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왕이시여!”
“성왕님!! 여기 한 번만 봐주세요!!”
“꺄악! 진짜 봐주셨어! 눈매 무서워!”
“···”
찌를듯한 소리와 온갖 잡음이 합쳐서 머리가 다 아플 지경이다·
“성왕님!!”
“성왕님–!! 손 한번만 잡아주세요!”
사방을 둘러싼 사람들· 열기를 띠며 내 주변을 휙 감싸더니 연신 환호를 보내고 있었다·
그 환호의 수준은 어지간히 격렬했는데·
“성왕님–!!”
“아니, 아니 좀 지나가야 하니까 좀 비켜주실····”
“우리의 영웅!”
“옘병·”
직접적으로 만지진 않고 있었지만, 인원이 얼마나 많은지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맹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를 일이다·
힘으로 밀거나 뿌리치고 날아갈까? 일순 그런 생각이 스치지만·
“성왕님···!! 그땐 정말 감사했습니다!”
“덕분에 저희 어머니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
고맙다고 말하며 다가온 이들을 보며 쉽사리 손이 움직이질 않았다·
‘쯧·’
어떻게 해야 할까· 깊게 고민하려던 찰나·
“성왕 오빠!”
오빠···?
예상치 못한 칭호에 시선을 살짝 옮겨보니 가까운 위치에서 어린 여아가 손을 흔드는 게 보인다·
아비로 보이는 이의 목마를 타고 있는 모습이었다·
“오빠 안녕!”
“이 녀석···! 성왕 님께 그게 무슨 버릇없는 말이야···!”
여아의 말투에 아비가 식겁해 말리지만, 아이는 그 나이 특유의 해맑음을 보여주며 웃을 뿐이었다·
누구더라·
아, 생각났다·
지나가다 구해준 부녀인 모양이다·
기억에 남아있었다·
그때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야, 아빠 말 잘 듣고 있어?”
“네!”
“그래, 앞으로도 잘 듣고 살아·”
난 지지리도 안 듣기 했지만 말이야·
그리 멀지 않은 위치인지라 손을 뻗었다· 작은 머리통 위로 손을 얹어 몇 번 쓰다듬어 줬다·
이것 참 신기하네·
‘날 보고 안 우는 애가 있을 줄이야·’
어린 애들은 나랑 눈을 마주치면 무조건 울었는데· 얘는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손길에 얌전히 있는 모양새가 퍽 누군가를 닮았다·
마치 어릴 적 위설아를 보는 것 같았다·
‘그때보단 더 어린 애지만····’
상관없다는 듯 몇 번 더 쓰다듬고 있으니, 아비 쪽이 내게 말을 꺼내 든다·
“그땐 정말···감사했습니다· 성왕 대협·”
“으음···예····”
머쓱하게 웃었다· 저 빌어먹을 별호가 아직 귀게 안 익혀진다·
예상하기로 아마 평생 안 익힐 것이다·
진룡도 그렇고 소염라도 그랬으니까·
“···감사드립니다· 대협이 아니셨더라면· 그때 저와 제 딸은····”
“됐어요· 그냥 지나가다가 그런 건데요 뭘·”
기감을 퍼트려 수두룩히 많은 이들을 수습해야 했다·
그때도 말했듯 구한다는 개념이 아니다· 내가 벌인 일에 대한 수습이었다·
“아닙니다· 구해주신 것도 모자라 기억까지 해주고 계시지 않습니까·”
사내의 말에 헛웃음을 터트려야 했다·
“기억하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말과 동시에 손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주름이 그득한 노인이었다·
“저쪽 창은 약방에 계시던 어르신 맞죠?”
“예···? 아, 예···맞, 맞습니다요·”
노인이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화들짝 놀라 대답한다·
그 대답을 듣고 손으로 다른 이를 가리켰다·
“저쪽은···· 상전상단 건물 아래쪽에 있던 아주머니고· 저 옆에는 풍원 대장간에서 본 아저씨···· 그리고····”
한 명 한 명·
기억 나는 대로 콕 짚어 말을 해주는데·
“저 어르신은····”
말하다 말고 손을 굳혔다· 하면 할수록 뭔가 미묘한 분위기가 느껴진 탓이다·
“···뭐야· 뭐예요?”
