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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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청은 현대에서 자라 무림의 떠돌이가 되었다·
즉 두 문명 사회를 비교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뜻이다·
고향 땅 독신 생산직의 삶이란 일과 사람이 높은 빈도로 좆같고 자고 싶을 때 못 자고 버티며 건강을 해쳐가는 어제 오늘 미래다·
하지만 그래도 사는 데는 문제가 없다·
혼자 살면 무얼 해도 그럭저럭 먹고 싶은 것 먹고 살 수 있다·
무엇보다 생명의 위협을 느낄 위험한 일이 없다·
그러나 비정한 무림 이 원시 고대 중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힘없고 돈 없으면 그냥 죽어야 한다·
그리하여 지난 일 년·
아청의 삶은 그야말로 목숨을 유지하기 위한 장엄한 투쟁의 연속이었다·
적어도 한민족들은 눈이 마주쳤다고 칼을 뽑아들지는 않는다·
그러나 무림에서 어깨를 부딪치면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하는 승부를 펼친다·
참고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끝나는 승부를 무림에서는 생사결이라 한다·
이런 야만 속에서 말랑말랑한 정신을 가진 현대인이 살아남기란 거의 불가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아청은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었다·
물론 이 기적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로 아청의 신체가 너무 강했다·
현대 말로 캐릭터 메이킹을 할 때 공략글을 따라 험난한 초반부를 넘기기 위해 힘 체력에 몰빵한 덕분이다·
그렇게 만든 캐릭터 아청의 몸에 들어와 있었기에 힘은 어지간한 사내들보다 강했으며 강철 같은 체력으로 지치지 않는 신체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체질 선택이 유효했다·
아청의 체질 시혈독인은 작중의 모든 중독을 무효로 했다·
식중독 역시 중독 판정이었는지 아무거나 먹어도 탈이 나지 않았다·
정말 아무거나 먹어도 괜찮았다·
그렇게 아청은 살아남았다·
삼류 흑도방파 건달들과는 눈도 못 마주치니 거지들과 버린 음식 가지고 사투를 벌이면서·
감자나 무를 뽑아 훔쳐먹다 농민들에게 몰매를 맞기도 하면서·
그렇게 일 년을 버텼다·
이제부터는 중원 생활 이 년 차·
아청에게도 나름 각별한 기념이었다·
이 년차쯤 되면 어엿한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이제는 어디 가서 무림 좀 돌아다녔다고 어깨 펴고 돌아다닐 수 있는 거지·
이제는 좀 무인답게 사람답게 살 수 있게 노력해야지·
방금도 수배 걸린 악인의 머리를 관청에 바치고 현상금을 받아 왔다·
일 년 차 때의 그때 처음 사람을 찔렀을 때 울고 토하고 난리를 쳤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한데 이제는 팔도 목도 막 썰었다·
이 정도면 나도 훌륭한 무림 깡패지· 암·
아청의 웅장한 가슴이 웅장해졌다·
겨우 중원 살이 일 년을 조금 넘긴 강호 새내기의 자부심이다·
아청 아니라도 출도 후 일 년 쯤 지나면 이때쯤이 자신감이 가장 새어 나올 시기이기는 했다·
물론 이 년 차에 들어섰는지는 아청 역시 정확하지 않았다·
아청이 무인도의 생존자나 골방에 납치 감금된 피해자처럼 바를 정正자 새기면서 하루하루 날짜를 세지는 않은 탓이었다·
다만 따뜻한 봄에 떨어져서 겨울을 나고 이제야 날이 풀렸다·
그러니 얼추 1주년쯤 되었을 것이라고·
모멸스러운 나날들이 머리를 스쳤다·
맨몸으로 눈을 떠서 전혀 모르는 세상에 던져졌을 때· 아청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었다·
땅을 파서 돈이 나오겠는가?
