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2
마계 군단장 렉스는 처음 보는 골렘의 형태에 호기심이 들었다·
지잉- 철컥- 지잉- 철컥-
부산스럽게 움직이며 바닥의 먼지를 빨아들이는 네 발 달린 금속 골렘· 은색의 몸체 곳곳에 보이는 금빛 테두리에서 푸른 불빛이 언뜻 비쳤다·
호오· 예사롭지 않은 광택이야·
‘무기 장식의 재료로 쓰기 좋겠군·’
무기를 수집하는 취미가 있던 그의 눈에 탐욕이 어렸다·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만들어졌는지 동작도 상당히 부드럽다·
‘저런 골렘이 있었나?’
그가 아는 골렘은 바위 암석으로 구성된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것들뿐·
가벼우면서도 날랜 움직임의 골렘이 통통 튀며 청소하고 있었다·
이것도 하나 가져가야겠다·
렉스가 무심코 손을 뻗어 골렘을 쥐려던 순간·
찰싹-
“??”
앞다리 하나를 들어 그의 손을 탁 쳐낸 골렘·
렉스는 순간 벙쪘다·
뭐지?
마치 더러운 오물이라도 묻은 손을 쳐내는 것처럼 찰싹 쳐냈다· 평소 눈치가 부족한 렉스라도 알 수 있는 기묘한 불쾌함·
렉스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분노는 둘째치고····
‘내 손을 쳐내?’
마계의 군단장이라는 위치가 도박으로 거저 따낼 수 있는 자리도 아니고·
당연히 무력에 있어 정상급의 마족만 오를 수 있는 자리다· 간단한 움직임 하나에도 무시 못 할 거력이 담겨 있다·
그뿐인가? 반사신경은 또 어떻고·
손을 뻗던 중 금속 골렘이 반응했을 때 렉스 또한 무의식적으로 재차 반응했었다·
헌데 결과는?
철썩-
렉스는 자신의 손등을 내려다봤다·
튼튼한 붉은 피부가 아주 조금 부어올랐다·
“??”
눈으로 확인했음에도 믿기지 않을 땐?
생각이 멈춘 듯 멍해진다·
그러다 이내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하고 이해하게 되면?
분노하게 된다·
“!!”
렉스의 미간이 굵게 패였다·
나를 쳐?
고작 셀레나 따위의 사역마가?
안 그래도 부족한 인내심이 바닥이 났다·
허나 그의 입에선 진득한 미소가 흘러나왔다·
왜?
대가는 셀레나에게 받아내면 되니까·
이 금속 덩어리의 골렘을 곤죽으로 만들어서 갖고 가면 알아서 설설 기겠지·
그런 생각으로 다시금 팔을 뻗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다르다·
단순히 잡아채려는 것이 아니다·
주먹·
그래· 명확한 파괴의 목적을 지닌 그의 주먹이 골렘에게로 향했다·
건방진 것!
허나·
철썩-
“??”
아까보다 더 부어올랐다·
“어?”
렉스의 입에서 멍청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또다시·
철썩-
“?!”
이··· 이!
철썩-
“!!”
렉스의 눈동자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입술 사이로 매캐한 연기와 불꽃이 새어 나왔다·
후욱· 후욱·
광폭화의 전조 현상·
마계 군단장 렉스의 광폭화?
마왕도 쉽게 못 말린다·
자존심에 금이 간 렉스가 광폭화를 터뜨리려 할 때·
“이곳엔 무슨 일이시죠?”
서큐버스 영역의 주인 셀레나가 등장했다·
금속 재질의 원판을 타고서·
그녀의 주위에는 괴이한 금속 상자가 둥둥 떠다니기도 했다·
“?”
셀레나의 이질적인 모습에 의아해하기도 잠시·
렉스의 입꼬리가 진득하게 올라갔다· 렉스의 세로로 찢어진 동공이 셀레나를 아래위로 훑었다·
“손님 접대가 영 엉망이야?”
“초대한 적도 없는데 무슨····”
“큭큭큭·”
같은 군단장이라도 차이가 명백했다·
반말을 지껄이는 렉스와는 다르게 존댓말을 쓰는 셀레나·
이는 서큐버스라는 종족적 한계 때문에라도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종족명에 ‘퀸’이라는 수식어가 붙었어도 서큐버스는 서큐버스니까·
렉스는 하이오크 계열의 혈통을 진하게 물려받은 고위 마족·
게다가 그는 재능 또한 특출났으니 차이가 나는 것은 당연했다·
“일단 이곳에서 헛짓하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오시죠·”
“크크큭· 그래 일단 들어가지·”
렉스는 금속 골렘을 향해 탐욕의 눈길을 한 번 준 뒤 셀레나를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
“····”
렉스는 그녀의 뒤를 따라 성안을 둘러보았다· 그의 표정이 점차 미묘해졌다·
으음?
