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은 정오를 좀 더 넘은 시간·
해는 중천에 떠올라 있었으나 그리 덥지는 않다·
이미 계절이 가을로 넘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산산히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칼이 휘날린다·
관리 따윈 하지 않으니 푸석할 만도 한데, 환골탈태한 덕인가 피부나 머리털은 항상 상태가 좋더라·
‘그래서 그런지 거슬린단 말이야·’
스윽·
길게 자란 머리칼을 붙잡아 뒤로 묶었다·
이제 좀 안 불편하네·
대충 정리하니 눈을 가리고 있던 머리칼이 치워지며 시야가 드러났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여기저기 금이 간 비무대·
화경급 무인들이 치고받은 흔적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팔강에 오르며 비무대를 더 강화했다더니, 이 인간들은 돈을 도대체 어디에 쓰는 걸까·
참 부질없는 쓰임새라고 생각했다·
우둑·
손목을 살짝 풀며 시선을 올리니 비무대를 떠나 이번엔 사람이 보인다·
한 명은 긴장감이 극도로 오른 심판이었다·
이유는 아마 내 탓이 크리라·
‘저번 전투의 여파겠지·’
영풍과의 싸움에선 크게 뭘 저지르진 않았으나· 신룡과의 비무· 거기서 사고를 친 게 좀 컸다·
그 탓에 심판이 저토록 긴장하고 있는 것이겠지·
‘좀 미안하긴 한데·’
뭐 어쩌겠어·
월급 받아먹고 살려면 뭐든 해야지·
내가 해봐서 아는데 무림맹에서 주는 돈이 그렇게 적지는 않았다·
완장을 보니 거의 부대주수준인 인물 같으니, 아마 상당히 많이 받고 있을 것이다·
그럼 돈값 해야지·
‘그리고·’
저 심판이 이토록 긴장하고 있는 또 다른 이유·
장본인을 보기 위해 시선을 살짝 틀었다·
고오오오·
팔척에 가까운 거한이 보인다·
쫙 벌어진 어깨와 묵직한 근육이 꽉 들어 찬 육신·
도왕 팽저우였다·
그는 뒷짐을 진 채 날 바라보고 있었는데·
나는 그에게서 저번과 다른 점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저 아저씨· 이제 기운으로 장난질 안 치네?’
저번엔 온갖 기운을 뿜어대며 같잖은 짓을 벌이더니·
이번엔 고요하기만 하다·
은은히 뿜어지는 강자의 투기는 여전했지만, 저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니 넘어가고·
넘치듯 흘리던 기운은 모두 수습해 품 안에 가둬두고 있었다·
그래· 저러니 얼마나 보기 좋아·
쓸데없는 짓 안 하니 보기는 참 좋았다·
다만·
-이번엔 누가 이길까·
-글쎄· 아무리 그래도 도왕이 아니겠나·
-어허, 소염라는 그 신룡을 이긴 인물일세· 설마 도왕에게 지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도왕은 육좌의 일인이오· 그런 이가 후기지수급에게 진다는 건 좀····
-그럼 투룡은 후기지수가 아니었다는 게요?
