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아파천무 사식 창천·
하늘을 만든다는 오만한 이름·
오식이 파천인 걸 떠올리자면, 이는 패존이 의도한 작명이 아닐까 싶다·
하늘을 만들고·
하늘을 부순다·
어떤 의미가 담긴 건지 모르겠으나, 일식과 이식, 거기에 삼식이 모두 일격형 무공임에 비해, 창천은 타격을 위한 무공은 아니었다·
구태여 비교하자면, 구염화륜공의 열기를 이용해 육체를 활성화하는 과정·
그것과 비슷하다 볼 수 있겠다·
투아파천무는 인위적인 환골탈태를 거쳐 초월에 이르기 가장 쉽게 만드는 무공이었고·
사식 창천은 그의 연장선이었다·
인위적인 무아지경·
깨달음을 위해 무인이 한 번씩 거친다는 순간의 과정·
그곳에 인위적으로 닿고자 만드는 것·
그게 창천이다·
동작 한 번에 쓸데없는 생각이 지워지고 망설임이 사라지니, 기운은 자연스레 온몸에 흐르게 된다·
기운은 보다 원활한 이동이 가능해지니 무공의 힘도 강해지기 마련·
이는 일종의 육체 각성을 뜻했다·
체감상 위력이 곱절로 오르는 것 같기는 한데·
문제는·
‘반동도 곱절이야·’
무공의 위력이 두 배로 오른다는 미친 효율은 당연히 단점도 강렬했다·
처음엔 이런 미친 무공이 있나 싶었거늘, 쓰고나서 알겠더라·
이거 잘못 쓰면 죽는다·
처음 성공했을 때 패존이 언질 준 경고기도 했다·
가능하면 마지막의 마지막에 쓰라고·
중간부터 쓰면 뒤진다고· 익숙해질 때까진 조심하라며 그리 경고했고· 나는 창천을 쓰고선 납득 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투아파천무가 더럽게 아픈 무공인데, 창천의 반동은 이와 비교도 안 되더라·
그거 쓰고 일식 썼다가 삼 일간 앓아누웠다·
고작 한 번 내지른 것인데 말이다·
아무튼····
반동이 더럽게 심하긴 해도, 이걸 달리 말하자면 쓸 때만큼은 굉장한 화력이 동반된다는 점이었다·
그 덕분이다·
“쿨럭·”
피를 토하면서도 적잖은 안도를 할 수 있던 이유는·
“후우···쓰벌·”
입가에 잔뜩 묻은 피를 닦아냈다·
동시에 정면을 쳐다본다·
광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바닥은 먹물로 가득 차 있었고 사방은 어둡기 짝이 없다·
처음과 그다지 변하지 않은 모습·
하지만·
[···놀랍도다·]
앞에 있는 노인을 보며 나는 몸을 일으켰다·
가슴 한복판이 휑하다·
노인의 상체에는 커다란 구멍이 나 있었다·
창천을 곁들인 투아무권(鬪牙無拳)의 결과였다·
[언제부터였느냐·]
노인이 물었다· 물음을 듣고 고개를 까딱였다·
“뭐가 말입니까·”
[이 모든 과정이 본능과 우연에 의한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언제부터 계획한 일이더냐·]
“···”
언제부터였냐니?
그야 당연히·
“처음부터죠·”
[···]
처음 노인에게 싸움을 걸 때부터·
싸움이 끝나는 지금 순간까지가 계산이었다·
아, 당제문 선배에 관한 얘긴 계획에 없긴 했다·
그걸 제외하면 전부 맞춘 얘기였다·
다만····
‘전부 들어맞은 건 아니고 계산을 여러 개 해놨을 뿐·’
노인의 행동을 예측해서 대여섯 개를 만들어 놓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옮겼을 따름이다·
상대가 귀정이 있음을 안다·
귀정의 효과는 현실과 다르지 않은 듯 보인다·
우선 그걸 상정한 다음·
‘기회는 열 번·’
노인이 내어준 열 번의 기회· 그걸 떠올렸다·
열 번 동안 온 힘을 다해 공격한다· 그렇게 해서 닿을 수 있는 존재인가?
