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2
마교도 하나가 빵 터졌다·
좌우로 무릎을 꿇고 있던 마교도가 뺨으로 훅 끼치는 덩어리진 액체에 흠칫 몸을 떨었다·
찬물을 병적으로 싫어하는 미개의 중국 원시 고대라서 그런지 흠뻑 적실 때도 뜨거웠다·
이쯤 되면 아무리 신앙심(혹은 공명심) 투철한 신교도라 해도 슬슬 믿음의 근간이 흔들릴 수밖에는·
천마강림 만마앙복이니 중원해방 신교천하로 영원한 부귀와 권세를 가져다 주시기로 약속한 천마지존이시다·
그런데 그 대신 손가락질로 빵빵 강기를 날려 죽음을 하사하고 계시지 않은가·
가장 안쪽 원 가까이에 무릎을 꿇은 마교도들이 슬금슬금 천천히 몰래 눈치를 보며 후진하기 시작했다·
천마가 이를 으득 갈며 발을 들어 올렸다·
마의 주인이자 세상의 파괴자이신 마신께서는 그저 걷는 것으로 세상이 저절로 타오른다 했다·
세상이 재가 되어 스러져 어둠만이 남은 공허로 돌아갈지니·
천마군림보· 대지를 짓밟아 모든 백과 육을 파괴하는 멸망의 첫걸음이라·
능히 별을 파괴할 창대한 기운이 천마의 발 아래로 모여들었다·
본래 몸주인의 의지가 이 불경한 늙은이를 지키려고 하니 아예 공간 채로 부숴버리려는 고약한 속셈이었다·
시도는 좋았다·
천마의 발이 땅에 닿기 직전에 기운이 돌연 흩어져버렸으니 그저 평범한 발구름이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그게 아니었다면 최리옹은 밟힌 개구리처럼 납작한 시체가 되었을 터였다·
그 때 돌연 신묘한 움직임이 있어 천마의 발이 강과 바다가 흐르는 모양과 같이 미끄러져 후퇴했다·
뒤를 이어 반대쪽 발이 같은 기예를 벌이니 천마가 위풍당당 전진하는 형상을 하고 오히려 배후를 향해 후진하는 것이다·
이는 사람이 눈으로 보고도 믿을 수가 없는 기적이었다·
사람이 걸어서 땅을 밀어냄에 그 몸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세상의 이치다·
위대한 천마가 그 당연함마저 깨부수는 권능을 선보인 것이다·
“···?”
놀라운 기예이기는 하지만 왜? 갑자기?
묘실 깔린 엄숙한 고요가 조금씩 어색하고 불편한 침묵의 기색을 띠기 시작했다·
마치 친구와 친구의 친구를 만난 자리에서 친구가 잠시 자리를 떠난 그 영원과 같이 긴 어색함 같은 불편함이었다·
그 거북한 분위기 속에서 천마만 연신 앞으로 후진하며 원을 그렸다·
위대하신 마신의 뜻을 감히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인가!
마교도들이 한탄하며 그저 눈알만 또르르 굴릴 따름이었다·
찌익!
벽을 메꾼 청테이프가 거칠게 뜯겨나갔다·
제 몸으로 테이프의 벽을 통과했으니 당연히 온몸에 엉겨 붙을 수밖에는·
벌레라도 쫓듯 허우적거리던 천마가 간신히 하나로 뭉쳐 빚은 청테이프의 공을 내팽개쳤다·
“아· 오셨어요?”
청이 천마를 반갑게 맞이했다·
양손에 닭다리를 하나씩 쥔 채였다·
“미안하지만 닭다리는 양보 못 해요· 당연히 닭봉도 날개도 안 되고 허벅지랑 몸통 사이에 쫄깃한 부위도 내 거야· 안심은 안심도 나름 씹는 맛이 있지· 그러니까 오른쪽 왼쪽 퍽살 중에 골라요· 오른쪽? 왼쪽?”
기껏 대접해 주겠다는 것이 안심도 아닌 퍽살이라니· 손님한테 뺨 맞을 발언이었다·
하지만 벽 뚫고 덤으로 보증금까지 파괴하며 나타난 불청객에게 베풀기에는 과분한 호의라 할 것이다·
천마가 더듬더듬 노한 언성을 높였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분명히 넋의 근원이 혼백 자체가 상했을 터인데···!”
“안 알려줌· 뭐 대가리 터지는 기분은 의외로 괜찮던데· 해방감이 있었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는 닭다리를 야무지게 물어뜯었다·
천마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손을 들어올려 손가락을 겨누는데·
“그만! 손가락 멈춰!”
청이 입안에 씹다 만 닭고기를 우다다다 발사하며 급히 소리쳤다·
“어허이 사람 밥 먹는데 건드리는 거 아냐· 개도 처먹는데 건드리면 물거든요? 인간으로 태어나 개한테 질 수는 없으니까 나도 개지랄 떠는 수가 있어요·”
처음 듣는 개소리에 천마의 정신이 잠시 아득해졌다·
“···그러니까 지금 개보다 더하겠다는 소리가 아니냐?”
