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77Chapter 177
밤이 깊었다· 하지만 연금술사의 도시는 기존에 내가 경험했던 중세 무림과는 달리 모든 거리가 은은한 빛을 머금고 있었다·
“야경이 나쁘지 않네·”
고층 건물 위에서 바라본 연금술사의 도시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물론 서울은 이곳보다 훨씬 웅장한 건축물들이 줄줄이 늘어져 있는 도시였다· 하지만 주위가 어두웠고 그렇다 보니 나름 당시의 야경과 엇비슷한 광경이 연출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야경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마땅한 취미생활이 없던 내가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오락거리였달까·
처음 대기업 게임사에 입사하고 완전히 신입이던 시절에는 이러다 업무에 파묻혀 죽지는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많은 업무에 시달리고는 했다·
이전 직원이 싸질러두고 간 업무를 밤을 새워 처리했다· 애초에 사회성이 좀 떨어지다 보니 회사의 직원들을 대하는 것에 마땅한 노하우도 없었다·
그렇다고 혼자서 취미나 여가를 즐길 줄도 모르는 미련한 인생· 미친 소리 같겠지만 야근은 내가 즐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유희였었다·
“이제는 그럴 일은 없을 것 같지만·”
최소한의 근무자가 회사에 남아 만들어 내는 타자기의 백색소음· 오늘 일을 마무리 짓지 못하면 내일 상사에게 한소리를 들을 것이 뻔한 근무자들은 일을 하는 내내 카페인 음료를 입에 달고 살았다·
물론 그 도핑의 여파로 다음날 지각을 하는 불상사가 일어나기도 한다· 그것이 도핑과 악바리로 눈꺼풀을 달랬던 자의 최후·
하지만 당연하게도 쉬지 않고 한 곳만 바라보고 달렸던 그들은 결국 자신의 역사에 위대한 한 획을 긋는데 성공한다·
‘인간 승리랄까·’
그들의 목적이 각자가 달랐다· 그것이 돈일 수도 있었고 진급일 수도 있었다· 어떠한 스펙과 명예 혹은 훨씬 더 거창한 꿈이 되었을지도 모르는 그들의 노력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노력과 결과들을 타인에게 강제로 빼앗겼다·
“다시 생각해도 참 엿 같군·”
간혹 몇몇 사람들은 노력은 그들을 시기하는 자들에 의해 곡해되기도 한다·
돈에 환장한 놈·
일밖에 모르는 놈·
인생 재미없게 사는 놈·
병나면 네가 손해라는 말과 노력해 봐야 남 돈 벌어 주는 거라는 사람들· 나의 가능성을 함부로 재단하는 그들도 역겨운 건 마찬가지였지만 그들도 강제로 사람들의 노력을 종료 시키지는 않았다·
‘이 탑이 생긴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 세상이 뒤집어지고 사람들이 죽고 모두가 삶을 빼앗긴 그 이유를· 그리고 감히 넘볼 자가 없을 정도로 성장하여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맞서기로 했다· 탑을 오르고 결국 정상에 도착하여 이 세상을 창조한 절대자에게 이 시련의 목적을 묻고 싶었다·
하지만 엔리코의 방식은 나와 조금 그 결이 다를 뿐 그 목적은 나와 비슷한 면이 있었다·
“나는 도전이었고 녀석은 보호였지·”
내가 탑을 올라 성좌들이 나의 사람들을 건드리지 못하게 하는 것과 비슷하게 그는 성좌의 힘을 추출해 탑으로부터 자신의 세상을 독립시키려 했다·
밤에 켜진 불빛은 누군가가 그곳에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실재하는 빛 안에서 피어오르는 또 다른 희망이라는 빛· 그리고 그는 그것을 잃지 않기 위해 성좌를 배신한 것이다·
“흠·”
나는 건물에서 내려와 인파가 몰려드는 야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멀리서 보는 감상과 지척에서 피부로 느끼는 세상은 얼핏 봤을 때는 흡사한 느낌이었지만 그 온도의 깊이가 확실히 남달랐다·
웅성웅성-
마차를 개조해 만든 듯한 노점들· 그리고 그곳에서 물건을 사고파는 사람들과 다양한 오락을 즐기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온다·
아이들이 짧은 꼬치구이를 들고 이리저리 쏘다닌다·
