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794
백화상단의 초대 단주는 구가의 직계 혈족이다·
그런 일장로의 말에 몸을 잔뜩 굳힌 채 가만히 서 있어야 했다·
어떤 반응도 쉬이 나오질 않는다·
애당초 저 미친 소리에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가늠이 잡히질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버벅이다 간신히 말을 뱉어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립니까?”
“왜 말이 안 되느냐?”
“···그걸 말이라고 하세요?”
정녕 왜 말이 안 되는지 모르는 걸까·
‘어떻게 하면 그게 가능하지?’
그가 정녕 구가의 직계 혈족이라면···· 미 부인과의 관계가 이상해지지 않는가·
‘미 부인은 미가의 태생이잖아·’
한데 아비라는 초대 단주가 구가의 혈족이라면 성씨가 달랐다·
물론·
‘데릴사위일 경우는 또 모르겠는데····’
부녀 관계가 개판이었던 걸 보면 어머니 쪽 성씨를 따랐을 확률도 있었다·
거기까지도 괜찮다· 성씨는 별로 중요치 않으니 말이다·
다만 중요한 건·
‘그럼 아버지랑 혼인은 어떻게 되는데?’
두 사람이 피가 이어진 상태라는 뜻이었다·
직계 혈족이라면 아버지와 형제는 아닐 터이니· 조부 쪽과 관계가 있다는 뜻이다·
하면·
‘사촌이라는 뜻 아니야?’
상당히 가까운 관계라는 뜻이다·
어쩌면 가족이라 불러도 무방한 상황·
그런 상황에서 아버지가 미 부인과 혼인을 맺고 자식까지 낳았다면····
‘그거 괜찮은 건가·’
내 상식으로선 다소 이해가 안 가는 일이긴 했다·
‘···어쩐지·’
초대 단주를 보자마자 노인네 성깔 안 좋아보인다 싶더니만·
우리 집안 사람이라 그랬던 건가?
설마 미 부인이 차갑게 생긴 것도 그런 건가·
이놈의 집구석은 아무래도 그걸 못 벗어나는 모양이다·
하기야 놀랄 것도 없나·
‘이미 콩가루 집안인데 뭘 더 놀라겠어·’
우리 집안이 언제부터 그렇게 멀쩡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이걸 안 놀라면 미친 거 아닐까·’
곧장 모순을 떠올렸다·
아니 이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좋게 보려 해도 그럴 수가 없었다·
하여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눈알을 여실히 굴리고 있을 즈음·
“아주 표정이 볼만하구나·”
“···”
일장로는 낄낄거리며 웃는데 그게 참 꼴 보기 싫었다·
“아니···지금 웃음이 나오십니까?”
“웃긴 얼굴을 해놓고 웃으니 뭐라 그러다니· 순 양아치가 따로 없도다·”
뭔데· 내 얼굴이 뭐 어때서·
마음에 상처가 깊게 왔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이어서 꺼내 드는 일장로의 말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뻔하다만 따져보면 괜찮은 일이니 너무 개의치 말거라·”
“따져보면 괜찮다구요?”
“그래·”
“···어떻게요?”
뭘 어떻게 괜찮은 걸까· 집중해서 말을 묻지만·
“어어? 거기까진 내기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
“···”
일장로는 씨익 웃으며 입을 닫아버렸다·
옘병할·
‘말해줄 생각이 없다는 뜻이네·’
어처구니가 없네 진짜· 잠깐이나마 믿은 내가 잘못이지·
여하튼····
‘어쨌든 그 노인네가 구가의 사람이라는 건 맞다는 건가·’
일장로의 말이 맞다면 초대 단주는 구가의 사람이다·
따지면 아마 조부의 형제겠지·
그렇게 되면 그가 구가에 관해 언급하는 게 순 이상한 일은 아닐 것이다·
다만·
‘멀쩡히 살아있는 직계 혈족을 내가 몰랐다는 것과·’
직계임에도 무공을 배우지 않은 정확히는 내기 한 점 느껴지지 않는 부분을 비롯해 이상한 점이 무수히 많은 게 이상할 따름이나·
‘그걸 다 따져도 괜찮을 상황이라고?’
