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2
주방은 처참한 꼴이었다·
바닥에는 온통 시뻘건 것이 흐르고 그 사이로 난자당한 살점 토막토막난 뼈 흐물하거나 단단한 것들이 뒤섞여 흩어졌다·
훅 끼치는 지독한 냄새에 모두가 반사적으로 입과 코를 막을 정도였으니·
누군가는 비위가 약한지 우욱 옅은 구역질 소리를 냈다·
그리고 이 참사의 범인이 시퍼렇게 날이 선 칼을 쥔 채로 고함을 질렀다·
“내가 아니야! 내가 내가 했을 리가 없단 말이다!”
청이 그 꼴을 보며 생각했다·
아니 아깝게 왜 먹을 걸 다 버려놓고·
온통 바닥에 마라탕 기름 사이로 불쌍한 고기며 야채 두부 면 따위가 둥둥 떠다녔다·
청이 불편한 목소리로 쏘아붙였다·
“이봐요 뭐가 아닌데요? 님이 천하제일숙수인지 하는 그 사람 아니에요?”
“그래 내가 천하제일숙수 백창자다· 그리고 이것들은 쓰레기고· 왜지? 왜 제맛이 나지 않지? 이 맛이 아니어야 하는데? 뭐가 문제지? 돈골인가? 아냐 멀쩡해· 마초가 변했나? 아니· 연소육? 이것도 아닌데·”
천하제일숙수 백창자가 광기 어린 눈빛으로 사방으로 휙휙 쏘다니며 식재료를 붙들고 킁킁 냄새를 맡으며 중얼거렸다·
“뭐지? 전부 멀쩡해! 전부 멀쩡하다고!”
“이봐요· 뭔가 문제가 생긴 건 알겠는데· 왜 먹을 걸 땅에 버려요? 아깝지도 않아요?”
청은 아직도 초출 시기 쓰레기를 주워먹던 그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평생 지고 갈 아픈 기억이 계속해서 음식에 대한 집착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아니야! 이딴 건 먹을 게 못 돼! 쓰레기야!”
“아니 님이 쓰레기로 만들었잖아요·”
“뭐? 내가 쓰레기를 만들어!? 감히 이 천하제일숙수 백창자에게 하는 말이냐!”
청이 옆으로 손을 착 내밀었다·
그러자 최리옹이 어디선가 복신적을 꺼내 그 손에 쥐어주었다·
뒤이은 청의 목소리가 스산했다·
“백창자인지 빽대창인지 아 대창 먹고 싶다· 어쨌든 지금 바닥에 뿌려진 게 내 저녁이 아닌가 싶은데요·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하지 않으면·”
“아니야! 이딴 건 내 마라궁극탕이 아니악!”
빠악!!! 호쾌한 소리가 울려퍼졌다·
이래서 사람이 정신이 없어도 눈치는 있어야 하는 법이다·
천하제일숙수의 꼴이 아주 엉망이었다·
머리 붙잡고 바닥을 굴렀으니 오늘 숙수복이 마라탕 국물을 한계까지 처먹은 날이었다·
시뻘겋게 국물 흥건한 숙수복을 치덕치적 살에 붙여놓은 상태로 백창자가 공손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래서 내 저녁은요?”
“이거 면목이 없게 되었습니다····”
“뭐야 뭐가 불만이에요? 내가 맛난 마라탕 한 그릇 먹겠다는 게 그렇게 잘못인가? 아저씨 손맛이 그렇게 좋다고 해서 꼬박 사십 오 일을 내가 기다렸잖아요·”
“그래서입니다· 제 요리를 기대하여 찾아오신 손님분들께 잘못된 일품을 내놓을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일품이요?”
“이 맛이 이 맛이 아닙니다·”
백창자가 사정을 설명했다·
본래 마라궁극탕이라 하면 한 그릇에 금자가 한 개인 최고급 음식이다·
그렇기에 돼지고기는 칠개월 이상 구개월 이하 가장 부드러운 어린 돼지의 등심만을 써서 겉을 튀긴 후에 따로 익힌다·
그리고 소고기 역시 건강한 송아지의 안심을 마찬가지로 조리하여 준비했다·
또한 연근은 아무 연근이나 쓰는 것이 아니라 따로 연못을 가꿔서 어쩌구 저쩌구 등등등·
청이 어이가 없어서 되물었다·
“그냥 제일 좋은 재료를 써다가 따로 조리한 후에 국물에 넣는다는 거네요· 근데 그러면 맛이 없을 수가 있나? 천하제일숙수가 굳이 필요해요?”
