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93Chapter 193
지금의 천월문은 제대로 굴러간다고 말하기에는 하자가 있었지만 모든 무인들에게 문제가 있다고 하기에는 애매한 상황이었다·
“혹시··· 따로 무공을 수련하던 중이셨습니까?”
내가 남궁명에게 해남삼십육검을 맛보여주던 것을 언제부턴가 지켜본 무인 셋·
나이가 약 30대 중후반쯤 되어 보이는 그들 중 가장 연장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잔뜩 긴장한 채 나에게 말을 걸어오고 있었다·
“수련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군요·”
“네? 그럼 조금 전에 그건···?”
“궁금해서 조금 시험해봤습니다· 이 친구가 무공에 소질이 있는 것 같아서 이대로 두기는 아까웠거든요·”
이제는 바닥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던 남궁명이 고개를 들며 나를 바라본다·
나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고 일단 멋진 무공을 펼치는 모습에 반해서 시키는 것을 따라 하긴 했지만 자신이 몸을 움직여야 했던 이유를 들은 건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저는 지금의 천월문이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천하제일인의 문파라는 명성이 매력적인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모든 무인이 그 허명을 쫓아 이곳에 왔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런 사람들에게도 진짜 무공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남궁명을 포함한 네 사람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나의 말을 경청했다·
“당신들은 어떻습니까?”
그들도 결국에는 어떠한 목적이 있어서 천월문이라는 문파에 입문하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대부분의 이유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과 큰 차이를 가지진 않을 것이다·
“당신들도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 강해지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 아닙니까?”
“···맞습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
처음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무인이 무언가가 떠오르는 듯 잠시 뜸을 들이더니 침음을 흘린다·
사람들에게는 누구에게나 그럴싸한 사연이 있다· 특히 힘을 필요로 하는 자들일수록 그 사연은 어둡고 잔인한 경우가 많았으며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네 사람 또한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저는··· 저는 가족을 지키기 위한 힘이 필요합니다···”
“계속 말씀하세요·”
“제게는 마누라와 이제 다섯 살이 된 어린 딸이 하나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빚쟁이에게 붙잡혀 있는 상황이지요·”
그의 눈이 슬픔으로 물들었다· 아니··· 그것은 슬픔보다 더 깊은 감정 절망을 넘어 누군가에 대한 증오와 원망이 버무려진 저주에 가까운 원념이었다·
“제 잘못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돈을 빌리지 않았거든요· 그저 평소와 같이 대장간에서 농기구를 만들고 있었는데 몇몇 무인들이 저를 찾아와 돈을 내놓으라고 하더군요·”
“아무 이유도 없이 강도를 당한 겁니까?”
“그랬다면 관에 신고라도 해봤을 테니 억울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제게는 형님이 하나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지랄 맞았던 인간인데 도박에 빠져 허송세월을 보내던 그 새끼가 낭인들에게 돈을 빌리고 잠적한 것이지요·”
무림은 현대와는 달리 빈약하기 그지없는 법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잠적한 혈육은 시간이 지나 사망한 사람으로 처리가 되었다· 그리고 그 빚은 고스란히 그걸 갚을 수 있는 혈육들에게로 옮겨졌다·
“문제는 그 상황이 불법적인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도대체 법이라는 게 왜 그딴 식으로 되어 처먹은 것인지 그저 피가 이어졌다는 이유만으로 놈이 갚아야 할 돈이 고스란히 저에게 떠넘겨진 상태입니다·”
당시의 상황이 떠오르는지 그의 눈이 금방이라도 울음이 터질 것처럼 글썽거린다·
자신이 빌리지도 않은 책임을 떠안게 되어 아내와 딸을 낭인들에게 저당잡힌 남자는 어떻게든 힘을 기르기 위해 천월문의 대문을 두드렸다·
“처음에는 돈을 갚아보려 했지만 그 액수가 대장일로 벌어들일 수 있는 돈을 아득히 넘었습니다· 제가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떠오르질 않아서···”
힘을 키워 어떻게든 낭인들에게서 가족을 데려오고자 했던 것·
나이도 많고 무공도 모르는 일반인을 문도로 받아주는 문파는 없었다· 전력이 되지도 않고 문파에 이익을 줄 가능성이 없는 사람을 받아봐야 좋을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천월문은 그렇지 않았다·
그저 입문을 원하는 자가 있다면 받아주는 곳· 그런 조건 없는 입문 과정 때문에 거의 동네 놀이터 같은 장소가 되어 버렸지만 누군가에게는 어떻게든 살기 위해 발버둥 칠만한 마지막 동아줄이 되었던 것이다·
“제게는 힘이 필요합니다···”
“저 또한···”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남은 두 사람도 곧이어 각자의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다·
누군가를 지키기 위해 힘이 필요한 자들· 누구보다 절실했던 그들이었기에 문득 가능성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게 그런 말을 했다는 건 무공을 배우고 싶다는 의미겠죠?”