-···그거야 투룡은 패존의····
온갖 소음이 귀를 찌르고 들어온다·
이를 하나씩 듣고 있자니 절로 헛웃음이 나왔다·
‘처참하기 짝이 없네·’
어쩌다 도왕이 저 지경이 됐을까·
나와 싸운다는 데 승산을 알 수 없을 거라는 얘기가 나오다니·
이는 내 가치가 폭등한 탓도 있지만, 도왕의 가치가 폭락한 탓이 크다·
‘쯧·’
그걸 알고 있어서인지 도왕의 표정이 계속해서 구겨지는 게 보였다·
안타깝긴 한데·
뭐 어쩌겠어· 저리 두들겨 팬 패존을 탓해야지·
게다가· 솔직히 지금 사람들의 관심사는 이 비무의 승패도 있으나· 다른 곳에 더 쏠려있다고 봐도 무방했다·
그건 바로, 나와 투룡이 싸우면 누가 이길까·
이게 바로 많은 이들이 현재 궁금해하는 부분이다·
도왕에게 이기고 패배한 투룡·
최연소 화경이라던 신룡을 이기고 올라온 소염라·
비무가 틀어져 둘은 끝내 붙지 못하게 되었으니, 더욱 이를 궁금해하는 듯했다·
둘 중 강자는 누구일까·
누가 과연 후기지수급의 지존인가·
‘후·’
우습잖은 등수놀음이 지겹기 짝이 없다·
그게 무엇이 그리 중요할까·
‘빌어먹을 노인네·’
짜증을 담아 인상을 찌푸렸다·
저런 말들이 이토록 관심을 끄는 걸 보면, 패존이 보인 모습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다는 건데·
‘덕분에 일이 꼬였어·’
너무 뛰어난 모습을 보인 탓에 내 입장이 귀찮아졌다·
심지어 내상의 여파라한들, 패존이 기권을 해버린 탓에 더 그렇다·
끝내 알지 못하게 되는 것 아닌가·
소염라와 투룡 중 누가 강한지· 이를 사람들은 끝까지 모를 일이었고·
이렇게 되면 관심이 이쪽에 끌리게 된다·
그게 아쉬웠다·
‘가능하면 전부 받아냈어야 했는데·’
패존과 반을 나눠 가진 느낌이 든다·
‘설마, 노리고 한 건가·’
박수 칠 때 떠나 온갖 찬양을 받는 투룡·
패존은 이를 혹여 예상한 행동일까·
‘···혹시 모르지·’
의외로 능글맞은 구석이 가득한 인간이다·
다 계산하고 했을지 모를 일이었다·
문제는· 이를 따지고 들 수도 없다는 것·
‘아쉽지만 어쩌겠어·’
이미 엎질러진 물이며, 또한·
‘어느 정도 해결할 방법은 있으니·’
그나마 다행인 부분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까딱이고 있을 무렵·
“어딜 보는 거지?”
도왕의 목소리에 시선을 고쳐잡는다·
“지금, 날 앞에 두고 다른 생각이라도 하고있는 게냐·”
“아, 죄송합니다· 잠깐 잡념이 들었네요·”
솔직하게 사과했다·
하지만, 도왕의 인상은 전혀 펴지질 않는다·
“···정녕 오만하기 짝이 없구나· 하기야· 그놈의 아들이니 닮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
“음·”
중지랑 약지 손톱 하나씩·
속으로 단어를 되새기며 말을 내뱉었다·
“자식이 부모를 닮는 거야 나름 당연한 일이긴 합니다만···· 그런 입장에서 팽 가주님은 참 다행이지요·”
“뭐?”
“아드님께서 팽 가주님을 안 닮았잖습니까· 여러 의미로· 그게 정말 다행인 일 아닙니까?”
솔직히 내 입장에선 팽우진이 조금 더 나은 수준이지만, 지금은 상관 없겠지·
웃으며 말을 내뱉자 아저씨의 미간이 더 없이 일그러졌다·
“아무래도 그 작은 입을 찢어주어야 네가 조용해질 것 같구나·”
“그것 참 무서운 말이네요·”
“세상이 널 드높여주니 다 네 것 같더냐? 참으로 기고만장하도다·”
쿵·
도왕의 태도 끝이 바닥에 떨어진다·
다시 봐도 어마어마한 크기였다·
“착각하지 말라· 투룡때는 실수를 범했으나· 네겐 그와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
“으음····”
말을 듣고 볼을 긁적였다·
“팽 가주께선 자꾸 모른 척을 하고 계시네요·”
“모른 척이라고?”