‘아니·’
어림도 없다·
항상 말했지· 자기 객관화를 철저히 하라고·
저 노인네가 진짜든 가짜든, 나는 이길 수 없는 존재다·
하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길 수 있게 만들어야지·’
이길 수 없으면 이길 수 있게끔 해야 했다·
하여 생각했다·
열 번의 기회를 다르게 써먹자고·
그걸 위해 처음 일곱 번은 내 전력을 보여줬다·
이때 연기는 해선 안 된다·
상대는 이를 알아차릴 것이다· 정말 전력으로 공격해야 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이 정도가 내 한계치의 공격이다·
그걸 상대가 ‘인식’ 하도록 만든 것이다·
솔직히 기분 더럽기는 했다·
‘진짜 전력이었는데 옷깃도 못 태웠어·’
전생과 현생을 얼마나 굴러다녔거늘, 저 노인네의 옷깃조차 못 태우냐·
참 빌어먹을 삶이었다· 근데 어쩌겠어· 좆 같아도 길은 찾아야지·
일곱·
열의 일곱을 써야 했지만, 그 덕에 상대는 알게 됐을 것이다·
내 최고치의 힘이 그렇다는 걸·
이를 성공했다면 여덟 번째부터는 이변을 줬다·
혹여 모를 의심을 짓누르기 위해선, 스스로 이변을 줘야 했다·
나는 쓸 수 있는 게 불꽃뿐이 아니다·
또 다른 기운도 있다·
투아파천무를 구태여 쓴 이유는 그 탓이었다·
인식시키고 이변을 줘서 혼돈을 주고·
생각을 빠르게 돌지 못하게 최선을 다하고 있음도 보인다·
그렇게 열 번을 썼다·
솔직히 이유를 크게 두었지만·
이 열 번의 결론은 하나다·
‘저 노인네가 내 귀정에 관해 모르게 하는 것·’
그럼 애당초 귀정을 안 보였으면 되냐 물을 수 있다만·
‘노인네가 말했잖아· 날 보고 있었다고·’
내 몸에 신 노야의 도기가 있는 건 알아차린 상태였고·
혹시 모른다·
귀정의 존재 또한 알고 있을지·
하면 오히려 이렇게 하는 게 빨랐다·
계획하고 계획하고 계획해서 싸운다·
치사하고 좆 같이 싸워도 이게 맞다·
개싸움의 명예는 없을지언정 생존은 존재할 테니·
나는 그게 더 중요했다·
[하하···· 대단하구나·]
말을 들은 노인이 감탄 섞인 웃음을 터트린다·
스르륵·
“···!”
그러면서 노인의 몸이 점점 복구되는 게 보였다·
어 이거 엿 된 건가?
애당초 영혼이니 죽고 말고 하진 않을 것 같았지만, 저건 좀 치사한 거 아닌가?
다음 대책을 강구 해야겠다 싶을 때·
[네가 이겼다·]
노인은 웃음을 머금은 채로 내게 말한다·
[인정하마· 내가 졌고 네가 이겼다·]
“···”
끝내 노인이 패배를 시인했다·
털썩·
“후아아····”
그걸 듣고서야 몸을 주저앉혔다·
힘이 쭉 풀리는 느낌이었다·
“진짜 더럽게 힘드네····”
한탄을 섞어 숨을 터트리니 노인이 이내 고개를 까딱인다·
[곧장 믿는 게냐? 내가 허튼소리를 할 줄 어찌 알고·]
“그거야 그쪽이 말했잖습니까·”
[음?]
“검을 맞대보면 안다고· 나도 크게 다르진 않습니다·”
노인이 헛소리할 양반은 아니다·
그런 것쯤은 방금의 합으로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약아빠진 놈 같으면서도 이런 곳은 또 색다르구나· 특이한 놈이로고·]
“자주 듣는 말입니다·”
[하면, 애송아·]
“예·”
[직전에 한 말은 무엇이더냐·]
“뭐요?”
[당제문이 여자라는 말 말이다·]
“아·”
-당제문은 여잡니다·
창천을 덧씌울 시간을 벌기 위해 뱉은 말·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진짜 도박수였다·
통해서 다행이지 아니었으면 끝장이었다·
이를 떠올리며 픽 웃으며 답했다·
“글쎄요·”
[···허?]
대답해줄 생각 없다는 표시였다·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노인·
그를 보며 내가 손을 움직였다·
휘리릭-!
그러자 묶여있던 귀정이 풀려나 붕대 형태로 변하고· 그걸 노인에게 던졌다·
탁·
붕대는 굴러가 노인의 손에 잡힌다·
“잘 썼습니다·”
[···]
돌아온 귀정을 보는 노인의 눈이 묘하다·
[···애송아·]
“듣고 있습니다·”
[네가 내 환생이라고 했더냐·]
“예, 뭐· 그렇다고 하더라구요·”
몸을 다시 일으켰다·
온몸이 지끈거린다· 반동이 점차 들이닥치고 있었다·
심상의 공간에서도 고통은 그대로라는 건가·
원래 있던 곳에 돌아가면 어찌 될까· 그게 잠시 궁금해진다·
[귀정을 보아하니···· 정녕 그럴지도 모르겠구나·]
내 말을 듣던 귀정·
거기서 믿음을 얻은 건가·
[하면 이상한 일이야· 어찌 네가 화산의 아이가 아닌 걸까·]
“···”
의미심장한 말·
그걸 듣고 목을 살짝 풀었다· 너무 자주 듣던 말이었다·
내가 신 노야의 환생이다· 그걸 들었을 즈음·
과거 황아불영이 노야를 보며 언급했던 것도 있었다·
실패했다·
진즉 화산에 다시 태어났어야 할 노야가 환생에 실패해 혼령이 되었다·
그걸 본 황아불영은 절망에 빠졌었다·
그만큼 중대한 일이었다는 뜻이다·
[애송아· 하면····]
“잠깐만요·”
나는 노인의 말을 끊어내며 손을 들었다·
“죄송한데· 물어도 제가 물어야 할 상황 아닙니까? 뭘 은근슬쩍 질문하고 있어요·”
내기에서 이긴 쪽이 묻기로 했거늘· 노인은 계속해서 내게 말을 물어온다·
그게 어처구니없어 말하니·
[이런, 들켰군·]
노인은 아쉽다는 듯 입을 달싹인다·
저 인간이···? 이미 알면서도 하고 있었다는 건가·
어이가 없네· 도인이 뭐가 저리 뻔뻔해·
인상을 찌푸리곤 즉시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뭡니까?”
