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1
여인의 눈물은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구라다·
사실 그런 말은 없다·
울상이란 본래 미간은 아래로 광대는 위로 솟구쳐 서로 싸우니 눈 주변에 있던 모든 주름이 놀라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가 하면 입은 형편없는 모양을 하고서 팔자로 깊은 글씨를 새긴다·
낯빛은 시뻘겋고 눈물은 눈의 양옆으로 도합 네 갈래가 흐르며 심하면 콧물이 솟구쳐 방울지는 대참사까지 일어나곤 했다·
이는 이전에 진장명이 울며불며 증명했다·
그러니 아직 중원에 없는 영상 매체에서의 그 울음 아름다운 얼굴 또로로 흐르는 눈물으로 저래도 고우시구나 하는 울음은 거의 없다·
거의 없는 이유는 있기는 있기 때문이다·
웃으며 슬픔을 삼켜야 하는 절제된 슬픔이나 아니면 억지로 하는 울음의 흉내일 때다·
당난아는 분명 입으로는 꺼이꺼이 어쩔 줄을 모르지만 그 조막만 한 얼굴이 여전히 예뻤다·
게다가 촉촉한 눈빛으로 아련하게 올려다보며 눈물을 뚜욱뚝 흘리니 청마저도 와! 하는 감상이 들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청이 당난아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와 어떻게 저렇게 순식간에 감정을 잡지?
이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한편 당난아는 스스로의 사악함에 소름이 훅 끼칠 지경이었다·
본래 여인의 암투는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하나는 누가누가 더 썅년인가 부문·
그리고 또 하나 누가누가 더 피해자인가 부문이었다·
선즙필승이라는 용어와 용법이 아직 정립되지 않은 중원이지만 본래 진리란 시대를 초월하여 반짝이는 법·
이것이 사천제일미이자 지금의 해어독화를 만든 비기였다·
만천화루滿天花淚!
온 사방에 꽃의 눈물이 가득하니 이를 연민하지 않을 사람이 세상 어디에 있으랴·
순식간에 이목을 사로잡아 불쌍하고 가련한 미인으로 변신하였으니 미모에 떳떳하지 못해 얼굴 뒤집어쓴 면사녀와 무려 화경의 고수인 할아버지는 불쌍함에서 상대가 되지 않는다·
이 싸움 내가 이겼네?
대충 당난아가 그렇게 당황하는 상대를 보고 더 크게 울음소리를 높혔다·
“죄송 합니다· 흐윽 끄읍 흐엉엉···”
“···”
“흐윽 흐으윽·”
“···”
“죄송해요 제발 용서를 흐윽·”
“···”
뭐지? 왜 용서해 주지 않지?
놔두면 본인들만 손해인데?
인정머리 없는 조손이라고 욕만 먹을 텐데?
평판 신경 안 써? 평판 버려?
당난아는 상대를 너무 얕잡아보았다·
상대가 평판에 신경 쓸 것 같았으면 바닥을 세 번 튕겨 구른 후에 바르작거리다 금괴까지 야무지게 챙겨가진 않았을 테다·
“헉 흐윽 흐으으읍 끕 흡 죄송·”
그러나 지금 강적을 만나 당난아는 만천화루의 치명적 약점을 깨달았다·
이는 심력과 체력의 소모가 어마어마해 단기에 결전을 내지 못하면 본인이 힘든 것이다·
사람의 눈물이 무한대가 아니라서 속을 비운 눈물샘이 그만 좀 하라 난리를 쳤다·
당난아가 단전 속 독단에서 독을 꺼내 눈으로 돌려 눈물샘을 혹사시켰다·
이 흐르는 눈물이 독공의 연장이었던 것·
그와 동시에 슬픈 생각을 계속했다·
그래 아버지가 그깟 자기 좀 깼다고 혼냈을 때라던가·
암기 연습할 때 위기감을 주기 위해 가장 비싼 걸로 골라 표적의 양옆으로 두었을 뿐이었다·
일부러 깨려고 깬 것도 아닌데 화를 다 내고· 진짜 너무했지·
천년하수오를 구워 먹었을 때도 그랬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딸이 그깟 영약 좀 구워 먹을 수 있지 얼마나 귀한 손님을 드린다고 노발대발 화를 다 내고·
누구 환갑잔치 선물보다는 딸이 중요하지· 진짜 너무했어·
서러움이 원동력이 되어 만천화루의 지속시간이 다시 쭈욱 늘어났다·
“죄송합니다 흐윽 부디 용서를 우읏 흐윽 흐으으으읍 흐윽 엉엉···”
무려 사천제일미의 눈물이었다·
구경꾼들이 그 애절함에 가슴을 쥐고 속으로 이쯤이면 용서해줘도 되지 않은가 마음을 돌렸으니 아름다움이 곧 힘과 권력이었다·
누구 하나 바람잡이만 있어도 다 같이 ‘용서해 용서해·’ 하고 구령을 붙일 지경이었다·
그래서 청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아· 생각해 보니 이러면 마라탕 먹으러 가도 되는 거 아닌가? 할아범 가요· 천하제일숙수의 자신작이라는데 먹어 봐야지·”
“그래봐야 마라탕이 무어 대단할 것이라고·”
“에이 먹어보기 전에 그러는 거 아냐· 우리 친구도 가자· 그렇다고 저녁 쏜다는 거 사라진 거 아니니까· 사내가 한 입으로 두 말 하면 안 된다?”
