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86
“그 말이 정녕 사실이오?”
범동의 말에 일청검이 되묻는다·
성왕이 내상을 입은 상태다·
그가 가져온 정보에 귀가 솔깃한다·
하나·
“예 사실입니다·”
“그걸 입증할 증거는···?”
솔깃한 얘기인 것과 달리 입증할 정보가 부족하다·
그런 말에 범동이 답한다·
“청룡대주께선 성왕이 머무는 공간 주변에 신의가 있다는 걸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소·”
일청검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화상단 측에서 신의를 손님으로 두고 있으며 그가 하남에 머물고 있음은 이미 유명한 사실이다·
이를 알게 됐을 무렵 맹 측에선 곧장 신의에 연락을 보내기도 했다·
이유는 당연히 주거지를 맹으로 잡아주길 바라며 했던 행위지만···
신의는 맹의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아니 단호히라고 하기엔 백화상단 측에 말을 물으라고 하긴 했으나·
이는 거절과 다를 바 없다·
어느 상단이 신의를 받아놓고 다른 곳으로 넘겨주겠는가·
하물며 백화상단은 친맹이라 보기엔 다소 애매한 곳·
더욱이 받아줄 리 만무했고· 실제로도 그랬다·
‘그리 신의를 잡아둘 것이면 차라리 넘기는 게 나을 것을·’
신의가 중원에서 지닌 가치가 얼마인데· 신의가 근방에 떴다는 소식만으로 상단 몇 개가 움직이고 문파와 세가가 움직일지 모를 일이었다·
백화상단은 그런 신의를 보유하고도 별다른 행동을 벌이지 않았다·
정말 말 그대로 처소를 내어줬고· 그걸로 끝이라는 말이다·
이에 관해서 맹이 생각하기로·
‘신의를 처소에 둔 이유는 상단 측 누군가의 건강이 상당히 좋지 않아서·’
라는 결과를 내렸으나·
정작 밝혀진 것은 전무하다·
신의가 종종 다른 이들을 치료하고 있다는 소식은 들려오고 있지만 그걸 이용해 뭔가 하고 있다는 정보는 없었다·
이에 정보를 알고자 하더라도·
‘접근이 힘들다·’
신의가 위치한 곳으로 진입하기엔 난이도가 월등했다·
실제로 몇몇 정보원을 파견해봤으나 정보를 알아 오긴커녕 피해만 발생했었다·
‘반 불구가 되거나 정신이 이상해져서 돌아왔다고 하던가·’
목숨을 잃은 이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피해를 입고 돌아왔다고 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백화상단이 마련한 처소에 무언가 있다는 의미인데·
문제는·
‘이를 입증할 증거가 없다·’
증거가 남지 않았다는 점이다·
무림맹이 정보원을 보내 뒤를 캐려 했다는 걸 말할 수도 없고·
돌아온 이들은 정신이 나가 있던 게 태반이라 조금의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이 탓에 오죽하면·
‘백화상단을 마굴(魔窟)이라 한다고 했었지·’
현재 맹 내부 정보부에선 그곳을 그리 부른다고 했다·
지금이 그런 상황이건만·
“그곳에서 무언가 정보를 얻어 왔다는 말씀이오·”
“맞습니다·”
“···”
범동의 말에 일청검의 미간이 살짝 구겨진다·
저 말이 사실일까·
의문이 싹튼다·
마굴이라 불리던 곳에서 갑작스레 정보를 얻어왔다는 비룡대주·
이에 관해 의구심이 들지만·
‘비룡대주가 거짓을 고할 이유는 없다·’
범동이 지금까지 해온 일을 떠올리자면 거짓을 고할 이유는 없었다·
“···자세히 설명해 보시오·”
그런 이유로 우선 일청검은 범동의 말을 듣고자 했다·
“우선···· 확실한 정황이 있었습니다·”
“정황?”
