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647
캬루베로스에게 흡혈종의 흔적을 추적하여 적을 찾아내라고 시키긴 했지만 사실 나는 녀석에게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았다·
좀 더 솔직히 말하면 못 찾고 돌아왔을 때 무능하는 핑계로 두들겨 팰 생각뿐이었다·
돌팔이 리치가 본디 잉글라디우와 계약했음에도 캬루베로스가 슬쩍 치고 들어왔던 사례와 악마 특유의 계약자 추적 능력을 떠올리며 ‘어쩌면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추측을 통해 시도한 것이긴 하지만 내 상식 선에서는 사막 한가운데에서 바늘 찾는 것에 가까운 요구였기 때문이다·
근데 이걸 해냈네···?
솔직히 흡혈종 새끼의 술잔을 성배라 부르는 걸 핑계로 한 대 때릴까 싶긴 했었는데 얘가 이룬 성과가 너무 커서 당황하느라 주저하고 말았다· 칭찬을 바라는 개처럼 무릎 꿇고 앉은 캬루베로스와 녀석이 건네준 은제 술잔을 번갈아 본 나는 수상하리만치 유능한 녀석의 정체에 의구심을 품으며 질문했다·
“너 혹시 만마전에서 이름 좀 있는 악마였냐?”
“아아아아뇨?! 전 그냥 주인님의 충실한 개 캬루베로스인데요?”
“고양이·”
“예···?”
“캬루베로스는 배신하는 고양이야·”
나름 특작부 소속이라 정신 무장이 되어 있을 게 분명한 마왕군의 혼을 빼놓은 것도 그렇고 영 미심쩍은 구석이 많아서 어디까지 반응하나 보기 위해 괜한 꼬투리를 잡아보았지만 이미 수차례 이어진 폭력 속에서 적응을 끝마친 것인지 캬루베로스는 안색 하나 변하지 않은 채로 고양이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
“옙! 저는 주인님의 충실한 고양이일 뿐입니다! 배신하는 생물이죠! 야옹!”
그러더니 대뜸 ‘이런 모습은 어떠신가요?’ 라며 대뜸 고양이 꼬리를 달고 귀를 꺼내는 캬루베로스의 모습은 내 두통을 유발하기에 충분했기에 주저 없이 뒤통수를 후려치며 녀석이 끌고 온 마왕군을 살펴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 꼴이 심히 요상해서 나도 모르게 바닥을 구르고 있는 캬루베로스를 다시 불러야 했다·
“너 뭐 얘한테 정신 장악같은 거라고 걸었냐? 상태가 안 좋은데?”
“그럴 리가요? 걘 그냥 곱게 끌고 온 건데?”
뭔가 억울함이 가득 담긴 목소리와 달리 나를 바라보는 마왕군의 시선은 단순히 혼을 빼놓는 수준을 넘어서 귀신이라도 보고 있는 것 같다· 딱히 날 주시하지 않는 건 아닌데··· 보통 이런 자리라면 차라리 죽여라 같은 반응이라든가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는 반응 내지는 나를 향한 적의를 불태워야 하지 않나?
왜 있으면 안 될 사람을 본 것처럼 눈을 저렇게 뜰까· 이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고민하고 있었더니 한참을 뻐끔거리던 마왕군의 입에서 신음과 함께 말이 흘러나왔다·
“너 넌 용사잖아·”
“뭐야? 모르고 습격했다고? ”
이번엔 내가 놀랄 차례인가? 당연히 내 존재를 알고 습격한 거라고 생각했는데 제국과 드워프 왕국의 교류를 어그러뜨리기 위한 다른 계획이었다든가?
그렇게 갑자기 솟아난 의문은 헛다리에 불과했다·
“용사가 어째서 악마의 주인일 수 있지? 악마와 계약을 했다고? 그런 주제에 마왕님께 반기를 들고 모욕했단 말이냐?”
아 그런 의미였던 건가· 그래서 눈깔을 그리 떴던 거였군· 평소라면 대꾸도 안 해줬을 텐데 반응이 궁금해서 말을 건네고 말았다·
“천하의 도움도 안되는 바퀴벌레 새끼들 목줄 채워 놓고 개처럼 부려 먹는 게 악신이랑 붙어먹고 종족신 뒤통수치는 새끼랑 어떻게 동급일 수 있냐?”
