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수련하던 중 아버지가 말했다.
-중원엔 칠철삼권이란 이들이 있다.
뜨거울 정도의 열기.
수련실을 달구고도 남을 열기 속에서 하는 얘기라기엔 다소 의아할 말이다.
-갑자기요?
뜬금없어 말하지만, 아버지는 개의치 않는다는 듯 얘기를 이어간다.
아버지와 수련할 때면 종종 이런 일이 있었다.
묻지 않은 말을 해준다.
어쩔 땐 조금 수다스럽지 않나 싶을 지경이지만.
그럼에도 왜 그러냔 핀잔을 뱉진 않았다.
뭐랄까.
-수십 년 전, 사파와의 전쟁 당시 강한 모습을 보인 이들이지.
이런 상황이 썩 나쁘진 않다 느꼈기 때문이다.
-화산의 매화선께서도 그러셨고. 무당의 검선이나 절강의 권제. 지금은 타계하신 청해일검께서도 속한 이들이다.
그 밖에도 몇몇 인물에 관한 말이 이어지는데.
나는 거기서 묘한 기색을 느껴야 했다.
매화선이나 청해일검. 그 외에 한 명에겐 존칭을 붙이지만.
다른 칠철삼권에겐 하대와 가까운 말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힘은 강하다. 한 명 한 명이 움직이는 세가와 같지.
-그렇군요.
-혹여 만나게 되거든 조심하거라. 그들은 힘뿐이 아니라 심계도 깊고 날카로우니까.
죄송하지만 가주님.
그쪽 아들도 이쪽 방면에서는 지지 않습니다.
그리 말하려다 간신히 참았다.
-그럼, 그들이 아버지보다 강하다는 겁니까?
우스갯소리로 뱉은 말이다.
애당초 상대도 안 된다는 걸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한데, 이를 들은 아버지는 가만히 날 쳐다보더니 이리 말하더라.
-간지러울 순 있겠지.
-…
담담하게 뱉으니 진짜 같아서 더 무서웠다.
아무튼.
지금의 만남이 있어서일까.
문득 그때의 기억이 떠오른다.
이후 회상을 지워내며 정면을 쳐다봤다.
내 앞에는 곱게 늙은 노파가 앉아 있었다.
그녀는 아버지가 얘기했던 칠철삼권.
그 중에서도 삼권(三拳)에 들어있는 인물이다.
분월권선(粉月拳仙).
중원 십대고수.
칠철삼권의 삼권(三拳)중 일인.
이게 노파의 정체다.
그녀는 나이는 팔순을 넘겼다 하며, 사파와의 전쟁시대를 거쳐온 인물 중 한 명이다.
또한, 구파일방 중 한 곳인 아미파의 장문인이기도 하고.
중원을 대표하는 여걸이기도 했다.
무공의 특징은 불문의 특색을 살린 묵직한 권격이라 했던가.
‘저 얇은 팔에서 권격이라니.’
팔순이 지났다는데 굽지 않은 허리만으로도 대단한 일이지만.
근육이라곤 보이지 않은 얄찍한 팔뚝은 아무리 봐도 힘이 느껴지지 않았다.
기품있는 노파.
돈 많은 상단을 운영하는 할머니.
대충 그런 느낌의 인물이었는데.
‘흐음….’
그런 노파를 보며 내가 몰래 침음을 삼켰다.
뼈만 남은 것 같은 얇은 몸, 마른 손끝으로 차를 마시는 모습은 정녕 힘없는 노파였으나.
‘겉만 그렇다는 거지. 속까지 그런 건 아니군.’
마냥 약한 인물은 아니었다.
중원에서 가장 믿으면 안 되는 족속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여자와 노인이다.
무식하게 무공만 쌓은 사내새끼들은 대다수 꼬추가 뇌와 합쳐진 상태인지라, 짐승 같은 이들이 많았고.
좀 머리가 텄다 싶은 놈들은 이걸 이용해 미인계를 펼치고는 했다.
무림맹만해도 그렇고 다른 세가들만 봐도 예쁜 시종을 곁에 두고 있는 이유다.