“예 성왕은 근래 격한 전투를 벌인 상태입니다· 제갈가의 후인들이 벌인 마물 소환의 여파가 그것이지요·”
“···”
지난번 하남을 습격했던 사파인들·
맹에선 이들을 단순 사파인으로 묶어 세상에 전했다·
제갈가 관련한 일 또한 정보 속에 담아 보냈지만 설명을 살짝 뭉개 인식하기 어렵게 만들었었다·
그 탓에 지금 사람들의 머릿속엔 사파인들과 마교만이 남아 있을 터·
놈들이 벌인 마물 소환에 관해선 아직도 연구가 진행되고 있었다·
“당시 소환된 마물은 백급(白級)· 먼 역사속에나 전해지던 마물이었습니다·”
수백년 전에나 존재했다는 숨 쉬는 재앙·
제갈가가 소환한 마물은 무려 백급의 위치한 괴물이었고 놈들을 지칭하는 말이 사실이라는 듯 하남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런 마물을 전면에서 상대한 건 다름아닌 성왕입니다· 청룡대주께서도 이후 보셨듯· 성왕의 몸 상태는 그리 좋지 않지 않았습니까·”
“···”
범동의 말에 일청검이 즉시 기억을 떠올렸다·
백급 마물의 습격이 있던 날· 마물을 잡은 성왕이 맹으로 즉시 도착했을 무렵이다·
당시 일청검은 성왕을 마주했었고·
척 봐도 성왕의 상태는 좋지 않았었다·
당장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태랄까·
두 다리로 서있던 것만으로 놀랄 지경의 몸이었지·
“하물며 도왕과의 비무 이후에 벌어진 일입니다· 더욱이 상태는 좋지 않겠지요·”
“···”
듣기엔 일리 있는 말이다·
정확은 범동의 말마따나 확실한바· 이는 누가 봐도 성왕의 상태가 좋지 않음을 뜻했지만·
“그건 순전히 예상일 뿐· 아까 말한 확실한 증거는 없지 않소·”
“예· 그래서 정보원을 보내 확인했다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확인이라니?”
“지난밤· 성왕이 신의의 처소에 드나드는 걸 말입니다·”
“···!”
범동의 말에 일청검의 눈이 찡그려진다·
신의의 처소에 성왕이 드나들었다·
그 말에 일청검이 손으로 제 입가를 쓰다듬는다·
이를 보며 범동은 계속 말을 이어 붙였다·
“알고 계실 터이나···· 성왕은 현 상단주의 자식입니다· 상단주가 지닌 처소인 만큼 드나드는 건 문제가 없을 것 같지만· 상황이 묘하지 않습니까·”
“···흐음·”
많은 생각이 스쳤다·
결과적으로 범동의 말은 실질적 증거가 전혀 없었지만·
그가 계속해서 언급하듯 정황이 문제였다·
도왕과의 비무· 그 이후 마물과의 전투를 벌이고는· 신의의 처소에 오간다·
‘그것만으론 뭔가 부족하지만·’
떠올리던 일청검은· 문득 직전의 상황을 떠올렸다·
금룡대주와 철룡대주·
그 둘과 대치하던 성왕이 보인 행동을 말이다·
‘그건 분명 식은땀이었다·’
일청검이 막아낸 찰나 성왕은 흐르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표정은 별달리 힘들어 보이진 않았지만····
‘놈은 정녕 내상을 입은 상태일까·’
맹에 들어오던 순간·
자신과 기 싸움을 벌이던 그때도 그렇다·
가까이 다가와 자신이 검을 뽑지 못하게 움켜잡던 성왕·
당시 어마어마한 압력이 느껴졌으나· 그 안에서 일청검은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기운이 흔들렸지·’
속에서 성왕의 기운이 묘하게 흔들리던 걸 말이다·
그건 일부러 벌일 수 있는 행동이 아니다·
기운을 인위적으로 그렇게 떨게 만들 수 있는 이는 평생 본적 없었다·
그런 게 가능하다고 한다면·
‘그건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겠지·’
신에 근접하다는 삼존조차 할 수 없는 행동·
이를 알고 있기에 일청검은 범동의 논리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다만·
“이걸 내게 왜 말해주는 거요·”
지금 비룡대주는 어찌 자신에게 이런 정보를 내어주는가·
이게 가장 큰 의문이었다·
“보아하니 직접 이리 언급하는 것으로 보아· 윗분들에겐 전하지 않을 듯 하오만·”
“···”
일청검의 말에 범동이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청룡대주께서 원하지 않는다고 하신다면· 구태여 보고드릴 필요 없는 사항이지요·”
“···”
“제가 지금 대주께 이런 정보를 드리는 이유는 별다른 게 아닙니다·”
말을 이어 붙이던 범동이 눈을 빛낸다·