“신도들 앞에서 탕선탈의무 한 번 춰 봐야 ‘아 존나 가만히 먹방이나 구경할 껄 그랬다’ 후회를 하지?”
환희궁을 받아준 천마도 이 천마였다·
애초에 모든 천마가 이 사내였으니까·
탕선탈의무가 어떤 무용인지 본인도 알았다·
일교의 지존이 옷이나 벗으며 천박한 유혹을 해서야 앞으로도 영원히 체면이 와장창이었다·
(다른 세계의 천마들이 종종 하는 일이기는 했다·)
천마가 기가 막혀 입만 뻐끔거리다가 결국 한숨을 푹 내쉬며 삿대질을 거두었다·
“좋다· 내 더는 네 아비를 건드리지 않겠다· 이제 되었느냐? 하여간 그 애비에 그 딸이로구나· 사사로운 인정 따위에 연연하다니· 어찌 신교의 딸로 태어나 중원 해방의 숙원을 방해한단 말이더냐·”
천마가 하는 중대한 오해였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오해기도 했다·
천마가 보는 이 육신이 산 송장이었다·
당연히 천마혼을 받아들이기 위해 신교도들이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다만 늙은이가 튀어나와 방해를 하니 사십 구 일 동안 숨을 불어넣고 음식 먹이며 돌본 늙은이가 미련으로 제 딸로 여긴 줄 알았다·
또한 들어온 혼이 역시 늙은이를 아비로 삼아 정을 주었다고·
그런 감동적인 이야기 한 편을 대강 머릿속에 그려놓았던 것이었다·
창대한 헛발질이었다·
“엥? 우리 아버지? 신교의 딸이라니?”
“바깥에 있는 저 무엄한 늙은이 말이다·”
“아· 할아범? 할아범은 내 아버지 아냐!”
그저 해맑은 패륜이었다·
천마가 정색하며 되물었다·
“그게 무슨 해괴한 소리더냐? 분명·”
“그 할아범이 최근에 좀 오락가락 하더라고· 나도 봤는데 아예 맛이 갔던데? 누구를 대신하는 취미도 없고 그럴 생각도 없는데·”
청도 화면 너머 최리옹의 열연을 보았다·
사실 전혀 달갑지 않은 태도였다·
정들고 불쌍해서 살렸을 뿐이지 지금 이 꼴 아니었으면 정신 차리라고 단박에 방사능 물리 치료에 들어갔을 터다·
“그럼 도대체 왜 방해를 하는 것이냐?”
“그걸 몰라서 물어요? 놔둬 봐야 중원 해방이니 헛소리나 하면서 우르르 쳐들어갈 걸 두 눈 뜨고 지켜볼까·”
“하아· 고작 네 무지가 그 이유였더냐·”
“뭐? 아니 내가 뭐만 하면 이 사람들이·”
“되었다· 네 눈으로 보고 나면 알겠지·”
천마가 청의 말을 끊으며 손을 들었다·
그러자 원룸의 네 벽이 뒤로 넘어가 쓰러지며 바깥 풍경을 비추었다·
아니 남의 집을 마음대로 해체하고 있네·
청이 투덜거리며 뭐 얼마나 좋은 거 보여주나 보자고 그렇게 넘어가며 닭다리를 뜯었다·
못 먹어 비실한 사람 투성이인 중원의 어딘가였다· 비쩍 꼴아 추레한 이들이 그저 널브러져 생기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꼴이었다·
완전 거지촌이 따로 없었다·
서녀명 쯤 되는 사내들이 돌아다니며 쓰러진 사람들을 살폈다· 말도 걸고 눈앞에서 손을 휘휘 흔들어보기도 하면서·
그러다 결국 시체 하나를 보아 이리 찌르고 저리 때리고 흔들어도 보고는 그래도 반응이 없자 옅은 미소를 띠며 집어드는 것이다·
사내들이 시체를 지고 움직이니· 그 끝에는 거대한 솥이-
“멈춰! 사람 밥 먹는데 무슨 짓이야? 그래서 내가 굴할 줄 알면 큰 오산이지만· 딱 보니까 마교 놈들이 하는 선전선동이구만·”
“내가 직접 본 것이다· 십여 년에 걸쳐 여름이 춥고 비가 멎어 곡식이 나지 못했다· 짐승은 진작에 잡아먹고 나무껍질을 떼다 끓여 먹으니 수목조차 고사해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이 그저 살고자 서로의 시체를 먹어 연명한 시대였느니라·”
“아· 실화다?”
“그러나 모두가 못 먹지는 않았지· 보거라·”
세상이 수채화처럼 번지나 싶더니 다시 또렷히 초점이 잡히는 것이 화려한 대궐이었다·
장정 이십여 명이 충분히 누울 만한 거대한 식탁 위로 온갖 산해진미가 차려진 성대한 만찬이었다·
상석에 앉은 사내를 비롯해 식탁의 모두 배가 불룩하고 턱은 여럿을 두니 풍채가 아주 넉넉하기 짝이 없었다·
“저이가 아까 그 도성의 태수다· 배고픈 백성을 살피기는커녕 오히려 쥐어짜 매 끼니마다 성대한 연회를 차렸지· 그 옆에 도인은 화산의 무어라 하는 장로고 여기 앉은 것들이 죄다 정파의 협객이라 하는 것들 아니면 그들이 칼로 비호하여 지킨 부자들이니·”
“화산이 그 화산 맞나?”