왜 다 저런 표정일까?
“···다···기억하고 계시는군요·”
뭔가 감동 받은 얼굴들이다·
그걸 보며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왜 저러는 거야 진짜·
‘봤으니까 기억하지·’
정확히 기억할 정도는 아니고 기억나는 인물들만 짚은 거구만· 그게 저런 반응이 나올 정도인가?
“···역시···대협께선·”
감동 받은 얼굴로 뭔가 더 하려 하기에 즉시 손을 휘저었다·
“아, 됐고···! 다 잘들 계신 것 같으니· 이제 비키십쇼· 저 가야 합니····”
“대협의 저희의 희망입니다···!”
“성왕님···!!”
“진짜 옘병이네·”
아무래도 일이 끝날 것 같지는 않다·
하여, 끝내 내기를 조금 사용해 벗어나야 했다·
‘몸도 안 좋은데·’
쯧! 짧게 혀를 차며 그대로 도약하려던 순간·
“비키시오-!”
갑자기 뒤편에서 큰 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비키시오!”
그 목소리에 모두의 시선이 향했다·
“윽!”
힘에 밀리듯 사람들이 밀려나기 시작하고· 강제로 벌어진 틈새 속, 한 무리가 나타난다·
하늘색 무복에 흰 자수가 엮인 옷· 무림맹의 인원이라는 걸 알려주는 행색이었다·
원래였으면 다들 알아서 거리를 벌리거나 보기만 해도 좋아할 모습이었을 텐데·
“···맹이잖아?”
“무림맹의 사람들이야·”
무인에게 길을 터주는 이들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원망하거나 혹은 경멸하거나 여전히 좋은 표정인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의 상태는 그렇지 못했다·
그걸 보며 고개를 까딱였다·
‘생각보다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불신하길 바라긴 했는데· 그 수준이 내 예상보다 훨씬 높은 모양이다·
그런 분위기를 맹의 인원도 느꼈는지 인상을 찌푸린 채 인파에게 소리친다·
“현재 이곳은 복구 예정 구역이오· 민간인은 출입을 금하고 있다고 일렀을 터· 어찌 여기 모여있는 게요!”
주변을 둘러봤다· 확실히 사내의 말마따나 개판인 상황이다·
나야 일단 나오고 보느라 급히 나온 것이지만, 건물이 무너지고 잔해가 가득한 위치였다·
이런 상황에 내게 이만큼 인파가 몰린 건 확실히 이상한 일이기야 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많은 걸까·
그에 의구심이 들 즈음· 누군가 무인의 말에 대답하듯 소리쳤다·
“하남이 전부 맹의 것입니까!?”
“···뭐요?”
외침 소리에 무인이 인상을 구긴다· 그건 마치, 감히 내게 언성을 높이냐는 듯한 표정이었다·
하나, 다른 이들은 무인의 얼굴이 어떻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무얼 했다고 오가는 걸 함부로 금한다는 게요·”
“맞소! 복구를 해도 우리가 할 거요· 어차피 제대로 돕지도 않을 거· 그냥 알아서 하겠단 말이요·”
말을 듣고 깨달았다·
뭘 하려고 모여있었나 했더니만·
‘제 손으로 현을 복구하려 한 건가?’
이 개판 난 상황을 어떻게 하려고 그러는 걸까·
이해가 잘 가진 않으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맹에 관한 믿음이 현저히 적어졌다·’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현 하남에서 맹을 보는 시선이 상당히 나빠진 것 같았다·
“이···!”
이제 무인이 화를 내려고 하지만·
“용무가 뭡니까?”
그보다 먼저 내가 사내에게 말을 걸었고·
“네놈은 또 뭔···!”
즉시 사내가 내 쪽으로 목소리를 높이려 하지만, 눈이 마주치자 입을 꾹 다문다·
내가 누군지 확실히 아는 모양이다·
그렇다는 말은·
“보아하니 나한테 용건이 있는 것 같은데· 맞습니까?”