‘…구가는 그나마 멀쩡한 편인데.’
여기도 뭐, 속이 구린 건 똑같으니. 사파든 정파든 위험한 건 매한가지라는 것이며.
그 탓에 나는 여인을 경계하며 사는 게 습관이 됐다.
‘전생에도 수틀리는 짓을 하면 태워죽이고는 했었지.’
예쁜 여자가 나한테 좋다고 접근한다?
그것만큼 위험하고 경계적인 게 없다.
믿을 수 없고.
믿어서도 안 됐다.
‘어차피 다가오기 전에 마검후 손에서 끝났기는 했지만.’
맹에서도 몇몇 보내고 적대 세력에서도 꾸준히 뭔가 시도하긴 했다는데.
어차피 다가오는 여인은 마검후가 역하다며 족족 썰어버린 탓에 횟수가 비교적 적기는 했다.
아무쪼록, 중원에서 여인. 특히 예쁜 여인은 경계의 존재라는 뜻이고.
두 번째로 노인이 위험한 이유야 뭐….
‘단순하지. 늙을수록 강하니까.’
무인의 심공이란 연마한 세월의 기반한다.
호흡으로 내기를 충당하는 것인 만큼, 살아온 세월의 가치가 비례 되는 힘이란 뜻이다.
무인의 육체적 전성기는 불혹을 지나서라고들 하나.
내기는 세월이 전부다.
아, 물론 기연이나 영단들을 통해 충당할 수도 있지만….
‘그건 양을 늘릴 뿐. 질을 늘리는 건 다른 얘기지.’
같은 양이라도 안에 담긴 뜻이 다르다.
살아온 삶은 깨달음이 되어 기운에 스미고.
그 기운은 무엇보다 무인의 가치를 드높인다.
‘…그렇기에 십대고수나 삼존이 강한 거고.’
지금 자리를 차지한 이들 중 비교적 젊은 층인 육좌는 영향력을 기반으로 하고.
십대고수와 삼존은 오로지 강함으로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수를 따지면 합쳐서 열 셋.
그중 가장 젊다는 이가 환갑을 넘긴 것을 보면 중원에서 노인이 얼마나 무서운지는 모를 수가 없는 일이다.
‘근데, 저 권선이란 할머니는 둘 다 해당하지.’
젊을 때 한 미모 하셨을 얼굴에, 진득한 삶의 숫자까지.
위험천만한 가능성을 두 개 다 지니고 계신 인물이다.
심지어.
‘강해.’
실제로 분월권선은 강했다.
보기만 해도 알 수 있다.
나약한 건 겉모습일 뿐. 속은 알차디알차다.
‘지금 십대고수 중 삼존에 근접했다고 알려진 건 두 명.’
화산의 매화선과 무림맹의 검제.
그 둘을 직접 대면해본바.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저 할머니도 부족하지 않다.’
삼존에 부족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그저, 권선은 검제에 비해 절대 약하지 않다는 뜻이었다.
‘꽉 차 있네.’
저 작은 육체에 어찌 담겨있나 싶은 기운들.
그걸 이루고 있는 단단한 그릇까지.
‘빈틈이 없어.’
앉아서 차를 마시고 있음에도 빈틈이 보이지 않는다.
기습하면 맞을까? 의문이 든다.
그래, 의문.
기습하려 함에도 확신이 아니라 의문이 든다는 건, 저 노파가 상당한 강자라는 방증이다.
물론, 방심을 하지 못하게끔 만든건 내쪽이지만 말이야.
‘흐음.’
쉽지 않네.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무렵.
“갑작스런 만남이거늘, 이리 받아주어 고맙구나.”
노파, 분월권선이 말을 뱉어왔다.
그걸 듣고 내가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다른 분도 아니고 아미파의 장문인이시지 않습니까. 얼마든지 자리를 만들어야지요.”
“…그래.”
차분한 음색을 들으며 이번엔 내가 되물었다.
“하여…. 어찌 장문인께서 저를 찾아오셨는지요.”
오전부터 얼마나 놀랐던가.