“왜 자꾸 기적이라 생각하십니까· 정작 본인이 제일 잘 알고 계실 텐데·”
내 말에 도왕의 눈꼬리가 미세하게 떨리는 게 보였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눈치챈 모양이다·
“그냥 개 발린 걸 왜 자꾸 포장하십니까· 그러면 마음이 좀 편해요?”
“···!”
우드드득·
끝내 도왕의 입가에서 거친 소리가 들려왔다·
“졸라 발렸잖아요· 그때 머리를 좀 강하게 맞으셨나? 왜 자꾸 이상한 소리를 하실까·”
말을 뱉으며 주변을 살폈다·
동시에 소리에 내기를 입혔다·
전음은 아니다· 단순히 소리가 퍼지는 걸 막아내는 정도였다·
“꼴값 떨지 말고 검이나 똑바로 들지 약해 빠져가지고 왜 자꾸 주둥이를 놀려요· 그러다 얼마나 처맞으려고·”
“이 새끼가···!”
끼기기긱—!!
당장이라도 달려들 듯 도왕의 근육이 팽창한다·
그 모습을 보면서도 내 눈은 여전히 사방을 둘러보고 있었다·
‘시간은···· 대충 일각 정도·’
남은 시간이 그 정도였다· 생각을 떠올리며 눈을 뒤로 보냈다·
중원의 후원을 보낸 대상단과 지고한 이들이 모여있을 전각이 있는 위치다·
거길 살짝 살펴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네·’
저 정도면 괜찮다·
그리 판단하곤 심판을 쳐다봤다·
“준비가 된 것 같은데· 슬슬 시작하시죠·”
“···예···?”
내 말에 심판이 당황한 기색을 터트린다·
도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건 심판도 잘 아는 듯했다·
“상관없으니까 시작해도 됩니다·”
손을 저으며 말했다·
이 말을 뱉으면서도 도왕의 투기는 더 짙어진다·
“맹세하마·”
내 태도가 어지간히 마음에 안 드는지, 도왕이 도를 잡는 손이 거칠게 울기 시작했다·
“내 이름을 걸고· 네놈만큼은 이 자리에서 짓밟아주마·”
그 말을 듣고 피식 웃었다·
“정말 자주 들어본 말 중 하나인데···· 한 번도 성공한 사람을 본 적 없는 얘기네요·”
보통 나한테 저리 말한 놈들은 둘 중 하나로 끝났다·
되레 내 발아래 깔려있거나·
내 손에 목이 뽑혀 죽음을 맞이하고는 했다·
그럼 도왕은 어느 쪽이 될까·
“기대는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감히 바라건대·”
꾸욱·
손을 몇 번 쥐었다 피길 반복했다· 그러다·
“일각·”
콱·
주먹을 말아쥐며 말했다·
“딱 그 정도만 좀 버텨주십시오·”
도왕에게 바라는 건 그게 끝이었다·
****************
도왕의 후기지수 시절·
이건 그가 지금의 별호가 아닌 묵룡(墨龍)이라 불릴 시절의 일이다·
지금은 육룡삼봉이라 불리나, 당시에는 봉황은 두 명뿐이며 용이 다섯 시절·
오룡이봉(五龍二鳳)·
팽저우가 그곳에 속해있던 날의 얘기다·
때는 가을이 아닌 겨울·
한창 용봉지회를 하고 있을 시기였다·
그때의 묵룡은 지금보다 화가 많던 시절이다·
당대 도왕이 애지중지 키워 철이 덜 들었을 시기기도 했고· 가진바 재능에 관해 자격지심이 있어 가장 엇나가고 있을 시기기도 했다·
사대세가라 불리는 명가의 지원을 받으니, 용에 올라올 만큼의 실력은 지니고 있었으나· 그것도 간신히 올랐을 뿐인 자리·
뒤에서 치고 오려는 중소가문의 후기지수들·
앞에선 절대 넘을 수 없게 막아서고 있는 명가의 혈족들·
모든 게 팽저우를 몰아붙이고 있을 때·
그날은 하필 팽저우가 검룡 남궁진에게 처참히 패한 다음의 날이었다·
-이 씨이이이발···!!!
