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1
“위대하신 천마지존이시여 여기 당신의 진실된 신혈이·”
“내 이미 재림을 이루었다· 게다가 그것이 신혈을 품었다 하나 더 나은 도구를 두고 굳이 저급한 것을 취해야겠느냐?”
“하오나 당신께 준비한·”
“그만· 혹여 이 아이가 네게 소중했더냐?”
“저의 제 모자란 딸년입니다·”
그러나 천마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다· 혈자리가 이미 산 육신의 것이 아니니 죽은 피가 흐르는 마물이다· 어찌 사람의 딸이란 말이냐· 이미 영혼이 떠나 남은 육백에 불과한 것을·”
오경 중 하나인 예기에 따르면 사람의 구성을 혼백이라 했다·
혼이란 영이며 넋이기에 정신이라 한다·
백이란 육이며 물질이기에 신체라 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죽으면 혼은 하늘로 올라가 저승을 지나 윤회에 들고 백은 땅으로 쓰러진 시체가 되어 삭아 스러지니 세상과 합일하게 되는 것이라고·
신체가 죽으면 자연스레 영혼이 떠난다·
그러나 아주 가끔 반대로 영혼이 죽고 신체만이 남아 심장이 뛰고 숨을 쉬기도 했다·
그러나 영혼 없는 육신이 얼마나 버티겠는가·
지극정성으로 모든 숨을 불어넣고 양식을 죽으로 짓이겨 목구멍에 넣더라도 혼이 윤회에 들어 자취를 감추는 마흔아홉 날을 넘길 수가 없는 것이다·
다만 강시술사들 사이에서는 농담으로 하는 소리가 있기는 했다·
영혼 잃은 육신을 살려 정확히 사십 구일 째 숨이 끊어지는 그 찰나의 순간 명계의 착오로 다른 혼이 들어 죽은 자가 산 자로 태어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죽은 피가 흐르는 살아있는 송장이었다·
세상 모든 독성이 피에 작용하니 이미 죽은 혈액에 무슨 피해를 더 줄 수 있겠는가·
본래 강시의 제조에서 가장 어려운 것이 약의 독성으로 작품이 상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독한 약물들을 쏟아붓더라도 그 독성에 상하지 않는다면?
강시술사들의 소망을 담은 농담거리였다·
천마가 이러한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육신을 관조하여 혈액의 영성이 이미 죽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최리옹의 상태 역시 정상이 아니다·
“맞습니다! 제 자식이 이미 죽었으나 이후에 이리 돌아왔습니다! 한 번 자식을 잃은 애비를 부디 가엽게 여기시여····”
천마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평생을 죽음조차 거부하여 이 땅에 존재하니 모두 교의 숙원을 위한 것이다· 저 가증스런 중원의 압제자들을 모조리 참살하고 진정한 해방을 이루기 위해서다·”
“하오나·”
“이제 이러한 육신을 가졌으니 천하에 두려울 필요가 없어 숙원을 풀 때가 도래한 것이다· 이러한 때에 네 사사로운 정으로 대업을 포기해야 한단 말이더냐?”
“당신께 예비해드린 신체로도 충분히·”
“네 진정 그리 생각한단 말이냐?”
“제발 부디 자비를·”
천마가 청의 얼굴로 최리옹을 노려보았다·
천마신교의 모든 것이 천마에게서 나왔으니 그 잔혹함 역시 마찬가지였다·
“고작 인간 세상의 인연이 그리 소중하더냐· 네 마음이 이미 신교를 이탈하였구나· 교리와 율법을 등진 자가 어찌 천신과 마신의 대리인 앞에 고개를 들고 서 있느냐·”
천신 아후라 마즈다와 마신 앙그라 마이뉴의 화신이라 하여 천마라 한다·
구태한 중원의 압제자를 쳐부수기 위해 천신의 창생을 버리고 마신의 힘을 취한 파괴신의 현신이기도 했다·
현인신의 분노가 늙은 대마두를 향했다·
최리옹이 몸을 떨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분연히 외쳤다·
“고작 인간 세상의 인연이라니!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신단 말입니까! 당신께서도 인간이십니다! 한낱 심상으로 얽힌 무공에 불과한 것을 감히 신의 권능으로 칭하시는 것입니까!”