“화산파 뿐이겠나? 소림승이며 무당의 도사며 구파일방 명문이라 하는 모든 놈들이 권력에 빌붙어 착취에 앞장선 것들이다·”
아니 정파 무림에 이런 흑역사가?
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저 시대엔 딱히 정파가 존재하지 않았다· 본래 그러했으니 나중에 정파니 사파니 똑같은 놈들이 편을 가르는 꼴이 얼마나 우스운 것이냐·”
정파가 존재하려면 사파와 마도가 필요했다·
사파와 마도가 없으면 칼 든 깡패 중에서 더 점잖고 예의있는 놈들만 모아 구별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굳이 분류하자면 관과 무림 둘뿐으로 그마저 관이 아래에 무림을 두고 공짜로 부리는 무급 자원봉사자쯤으로 여기던 시대였다·
“뭐야 옛날이야기잖아·”
“계속 보아라· 저들이 그저 살려달라 외치는 이들을 어찌 탄압했는지·”
장면이 보인다·
그저 배가 고파 살려달라고 제발 곡식 한 줌만 달라 애원하는 노인에게 돌아오는 것은 호된 몽둥이질 뿐이었다·
아픈 자식 먹일 미음이라도 구걸하려던 노인은 그렇게 숨을 거두고 시신이 아니라 고기로 보는 불쌍한 아귀들의 손에 붙들렸다·
그 꼴을 보다 못해 일어난 무인이 한 명·
청의 눈앞에 선 사내였다·
그리하여 배화의 성스러운 불을 형상한 붉은 깃발을 들고 일어서니 곧 민중의 열화와 같은·
“잠깐· 적기 흔들지 말아줄래요? 하필이면 왜 붉은 깃발이야· 게다가 이럼 황건적이잖아·”
이거 짱깨 게임 아니었나?
적기 흔들며 우리 함께 민중의 나라 건설하자 이래도 문제가 없었나?
청이 게임을 해 보지 않은 탓이었다·
게임 내에서는 꽁꽁 숨겨서 배경으로도 한 줄 나오지 않는 것이었기에·
“그래· 인정하마· 일부 교인들이 황건재림을 외치기도 했으니· 그 결과도 비슷했다·”
그저 살게 해달라고 일어선 양민들에게 창칼이 날아들었다·
창은 군대의 것이며 칼은 무림인의 것이다·
그리고 어느새 장면은 탄압 이후 생존자들의 처절한 도주로 이어졌다·
산 넘고 강 건너 무수한 죽음으로 사막까지 건너 마침내 거대한 산맥에 이르는 무리였다·
천마신교의 시작이었다·
“그리하여 남은 것이 복수다· 내게는 그리고 모든 신교의 모든 후예가 마땅히 해내야 하는 복수가 남았다·”
가족과 친구 혁명의 동지들을 모두 잃고 그 대신 흉터로 남은 사내가 말했다·
셀 수 없는 그 모든 흉터가 가슴 속에 파묻은 친우의 무덤이었다·
세상의 파괴자를 자칭하는 복수귀가 죽음을 거부하면서까지 불태우는 원한이었다·
청이 그 뜨거운 불길 앞에서 말했다·
“개소리 하고 앉았네·”
“뭐?”
“복수는 너한테만 남았고요· 마교 놈들한테는 복수 뭐 그런 생각일랑 남지도 않았던데·”
청이 짧지 않은 마교 생활을 떠올렸다·
뭐 하나 정상적인 구석이라고는 찾아볼 수가 없는 병신 같은 집단이었는데 그 대가리라는 놈이 이러하니 당연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나이 처먹었으면 곱게 뒤져야지· 무슨 정신 기생체로 몸 바꿔타면서 추하게 이길 때까지 하겠다는 거야 뭐야·”
청의 주특기 지옥 아가리였다·
“그거 알아요? 애초에 실패한 새끼가 똑같은 방식으로 몇 번을 처해도 계속 실패하게 되어 있는 법이에요· 사람이 실패하면 왜 실패했지 다음엔 다른 전략을 써야겠다 해야지 이번엔 육체가 약하고 저번엔 병력이 좀 모자라· 벌써 네 번을 내리 붙어서 깨졌으면 나 같으면 쪽팔려서 그냥 혀 깨물고 뒤졋·”
털썩·
지옥 아가리의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머리가 날아가버리면 더는 펼칠 수가 없다·
천마가 시뻘건 얼굴로 소리쳤다·
“오냐· 어디 한번 해 보자꾸나· 죽을 때까지 죽이면 고작 절정의 버러지같은 정신이 얼마나 버틸 성싶으냐? 그 건방진 주둥이를 놀린 것을 후회하게 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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