신혼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어린 자녀에게 선물할 인형을 구하기 위해 상품을 주는 게임을 찾아다닌다·
멀리서 보이는 과녁과 활을 쏘는 사람들· 아마 저 근처를 기웃거리다 보면 추첨으로 화살 5발 정도는 지급받을 수 있으리라·
‘평화롭군·’
허나 내가 성좌를 죽이거나 성좌를 구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져 버릴 평화였다·
빛을 잃은 상인들은 물건을 팔지 못할 것이고 어렵게 구한 화살 5발을 낭비해 땀을 삐질삐질 흘리던 젊은 남편은 야간의 조명 아래에서 비치는 가족들의 미소를 볼 수 없을 것이다·
마력으로 가동하던 모든 시설이 멈춘다· 물론 그런 것이 없던 시절에도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대로 잘 살아왔겠지만 평생 없었던 것과 있다가 사라지는 것은 감히 비교가 불가능할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우리도 스마트폰이 없던 시대를 살았다·
인터넷이 제대로 보급되지 않았던 시대를 살았었고 먼 과거에는 전기가 없던 시대도 살았다·
살려면 살아진다· 하지만 그 불편함에서 오는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 되어야 하지 타인의 침범에 의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됐다·
“미치겠군·”
나는 탑을 올라야 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려서는 안 됐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 또한 시련에 맞서며 어떤 희생을 치르고 있는지도 알 수 없는 마당에 나의 시간을 지체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배반하는 꼴이 될지도 몰랐다·
하지만 내가 나의 목적만을 가지고 이 사람들의 평화를 박살낸다면?
“···”
그렇게 된다면 나 또한 누군가의 멸망이 될 뿐이었다· 나의 세상을 무너뜨린 성좌들과 별다를 바가 없는 이기적인 그런 존재·
엔리코가 ‘너의 목적을 방해하겠다’고 말한 그 순간 헤라클레스를 불러들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건 정당방위였다· 세상을 어깨에 짊어진 지도자가 보여야 할 마땅한 반응· 물론 정보 수집능력은 다소 아쉬운 부분이 있었으나 중요한 건 지금도 그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생각보다 늦었네·’
야시장에 들어온 이후 나에게 따라붙은 작은 생명체들에게서 마력이 느껴졌다·
구석에서 낮잠을 자는 떠돌이 개부터 시작해 사람들이 던져주는 작은 빵 부스러기는 쪼아 먹는 소형 조류들까지·
‘그대로 따라와라·’
나는 한참 동안 야시장을 구경하며 걷고 날아다니는 CCTV들의 시선을 끌어모았다· 그리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곧장 엔리카가 거주하는 산의 협곡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
벌컥·
“으앗 깜짝이야!”
내가 비밀 거처의 문을 활짝 열며 들어오자 약제들을 조재하는데 집중하던 엔리카가 기겁을 하며 나를 돌아봤다·
“나 왔다·”
“뭐야 그 ‘아빠 왔다’ 같은 말투는··· 아니 그 전에···”
그녀가 잠시 미간을 찡그리더니 뭔가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을 하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떻게 들어왔어?”
“어떻게 들어오긴· 문 열고 들어왔지·”
“아니 내가 하는 말이 그게 아니라는 거 잘 알잖아· 내가 열어 준 것도 아닌데 결계는 어떻게 열었냐고·”
사실 나는 결계가 보이지도 않는다· 그러니 어떻게 열고 들어왔는지 묻는다면 내가 할 수 있는 답은 한정적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바닥에 굴러다니던 짤막한 잔가지 하나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는 잠시 집중하는 척을 한 뒤 나만 익숙한 주문 하나를 영창했다·
“알로호모라·”
“···무슨 말이야?”