마신께서 세상을 파괴하기로 예비하신 날짜가 아직 수억 년이 남은 영원의 끝을 말함이었다·
그 전에 찾아오는 종말은 신의 뜻이 아니며 하물며 신께서 하찮은 중원을 파괴하고자 하실 이유가 없다·
그러니 천마는 인간이었다·
그저 중원에 대한 증오로 뭉친 한낱 인간·
무공이 심상으로 자연을 재현한 인간의 도구이니 그저 마신의 흉내로 대리인을 자처하는 바가 웃기지 않느냐고·
최리옹이 그렇게 말한 것이다·
“무엄한!”
천마가 손가락을 들어 최리옹을 가리켰다·
초절정을 넘겨 환골탈태를 이루었으나 아직 젊은 육신이라 반로환동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천마의 무위가 어디까지 솟았는지는 모른다·
다만 손끝에 어리는 새까만 강기에서는 이미 화경의 무위 ‘따위’로는 막을 수 없는 절대적인 파괴가 깃들어 있었다·
천마지· 천마신공의 악명 높은 강기공이었다·
손끝에서 검은 죽음이 길게 뻗어나갔다·
그대로 일직선으로 뻗어나간 강기의 직선이 최리옹의 머리로 향하지 않았다·
돌연 우측으로 뻗은 손가락에 얌전히 엎드려 있던 마교도 하나가 폭발했다·
사방으로 산산조각이 난 사람 잔해가 튀었다·
최리옹이 천마와 일식 때의 태양 모양으로 남은 핏자국을 번갈아 보았다·
“···?”
—-
마우스를 쥔 청이 어이가 없어 중얼거렸다·
“뭐야· 갑자기 무슨 레이저 빔을 쏴? 무협이 이런 거 해도 되는 거였어?”
물론 직접 겪기로 기상천외한 것들 투성이인 무림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레이저를 쏘는 건 좀 아니지 않나 하고·
적어도 뭔가 무술의 흉내라도 내야 하는 것 아닌가?
사부님조차도 그냥 날아다니지 않고 꼭 검을 타고 다니셨으니 그래도 검술 비슷한 것이라고 우길 수는 있지 않은가·
손가락 뻗어서 레이저 빔이 나가면 그게 로봇이지 사람인가? 아니면 리치나 뭐 등등 마법사 계열의 후반 몬스터라던가·
사실 정작 청이 이 게임을 키보드와 마우스로 조작해 보기는 또 처음이었다·
캐릭터를 만들자마자 무림에 던져졌으니 정작 본 게임을 일 초도 즐겨보지 못한 것이다·
당연히 조작키도 몰랐다·
그래서 이리저리 눌러보던 참에 할아범 죽게 생겨서 다급히 마구 클릭했다·
다행히 미개한 짱깨 놈들이 만든 게임임에도 우클릭으로 적을 찍어 목표로 하는 근본적인 조작법은 준수한 것이다·
국제법도 안 지키는 뙤놈들이다·
그러나 게임의 인터페이스는 나름 국제 표준을 맞추었으니 대견하다고 해야 할까·
아니면 익숙한 UI를 그대로 베껴다 박았으니 역시 표절을 미덕으로 삼는 미개한 짱깨새끼들 답다고 해야 할지·
어쨌거나 청은 숙련된 겜돌이었다·
기본 조작법 정도야 안내를 보지 않았어도 금방 적응하는 숙련자라는 뜻이기도 했다·
—-
검은 광선이 연신 허공을 갈랐다·
손가락을 뻗을 때마다 백발백중 마교도가 빵 터져버리고 말았다·
중년의 농담으로 부하들을 빵빵 터뜨리며 수없는 배꼽을 학살한 부장님들조차 물리적으로 사람을 터뜨리진 못했으니 상급자로서의 격이 다른 신수라고 하겠다·
천마가 바락 소리를 질렀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당장 그만두지 못해!”