콰아앙–!!
팽저우가 거친 욕설을 뱉으며 탁상을 부숴버렸다·
-내가···내가 고작 그깟 기생오라비에게–!!!
검룡에게 패하며 용봉지회에서 떨어진 일·
그 일을 떠올리며 팽저우가 연신 분노를 토해냈다·
객잔의 분위기는 서늘했다·
다른 이들은 겁에 질려 몸을 움츠리고 있었고· 무인들은 섣불리 나서지를 못했다·
팽저우는 후기지수였지만 팽가의 차기 소가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 해를 가하면 당대 도왕이 어찌 나올지 모른다·
그 탓에 아무도 팽저우를 건들지 못했다·
도왕이 팽저우를 너무나 아낀다는 건 중원에 퍼다 한 말이었으니까·
-내가, 내가 뭐가 부족해서–!!
쾅-! 쨍그랑–!!
기억이 괴롭다·
마신 술병은 수를 셀 수 없으나, 꼴에 무인인지라 잘 취하지도 않았다·
술병이 바닥에 깨지고 나뒹굴었다·
팽저우의 머릿속은 저 술병들처럼 난잡했다·
검룡의 제왕검형에 제압당해 바닥을 구르던 제 모습이 떠올라서다·
-으아아아아–!!
쾅-! 쾅-!!
이것저것을 다 부수던 와중·
팽저우의 눈에 무언가 들어온다·
이미 제 옆에서 아양을 떨던 여인들은 전부 도망친 직후·
모두가 자신에게 겁을 먹거나 껄끄러워하며 벽에 붙어있을 시점에·
딱 한 명·
객잔에서 딱 한 명만이 아무렇지 않게 밥을 먹고 있었다·
작은 소면을 시켜놓고 소리소문없이 먹는다·
오죽 조용하면 있는 줄도 몰랐다·
꿀꺽·
미세한 목 넘김 소리만 울려 퍼질 때·
-···뭐야 네놈·
팽저우는 그게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에게 시비를 걸었다·
-이 상황에 목구멍이 그게 들어가? 들어가냐고!
억지를 부리며 팽저우가 술병을 던졌다·
하지만·
휙-! 툭·
식사를 하던 이는 날아가던 술병을 붙잡더니 아무렇지 않게 제 탁상에 올려놓는다·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그 행동에 팽저우의 인상이 구겨지던 찰나·
상대가 팽저우를 쳐다봤다·
-···!
팽저우가 상대를 확인하고 몸을 살짝 떨었다·
왜인지는 모르겠다· 청년의 눈을 본 순간 몸이 제멋대로 굳어버렸다·
나이는 자신과 비슷한 또래였고 검은 머리칼에 지독히도 붉은 눈을 보유한 인물·
아는 얼굴이었다·
-하···· 누군가 했더니· 네놈이로구나·
구가의 혈족이라고 했던가·
이번 용봉지회에 처음 나타난 혈족이었고· 친선비무제에서 좋은 성적을 보여주고 있는 놈이었다·
듣기론 무당의 소룡(小龍)· 그 재수 없는 놈을 운 좋게 이겼다지?
이름이 아마도·
-구철···구철형?
-구철운·
이름을 말하는 목소리에 팽우진이 혀를 찬다·
목소리가 굵고 무게감이 장난이 아니었다·
-그래, 구철운· 그 빌어먹을 새끼· 너 뭐냐고·
신경질적인 말에 구철운이 고개를 까딱이며 젓가락을 보여준다·
-보면 모르겠나· 식사를 하고 있다·
-누가 내가 그딴 걸 묻는 줄 알아!?
쿵-! 쿵-! 팽저우가 구철운에게 다가간다·
그리곤 탁상을 움켜잡았다· 그대로 뒤집어엎으려 하지만·
끽·
-···!?