고갤 까딱이며 말하자 사람들이 터준 길로 사내가 조심스레 다가온다·
다가오는 순간에도 그에게 꽂히는 인파의 시선은 사납기 짝이 없었다·
이내 코앞까지 다가온 사내는 내게 고개를 살짝 숙이며 입을 연다·
“···청룡대의 부대주, 기문석이 칠좌의 일인· 성왕을 뵙습니다·”
깊게 숙인 고개·
숙이는 와중 불만스러움이 가득 느껴지지만, 예는 확실했다·
하여 내가 기문석의 정수리를 보며 대답해 줬다·
“오냐·”
“···!”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기문석이 고개를 바짝 세운다·
그 눈엔 어처구니없음이 가득 느껴진다· 그걸 확인하며 씨익 웃어주었다·
“농입니다· 농· 너무 굳어 보이길래 분위기나 풀어볼까 했습니다· 기분이 거슬렸으면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잔뜩 거슬린 게 보이지만, 기문석은 할 말을 뱉을 수 없는 듯 그저 고개를 숙일 뿐이다·
그런 기문석을 보며 잠시 생각을 떠올렸다·
‘기문석이라·’
누구였지· 어디서 들어본 이름인데?
애써 떠올리려 해보지만, 당장 기억나는 건 없었다·
아무튼·
“나한테 무슨 볼일입니까?”
나는 기문석을 보며 물었고·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든다·
“모시러 왔습니다·”
“나를?”
“예···· 전서에 미리 말씀을 올려놓았었는데· 혹 받지 못하셨는지요·”
“음?”
그걸 듣고 품에서 서찰을 끄집어냈다·
다시 펼쳐 확인해 보는데·
“아, 그러네·”
확실히 적혀 있었다·
금일 이 시간쯤 직접 모시러 가겠다는 언질이 말이다·
이걸 몰랐네·
‘알았으면 급하게 안 나왔을 텐데·’
워낙 상황이 다급했던지라 일단 나오고 봤는데· 알고보니 그러지 않았어도 됐던 모양이다·
‘하기야 이상하긴 했어·’
맹에서 출석하라는 서찰이 온 건 맞으나 그걸 냅다 두 발로 오라고 하는 것 자체가 미묘했다·
‘별호까지 내렸는데 대접이 개판인 걸 봐선, 나 엿 먹으라는 건 줄 알았는데·’
의외로 챙겨줄 건 챙겨주려던 모양이다·
그래서 더 아쉬웠다·
‘깽팔칠 명분이 하나 줄었잖아·’
이에 말꼬리를 잡아 한 번 터트릴까 싶었는데· 안타깝게도 맹은 무능하긴 해도 막나가지는 않았다·
“···아무쪼록 성왕께서 이번 맹으로 향하는 일정은 저희가 모시겠습니다·”
“음·”
잠깐 고민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고민하고 말 것도 없었다·
어차피 가야 했던 일이기도 하고· 직접 마중와주니 편한 일이기도 했다·
오히려 좋지·
안 그래도 어떻게 벗어날까 고민해야 했으니 말이다·
“예· 그럼 가시죠·”
내가 떠나겠다고 하니, 주변에선 아쉬운 기색이 느껴진다·
진짜 왜 아쉬워하는 걸까 싶다마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맹에 가는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지난 습격에 관해 맹에서 공식적인 조사 요청을 보내왔기 때문이다·
******************
청룡대의 안내를 받아 맹에 도착했다·
맹 내부는 지난날과 크게 다를 바는 없었지만, 안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그때와 사뭇 달랐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습격이 있었고, 그 습격에 제대로 된 대응도 하지 못했을뿐더러, 현재 민심도 안 좋은 시점이었으니까·
직접적인 재산 피해는 적을 터이나, 근본적으로 가장 피해 입은 건 무림맹이 맞을 것이었다·
끼이익·
의자가 살짝 뒤로 밀려나고·
“앉으시지요·”
사내의 말에 아무렇지 않게 의자 위로 착석했다·
나는 맹의 내부·
그 안에서도 예전에 왔던 취조실 쪽에 앉아 있었다·
그때와 상황이 다른 게 있다면, 대우의 차이가 상당히 다르달까·
분명 취조실인데 탁상 위에는 찻잔과 값비싸 보이는 씹을 거리가 올라와 있다·
방에도 등불을 켜놓기까지 했으니, 말만 취조실일 뿐· 그냥 손님 접대용 방이라 봐도 무방하리라·
“···잠시 기다리고 계시면 대주께서 오실 겁니다·”
기문석의 말을 듣고 앞에 놓인 약과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아침부터 오게 만든 것도 모자라, 기다리게까지 만드네· 재밌네요?”