“····”
너무나 이질적인 풍경이 그를 당황케 했다·
문지기가 따로 없이 자동으로 열리는 문·
계단도 없이 순식간에 고층으로 데려다주는 승강기·
‘부유 마법?’
아니다· 그가 아는 부유 마법은 결코 이렇게 정교하게 가동되지 않는다· 그의 육체는 마법 저항력이 높아 먹히지도 않았고·
최적화된 조명 습도 온도는 또 어떤가?
거친 마계에서는 존재할 수 없는 쾌적함이 그를 당황하게 했다·
앞서가는 그녀가 뭐라고 중얼거리자 건물 전체가 움직이며 그녀의 지시를 이행하고 명령을 따르는 듯했다·
격벽이 자동으로 열리며 통로를 만들어내고 벽에서 금속 팔이 뻗어 나와 앞서가는 그녀에게 보고서를 전달하고·
살아있는 건물?
오죽하면 그런 생각이 들었을까·
응접실에 앉아 자동으로 내오는 차를 마시기까지 온갖 생각이 들었다·
욕심이 난다·
‘이런 성 하나 있으면 아버지가 부럽지 않겠어·’
그러자 더욱 욕심이 나는 그였다·
그는 미미하게 부어오른 손등을 매만지며 마주 앉은 그녀를 관찰했다·
‘그래· 고작 셀레나의 거처로 쓰기에는 너무나 탐나는 성이야·’
그래· 나보다 서열도 낮은 셀레나가 이런 성에 거주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지·
자신의 영역에 있는 성과 비교하자 그 생각이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응접실의 책상을 부술 듯이 내려쳤다·
콰앙-
“네년의 사역마가 나를 공격했다는 사실은 알고 있나?”
원래는 부서트리려고 내려쳤지만 꿈쩍도 하지 않아 당황했다· 허나 그는 당황함을 숨기고 노발대발 소리쳤다·
“나에 대한 도전이라고 받아들이면 되겠지?”
그래· 평소처럼 두려워해라· 이 몸의 성질머리를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고 있지 않느냐!
허나 그의 예상은 반쯤 들어맞았다·
뭔가 당황한 것 같기는 한데··· 눈치를 보는 게 이쪽이 아닌 다른 쪽을···?
저건?
아까 그의 손을 쳐냈던 골렘?
“아! 죽이면 안 돼요! 저래 보여도 나름 마왕의 직계라서····”
지금 내가 들은 게 맞는 건가?
이 미 미친년이 나를 죽이니 마니 지껄여···?
그는 자신을 거들떠보지도 않는 셀레나를 보자 꼭지가 돌아버렸다·
오냐· 반쯤 죽여놓으면 알아서 기겠지·
골렘? 요새? 알아서 갖다 바칠 터다·
아니다· 이 정도의 모욕이라면 그냥 죽여도····
순식간에 광폭화를 끝마친 그의 주먹이 셀레나의 안면으로 향했다·
아까와는 격이 달랐다·
당연하지· 그의 광폭화는 일반 마족들의 것과 달랐다·
내뻗은 팔을 따라 붉은 기류가 소용돌이친다·
죽어라·
그리 되뇐 순간·
[삐빅! 1급 보호 대상자의 신변에 위험 요소 감지·]
[대상자의 신변을 위협하는 요소를 제거합니다·]
[전투모드 전환]
철컥- 철컥-
기이이잉-
순식간에 덩치를 키우며 몸체에서 기다란 쇳덩이가 돋아난 골렘의 몸체에서 붉은빛이 번쩍였다·
렉스는 시간이 느려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허나 그 속에서도 골렘은 너무도 멀쩡히 움직이는 듯한 착각이···?
콰아앙-
“쿨럭!”
골렘의 가볍게 내지른 금속 팔에 순식간에 튕겨 나간 그가 지면에 착지하기도 전에·
[적을 사살합니다·]
“자 잠···!”
번쩍-
섬광이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우며 의식이 끊겼다·
털썩-
상체가 날아간 렉스는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꺄아아악!”