안 그래도 투룡을 찾아왔다며 주변 처소 앞에 사람들이 가득 채우고 있던 시점.
그런 와중에 아미파의 장문인이 날 찾아왔다고 하면 안 놀라고 배길까.
‘장로도 아니고, 장문인이 직접 말이야.’
어디 가서 얼굴 보기 힘든 양반이다.
그런 인물이 직접 행차하셨으니, 궁금해서라도 봐야 했다.
꿀꺽.
탁.
차를 마시는 소리와 동시에 찻잔이 탁상에 안착한다.
그 순간.
후우욱.
방 안에 알 수 없는 기운이 뻗어나갔다.
기막(氣膜)이다.
분월권선이 기막을 친 모양인데.
툭.
후우우욱-!!
그걸 느끼자마자 나 또한 심장에서 기운을 뿜어냈다.
분월권선이 치던 기막을 잡아먹고 그대로 방안을 채워낸다.
“허?”
이를 본 분월권선이 헛숨을 터트렸다.
설마 제 기막을 방해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
“죄송합니다. 하나, 여긴 엄연히 제 방이니 기막이라면 제가 치는 게 맞지 않겠습니까?”
어딜 감히 내 영역에 기운을 뿌리려고.
난 받아줄 생각이 요만큼도 없었다.
그러자 권선의 옆에 있던 여인의 표정이 구겨진다.
아무래도 장문인의 호위인 모양이다.
“이놈이! 감히 누구에게…!”
철걱-!
내 태도에 화가 났는지 일순 검을 뽑으려 하지만.
쉬익-!
“!!”
그전에 이미 그녀의 목에 검날이 닿아있었다.
같이 있던 성율이 어느새 검을 뽑아 든 것이다.
빠르다.
녀석, 속도감이 장난이 아니네.
그걸 보며 피식 웃음을 삼켰다.
‘코앞이군.’
완숙한 절정에서 화경 그 어딘가.
애매한 위치에 있던 성율의 벽이 코앞에 다가와 있었다.
이제 살짝 등을 밀어주기만 해도 넘어갈 상황인 듯싶다.
“…끅….”
순식간에 제압을 당해버리니 호위의 얼굴이 사색이 된다.
설마 성율이 자신보다 빠를 줄 몰랐던 모양이다.
다소 험악해진 상황.
즉시 성율을 보며 말했다.
“집어넣어.”
“예.”
명령이 떨어지니, 성율이 곧장 검을 회수하고. 당한 여인이 표정을 일그린다.
아쉬운 건 딱 그뿐이란 것이다.
“아쉽네요.”
“뭐?”
내 말에 여인의 시선이 내게 향했다.
그걸 보며 말을 뱉었다.
“다시 검을 들었으면, 팔 채로 뽑아버리려고 했는데.”
“…!”
상당히 모욕적인 언사다.
자존심이 있다면 이내 검을 뽑아 들겠지.
“끄득-!”
그리 생각하기 무섭게 여인이 몸을 움직이지만.
척-!
행동은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다.
권선이 손을 뻗어 여인이 검을 뽑지 못하게 막은 탓이다.
“장문….”
짜악-!
방 안에 소리가 퍼진다.
여인의 고개가 격하게 돌아갔다.
‘오.’
그 모습을 신기하게 쳐다봤다.
권선은 움직이지 않았다. 한데 여인은 뺨을 맞았다.
‘권기로 팬 건가? 아니면.’
심권(心拳)으로 팬 걸까.
아쉬웠다 좀 더 집중해서 볼걸.
‘아마 심권은 아니겠지.’
그걸로 팼으면 여인은 고개가 돌아가는 게 아니라 그대로 박살이 났을 테니까.
“두 번은 없다. 이 이상 결례를 범하지 말라.”
“…죄송합니다….”
권선의 말에 여인의 쥐죽은 듯 찌그러지고.
난 그 모습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다.
“미안하구나. 아이가 결례를 범했어.”
“예. 무척이나 큰 결례였죠. 하나 장문인을 보아 한 번 봐드리겠습니다.”
“…”
말을 들은 권선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진다. 상관없었다.