“지랄하지 마! 악마를 부려 먹는다고? 악마와 계약한 새끼들이나 그딴 궤변을 지껄이지! 필멸자가 어떻게 악마를···”
그 뒤로 마왕군이 외치는 말은 악마에게 영혼을 판 나를 향한 일방적인 폭언 및 내가 행해왔던 모든 행동들이 위선과 기만이라는 일장 연설이었다·
다 들어 줄 필요도 없는 헛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그걸 가만히 들은 이유는 단순했다· 마왕이 어떤 형태로 마족들로 하여금 마신께 등을 돌리게 만든 것인지 그 편린이 보인 듯했기 때문이다·
놈이 강조하는 건 결국 생명체로서의 자율성과 존엄이었다·
격이 높은 이종족과 초월자 강자들보다 자신들은 무조건 열등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며 그 불합리에서 비롯된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악신을 비롯한 초월자들의 힘을 역으로 이용할 뿐이라고 여긴다·
그렇게 자신들의 운명을 멋대로 쥐고 제대로 보살피지도 않으면서 신앙이라는 핑계로 추앙받는 존재들을 싹 다 끌어내린 끝에 진정 필멸자들만의 세계를 구축하여 최종적으로 외계 존재들의 장기말이 아닌 스스로를 위해 살아가기 위한 투쟁이라 여긴다·
그렇기 때문에 마신의 용사라는 이름에 취해 허울뿐인 신의 앞잡이 노릇을 할 뿐만 아니라 악마에게 영혼까지 판 나는 사람 새끼가 하면 안 될 짓만 골라 하고 있는 것이고 그 충격적인 사실을 모른 다른 ‘선량한’ 마족들이 마신교의 손에 놀아가고 있다는 끔찍한 ‘진실’을 깨닫게 되어 날 그딴 식으로 봤던 거였다·
배경 지식이 없으면 굉장히 그럴싸한 이야기다·
하지만 마족이라는 존재의 근간이 어디서 비롯되었으며 최종적으로 신들이 필멸자들에게 바라는 ‘자립’이 어떤 것인지 아는 입장에서는 지랄 옆차기 하고 자빠졌을 뿐이다·
“가지가지 하네·”
입 밖으로 나온 소감은 심플했지만 앉기 편하게 구부려 놓은 철근 위에 앉아 씩씩거리는 녀석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착잡하기만 하다· 하나하나 붙잡아다가 사이비 종교에 가까운 저 사상을 교정할 생각은 없다· 내 착잡함은 그딴 게 아니라 마족들이 용족에 의해 탄생했다는 과거가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에 기인한다·
용족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종족이었다는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물어보고 싶지만 기껏 물어 봤더니 전혀 모르는 사실이라며 내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자꾸 물어보기만 하면 귀찮아지기에 이번엔 넘어가기로 했다·
“내가 물어보고 싶은 건 딱 하나다·”
에스테를 마력으로 움직여서 내 곁으로 흡혈종을 끌고 오자 신성력만 빨리는 탓에 지금까지 가쁜 숨소리만 내고 있던 흡혈종이 고통어린 신음을 흘린다· 그렇게 흡혈종이 완전히 내 옆까지 도착하니 자연스레 마왕군의 시선도 녀석에게로 옮겨진다·
어차피 지금은 굳이 날 보고 있을 필요도 없을뿐더러 오히려 흡혈종에게 집중하는 편이 나았기에 내버려 뒀다· 대신 녀석이 잘 볼 수 있도록 에스테가 박혀 있는 흡혈종의 가슴팍 위에 조심스럽게 술잔을 내려놓았다·
-치이이익!
“아아아아악!!”
은잔에 맞닿은 살이 타들어 가고 다 죽어 가고 있어서 제대로 소리도 못 지를 줄 알았던 흡혈종의 입에서 단말마같은 비명이 흘러나오자 마왕군의 어깨가 들썩인다· 어떻게 될지 궁금해서 시도해 본 건데 생각보다 결과도 반응도 만족스럽다·
“이거 얼마나 데리고 있냐?”