탁상이 들리질 않았다·
오히려 힘을 준 팽저우의 손이 떨리기만 할 뿐이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팽저우가 당황스레 살피니 그제야 알 수 있었다·
구철운이란 놈의 손이 탁상 위에 올려져 있었다·
설마 저것 때문이란 건가?
믿을 수 없었다·
이러면 마치 자신이 힘에서 밀리는 것 같지 않은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건 몰라도 힘만큼은 후기지수 중 최고가 자신이었다·
고작 이딴 놈에게 자신이 밀릴 리 없····
화악-!
-헙!?
탁상이 갑작스레 들리며 하늘로 솟구친다·
반동에 자세가 무너진 팽저우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고·
후두둑-!
소면이 팽저우의 머리에 쏟아졌다·
쾅-! 콰드득-!
이어 탁상이 바닥에 쓰러지며 부서진다·
-이런·
그 모습에 구철운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아까운 음식을 잃었군· 오랜만에 입에 맞는 것이었건만·
아쉽다는 듯 내뱉는 건 그게 끝이었다·
-···하···하하하···!!
이에 팽저우가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에 주변에 있는 이들이 질겁을 표했다·
누가 봐도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놈···내가, 내가 누군지 알고 지금 이러는 게냐! 정말 죽고 싶은 건가 나는 하북팽가의···!
-관심 없다·
구철운의 말에 팽저우의 입이 일순 닫힌다·
-너 이 새끼···?
끼이익·
구철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걸 보며 팽저우의 눈이 커졌다·
크다·
어쩌면 자신보다 조금 더 클지 모르는 거대한 체구였다·
-네 이름 따윈 관심 없다·
쿵·
심장이 크게 뛰었다·
구철운의 눈을 본 순간부터다·
내려다보는 붉은 적안·
그 눈을 마주한 찰나, 왠지 모르게 팽저우는 제 몸이 움츠러들고 있음을 느꼈다·
-뭐, 뭐라···고?
관심이 없다고?
-이 잡스러운 새끼가 지금 감히 말을—!!
콰악-!
-꺽!?
팽저우가 발끈하며 몸을 놀리려 하지만·
갑자기 뻗어온 팔이 팽저우의 양볼을 움켜잡더니 그대로 벌린다·
거대한 손은 팽저우의 큰 얼굴조차 한 손으로 잡아냈고·
다른 한 손을 입속에 집어넣었다·
처음엔 어떻게든 발버둥을 치려 했다·
한데 이상하게 몸이 움직여지질 않았다·
혈도를 잡힌 것도 아니다· 그저 얼굴을 잡혔을 뿐인데 몸이 딱딱히 굳어버렸다·
훗날 당시 살기에 짓눌렸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지만, 그때는 이미 늦었을 때였다·
그때의 팽저우는·
구철운이 내뿜던 살기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우지직-!
-끄럭···!? 끄으으윽!!
어금니가 뽑혀 나간다·
그때에도 아무런 반항을 못 했다·
이후 어금니가 뽑혀 나간 자리에 손가락이 닿았다·
그리고는·
치이이이익—!!!
-꺼으어어어어어어—!!!!
열기가 그의 상처를 지져냈다·
팽저우가 고통에 비명을 내지른다·
반항도 하지 못한 채 고통에 몸부림쳤다·
한참을 그렇게 발버둥 치고서야 구철운은 팽저우를 놓아줬고·
휙! 툭-!
지니고 있던 어금니를 그에게 던진 후 침에 젖은 손을 제 옷에 대충 닦아내더라·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말이다·
-이걸로 소면값은 받은 거로 하지·
덤덤히 꺼내드는 말·
그 말에 팽저우가 발작을 일으켰다·
-허그···끄으···너···· 이···· 너 이 새···끼····
팽저우가 헛숨과 함께 욕을 내뱉자 구철운이 가까이 다가가 팽저우와 눈을 마주한다
-왜·
-···!