비로소 찾아온 차례였다·
[처음부터 말했지만, 나는 화산의····]
“그걸 묻는 게 아닙니다·”
[그럼 무얼 묻는 게냐·]
“나는 이미 화산선검을 만난 적이 있습니다·”
[···뭐?]
“당신은 아니고· 다른 양반이지만 말입니다·”
신 노야에 관해 언급하자 노인의 반응이 크게 느껴졌다·
그 반응을 살피며 설명을 덧붙인다·
자세히는 아니어도 신 노야를 만났을 즈음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축약해서 설명했다·
그러자·
[···그게 무슨·]
노인의 반응에 당혹스러움이 섞인다·
“내가 당신을 진짜라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겁니다·”
[···]
“···정황상 당신이 진짜 화산선검이 맞는 것 같은데····”
정황도 심증도 그렇다·
하물며 섬서의 비고? 개연성도 딱 들어맞는다· 하지만·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당신이 진짜라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대체 당신은 뭡니까?”
왜인지 모르게 앞에 있는 노인은 진짜가 아닌 것 같았다·
당신은 대체 뭐냐·
뭐길래 이곳에 있는 거냐·
그리 묻는 말에 노인의 반응은·
[···]
우선은 침묵이었다·
생각을 정리하기 위함인지, 혹은 큰 충격을 받은 건지· 아니면 둘 다인지, 어느 것도 확신이 들지 않지만·
나는 노인의 대답을 기다렸다·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기다리고 있을 즈음·
[그렇군·]
노인이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꺼내 들었다·
[그랬던 건가·]
무언갈 알았다는 듯 내뱉는 소리엔 어째인지 모를 구슬픔이 뒤섞여있다·
[애송아·]
“예·”
[네가 말했지· 네가 아는 신철은 자신의 마지막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예·”
신노야의 기억은 그랬다·
혈마의 봉인이 끝난 직후·
장문인 자리를 유지하며 평생을 살았다고·
그렇게 어느 날처럼 시간을 보내던 와중 눈을 떴을 때 귀물 안에 봉인되어 있었다고·
그뿐이 아니다·
노야는 기억이 온전치 못했다· 듬성듬성 빈 곳이 너무나 많다·
시간이 흘러 지금은 몇 가지를 깨달은 듯싶다만, 지금 앞에 있는 노인과는 사정이 다르다는 의미였다·
[그걸 들으니, 이제야 알겠구나·]
“뭐가 말입니까?”
[항상 의문이었던 부분이 있다·]
찰박·
노인이 걸음을 내디뎌 내게 다가온다·
[애송아· 너는 이곳이 어딘지 아느냐·]
“···여기 말입니까?”
바닥을 채운 먹물과 하늘을 메운 검은 기운들·
“모르겠는데요·”
내가 알 리가 없는 공간이었다·
단순히 심상의 공간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노인이 이에 대답하길·
[이곳은 화산이다·]
“예?”
다소 충격적인 대답이 들려왔다·
“···뭐라구요?”
화산?
말을 듣고 주변을 둘러본다·
저게 무슨 개소리일까·
여기가 어떻게 화산이라는 말인가·
화산을 가본 적 있어서 안다·
화사한 꽃과 푸른 빛을 품은 산이다·
그곳에는 무인의 내기에 동화되어 매화나무가 가득히 피며 언제나 향긋한 꽃내음이 느껴지는 곳이란 말이다·
그걸 알고 있기에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정확히는···· 화산이었던 곳이지·]
노인은 쓰라린 목소리로 말을 이어간다·
[네가 말했지· 이 세상은 혈마의 봉인에 성공했었다고·]
“···예·”
솔직히 봉인에 완전히 성공한 건 아니고·
혈마도 돌아다니고 있긴 하다만 했던 건 맞으니 그렇게 대답했다·
그런 대답에 노인이 씁쓸하게 웃는다·
[그렇구나·]
“왜 그러십니까?”
[아니다· 희망을 품었었으나· 한낱 꿈이었음을 깨달았을 뿐이다·]
찰랑·
노인이 바닥에 힘없이 앉는다·
주저앉은 순간, 물길에 파동이 생겨 퍼져나간다·
잔잔한 물결이었다·
[이상한 일이었지· 애시당초 화산의 아이를 마주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말이야· 희망에 휩쓸려 꿈을 꾼 모양이야· 창피하게도····]
“···저기· 그게 뭔····”
[‘우린’ 혈마를 막아내지 못했다·]
“예?”
이해 못 할 말들에 짜증이 올라오던 찰나·
노인의 말에 말문이 막힌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린···끝내 혈마를 막아내지 못했고· 이곳은 놈의 손에 무너진 화산이다·]
충격적인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