“그러지· 내 그 정도로는 구경값도 못 될 것 같은 기분이니라· 아주 속이 다 시원하군·”
그리고는 셋이 쏙 창룡의 안으로 들어가 버리고 말았다·
꿇은 채 혼자 남게 된 당난아가 당황했다·
어라· 이러면 어떻게 해야···?
—-
팽초려는 슬슬 시간이 아까워지고 있었다·
이럴 시간에 대도를 한 번 더 휘두르면 그게 전부 다 강건한 신체에 자양분이 될 것을·
마라탕인지 뭔지 잘 모르겠고 저녁이란 새끼 돼지나 어린 송아지 통채로 구워 썰어먹어야 진정한 무림 협객인 법이거늘·
그때 나간 당난아는 어디로 가고 처음 보는 세 사람이 낄낄거리며 안으로 드는 것이다·
팽초려가 빠르게 세 사람을 훑었다·
청이 그 시선을 딱 마주쳤다·
아무래도 인사를 드리는 게 맞겠지?
사칭범 오해도 좀 풀어야 하고·
“안녕하세요? 그 대산이 누님분이라고· 저는 대산이 친구 서문청이라고 해요· 대산이한테 이야기는 못 들었지만· 자기 얘기를 도통 해야 말이지·”
팽초려가 의아한 듯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음? 대산이? 그놈이 저를 그리 부르도록 놔 두던가요? 그놈이 그럴 새끼가 아닌데·”
아· 남매가 확실하구나·
팽초려의 의심 섞인 눈초리에 청이 급히 품을 더듬어 손님패를 꺼내 보였다·
“저 대산이 친구 맞아요· 여기 대산이가 친구라고 준 거거든요?”
팽초려가 청이 보란듯이 내민 손님패를 들여다보았다·
웅혼한 필치로 새겨진 금박 글자가 보였다·
남궁!
팽초려의 눈이 가늘어졌다·
뭐지? 자기 과시?
남궁가의 귀한 손님이라는 건가?
“남궁···?”
“아· 잘못 꺼냈나 봐요·”
청이 다시 제대로 된 손님패를 내밀었다·
금박을 입힌 패에 깊게 글씨를 새기고 붉은색 안료를 채워 넣은 글자가 보였다·
팽·
거기에 달린 붉고 푸른 수실은 후계자 직속의 손님패 팽대산의 것이 맞는 것이다·
그것도 상중하 중 상상패였다·
“아니 이런 세상에· 진짜잖아? 진짜 대산이 친구에요? 그 놈이 여자친구?”
“둘이 붙이면 의미가 좀 이상해지는 것 같으니까 여자 사람 친구라고 해 줄래요?”
청이 아주 질색을 떨며 대답했다·
누구와 완전히 똑같은 진심으로 싫은 듯한 몸서리질·
팽초려가 크하하하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소리만 들어서는 오대세가의 여협보다는 산중 호걸 산적에 가까운 웃음소리였다·
“그래 친구다? 순수하게 친구? 그래 그 놈도 그 꼴을 한 번 당해 봐야지 그럼·”
팽초려의 눈빛이 굉장히 살가워졌다·
—-
당난아가 들어온 것은 퍽 시간이 지나서였다·
곧장 돌아가기에는 뭔가 울면서까지 반성한 느낌이 안 살고 그렇다고 계속 밖에서 뻘쭘히 꿇어앉고 있을 수도 없지 않은가·
사천제일미 구경하겠다고 사람은 계속 늘어나는데 사과 받아줄 사람은 쌩하니 들어가 버렸으니 아주 초유의 사태였던 것·
그리하여 당난아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슬슬 눈치 보다 일어나 돌아오니 웬걸·
화기애애하게 웃음꽃이 피었으니 심드렁하니 마늘이나 까먹던 팽초려의 표정이 전에 없던 활기로 반짝거리는 것이다·
뭐야 분위기 왜 좋은데?
