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05
천마총 바깥 어느새 깜깜한 밤이었다·
청이 야무지개 기지개를 폈다·
아휴 가오잡느라 힘들어 죽는 줄 알았네·
실은 도중에 몇 번이고 계단으로 바로 도망을 쳐야겠다 충동이 끓어올랐지만 뭐 어쨌거나 훌륭히 수행해 살아남은 것이다·
안도감과 함께 생존의 기쁨이 밀려들자 청이 저도 모르게 흥이 올라 뒤로 전진하며 인류사 가장 성공적인 무용을 펼쳤다·
인디애나 마씨의 월상보행이었다·
천마가 몸으로 펼친 이치가 그대로 남았으니 청이 얻은 깨달음 중에 가장 귀한 것이었다·
그렇게 승리의 춤으로 자축하고 있을 때였다·
“크흠·”
기침 소리에 청이 화들짝 놀랐다·
“아씨 깜짝이야· 할아범· 왜 따라왔어요?”
“네가 떠날 때 주려고 네 짐을 챙겨두었다· 갈 때 가더라도 네 물건은 챙겨야 할 것이 아니냐· 칠칠치 못한 것아·”
“와 진짜요? 다 챙겨놨어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짐 생각이 났다·
장강의 자유이용권부터 시작해서 친구들이 준 손님패 일절과 아미파 방장사태에게 전할 스승님의 편지도 있지 않았던가·
그러고 보면 할아범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
아예 인격이 바뀌니 청에게 주던 관심도 같이 사라질 것이었고 짐까지 챙겨두었으니 복신적 불어 문 열고 난 이후에 순순히 보내줄 생각이었을 터다·
청이 최리옹의 뒤를 뽈뽈 쫓았다·
어느 짐마차에 이르러 최리옹이 안으로 들어갔다 나오니 꾸러미와 함께 익숙한 것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청이 개중에 가장 반가운 것을 덥썩 받았다·
돌아왔구나! 내 월광검!
오랜만에 쥐는 월광검(8호)이었지만 손잡이가 착 감겨 언제 놓았냐는 듯이 익숙했다·
청이 싱글벙글 검을 허리에 찼다·
그리고 남은 짐을 받아들려는데 최리옹이 짐을 들고 미적미적 넘겨주지 않는 것이었다·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야요· 혹시 나머지는 유료인 부분?”
원조 중국 아니랄까 봐 상술도 전통이었나?
내 물건 내가 돌려받는데 값도 치러야 하나?
그러나 최리옹이 눈치를 보며 말했다·
“크흠· 내 늙어서 얼마나 살지 모르겠으니 묫자리 좋은 데 있나 살피러 가려는데· 혹시· 괜찮으냐?”
“아니 할아범 죽을 자리 찾는 걸 왜 나한테 허락을 아니다· 에휴·”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모르는 척을 해도 늙은이가 순순히 물러날 것 같지는 않아서·
죽을 자리 찾겠다는 게 진짜로 배산임수 양지바른 볕 자리 찜해놓겠다는 말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삶을 함께 지내다 네 곁에서 죽어도 되겠냐는 간절한 소망이었다·
“할아범 일단 확실히 해 둬요· 나는 할아범 새아빠로 모실 생각은 추호도 없어요· 대신에 할아범이 날 어떻게 여기든 상관은 안 할게· 그냥 짐도 맡기고 마차도 끌고 아주 잡일이란 잡일은 다 부려먹을 거야·”
말은 패륜적이나 결국엔 허락이었다·
최리옹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고맙다 고맙구나· 그 정도도 과분해····”
노인네가 따라다니며 수발 들어주는 정도로 남은 여생이 평온할 수 있다면야 그 소원을 못 들어줄 것은 아니다·
이미 지내온 삶을 고통받았으니 죽은 이에게 발목을 잡혀 자신을 학대하기엔 이미 늙어버린 노인네가 아닌가·
하지만 나중에 딸이 아니니 어쩌니 덤벼들면 선의가 악의로 돌아오는 꼴이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꼴은 못 보지·
“대신· 난 대마두 끌고 유람하면서 세상 사람 손가락질받는 취미는 없거든요? 어차피 통제도 안 되는 마공 그거 지워요· 나중에 회까닥 눈 돌아서 왜 속였느니 내 딸 내놓아라 덤벼들면 어떡해·”
평생 연마한 적공을 흩어버리라는 소리였다·
무인이 제 생명보다 소중히 여기는 것이기도 했다·
“내 그리 하도록 하마· 지금 당장이라도·”
그런데도 최리옹의 대답에는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청이 재차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일단 여기서 빠져나가고 이야기해요· 여기 미적거리다가 아주 마두들 다 몰려오겠어·”
—-
천마총 내부 신교의 정예 고수들이 지승주의 곁으로 모여들었다·
강자존의 신교이기게 정예 고수란 곧 신교의 지도부와 같은 뜻이기도 했다·
“이보게 마뇌· 정말로 그 계집을 따를 생각인가?”