“다른 대주들처럼 성왕이 마음에 들지 않고· 더불어 지금 이 정보가 청룡대주께 필요할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
그 말을 듣고 일청검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마 내상을 입었다면 상당히 깊게 입었을 겁니다· 당시 마물과의 전투에 참여했던 무인의 말을 덧붙이자면·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까지 했었다고 했으니까요·”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지·
정말 무슨 의도로 범동이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하길 바라기에 성왕의 내상에 관해 이리 말하는 걸까·
온갖 고민에 휩싸였다·
“···”
그 뒤로도 제 입을 가린 체 오래도록 침묵하던 일청검은·
“···얘기는 잘 들었소·”
다소 어두워진 표정을 띤 채 범동에게 말을 뱉었다·
“생각할 게 생긴 듯하니· 지금은 나가주실 수 있으시겠소·”
“···알겠습니다·”
일청검의 말에 망설임 없이 범동이 몸을 일으킨다·
그 뒤로 문밖으로 나서려던 찰나·
“청룡대주·”
“···말씀하시오·”
“아까 물으셨던 대로· 대주께서 바라지 않으신다면 이 일은 상부에 보고하지 않을 생각입니다만·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렇게 범동이 물었고·
“···”
일청검은 물음에 숨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당분간은···· 보고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소· 내 고민이 끝나면 그때 따로 말씀드리리다·”
“···알겠습니다·”
대답을 들은 범동이 고개를 살짝 숙인 뒤 문밖으로 나온다·
그렇게 차분히 걷고 또 걸어 간신히 일청검과 멀어진 다음·
“후욱···훅···!”
아무도 보이지 않은 곳에서 범동이 털썩 주저앉았다·
주륵·
참고 있던 식은땀이 턱을 타고 흐른다·
뚝뚝 물방울이 바닥을 적시고·
그 너머 범동은 잔뜩 커진 눈으로 숨을 몰아쉬어야 했다·
“대체···대체····”
덜덜 떨리는 손으로 한쪽 팔을 더듬자 소름이 잔뜩 끼쳐 있는 게 느껴진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당신이 할 일은 한가지에요·
-지금부터 적당히 한 시진이 지난 다음 일청검을 찾아가요·
범동이 일청검을 찾아간 이유는 다름아닌 성왕· 구양천의 말 때문이었고·
-아마 화가 많이 나 있을 텐데· 신경 쓰지 말고 그냥 내가 하란 대로만 말해요· 정보부니까 외우는 건 잘하죠?
구양천은 몇 가지 말을 범동에게 주입시켰다·
일청검이 무슨 말을 하든 이런 식으로만 대답하라고 말이다·
그걸 들은 범동은 그저 시키는 대로 대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놀라게 된다·
‘뭐지···· 대체 뭐지?’
일청검이 무슨 말을 뱉든 자신이 외웠던 대답과 잘 맞아떨어졌다·
조금의 차이는 있었을지언정· 말을 전부 들어맞았고·
-나가기 전에 물어봐요·
끝내·
-윗 쪽에 보고해도 되냐고· 거기서· 일청검이 이렇게 대답하면 성공이에요·
-상부에·
“잠시 보고하지 말라고····”
구양천의 목소리와 일청검의 대답이 겹친다·
공명하듯 들리는 말에 범동이 식은땀을 연신 닦아내야 했다·
‘도대체 뭐냐·’
어떻게 이 상황이 온 거지?
믿을 수 없는 상황에 범동이 눈을 떨었다·
동시에 공포심이 밀려온다·
자신이 대체 어떤 존재에게 잡혀버린 것일까·
덜컹 거리는 가슴이 목까지 조여왔다·
마음 같아선 그냥 일청검에게 다 고하고 몸을 숨기고 싶었다·
일청검에게 도움을 청하고 딸아이를 재빨리 데리고 가 숨으면 되지 않을까?
그런 고민이 연신 떠오르지만·
결국 범동은 그런 선택을 내리지 못했다·
본능이 계속 말했기 때문이다·
그의 말을 듣지 않으면 안 된다고· 선택을 달리하면 안 된다고·
본능은 그렇게 소리쳤고· 그 결과가 이것이었다·
‘···나는····’
자신은 잘한 선택을 한 걸까·
이는 엄연히 맹을 배신하는 행위다·
그럼에도 자신은 괜찮은 것인가·
점차 짙은 어둠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범동이 파르르 떨고 있을 무렵·
[확인했습니다·]
“···!!”