일장로는 이를 다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듯한 반응이었다·
아무리 천하태평한 성격을 가진 일장로라지만 저만한 반응에는 이유가 있을 터·
‘그래 문제가 있었다면 애당초 혼인이 가능했을 리 없지····’
구가가 멀쩡한 세가는 아니라도 세가는 세가다·
특히 장로회의 힘은 약하고 아버지의 입지가 강력한 편에 속하는데·
‘그걸 위해선 아버지에게 명분이 가득해야 해·’
이는 아버지가 소싯적 잘못을 크게 저질렀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백화상단의 단주와 혼인? 아무리 그게 도움이 됐다고 해도·
‘이건 좀 곤란하거든·’
직계혼은 상당히 곤란한 얘기였건만· 그걸 달고서도 이 상태라는 건·
‘일장로 말대로 뭔가 괜찮을 이유가 있었다는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이를 아는 이가 적거나·’
정보를 모를 가능성도 있었다· 다만·
‘내가 볼 때는 전자야·’
그것보단 전자의 이유가 더 클 터였다·
거기까지 떠올리고선 일장로를 쳐다봤다·
“장로님·”
“그래·”
“진짜 약으신 거 아십니까?”
“뭐 인마?”
내 말에 일장로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지만 난 그걸 보면서 한숨만 내쉬어야 했다·
‘···진짜 어이없는 게 누군데·’
이 지경까지 오면 알 수 있었다·
일장로가 이런 말을 해주는 연유에 대해서 말이다·
정말 내기에 졌으니 내게 알려주려고? 순전히 그뿐 만은 아니었다·
노인은 구가의 직계 중 한 명이다·
하니 구가의 비밀을 알고 있다고 한들 이상할 게 없으며· 또한·
‘···저쪽도 이쪽 못지 않게 콩가루이니 네가 좀 이해해라·’
일장로는 그런 말을 비밀을 알려주겠다는 빌미로 내게 사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었다·
초대 단주가 무슨 짓을 했든 내가 이해를 조금 하라고 말이다·
‘하·’
하여튼 사람 귀찮게 하는 데는 도가 튼 것 같았다·
‘···그건 그렇다 치고·’
구가의 직계고 나발이고·
놀라긴 했지만 솔직히 상관없었다·
‘그게 뭐·’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 집이 개판인 건 소싯적부터 알던 사실이고·
차이가 생긴 게 있다면·
‘미 부인과 내가 피가 섞였을지 모른다는 것·’
조금은(?) 거리감이 가까워졌다·
고작 그 정도의 차이겠지·
그 이상은 없었다·
더불어 지금 중요한 것도 결국·
“그래서 결국 그 양반이 절 찾은 이유는 뭡니까? 그건 아십니까?”
“아-!”
노인네가 날 왜 찾았냐는 것·
일장로의 말을 들으니 더 이상한 일이다· 대뜸 구가의 비밀을 알려주려 부른 건 아닐 것이다·
‘그럴 거였으면 진즉 전생에 만났어야지·’
이제 와 나타나서 날 찾을 이유는 되지 않는다·
이는 내 입지가 늘며 중원에 이름이 퍼지게 된 것·
그리고 그게 넓다 못해 초대 단주의 귀에 들어가게 된 것까지가 관련이 있을 것이었다·
‘초대 단주가 이를 듣고 움직이게 됐다면 이게 연관이 있어야 한다·’
내가 입지가 늘어나게 된 것과 그걸 듣고 초대 단주가 움직이게 된 것에 관한 연관성·
나는 그걸 알아야 했다·
하여 이에 관해 일장로에게 말을 물으니·
“음·”
“왜요? 이것도 대답하기 싫은 질문입니까?”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말이다·”
일장로는 수염을 연신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마침 네게 알려주려 했던 비밀이랑 엮인 물음이로구나·”
“···예?”
나한테 알려주려 했던 비밀·
무슨 말일까 싶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떠올렸다·
‘아 맞네· 그것도 있었어·’
초대 단주의 정체를 알려주는 것과 더불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겠다고 했었다·
한데 그 비밀과 이 일이 엮여있다고?
그렇게 의아함을 떠올릴 무렵·
“그 늙은이가 너를 부른 이유와 비밀은 말이다·”
“예·”
“제 딸을 너무 아껴서다·”
“예?”
일장로의 말에 내 인상이 찌푸려진다· 뭐라는 거야?
“그 인간· 어마어마한 딸바보거든·”
“···?”