아니면 게임처럼 집마다 쳐들어가 집주인 뻔히 보는 앞에서 항아리 깨고 상자 열어 당당하게 절도 행위를 하겠는가·
물론 주인 없으면 가능하고 이를 전문으로 하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있기는 했다
하지만 빈집 털이는 생각보다 더 고도의 기술이 필요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생산직 근로자 안 하고 빈집 털이를 했을 것이다·
다행히도 게임과 같은 부분도 있었다·
사람을 잡으면 돈이 나온다는 것이다·
중원 사람들에게는 전낭이라고 하는 돈을 담아두는 주머니가 있었다·
주인이 사라지면 줍는 사람이 다음 주인이니 사람을 죽이면 당당하게 전낭을 계승할 수 있다·
그럼에도 아청은 늘 가난했다·
아청은 금품을 노리는 강도 살인마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죽여도 꼭 나쁜 놈만 골라 죽였다·
일단 목을 잘라 덜렁덜렁 관청으로 들고 가면 낮은 확률로 현상금을 받을 때도 있었다·
다만 그렇게 얻는 금액은 많지 않았다·
집 나오면 먹고 자는 데에 전부 돈이다·
과장 좀 보태서 숨만 쉬어도 돈이 들었다·
당연히 삶의 태도가 궁상맞을 수밖에는·
그러나 오늘만은 궁상에서 벗어나자·
당당하게 자축해도 되는 날이었다·
무려 1주년 기념일이다!
“이봐요 점소이·”
아청의 말에 점소이가 후다닥 달려들었다·
코 옆에 왕파리만한 복점이 달렸다·
이 객잔이 보통 객잔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점소이 얼굴에 난 왕점은 복된 것이었다·
그 복점이 크고 선명할수록 점소이의 품삯도 하늘로 치솟는 법· 점소이의 점을 보면 객잔의 격을 알 수 있었다·
“여긴 뭘 잘하나요?”
“못하는 요리가 없다마는 오늘 추천해 드릴 요리는 정왕과 함께 찐 후에 어두장과 기름을 끼얹어 튀긴 닭입니다요· 오늘 투계판에서 닭들이 들어온 날이라 그 풍미가 보통이 아닙지요·”
점소이가 능숙하게 요리를 추천했다·
열넷의 나이로 시작하여 곧 30주년에 이르는 노련한 점소이는 손님을 보고 곧장 각을 낼 수 있었다·
여기저기 기운 자국이 남은 경장을 입었으니 무림의 가난한 여검객이다· 눈 밑이 퀭하니 기미가 짙게 끼었지만 피곤한 표정은 아니다·
그러니 피곤함을 잊을 만큼의 좋은 일이 있어 그를 기념하려는 손님일 테고 가난한 차림새니 양이 적은 것보단 많고 기름진 것이 좋겠다·
투계판이니 어쩌니 순 개소리·
사실 점소이도 그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하지만 오리도 아니고 겨우 닭 요리였다·
이 정도 입 봉사는 털어 줘야 손님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 것이다·
무림 생활 겨우 2년 차 병아리인 아청은 상냥한 점소이의 내심은 전혀 알 수 없었다·
다만 기뻐했을 뿐이다·
닭!
튀긴 닭!
한국인의 소울푸드!
“술도 필요하신지요?”
“네! 화주 쎈 거로 한 병!”
“그럼 비홍주는 어떠십지요? 요 뒤에 비가주장에서 나온 술인데 이제 일 대에 불과하나 주정이 보통이 아니라는 평입지요· 개방의 어르신들도 입을 모아 칭찬하는 술입지요·”
이제 일 대에 불과한 양조장이면 빈말로도 좋은 술을 빚는다고는 못 했다·
게다가 개방의 어르신 운운은 순전 사기였다·
거지들이 막 처마시지 술맛을 알긴 하겠냐고·
결국은 말로만 하는 포장이었다·
하지만 그 포장이 손님을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점소이는 상당한 고급 인력이자 접객의 예술가들이다·
“여기 자어향탕수계 하나! 비홍주 하나!”
점소이가 주문을 외치며 멀어져갔다·
주문을 외치는 일은 주방에 알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혹은 손님에게 주문이 맞으냐 재차 확인하기 위해서도 아니다·
이 사람이 이걸 시켰다고 객잔의 손님들에게 알려주기 위해서였다·
비싼 주문일수록 목소리가 크고 간혹 진짜로 큰 손님이 오면 객잔 앞 대로까지 나가서 소리를 질렀다·
다만 아청의 주문은 점소이가 큰 소리를 낼 수준이 아니었다· 그저 점소이가 아청의 마음속을 훤히 들여다보았기 때문이었다·
가난한 고객이 기대하는 바야 뻔하니·
그 배려도 모르고 아청은 싱글벙글이었다·
객잔에서 아청의 모습을 본 손님들도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대충 어떤 상황인지 곧장 알아채서·
아청만 몰랐다·
아청· 무려 무림 2년 차·
—-
이전 시대 전설적인 협객(도적과 같은 뜻) 무리가 즐겨 부르는 노래가 있었다·
첫 소절부터 비범하기 짝이 없었다·
영웅은 공부따윈 안 한다네·
그러나 무식한 칼질의 시대가 가고 무학의 시대 무공 역시 한 갈래의 공부가 되고 말았으니·
상승의 무공일수록 그 묘리가 세상 이치와 맞닿아 있는 법이었다·
오히려 도道와 사상을 궁리하지 않으면 절세고수가 될 수 없었다·
다만 전전대의 일인자 전전대 천하제일인이 이 노래를 매우 좋아했다·
그의 별호는 무천대제·
무시무시한 별호였다·
아무리 천하제일인이라도 감히 칭제 별호에 황제를 사칭할 수가 있단 말인가!