새언니 나한테는 안 그랬잖아요·
당난아가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창룡쯤 되는 요리점을 전세 내는 일은 아무리 당가라 해도 조금 무리수이긴 했다·
혼삿길 막을 거냐고 반쯤 협박해 억지로 만든 자리인데 무릎 꿇고 눈물 짜내며 지킨 자리를 엉뚱한 년이 홀라당 처먹고 있었다·
당난아의 눈이 불타올랐다·
이 굴욕 버틸 수 없다·
사천당가의 진정한 두려움을 보여줘야 한다·
비열맹독? 아니면 장녹산? 아니면 미간장독?
당난아가 가진 독들을 떠올렸다·
비열맹독은 코에 열을 차게 하여 폭포수 같은 콧물을 터뜨리는 독이며 장녹산은 장을 녹인다는 이름답게 변소에서 폭풍을 일으켜준다·
미간장독은 너무나 끔찍한 독으로 무려 눈썹 사이에 화산과 같은 위용의 뾰루지가 솟구치게 만드는 여인의 눈물 그 자체였다·
당난아는 이렇게 너무나 위험한 극독을 상시 소지하고 다니는 천하의 악녀이자 해어독화인 것이다·
“아· 난아야· 이쪽은 청아 그러니까 서문청 소저란다· 둘이 이미 보았나?”
아兒라니!
아는 본래 부모가 어린 자식을 부를 때 쓰는 애칭으로서 대개 이름 마지막 글자의 앞뒤로 붙였다·
앞에 붙으면 격식을 차리는 것이라 공식 석상에서 사용할 수 있고 뒤에 붙어있으면 애정을 특히 강조하게 된다·
팽대산을 예로 들면 아산 산아가 된다·
그리고 친동생만큼이나 친한 동생을 부를 때 쓰는 말이기도 했다·
다만 절대 손위 사내가 손아래 사내에게는 절대 뒤로 붙여 써서는 절대 안 된다·
무려 절대 세 번짜리 강조다·
이봐 아산·(O)
있지 산아야·(무림공적)
“그 두분이· 아는 사이셨던···?”
“아니? 오늘 처음 봤지·”
“끄으윽·”
“뭐야 어디 아프니? 배라도 아픈가? 끙끙 앓으네 얘가· 쨌든 청아야 그래서 그때 말이다· 내가 산적 놈들을 쳐죽이는데···”
“아 그거 알 것 같아요· 팔다리를 먼저 자르면 꿈틀거리는 게···”
“그래 대가리는 이렇게 눕혀서···”
“알죠· 박살을 내면 그 깨지는 촉감이···”
“오오 아는구나! 그럼 입으로 내장을 토하게···”
“거기 말고 비장 쪽을 좀 더 쎄게···”
이해는 할 수 없었지만 뭔가 흉흉한 내용의 대화가 오갔다·
도대체 여인들이 할 주제인가 싶기는 한데·
하지만 무척 화기애애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 배가 아니긴 하지만 배가 무척 아프다·
동시에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이대로는 안 된다!
뭔가 상황을 타파할 만한 화제가 필요해!
그때였다·
-으아아아악!!! 아악!!! 으아아악!!!
돌연 비탄에 가득 찬 절규가 울려퍼졌다·
듣는 이의 속이 서늘해지는 비명이었다·
주방에서 울려퍼지는 처참한 소리다·
덕분에 대화는 끊기고 모든 관심이 주방 쪽을 향해 전환되었다·
당난아가 호위에 더해 겸사겸사 외숙을 맡고 있는 염조앙을 향해 별처럼 빛나는 눈빛을 쏘았다·
역시 외숙 믿고 있었어요!
어쩌다가 한 번은 할 때 해 주시는군요!
염조앙이 전음으로 화답했다·
-나 아니다· 눈빛 치워라·
다음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