-뭔가 더 할 말이 있나?
-···끄···으····
-해봐라· 경청하지·
욕을 내뱉고 싶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내가 팽가의 팽저우라고·
그렇게 소리치고 놈 위에 군림하고 싶었으나·
팽저우는 더 이상 입을 놀리지 못했다·
그의 본능이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말· 더 해보라고 했다·
더 내뱉으면 죽을지 모른다·
아니, 분명 죽을 것이다·
구철운의 눈과 팽저우의 본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끅···끄윽·
자존심과 분노가 목 끝까지 차오르지만, 끝내 팽저우가 입을 다물었다·
그의 자존심은 목숨보다 중하지 못했다·
-흐으···흐····
하여, 말 대신 침음만 흘리던 팽저우·
구철운은 그런 그를 잠시 지켜보더니 이내 몸을 다시 일으켰다·
-이름을 듣지 않길 잘했군·
서서히 멀어지던 찰나· 팽저우는 분명히 들을 수 있었다·
-기억할 가치가 없는 놈이었어·
구철운이 팽저우게 하는 속삭임을 말이다·
짓밟힌 자존심에 팽저우가 이를 갈지만, 그는 구철운이 객잔을 나갈 때까지 한마디도 뱉지 못했다·
까드드득·
주먹을 말아쥐었다·
다짐했다·
저 새끼만큼은 죽인다·
어떻게든 죽여버릴 것이다·
세가에 돌아가 가주님의 힘을 빌리든, 자신이 직접 나서든·
이 치욕을 잊지 않고 언젠가는 필히 처단하리라·
그렇게 마음을 먹었건만·
그런 팽저우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구철운은 너무나 먼 곳으로 날아올라 버렸으니 말이다·
‘구철운····’
가슴에 품은 원망의 칼날·
그 원망은 제 딸을 이용해 약혼으로 수를 쓰려 했을 지경이었다·
그마저 일이 엉켜 실패하게 됐지만·
팽저우는 한시도 그때를 잊은 적 없다·
그렇기에 더 그랬다·
-하북팽가 팽저우 대 산서구가 구양천·
앞에 보인다·
그 망할 놈과 닮은 어린 아해가·
그때의 그 눈을 가진 엿 같은 놈의 자식이·
심지어 아비를 닮아 빛나는 재능까지 겸비한 빌어먹을 핏줄·
외모는 비록 깊게 닮지 못했을지언정·
특유의 분위기가 팽저우의 감정을 자극했다·
‘바닥에 기기라도 했다면, 조금은 넘어가 줬을 것을·’
제 아비를 닮아서인지 오만하고 역겨운 성격이었다·
팽가의 가주인 자신에게 대들 만큼 주제를 모르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든다·
투룡이란 잡놈도·
저 구철운의 자식도·
꾸우욱·
-시작-!
부숴버릴 것이다·
어떻게든 찢어버려야겠다·
묵철(黙鐵)·
기이이이잉—!!!
태도에 검은 기운이 뭉쳐 강화된다·
이를 움켜잡은 도왕이 온 힘을 다 해 도약했다·
두 사람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지고·
온갖 감정이 담긴 태도가 구양천을 향해 쏟아지던 순간·
깡-!
휘리리릭-!!
쿵-!
“···어···?”
팽저우는 생각했다·
어쩐지 손이 가볍다고 말이다·
눈알이 굴러간다·
제 오른손을 확인했다·
없었다· 분명 잡혀 있어야 할 태도가 보이질 않는다·
어디로 갔지? 갑자기 저게 어디로····
“어휴 씨발· 진짜·”
귓가에 욕이 파고들고·
휘이익-!
일순 도왕의 시야가 격변했다·
콰드득-!
“꺼헉!”
안면이 발에 짓밟혀 비무대를 뚫고 파묻힌다·
“끄아아아악!!”
격통에 도왕에게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