“···”
“내가 쓸데없는 기 싸움은 싫어하는데···· 좀 유치하네· 아, 이것도 농담입니다·”
누가 봐도 농담이 아닌 말· 말을 들은 기문석이 마른침을 삼키는 게 보인다·
그걸 보며 조금 더 툭툭 쳐볼까 싶던 차에·
끼익-!
방문이 열리며 안으로 누군가 들어온다·
저번에 봤던 사내다·
‘일청검·’
전생에 장성연의 오른팔이었던 남자·
청룡대주 일청검 장성명·
바로 그였다·
“반갑습니다·”
별다른 말 없이 나타나 의자에 착석하는 일청검· 나는 턱을 괴고선 그를 보며 물었다·
“늦으셨네요?”
“예, 앞에 일정이 조금 있었던지라·”
내 눈을 보지 않은 채 앞에 쌓인 종이만을 정리하는 일청검·
그걸 가만히 지켜보다 말했다·
“그럼 사과부터 하셔야지요·”
“···”
우뚝·
말을 들은 일청검의 손이 멈춘다·
“늦었는데 사과도 없는 건 좀 너무하지 않습니까?”
웃으며 말을 이어주자 일청검의 눈매가 즉시 좁혀진다·
과연 뭐라고 말할까· 흥미롭게 지켜보지만·
“기다리게 만들어 죄송합니다·”
“···”
일청검은 시비에 걸려들지 않더라·
이 부분은 상당히 아쉬웠다·
다른 수를 좀 더 써볼까? 마음이 동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그래서, 날 왜 부른 겁니까?”
일단은 본론부터 들어가기로 했다·
여기서 시간을 더 써봐야 좋은 건 없었기 때문이다·
“이유에 관해 적힌 부분은 읽어보셨는지요·”
“읽긴 했습니다· 취조받으러 오라고 했잖습니까·”
“···취조보다는···· 일을 보다 확실히 확인하고자····”
“그게 취조지 뭘· 사건에 엮여있는지 아닌지 확인해보겠다· 그거 아닙니까?”
미사여구를 아무리 붙여봐야 결론은 그거였다·
습격이 발생하고 며칠·
무림맹이 그 안에 먼저 한 일은, 당시 맹 소속이 아닌 채 괴한은 물론, 마물과 싸웠던 이들을 불러 취조하는 일이었다·
사건의 직접적인 개입자들·
명분은 상황의 세밀한 확인이라고 하는데···실상 의심을 기반으로 한 취조라는 건 누가봐도 알 수 있는 얘기였다·
“뼈 빠지게 구해놨더니만, 의심하면서 취조까지 받다니· 진짜 기분 날아갈 것 같네요·”
“···다시 말씀드리나, 이는 취조라기 보다는····”
“됐으니까· 할 거 합시다· 빨리 하고 밥 먹으러 갈 겁니다·”
꾸욱·
말을 듣던 일청검의 손에 힘이 깃든다·
화를 참는 것 같은 느낌이다· 다만, 이번에도 역시 주먹이 날아오는 일은 없었다·
“···예, 성왕의 말씀이 그러하니· 곧바로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속으로 한숨을 몇 번이나 내쉬었을까·
그게 문득 궁금하던 찰나·
“성왕께 여쭙고 싶은 게 있습니다·”
“예·”
“이번 맹에서 새로운 대대를 창설할 예정입니다·”
“응?”
말을 듣자마자 눈썹을 찡그렸다·
정말 예상치 못한 얘기였다·
“갑자기요?”
“조사를 시작하기 전, 우선 이 일부터 말씀드리는 게 나을 것 같았습니다·”
“···대대라·”
“예· 하여, 새로운 대대를 창설하기 전· 성왕께 우선 제안 드립니다·”
고민하듯 입술을 매만지니, 일청검이 이에 말을 내뱉는다·
“이후 창설될 부대의 대주직을 맡아주실····”
“안 합니다·”
“예?”
말도 끝나기 전에 대답을 내뱉었다·
“안 할 거라구요·”
즉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