“당대의 천마십니다· 그분의 파천마기를 이미 눈으로 확인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렇다곤 하나 아직 새파랗게 어린 계집이 아닌가· 신교의 위엄이라는 것도 있는데·”
“아직 젊은 분이시기에 더욱 찬란하시지 않습니까? 무천검귀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와 같은 인물이 정파에만 있으란 법이 있습니까?”
“허나 이미 정파의 인물이 아니오?”
“그분의 손속을 보지 못하셨습니까? 천마께선 결국 교로 돌아오실 수밖에는 없으실 테지요·”
“으음···”
고수들이 침음성을 흘렸다·
산 사람의 눈알을 후비는 것은 여간한 독심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생글생글 웃는 얼굴을 하고 기꺼운 기분을 숨기지 않으며 아이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놀이와 같은 꼴이라면 더욱이·
“허나 평생 보고 달려온 숙원을 이제 와 포기해야 한단 말이오? 게다가 중원 놈들과 화해라니· 애초에 그게 가능하기나 한 일인지·”
“차라리 잘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힘쎈 놈은 밖에 나가도 얻어맞지는 않는다라· 중원에 그 어떤 세력이 감히 신교와 맞서려 들겠습니까?”
이미 네 차레에 걸친 정마대전으로 그 저력을 증명한 천마신교였다·
물론 매번 패퇴하였다고는 해도 무림에게도 큰 상처를 남겨주지 않았던가·
신교가 돌연 과거를 청산하고 양지로 나가겠다고 선언한들 무림이 그게 되겠냐고 외치며 전쟁을 벌여 피해를 자처하지는 못한다·
“사실 언제까지 신시의 호구를 붙들어 통제해야 하겠습니까· 매번 침략하여 패배의 역사를 쌓은 것이 결국 그 때문이 아닙니까·”
척박한 대지에 숨어 사는 신교였다·
많은 인구를 부양할 능력이 없기 때문이었다·
외당의 여러 부서가 중원에서 벌이는 ‘사업’ 으로 벌어오는 금자도 결국 한정되어 있다·
그래서 신교는 강자존일 수밖에는 없었다·
그러니 신교의 강자존은 한정된 인구를 유지하면서 최대한 정예한 병력을 갖추는 수단으로 작용한 것이다·
정예 병력의 천적은 우습게도 막대한 물량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압도적인 교환비로 유린하더라도 한 명 한 명의 손실이 뼈아픈 것이다·
전쟁이 길어질수록 전과는 압도적이나 전세는 불리해지니 결국 패배하여 달아날 수밖에는·
이 자리에 강자존의 폐해에 대해 모르는 이가 없었다·
모두가 사람을 잡아먹고 여기까지 왔으니까·
그러나 강자존의 부작용이 심한 것을 알아도 그저 그럴 수밖에는 없는 것을 어떡하겠는가·
게다가 그 성과도 훌륭했다·
청이 매번 병신이니 제대로 된 구석이 없니 비난을 퍼붓기는 했지만 무림을 통틀어 천마신교만큼 단일한 공동체로 강력한 집단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사실이었다·
고수들은 영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환상 속의 풍경처럼 저마다 중원 해방 이후 부귀를 쫓던 인물이 대부분이라서·
그러나 지승주는 형편없는 무재로도 신교의 존중을 받는 비각주이자 마뇌다·
충분한 시간만 있으면 그저 힘만을 숭상하는 무식한 마두 정도는 쉽게 구워삶을 자신이 있었다·
비단길 끼고 있는 천마신교가 당당하게 영역을 주장하고 또 교리와 도덕을 혼합한 통치를 더하면 지금보다 큰 성세를 이루기야 어려운 일도 아니다·
지승주가 표정 없이 속으로만 야망을 삼켰다·
과거 태사 성에 이름은 자라고 하는 장수가 말했다· (이름이 사자가 아니다·)
사내대장부로 태어났다면 칠 척의 칼을 차고 천자의 계단에 올라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감히 칼을 차고 황제 옆에 설 수 있는 자·
만인지상 일인지하 책략을 꾸미는 자가 닿을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일 테니까·
—-
지존에게는 이름이 없다·
아비의 얼굴은 본 적이 없고 어미가 준 것은 시퍼런 증오뿐이었다·
즉 받은 것이 무관심과 증오뿐이었다·
심지어 이름조차 받지 못한 것이다·