뒤이은 후폭풍이 응접실을 휩쓸고 뻥 뚫린 벽면에서 바람이 불어왔다·
지이잉- 철컥-
순식간에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금속 로봇·
벽면 또한 통통 튀며 슥삭 움직이더니 순식간에 메꿔졌지만·
황망한 그녀의 정신은 쉬이 돌아오지 않았다·
“어 어···?”
털썩-
셀레나는 허탈함에 다리의 힘이 풀렸다·
마왕의 아들이 살해당했다·
····
허나 그런 생각 잠시·
포격 단 한 방에 마계 군단장을 사살한 존재를 보자
으음···?
····
이건 이것대로····
“하아····”
모르겠다·
이제는 생각을 그만두고 싶었다·
우주황제나 해적왕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가 늘은 그녀였다·
***
시공이 뒤틀린 듯한 차원 통로·
형형색색의 물감을 뿌려 놓은 것처럼 색채의 경계가 흐릿하고 물체의 윤곽이 흐릿해 마치 허공에 녹아들 것만 같은 그곳·
본디 차원 통로는 상당히 위험한 곳이다·
잘못 발을 디뎠다간 차원 미아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고로 차원 통로에서 전투는 꿈도 꾸지 말아야 하건만·
콰아앙- 쾅-
[죽어라·]
-끼에에에에엑!
쿠우웅-
은빛의 거대한 나무줄기가 순식간에 돋아나 거대한 괴수를 벽에 처박았다· 차원 통로의 벽에 처박힌 괴수가 순식간에 증발되었다·
다른 차원에 떨어졌는지 시공간의 미아가 됐는지 존재가 소멸된 것인지 누구도 알 수 없다·
그만큼 위험한 공간·
허나·
-캬아아악!
[큭!]
나무줄기를 소환했던 거인의 뱃가죽이 순식간에 촉수에 꿰뚫리며 은빛의 선혈을 뿌려댔다·
[어디에 신경 쓰나?! 집중해라!]
[녀석을 보조해!]
[당황하지 마라!]
[혼돈 녀석들을 쓸어버려라!]
[제길! 어째서 이 정도까지!]
은빛을 두른 수십의 거인들이 수만의 괴물들에 맞서 격전을 펼치고 있었다·
괴물들은 목숨을 도외시하며 물량으로 달려들고 있었고 세피로트 일족은 진형을 갖춰 간신히 막아내고 있었다·
격전지의 후미진 곳·
그곳에서 하급 뿌리 중 하나인 그녀는 부지런히 괴수 녀석들을 쳐내며 전투를 보조했다·
[조심해!]
어느새 그녀의 뒤를 점한 괴수 하나· 그녀는 황급히 은빛의 불꽃을 일으켜 괴수를 밀어냈다·
그녀도 중상급 뿌리들과 함께 부지런히 괴수들을 밀어내고 죽여댔으나 괴물의 바다는 끝을 보이지 않았다·
[도대체 저 너머에 무엇이 있길래?!]
성혈을 연료 삼아 놈들을 일거에 쓸어버려도 놈들은 끝없이 밀려든다· 중간중간 고등급 괴수가 나타나 목숨을 위협하기도 했다·
어쩌다 이렇게 됐더라?
그저 잔뿌리 하나를 추적했을 뿐인데·
차원 통로를 막고 있던 혼돈 녀석들·
피하기도 전에 광분해서 미친 듯이 달려든 녀석들·
금기나 마찬가지인 차원 통로에서의 전투·
다급히 상급 뿌리에 지원 병력을 요청해 놈들을 정리하려 했으나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엔 규모가 작았던 전투가 점차 커지기 시작했다·
거북 모양의 거대 괴수가 새로이 나타나 소형 괴수들을 무수히 뿌려대고·
거대한 짐승의 입처럼 생긴 징그러운 초대형 괴수가 피아를 가리지 않고 빨아들이기도 했다·
이에 세피로트의 병력도 순식간에 차원을 건너 참전하기 시작했고·
최전선 못지않은 전투가 벌어졌다·
《혼돈》의 괴수 놈들은 마치 부모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미친 듯이 달려들었고 괴수의 파도를 쏟아냈다·
《위대한 세피로트》는 이에 의아함을 느끼며 점차 지원을 확대해 그 이유를 캐내려고 했다·
확전에 확전을 거듭한 누구도 예상치 못한 차원 통로에서의 대격전·
점차 격렬해지는 전투는 누구도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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