단순히 피부가 타는 것을 넘어 녹아내린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피해를 받고 있는 흡혈종을 바라보며 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없었다· 내 말에 집중을 하지 않고 있나싶어 시선을 돌려봤지만 방금까지만 해도 흡혈종에 꽂혀 있던 시선은 분명 나를 향한 상태였다·
“특작부가 네놈들을 어떻게 세뇌시켰는지는 몰라도 사이비 종교와 다를 바 없는 그 믿음이 굳건하다는 건 안다· 어지간한 고문엔 입도 안 열 자신이 있겠지· 하지만 아무래도 한 가지 간과하고 있는 사실이 있는 모양이니 이를 상기시켜준 다음 한 번 더 물어보마·”
흡혈종의 비명을 배경음 삼아 해주는 조언에 마왕군의 눈썹이 묘하게 뒤틀린다· 강한 불신이 담긴 모양새였지만 어차피 그딴 건 중요하지 않았다·
“너희가 믿든 안 믿든 만신들께서는 필멸자를 보호하신다· 마신께서도 그러시고 항상 너희를 긍휼이 여기시지· 아마 마신께 비수를 박아 넣은 너희의 영혼조차 죽고 나면 보듬어 주실···”
“하 개소리· 그러니까 회개라도 하라는···아아악!”
“끄아아악!”
갑작스레 앞과 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오는 이유는 단순하다·
내 말을 끊는 마왕군의 팔 하나를 베어내기 위해 흡혈종에게 박혀 있던 에스테를 뽑았다가 용무를 마친 뒤 다시 박아 넣었거든·
나는 최대한 침착한 척 앉아 있던 마왕군이 잘린 단면을 움켜쥔 채 바닥을 구르는 모습을 가만히 보다가 마저 말했다·
“회개? 누가 시켜나 준다고 했냐? 착각하지 마라· 마신께서 병신 같은 너희를 무조건적으로 용서하고 보듬어 주실지언정 난 거기에 동의 못한다는 말을 하려는 거였으니까·”
숨을 헐떡이지만 증오어린 시선만큼은 제대로 나에게 박혀 있다· 고통에 몸부림치면서도 마왕군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진즉에 저랬으면 덜 아플 것을 사람 귀찮게 하는 재주가 있는 놈이다·
“내 질문에 대답하면 곱게 뒈지지만 그렇지 않으면 네 비루한 영혼을 악마 새끼들 먹이로 써 먹을 거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거였어·”
“···뭐?”
‘아픈 것도 잊는다·’ 라는 말은 그다지 아프지 않을 때나 가능한 일인 줄 알았는데 방금까지 몸서치리던 마왕군이 정말 거짓말처럼 바짝 굳으며 경악하는 꼴을 보아하니 그렇지만도 않은 모양이다·
“네놈이 신들의 호의를 믿지 않는 건 내 알 바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네 영혼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그런 너희들이 뒈진 다음 무슨 꼴을 당할지도 내 알 바 아니다· 그런 건 신들께서 어련히 알아서 하시겠지·”
허리 춤에 있던 바늘을 꺼내서 마왕군을 겨누자 그것만으로도 녀석이 공포에 떤다· 마치 바늘이 캬루베로스에게 영혼을 갈취하라고 명령하는 지팡이라도 된다고 여기는 모양이었다·
다른 때였다면 그 꼴을 보고 퍽 웃기다 여겼겠으나 녀석의 개소리를 들은 탓에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 않았기에 용건만 말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네 죽음의 형태를 결정하는 것만큼은 내 소관이다· 그러니 지금 정해· 말하고 그냥 뒈질 것인지· 뒈진 다음 악마한테 영혼을 빼앗긴 뒤 강제로 말할 것인지·”
어려울 것 없는 선택지 덕분일까 마왕군의 입에 금방 날개가 달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0088 님 무언의 100 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재밌게 읽으실 수 있도록 열심히 쓰는 글쟁이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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