졌겠지·
저벅· 저벅·
그래서 나는 그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에는 조용히 숨어 담장을 넘었지만 ‘량’이 전하고자 하는 말의 의미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정석적인 방법이 필요했다·
“크큭· 자네 허풍도 적당히 치게· 자네 별호에 룡이 들어갔으면 나는 왕이나 신이게?”
“아니 진짜라니까 그러네? 내가 학관에 다닐 때만 해도 정말···”
“안녕하세요· 길 좀 여쭙겠습니다·”
“우와아악!!!”
나의 인사에 화들짝 놀란 마른 근육의 무인이 장기판을 뒤집어엎으며 튕겨지듯 물러섰다·
“웬 놈이냐!”
그나마 침착함을 유지한 민머리의 무인· 그가 들고 있던 창을 내세우며 나를 경계했고 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슬며시 미소를 지었다·
“아 제가 놀라게 했다면 죄송합니다· 그럴 의도는 없었습니다·”
“웬 놈이냐고 물었다!”
“그냥 과객입니다· 작은 객잔에 머물고 있는 사람인데 밤 산책을 나왔다가 길을 잃어서요·”
두 사람은 길을 잃었다는 나의 설명에 놀란 가슴을 부여잡으며 나를 바라봤다·
의심이 풀리지 않은 모습· 이제 보니 근무 시간에 장기를 두던 사람들 치고는 자신의 본분에 꽤 열의를 다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두 분은 왜 여기에 계시는 겁니까?”
나의 물음에 두 사람의 시선이 교차한다· 질문을 들어 보니 내가 외지인이라는 사실을 어렴풋이 파악한 모양·
“으음· 진짠 거 같은데?”
“아니 그럴 수가 있나?”
“그럴 수 있지 않겠나? 그냥 길을 잃었다지 않은가·”
그들은 내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한참을 떠들었다· 마치 와서는 안 될 곳에 사람이 들어왔다는 듯한 그들의 반응· 그리고 나는 비고에 완전히 처음 와봤다는 뉘앙스로 조용히 운을 띄웠다·
“제가 이곳에 있는 게 이상합니까?”
“으음· 엄청 이상한 일은 아니네· 그런데 흔한 일도 아니라서···”
민머리 무인이 나를 보며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 나를 위아래로 훑는 것을 보니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 눈치였다·
“혹시··· 혹시나 말일세··· 자네 이 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보이나?”
상황에 따라 굉장히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개를 끄덕였고 두 무인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당황하며 대화를 이어갔다·
“꽤 으리으리한 건물이 있지 않습니까· 누구 높으신 분이라도 사는 겁니까?”
“누가 사는 곳은 아니라네· 하지만 그렇다고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장소도 아니지·”
“그렇군요·”
나는 고개를 삐죽 내밀어 비고의 입구를 살폈다· 충분히 사람이 호기심에 해볼 수 있는 행동이었으나 그 모습을 본 마른 무인이 슬그머니 나를 제지하며 말을 덧붙였다·
“어허 발 들일 생각일랑 하지 마시게·”
“아 죄송합니다· 그저 궁금해서·”
“자네를 나무라는 게 아닐세· 그저 자네의 안전을 위해서 한 말이지· 이 안에는 천하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합작하여 만든 진법이 설치되어 있네· 웬만한 고수도 함부로 들어갔다가는 길을 잃고 아사하기 십상이야·”
두 사람은 나를 의심하기 보다는 오랜만에 나타난 외지인이 혹여나 사고가 나지 않을까 걱정하며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군요· 그럼 전혀 못 들어가는 건가요?”
“못 들어간다네· 그리고 우리가 설명을 제대로 안 했는데 이곳은 황제 폐하가 오셔도 마음대로 출입할 수 없는 장소야· 만약 들어가고 싶다면 도산검림의 허가가 필요하지·”
“도산검림이라면?”
“이 건물을 세운 조직의 이름일세· 하지만 아무리 궁금해도 그냥 참으시게· 도산검림은 하나의 국가와 다를 바가 없는 큰 조직이고 그들의 규칙을 위배한다는 건 만인을 적으로 돌린다는 의미니까 말일세·”
그의 말을 들으며 나는 ‘량’의 행보를 차근차근 떠올렸다·
스스로 세상을 돌아보고 그 세상의 부조리를 깨달았던 남자· 그리고 그가 부조리를 깨달았을 때 처음 했던 행동은 현재의 세상을 적으로 돌리는 것이었다·
“두 분 미안합니다·”
그래서 나는 두 사람에게 짧은 사과를 했다· 갑작스러운 나의 모습에 두 사람이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것도 잠시였다·
“허억···!”
“우욱!”
성좌의 격이 방출되자 두 무사가 순간적인 압박감을 못 이겨 눈을 까뒤집는다·
눈빛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절할 정도의 격차· 조금 전까지만 해도 대화를 나누던 사람을 기절시키려니 좀 찝찝한 감이 있었지만 비고의 입구를 통과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과정이었다·
“정면으로 들어가야 하는 거였군·”
량은 당시의 세상에 정면으로 맞섰다· 전쟁과 욕망으로 점철된 무림을 뒤바꾸기 위해 검을 들었다·
처음으로 행한 것이 자신에게 걸린 족쇄를 풀어내는 일· 그렇게 나는 ‘비고’라는 세상에 발을 들이기 위해 ‘문지기’라는 족쇄를 풀어냈다·
비고의 대문에 걸린 ‘도산검림’이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당시의 모든 무인들이 ‘량’이라는 한 사람을 잡기 위해 만들어 낸 가장 거대하면서도 위대한 조직·
저벅·
문을 통과하자 진법이 펼쳐지기 시작하며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다· ‘량’이 걸었던 그 길은 지금 내가 걷는 이 진법 내부보다 험난했다면 험난했지 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는 다른 곳에 시선을 두지 않았다·’
그저 전쟁이 끝나기만을 바라며 그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점점 강해지는 자신에게 취해 살인귀가 되었을 수도 있고 까딱하다가는 목표를 잃을 수 있는 상황에서도 그는 정면으로만 걸었다·
그랬기에 나도 그의 신념을 따라 앞으로만 걸었다·
그저 눈을 감았고 고개를 돌리지도 않았다·
상태 이상에 걸리고 그것을 극복했다는 메시지들이 떠올랐겠지만 나는 그런 것에 신경 쓰지 않으며 멈추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그리고 이내·
툭·
발에 무언가 걸리는 느낌이 들었고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자신을 막아서려던 시련과 욕망 그리고 모든 고통의 끝에서 그가 얻을 수 있었던 깨달음· 그 깨달음의 정수가 이 비고 안에 잠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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