갑자기 범동의 귓가에 소리가 스친다·
곧장 고개를 치켜들고 주변을 살폈다·
“뭐야···? 누구요·”
[명령을 이행했음을 확인했으니· 주인님께 말씀드리겠습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아니–!! 누구냔 말이오!!”
공포에 질린 범동이 소리를 연신 내지르지만 이미 여인의 목소리는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털썩·
확인한 범동의 다리가 풀린다·
“···말도 안 되는····”
자신이 명령을 수행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라도 하고 있었다는 건가·
“하···하하·”
애초에 배신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란 뜻이구나·
범동은 떨리는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대로 잠시 몸을 떨어야 했다·
*****************
맹에서 나온 다음 처소로 돌아온 시점·
가만히 처소에 앉아 연못을 구경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주인님·”
익숙한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나히가 옆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시선이 향하자 나히가 곧장 말을 덧붙인다·
“말씀대로 전하고 왔습니다·”
보고에 고개를 끄덕였다·
“일청검의 기파가 있어 가까이 다가가진 못했으나· 말씀대로 섬검이 나온 시점에 말을 전했습니다·”
“잘했네·”
“하오나···· 정녕 섬검이 명을 이행했는지는 확인을 못 했습니다만····”
나히는 걱정스럽다는 듯 내게 말하지만· 그 말에 나는 픽 웃음을 머금을 뿐이었다·
“됐어· 어차피 했을 거야·”
“···”
범동이 다른 선택을 내렸을 리는 없다·
“그놈은 속이 좁고 좁거든·”
명색에 정보부를 운영한다는 놈이 생각보다 숲을 볼 줄 모른다·
아니 숲은 좀 볼 수 있어도 자신에게 처한 상황은 제대로 읽지 못하는 놈이었다·
확신한다·
‘그러니까 전생에 그리 병신같이 뒤졌지·’
놈은 내 말을 거역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까 대충 그렇게만 해두면 돼·”
“···알겠습니다·”
지금은 이 정도가 적당하다·
섬검은 점점 제 목으로 향하는 밧줄을 보며 겁에 질려할 것이다·
그 공포를 끝없이 극대화해야 했다·
그렇게 점점 차오르게 만들어·
‘마지막에 터트린다·’
처참하리 만큼 치욕스럽게·
범동의 분명 최후는 그래야 했다·
‘범동은 이 정도면 됐으니·’
이제 문제는····
‘일청검이 언제 일을 벌이냐는 건가·’
밑밥 뿌린 걸 쉬이 물긴 했으나· 물었다고 끝은 아니었다·
‘일청검은 덩치가 좀 크니까 말이야·’
녀석은 물었다고 바로 당겼다간 그대로 실이 끊어질 대어(大魚)다·
놈을 낚기 위해선 힘을 더 빼게 만드는 게 중요했다·
‘어디보자···· 이 부분은·’
아직 써먹을 방법이 많으니 좀 더 고민해 보고·
당장은 내일 맹으로 또 향해야 하니· 그 부분에 관해 계획을 정리하자·
그리 판단하고 턱을 괴는데·
“주인님·”
문득 나히의 부름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왜·”
“이차로 보고드릴 사항이 있습니다·”
“음?”
보고라· 내가 원했던 정보는 끝났으니· 개인적으로 전달할 사항이라는 건데·
‘뭐지· 지선이 놈인가···아니면 제갈혁인가·’
뭔가 싶을 즈음· 나히가 대답을 내어준다·
“구가의 일장로가 하남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응?”
예상치 못한 대답이 들려왔다·
“일장로라고?”
“예· 방금 전해들은 소식 입니···주인님?”
나히가 눈을 크게 뜬 채 날 바라본다·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듯 보였다·
“···어디가십니까?”
그런 눈으로 조심스레 물어왔고·
그 말에 재빨리 짐을 싸던 내가 말했다·
“뭘 어딜 가?”
당연한 걸 뭘 물어·
“튀어야지·”
“···”
내 대답에 나히가 보기 드물게 벙찐 표정을 지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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