“자물쇠 따는 주문· 생각해 보니 마법사들이 그런 생활 주문을 쓰는 걸 본 적이 없네·”
그녀가 똥 씹은 표정을 지으며 다시 포션 조재에 집중한다· 마피아 대부 스승께서 해리포터는 안 가르쳤었나 보다·
나는 그녀를 잠시 동안 빤히 바라봤다·
엔리코라는 화신과 남매라는 것을 강조라도 하듯 전체적인 외모의 조형이 정말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엔리코를 만났어·”
움찔·
나의 돌직구에 그녀의 눈썹이 순간 꿈틀댔다· 그리고는 마치 들어서는 안 될 말을 들은 것처럼 얼굴이 잔뜩 굳은 상태에서 그녀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그래서?”
차가웠다·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그녀의 얼굴에 공존하는 다양한 감정이 보였다·
긴장 고민 분노 갈등·
하지만 혼란 그 자체라 말해도 손색이 없는 그 표정 안에서 내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걱정’이었다·
“걱정하지 마· 해치지 않았으니까·”
“휴우···”
동생을 생각하는 누나의 마음· 내가 탑으로부터 어떤 임무를 받았는지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언급한 적은 없었지만 내가 성좌인 이상 그 내용을 어느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엔리코와의 대화를 통해 이 세계를 방문한 성좌가 나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었다·
‘그때 상황이 지금하고 크게 다르지 않았다면 그놈들도 비슷한 임무를 받았었겠지·’
성좌들의 행보는 나와 별반 다를 것이 없었을 것이다· 임무를 받고 연금술사의 도시를 탐방하고 성좌를 구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하지만 그들 중에는 엔리코를 공격하겠다고 결심한 자들도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성좌를 구하기 전에 그를 배신한 머리를 깨부수는 건 전략적으로 나쁘지 않은 선택일 테니까·
“고마워· 나는 스승님을 구하고 싶은 거지 동생 녀석을 해치고 싶은 건 아니었으니까·”
사실 그녀의 말에는 상당한 오류가 있었다·
“그게 가능할 거라고 생각해?”
“···”
“네 스승이라는 그 성좌가 자신을 봉인하고 산업 혁명의 배터리 따위로 마력을 뽑아 먹은 배신자를 과연 살려 둘까?”
‘이세계의 대부’라는 이명이 진정 마피아라는 집단을 운영하는 그의 방식에서 온 것이라면 엔리코는 즉결 처형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이 아니라도 최소한 인격적인 존재로의 취급은 아주 물 건너갔겠지·
그렇기에 나는 지금 이 과정이 필요했다· 이 이야기의 전말을 모른 채 타인의 손으로 격변하는 것이 아닌 그 세상 사람들의 손으로 만들어지는 결말을 위해·
우웅-
우웅-
그 순간 결계 밖에서 마력이 공명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그것을 느낀 것처럼 엔리카도 마력의 공명을 느꼈는지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진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설마 꼬리 밟힌 거야?”
“정확히는 달고 왔다는 게 맞는 표현이긴 하지· 으음··· 근데 생각보다 많이 딸려왔네·”
마력의 수치를 가늠하니 내가 결계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패밀리어가 헤라클레스를 호출하기 시작한 것 같았다·
갑작스럽게 노출된 그녀의 마지막 은신처· 나를 보는 그녀의 눈빛이 배신을 당했다는 분노와 절망감에 순식간에 휩싸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믿긴 어렵겠지만 너는 죽을 일 없어· 내가 그렇게 안 둘 거니까·”
“···뭐?”
“마중이나 나가 보자고· 엔리코를 직접 만나게 해 줄 테니· 오랜만에 가족 상봉이나 가자고·”
그렇게 나는 그녀를 등진 채 마법 병기들이 득실거리는 외부로 유유히 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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