이해가 전혀 안 되는 대답이었다·
****************
이후 처소로 돌아왔다·
더 나눌 말이 있었으나 일장로는 이 이상 대답해주지 않겠다고 했고· 누군가를 만나러 가야 한다며 갑자기 사라져 버렸다·
언제나 그렇지만 진짜 바람 같은 인간이었다·
살짝 부럽기도 하다· 저렇게 제멋대로 사는 건 어쩌면 본받을만한 했으니 말이다·
일장로는 머물기는 구가의 처소에서 지내긴 할 테지만 종종 온다고 했는데 당연히 나는 오지 말라고 했다·
그런다고 안 올 인간은 아니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보기 싫었다·
그렇게 해서 복귀한 처소의 내부·
나는 아무도 없는 방안에 걸터앉아 생각에 빠져 있었다·
직전에 만난 초대 단주와의 대담? 구가의 가주가 지닌 역할?
아니면 천마에 관한 의문점?
그런 걸 생각하는 건 아니었다·
물론 이게 중요하다는 건 아니지만 당장 머릿속에 차오른 생각은 이게 아니라·
‘아까의 감각은 어땠지?’
아까 일장로와의 대련에서 느낀 감각·
붕 떠오른 감각 속 몸에 느껴지던 무수한 현상들·
흔히 깨달음이라 일컫는 찰나의 느낌을 떠올리려 애쓰고 있었다·
무인들이 흔히 말하길 깨달음이 왔을 때 어떻게든 붙잡지 않으면 평생의 한이 된다고 한다·
그만큼 귀하고 중한 일이라는 뜻이었다·
‘···흐음·’
나는 그걸 놓쳤다·
왜 뜬금없이 그 순간에 찾아왔는지·
그게 깨달음이 맞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게 깨달음이라 생각했다·
아니 확신이다·
본능적으로 확신이 됐다·
그건 분명 깨달음이었다고· 생각은 물론이고 기운조차 그리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아쉬운 거다·
‘그걸 만일 잡았더라면·’
내가 깨달음을 놓치지 않고 잡았더라면 과연 어떻게 됐을까·
무언가가 달라지지 않았을까·
깨달음이란 이름에 걸맞게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지 않았을까·
설마 그런 기적이 있을까 싶지만 또 모를 일이다·
애당초 왜 갑자기 깨달음이 온 걸까·
‘이유를 모르겠어·’
아무리 깨달음이 전조 없이 오는 일이라 해도· 정말 아무 이유 없이 찾아오진 않을 것이다·
특히 대련중에 오는 깨달음?
‘처음 겪는 일이야·’
나로선 거의 겪어본 적 없는 일이었다·
이에 예상해보길·
‘···백마석이 이유인가?’
허겁지겁 처먹었던 백마석·
그로인해 늘어난 기감과 화력· 혹 그게 원인이었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아니 원인을 따지자면 그것밖에 없었다·
‘···이제 와 무슨 소용이 있겠냐만·’
말했듯 이미 늦은 시점이다·
그때 깨달음을 잡겠다고 똑바로 팔을 휘둘렀다면·
‘아마 일장로가 크게 다쳤겠지·’
그걸 생각하면 어차피 얻지 못할 깨달음이었다·
하여 이는 순전히 아쉬움의 한탄일 따름이다·
‘쯧·’
혀를 차며 창밖을 쳐다봤다·
이미 해가 다 저물고 있는 시간이다·
온종일 짜둔 일은 하나도 하지 못했고 그렇게 하루가 끝나가고 있었다·
‘이러면 내일 좀 귀찮아지겠는데·’
하나 꼬이면 순식간에 엉키고 또 엉키는 게 내 삶이다·
그게 한 편으로 걱정스럽다가도·
“어떻게든 되겠지····”
그게 너무 쌓이다 보면 어느 순간 다 귀찮아진다·
어떻게든 되겠지· 당장 수습 못 할 일이라면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일단 애들이나 보러 갈까·”
지치고 힘들 땐 기분 좋은 일로 때우자 그리 생각하며 몸을 움직이고자 했고· 곧장 처소 밖을 나섰다·
갑갑한 건 일장로와의 대련으로 풀었으니 찝찝한 건 행복한 일로 풀면 된다· 그리 떠올리며 몸을 일으켰다·
피곤한 듯 찌푸린 표정으로 걸음을 움직였다·
지쳐서 그런지 집중력이 떨어져 있었다·
그래서 알아차리지 못했다·
화르르륵·
움직이는 내 등판이 어째서인지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는 걸 말이다·
더불어·
“말해봐·“
“끄으으···으윽····”
내일 내가·
“더 짖어보라고· 이 개 같은 새끼야·”
대주 중 한 명을 아작낼 거라는 사실을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_ _ )
금일은 분량이 적은 만큼 내일은 연참으로 찾아뵙겠습니다·
( _ _ )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