그러나 몸이 저절로 움직이니 갑자기 다리가 척척 기묘한 보법을 밟고 무릎이 빠른 박자로 반동을 주며 허리를 뒤틀고 팔을 휘둘렀다·
중원과 다른 세상을 뒤흔든 방탄을 자랑하는 한민족 소년 집단의 현란한 춤사위였다·
그러다 돌연 춤을 멈추고는 앞으로 뒤로 또 뛰어뛰어 옆옆 앞앞 옆옆옆 정신사납게 움직여 몸을 흔들더니 이번엔 아예 제자리에서 빙글빙글 세차게 도는 것이 아닌가·
마교도들이 천마의 미친 행동을 못 본 척 이를 악물고 근엄한 표정을 유지했다·
“네년 그만둬 그만두란 말이다! 좀 얌전히!”
천마가 상단전에 박힌 진기들을 떠올렸다·
무언가를 꽁꽁 싸매 지키는 듯했던·
본래 주인의 넋이 숨어있음에 틀림없었다·
천마가 파천마기를 일으켰다·
마신의 심상으로 눈깔 빼곡히 흉측한 형상의 마기가 높은 해일이 되어 혈도를 집어삼키며 거칠게 끓어올랐다·
경지조차 알 수 없는 강대한 적의 수없이 많은 삶을 거쳐 만들어진 거대한 흐름이 창끝을 세워 돌진한다·
그에 비하면 청의 진기는 겨우 한줌이었다·
청의 진기가 음양과 정사를 막론하고 위기 앞에서 하나로 똘똘 뭉쳤다· 서로가 서로를 단단히 끌어안으며 충격에 대비해 벽을 세웠다·
그리고는 꽝!
안타깝게도 깨달음의 차이는 곧 격의 차이였다·
청과 천마의 격에는 너무나 큰 격차가 있었던 것이다·
청의 진기들이 한 방에 와르르 무너졌다·
파천마기가 그 틈을 비집어 파고들었다·
쾅!
마우스를 쥐고 낄낄거리던 청이 깜짝 놀랐다·
누구라도 원룸 벽을 뚫고 나타난 괴인을 보게 되면 깜짝 놀랄 수밖에는 없다·
동시에 반사적인 비명도 터졌다·
“안돼! 내 보증금!”
벽을 뚫고 들어온 사내가 사방을 훑었다·
떡 벌어진 어깨에 반바지 하나만을 걸친 차림이다· 드러난 상반신에 흉터가 빼곡하니 없는 자리를 찾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문신만 봐도 오금이 저리는 소시민 청이었다·
그보다 더한 전신 난도질 시술 자국이었다·
청이 목을 쏙 집어넣으며 말했다·
“그 여기까지 오시는 건 뭐랄까· 좀 반칙이 아닐까요? 인간적으로 장난 좀 쳤다고 벽 뚫고 현피를 오시는 건 너무하잖아·”
“생각했던 것보다 비굴한 모양새로구나· 몸의 통제를 빼앗길래 좀 더 당당한 영혼으로 빛날 줄 알았거늘·”
“헤헤· 그 원래 익명으로는 죄다 재벌 3세에 서울대를 졸업하고 마스터 찍어 프로게이머 뺨을 후려치는 군필 미소녀인 게····”
“하·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다만 상대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은 잘 알겠구나·”
그러자 청이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아무렴요· 쇤네는 신경쓰지 마시고 하시던 일 계속 하세요· 저는 여기 얌전히 있을·”
청이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머리통이 터져나간 사람은 말을 잇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머리가 사라진 청의 몸통이 의자에서 떨어져 철퍽 바닥을 굴렀다·
누런 장판 위로 시뻘건 선혈이 번져나갔다·
천마가 입꼬리를 늘리며 눈을 감았고·
동시에 천마가 눈을 떴다·
손가락을 차례로 접다 마침내 주먹을 꽉 쥐고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분노 서린 시선이 최리옹을 향했다·
“네 딸년이 제법 되바라지더구나·”
“무· 무슨···”
“까불지만 않았다면 의식이나마 살아 대업을 지켜볼 수 있었을 것이다· 이는 또한 애비가 제대로 교육을 시키지 못한 탓이겠지·”
최리옹의 표정이 절망으로 얼룩지는 가운데 천마가 다시 손가락을 펼쳐 들었다·
새까만 강기가 손끝에서 풀려나와 구형으로 강환을 이루고 파괴적인 직선이 뻗어나간다·
최리옹이 그저 담담히 눈을 감았다·
빗나감!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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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화를 축하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Хвала ва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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