“초면에 염치가 없겠지만 그렇습니다· 혹시 저희에게 조금이라도 검을 가르쳐 주실 수 있습니까?”
“음···”
나는 그들을 위아래로 천천히 살폈다·
골격이 좋은 사람들은 아니다· 그나마 대장일을 했다는 남자는 나름대로 탄탄한 몸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또한 월등히 뛰어난 신체 조건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다·
‘나이가 문젠가·’
신체의 전성기라고 부르기에는 다소 아쉬운 삼십 대 중후반의 나이· 하지만 배움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이지 열악한 환경이나 자잘한 조건 따위가 아니었다·
“그럼 해봅시다·”
“···네?”
“제가 한 번 알려드릴 테니 배워 보시라고요·”
그들의 반응을 보니 내가 거절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모양이었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지만 무림에서의 무공이란 신중히 나누는 것이며 때로는 천금을 들여도 내어 줄 수 없는 보물이기에 이렇게 쉽게 승낙을 받을 줄 몰랐던 것이다·
“싫어요?”
“아 아뇨! 좋습니다! 아니 감사합니다! 정말 정말···!”
나보다 열 살 쯤은 많이 먹은 형님들이 고개를 거듭 조아리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이런 어른들이 고개를 숙이니 좀 마음은 찝찝하지만···’
결국 나와 그들의 관계는 스승과 제자 사이가 될 것· 지금부터 내가 저자세로 나가면 그들을 내 마음대로 가르치기에 어려움이 있을지도 몰랐다·
“무공 수련은 내일부터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내일은 천월문에서 하는 수련은 빼고 진행한다고 알고 있으면 되겠습니까?”
“아뇨· 일단 다들 출석은 하세요· 일정은 제가 알아서 짤 테니까요·”
어차피 무인들 중에서 화영에게 인정받을 만한 인재를 찾는 게 나의 목적이다·
“저는 김시인입니다· 앞으로 부담이 없으시다면 스승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나의 말에 대장일을 한다던 남자를 필두로 두 사람이 자신을 소개했다·
“저는 방삼입니다·”
“장모걸입니다·”
“공각입니다· 앞으로 말씀은 편하게 하시죠· 저희가 제자인데 말을 높이시는 건 저희도 불편합니다·”
테스트를 볼 무인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법· 이참에 제대로 시작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
“넷 다 모였나?”
“뭐부터 해야 합니까?”
다음 날 천월문의 검술 수련 시간이 다가오자 네 사람이 나의 옆으로 옹기종기 모여들었다·
“일단은 천월문의 검술 수련을 따라갈 거야·”
“···그건 시간이 좀 아깝지 않겠습니까? 제대로 검을 휘두르는 게 아니라는 걸 스승님도 아시지 않으십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천월문도들이 하고 있는 행위는 보여주기 식의 허례허식일 뿐 제대로 된 수련이 아니었으니 저걸 그대로 따라가 봐야 남는 것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그들의 스케줄이 개떡 같다는 것이지 ‘기초’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은 결코 아니었다·
“제대로 하면 의미가 있어· 우선 방삼이 이 중에서는 제일 빨리 수련에 들어가지?”
“네· 2조입니다·”
“일단 수련에 들어가기 전에 내가 자세를 잡아줄 게· 그리고 검을 휘두를 때 내가 알려 준 자세를 최대한 유지하도록 노력해 봐· 그리고 그건 남궁명 너도 마찬가지고·”
나는 천월문도들이 모이기 전에 네 사람을 구석에 세워 놓고 천천히 기초적인 자세를 알려주기 시작했다·
‘확실히 어설프군·’
검을 잡아본 티가 거의 나지 않는 몸이다· 움직임도 둔하고 검의 예리함은 온데간데없었다·
하지만 다행인 것은 천월문의 수련 방식이 습관이 들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어영부영했었기에 그들에게 나쁜 습관이 생기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 다음 2조! 1조와 교대할 수 있도록!