“그래서, 무슨 볼일로 찾아오셨기에 기막까지 펼치시는지요.”
“하하하….”
내 태도가 문제였을까. 권선이 짧게 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신기하구나.”
말을 하는데 이질감이 느껴졌다. 말투가 미세하게 바뀐 탓이다.
“뭐가요?”
“보자마자 알 수 있던 부분이다만…. 너는 어째서.”
권선의 눈이 좁혀진다.
“힘을 숨기지 않는 게냐.”
“으음?”
그 말에 고개를 까딱였다.
마치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듣겠다는 듯한 행동이었다.
“숨겨서 뭐합니까? 어차피 들킬 텐데.”
“…”
나는 권선의 경지를 전부 알 수는 없다.
그럼에도 어렴풋이는 파악할 수 있다.
그 말인즉슨.
‘상대도 다를 바 없다는 것.’
권선도 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숨기면 숨기는 대로 티가 날 것이며, 애당초.
‘이젠 별로 숨기며 살 생각도 없고.’
이제 그럴 필요 없었다.
때는 진작 찾아왔다.
계기와 명분.
그리고 다짐만 있으면 된다.
그런 상황에 뭘 숨기고 말고 더 하랴.
‘아니지.’
숨길 걸 다 숨겨놓고도 이제 숨기지 않아도 될 부분이 이것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침묵이 스친다.
잠깐 서로를 마주보다 먼저 말을 뱉은 건 다시 권선.
“…그런가.”
납득 아닌 납득이란 듯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신룡이니 투룡이니. 다른 곳을 볼 때가 아니었군. 진짜는 여기에 있었어.”
“칭찬이라 받아들이겠습니다. 하여 장문인. 벌써 세 번째 묻는 겁니다만. 저는 왜 찾아오셨습니까?”
“구 공자.”
“예.”
“듣기로는 자네의 곁에 피연연이란 소저가 같이 있다고 하던데. 맞나?”
다행히 곧장 본론으로 들어왔다.
심지어 예상하던 사안이라 더 다행이었다.
“아. 피 소저 말이지요.”
떠올랐다는 듯 끄덕이며 생각했다.
피연연.
서안피가 태생의 무인.
바로 봉순이의 가명이다. 이로서 아미파가 봉순이를 찾고 있음은 확실해졌다.
그럼 어떻게 해볼까.
이 또한 진즉 정해놓은 일이다.
“예. 제가 후원하고 있는 소저입니다만.”
“후원?”
내 말에 권선의 눈에 이색이 깃든다.
“우연찮게 서안을 찾다가 보게 된 소저입니다. 재능은 뛰어난데 배경이 아쉬워 후원하게 됐지요.”
말을 쉼 없이 뱉으며 속으로는 계산을 돌린다.
‘목적은 봉순이인데.’
여기서 의문이라면.
‘이유는 귀물인가…. 아니면, 봉순이 그 자체인가.’
이 부분이 아직 애매할 따름이다.
그때.
“자네는 혹 알고 있나?”
권선이 내게 말해왔다.
“피연연. 그 아이가 어떤 존재인지 말이야.”
‘이야.’
그걸 듣고 속으로 떠올렸다.
빨리 본론만 뱉으라니 곧장 이렇게 더 큰 걸 박아 올 줄이야.
좋네.
이러면 나 또한 받아주어야 겠지.
“예. 알고 있습니다.”
“…!”
망설임 없는 대답에 권선의 눈이 커진다.
반응이 재밌네. 이렇게 대답할 줄 몰랐던 걸까.
“알고 있다고…?”
“예. 뭐…대충은요?”
“뭘 알고 있다는-.”
“반대로 장문인께선 알고 계십니까?”
“…!”
“피연연 소저에 관해. 장문인께선 무얼 알고 계시는지요.”
두 번의 연속된 물음.
그 말로 권선의 입이 봉해진다.
‘자 이제 어떻게 나올 거냐.’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나열되고 있을까.
아마 고민이 많을 것이다.
이건 내가 알고 있다고 답한 순간부터 정해진 결말이다.