다만 지존은 그 사실에 불만이 없었다·
지존은 그저 유일한 지존이기에 이름 따위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
천하에 지존이 한 사람이라면 굳이 이름을 쓸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제 이름이 없었던 다른 이유도 안다·
그저 천마의 혼이 자리를 잡을 육신이다·
이름이라는 호사스러운 것을 붙여줄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을 때 지존은 그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더는 아니었다·
생애 처음으로 야단을 맞은 고통을 알았다·
그리고 또한 생애 처음으로 머리를 쓰다듬던 그 자상한 손길을 알았다·
너를 용서하겠다고 하는 자비를 들었다·
속에서 우러나는 진실된 미소가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진심의 기꺼움이 제게 향했음을 그 장면이 선명하여 눈을 감아도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었다·
바로 부모가 자식에게 베푸는 사랑이다·
그렇다·
그저 무책임하게 육체를 빚어 세상에 싸질러 놓았다고 해서 부모라고 하겠는가·
부모의 자격은 바로 그 자애에 있었다·
거기에는 나이도 미추도 상관이 없고 심지어 성별조차 의미가 없으니 그저 사내는 아버지 여인을 어머니라 부르는 것이 아닌가·
하지만 아직 하나가 남았다·
부모가 자식에게 주는 가장 귀한 것이었다·
아직 지존이 갖지 못한 것· 이름·
착하게 굴라 하셨으니 착하게 굴 것이다·
다시 만날 때는 그 약속으로 마침내 이름을 받게 될 테니까·
지존이 신교의 정예들을 보았다·
감히 지존을 쏙 빼놓고 저들끼리 쑥덕거리기 바쁜 무엄한 놈들이었다·
지존의 심중에서 분노가 끓어올랐다·
분노가 힘이 되어 시커먼 마기가 들끓었다·
지존은 현경의 무인이고 그마저 탈마를 위해 스스로 금제하여 묶어둔 것에 불과했다·
단전이 박살이 나니 금제 역시 풀려났다·
현경의 진입이었다·
그 깨달음으로 산산조각이 난 단전을 억지로 기워 붙이니 누더기에 불과한 결과물일지라도 어찌어찌 보전하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천마를 위해 준비된 신체였다·
어릴 적부터 밥 대신 퍼먹은 영약의 약성이 아직도 사지 백해에 흘렀다·
일단 단전의 형태만 유지하고 있으면 복구야 시간이 걸릴 뿐 불가능하지 않다·
지존이 분노를 가라앉혔다·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저 가슴 속에 박힌 미소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저절로 심신이 안정되며 절로 입가가 느슨히 늘어져 버리고 만다·
말씀하신 대로 착한 아이가 될게요·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
지존 올해로 사십 칠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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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가끔 상단전이 열리는 때가 있어 천지 운행을 무의식적으로 읽어내고는 했다·
이를 육감이라고도 하고 예감이라고도 했다·
청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돌연 뭔가 정말로 아주 싫은 예감이 들었다·
뭐지? 방금 진짜 소름이 쫙 끼쳤는데?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이유가 없다·
청이 그저 찝찝한 기분을 곱씹을 뿐이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는·
아비 한 명 언니 한 명에 이어 장성한 아들 한 명이 새로 생겼다는 사실을 어찌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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