“가 보겠습니다·”
“내가 알려 준 거 계속 신경 쓰면서 움직여·”
“명심하겠습니다·”
방삼이 연무장으로 움직이자 뒤에 있던 세 사람이 눈에 들어온다·
“지금부터 남은 셋도 검을 휘두를 거야· 쉬는 시간은 네 개의 조가 교대를 했을 때 한 차례 쉰다·”
그들은 나의 말에 토를 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가 일러준 자리에 가서 자리를 잡을 뿐· 그리고 검을 잡고 움직인 것은 셋 뿐만이 아니었다·
“동작은 반복· 아까 휘둘렀던 것보다 조금씩 더 정확한 방식으로 검을 휘두른다고 생각해라· 내가 틀리면 계속 잡아줄 테니까 쉬지 말고 따라와·”
-하압!
-하압!
그렇게 시작된 천월문도들의 검술 수련·
“기합 소리는 차라리 내지 마· 검이 아닌 다른 것에 집중하다 보면 몰입에 방해가 될 수 있으니까·”
나는 세 사람의 정면에 서서 수만 번을 휘둘렀던 가장 정확한 내려치기를 선보였다·
“세 사람 모두 아직 까지는 자세가 나쁘지 않아· 하지만 똑같은 자세를 반복할수록 몸은 지친다· 허리를 곧게 펴고 하체에 힘을 줘· 검을 휘두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균형이야·”
부웅! 부웅!
“힘이 들어도 등에 긴장이 풀리면 안 돼· 검과 검이 격돌했을 때 그 충격을 첫 번째로 버텨야 하는 건 상체니까·”
부우웅!
2조의 수련 시간이 끝나고 방삼이 돌아왔다·
“다녀오겠습니다·”
“장모걸· 저기 갔다고 대충하지 말고·”
“여부가 있겠습니까·”
그들은 계속해서 검을 휘둘렀다· 매번 짧은 수련 이후 쉬던 습관 때문에 빠르게 지쳐가는 것 같았지만 실제로 주저앉아 잡담하는 자는 이곳에 없었다·
-저 사람들은 뭐 하는 거지?
-쉬는 시간인데 쉬질 않네· 힘 안 드나?
-저들끼리 열심히 하라고 하게· 우리랑 무슨 상관인가?
-그건 그렇지·
주변에 있는 천월문도들 중 몇몇이 네 사람의 수련을 보며 혀를 차기 시작했다·
그들의 절실함과 노력이 누군가에게는 그저 눈에 띄고 싶어서 발버둥치는 객기 정도로 보이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결국 후회하는 건 네놈들이다·’
노력은 그 어떤 재능이나 젊음보다 위대하다·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져 허우적대는 누군가를 건지기도 하고 이제는 끝이라고 생각된 어느 순간에 꺼지지 않은 촛불이 되어 캄캄하던 미래에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허락한다·
허억···! 허억···!
“멈추지 말고 계속해! 자세만 신경 써! 흐트러지지 않고 다음 일 검을 뻗은 사람이 마지막에 서 있을 수 있는 거야!”
빠르게 달릴 필요 따위는 없었다· 그저 천천히 걷게 되는 순간이 올지라도 방향을 잃지 않고 나아가기만 하면 될 뿐·
그들은 그렇게 검을 휘둘렀다·
연무장에서 몸을 움직이는 그 누구보다 정확한 자세로 열 배 이상의 움직임을 소화하고 있었다·
결코 쉽지 않은 일·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을 해낼수록 단단해지는 것은 자신이었기에 그들은 빠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이를 악물고 수련에 임했다·
-오늘 수련은 여기에서 마친다!
털썩·
털썩·
천월문도들을 가르치던 사부의 외침에 네 사람이 바닥에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가장 낮은 자들이 이루어낸 위대한 한 걸음·
그리고 그날 그들의 간절함에 감화되어 나에게 찾아온 무인이 다섯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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