알고 있다.
하면 무얼 알고 있을까.
자신이 아는 것과 같은 걸까?
아니면, 피연연에게 다른 뭔가가 있다는 걸까.
이런 의문이 싹틀 터이나 쉽사리 물을 수 없다.
위 가능성이 문제가 되어 자신의 입도 막혀 버린다는 점이다.
‘섣불리 정보를 배설할 수는 없을 테니까.’
내가 아는 것과 자신이 아는 것이 다를 경우, 손해를 보는 건 권선 뿐.
이건 그렇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허…. 참으로 뱀 같은 아해로다.”
이를 눈치챘는지 권선이 뜻을 담아 뱉는다.
나 또한 그걸 듣고 웃어주었다.
“칭찬 감사합니다.”
“심지어 맹랑해. 네 앞에 있는 게 아미파의 권선임을 잘 알면서도 말이야. 큰 화를 겪게 될 두려움은 없는 게냐?”
“그런 말 종종 듣습니다만…. 잘 살아있는 거로 보아 괜찮은 태도가 아닐까 싶네요. 다른 분들은 좋아하셨거든요.”
맹랑하다. 싸가지 없다. 재수 없다. 오만하다.
별별 소릴 다 들어봤다만. 아직 혼난 적은 없었다.
협박을 하려거든 죽였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하면 짓눌렀다.
쪼르륵.
비어버린 찻잔에 다시금 차를 채워 넣었다.
“한잔 더 드시겠습니까?”
“…좋지.”
권선에게도 마저 따라준 직후.
“권선께서 먼저 물어주셨으니, 저도 하나 여쭙겠습니다.”
대답은 못 들었지만 상관없었다.
“아미파의 목적은 피 소저입니까. 아니면, 그녀가 가진 물건입니까?”
“…”
단도직입적인 물음.
그 말에 일순 공기가 무거워진다.
끄그극….
덜덜덜덜
탁상이 빠르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너.”
묵직한 기운이 뺨을 스쳤다.
권선의 존재감이 점차 강해지기 시작한다.
“이것 참.”
그걸 느끼며 한숨을 살짝 내쉬었다.
왜 자꾸 짜증 나게 남의 집 안방에서 지랄일까.
쿠우우우우—!!!
심장에 힘을 주어 기운을 개방했다.
권선의 존재감을 짓누르며 기운을 천천히 잡아 뜯어낸다.
이 또한 예상 못 했는지, 기막뿐이 아니라 존재감까지 억제당하자 권선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런 권선을 보며 말했다.
“노인네가 자꾸 힘을 쓰시네. 등선을 좀 빨리하고 싶으신가.”
이거 조금 긁었다고 힘으로 짓누르려 하다니, 하여튼 잘못 늙은 인간들이 가장 문제다.
아니면, 이 중원 자체가 문제일까?
내가 볼 땐 둘 다였다.
뭐가 됐든 이렇게 폭력적이니 착한 나는 항상 당하기만 해야겠지.
억울해서 어디 살겠냐고.
권선의 기운은 점점 더 짙어지고. 이를 누르는 내 힘도 강해진다.
쩌적.
지붕에서 소리가 들렸다.
이러다 처소 다 무너지게 생겼다.
만일 무너뜨렸다간 미 부인이 화낼지도 모른다.
모용희아에게 듣기론 여긴 미 부인이 아끼는 처소라고 들었으니 말이야.
그걸 떠올리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이렇게 된 거 쉽게쉽게 가죠?”
힘을 조절하며 권선에게 말했다.
“어차피, 장문인께선 저한테 궁금한 게 있으시잖아요?”
“…”
권선의 눈이 살벌하다.
대답은 들려오지 않고 기운에 살기가 더해진다.
아 이 할머니 성깔 더럽네.
‘짜증나게 말이야.’
그래서 어쩔 수 없었다.
“이렇게 된 거 한판 붙죠? 깔끔하게?”
“…뭐?”
“진 사람이 묻는 말에 대답해주기. 어때요?”
웃으며 말하지만.
권선의 표정은 더 없이 일그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