지엄한 황상께 한 판 붙어보자는 말과 같았다·
그래서 실제로 붙었다·
지엄한 황상께선 결코 도전을 피하는 법이 없으니 너 역모 한 마디에 우르르 천하의 군사가 몰려드는 법이었다·
그 결과는?
무천대제가 아직도 무천대제다·
무천대제가 패배했다면 역천소인배 혹은 역천반역자 정도의 별호가 되었을 것이다·
무천대제가 삼만의 어림군을 찍어누르고 황제의 멱살을 쥔 채 황궁 꼭대기에 올라 애창곡을 개사해 부른 일은 유명하다·
영웅은 눈치따윈 안 본다네·
천하가 내 아래에 있는데 무슨 상관이냐
신분은 미천하다 해도
감히 내 행보를 누가 막겠느냐
그렇게 무천대제는 관과 무림의 관계를 재정립하는 데 성공하여 관무불가침 관과 무림은 서로 모른 척하자는 새로운 율법을 만들어냈다·
그렇게 무천대제는 모든 무림인의 대부로 등극했다·
이후 무천대제는 우화등선이라는 전설을 실제로 이루어내며 불멸의 우상으로 남았다·
무림인이 가장 좋아하는 노래를 작사한 시대의 음악적 성취는 덤이었다·
그야말로 시대의 풍운아!
다만 그에도 부작용이 있었으니·
영웅은 눈치따윈 안 본다네 하는 노래 가사를 뒤집어서 이해하는 놈들이 나타났다·
영웅이 눈치를 보지 않으면 영웅이 아닌 사람은 눈치를 본다는 뜻이 아닌가·
그럼 눈치를 보는 새끼는 영웅이 아니지?
등선한 무천대제가 천상에서 가슴을 치며 통탄할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
청하질풍협 조각산은 스스로를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내였다·
조각산은 의동생들과 식사 중이었다·
조각산와 의동생 세 명을 합쳐 청하사협이라고 나름 이름을 날린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러다 문득 아는 얼굴을 발견했다·
증여추귀 안성일·
증여의 추한 마귀라는 별호와는 다르게 생기는 퍽 멀쩡하게 생겼다·
다만 증여추귀의 경우는 얼굴이 아니라 행실이 매우 추잡하고 더럽다 해서 붙은 별호였다·
주 사업은 인신매매고 그 외에 절도 강도 살인 강간 방화 사기 등 못된 짓은 모조리 하고 다닌 개새끼였기 때문이었다·
영웅은 악즉참 악을 두고 보지 않는다·
물론 악이 나보다 약하다면!
안성일의 경지는 절정 초기로 알려져 있었고 조각산은 아직 일류 후기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럴 때를 위한 의형제였으니 굳이 불편하게 네 명이 우르르 몰려다닐 이유가 달리 있겠는가·
일 대 사·
청하사협 개개인은 안성일보다 약하지만 청하사협 넷이 힘을 모아 우리는 강하다·
그것이 우리이기 때문에!
역시 악을 두고 볼 수는 없다!
이리저리 각을 재며 승률을 따진 조각산이 마침내 마음을 정했다·
영웅은 눈치 따윈 보지 않는다·
눈치라고 하는 행위에는 저녁 시간 사람 많은 객잔에서 소란을 일으켜 주변에 끼칠 수 있는 직접 간접적인 피해가 포함되었다·
그런 사소한 부수적 피해는 정의 집행의 기치를 내건 악적 처단 거대한 대의 앞에 사소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청하사협이 조용히 시선을 교환했다·
조각산이 탁자를 세 번 두드렸다·
청하사협이 일시에 몸을 날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10·29 대대적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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