“원래 요리란 재료의 상태를 따져 그날그날 날이 눅눅하지는 않은지 춥거나 더운지 고기는 또 비계와 육질을 보고 야채는 이파리와 그 모양새를 보고 최적의 맛을 끌어내는 능력이니 제가 아니면 누가 최고들을 모아서 고작 마라탕 한 그릇에 쏟아붓겠습니까?”
“고작 마라탕이요?”
“마라탕이 결국 서민의 음식에 지나지 않다고 하나 음식에는 귀천이 없는 법입니다· 실제로 제 마라궁극탕 이후 마라탕에도 여러 발전형이 나와 그저 값싼 한 끼 대용에서 점차 한 그릇의 요리로 인정받고 있지 않겠습니까·”
아까는 그냥 미친놈이었는데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 의외로 건실하고 훌륭한 요리인이었다·
“그런데 왜 내 저녁을 다 버렸어요?”
“그것이 말입니다·”
오늘도 모든 재료를 완벽히 준비하여 특히나 귀하신 분들이라 하여 심혈을 기울여 만들어 냈다·
그러나 그 재료들이 합쳐진 순간 재료와 탕국이 어울려 만들어지는 조화에 큰 문제가 생겨버린 것이다·
재료 하나하나 점검하여 확인해 봐도 문제가 되는 것이 없어 아주 환장하고 말았다고·
“그래서 금일은 요리를 내어드리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심각해요?”
“물론입니다· 천하제일숙수인 제 미각 정도가 아니라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할 정도의 미세한 뒤틀림이지만 제대로 된 요리가 아님은 확실· 음· 때리실 겁니까?”
“응·”
청이 복신적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
백창자가 비장한 표정으로 변명했다·
“제가 비록 맞더라도 항상 최고의 요리를 대접한다는 흉중의 뜻은 꺾이지 않을 것입니다·”
“장인정신도 좋지만 적당히 해야지? 밖에서 주린 배 움켜쥐고 있는 손님들은 생각 안 해?”
“맛은 곧 권력입니다· 최고의 요리를 위해서는 당연히 애타는 기다림의 시간이 필 악!”
빡! 백창자가 다시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그 의기를 높이 사서 대충 느낌표 한 개 분량 정도로 힘을 조절한 일격이었다·
청이 나뒹구는 백창자를 두고 뒤로 돌았다·
“아무래도 저녁은 글러 먹은 것 같은데요· 아씨 쫄쫄 굶었는데 배고파 죽겠네···· 친구 아까 가려던 데가 어디야?”
“괜히 시간만 버린 꼴이로구나· 좋은 구경 했으니· 그래 혹시 오리는 즐기나? 북경만큼은 아니지만 사천의 오리도 나름 풍미가 있다네·”
“오 좋은데?”
청이 그새 마라탕을 잊고 시시덕거렸다·
그도 그럴 것이 북경오리 만큼은 아니지만 비교할 만하다지 않나·
무림 출도 이전에도 북경오리가 온 세상에 그 위명을 떨쳤으나 정작 출도 이후로 그 원조를 접할 기회가 없었다·
“사천오리라· 완전 기대되는걸·”
“맞아· 오리는 훌륭한 저녁 식사지· 황제내경에 따르면 오리는 기를 보하고 신체를 키운다 하지 않니· 무인이 사랑해야 할 식재란다·”
팽초려가 자연스럽게 말을 받았다·
“자 잠깐만욧! 뭔가 굉장히 자연스럽게 그쪽 비실이가 대접하는 상황이 되어버리지 않았나요? 언니 오늘 저녁은 제가 기필코 대접을 해 드리려고 하였단 말예요·”
“그치만· 마라탕보다는 오리 통구이가 훨씬 낫지 않니? 애초에 그리 좋아하지도 않고·”
팽초려가 뒷통수를 벅벅 긁으며 대답했다·
당난아가 재빨리 대답했다·
“저 저희 당가에도 오리라면 얼마든지 있답니다· 무려 유황을 먹여 키운 아이들이랍니다·”
“오· 유황오리· 그래· 황제내경에 따르면 사람이 본래 유황을 삼킬 수 없으나 오리에게 먹여 깃들게 하면 이후 식용으로 뼈가 단단해지고 관절을 보한다고 하였지·”
유황과 초석은 관에서 통제하는 품목이다·
값이 만만치 않을뿐더러 애초에 많은 양의 구매가 불가능했다·
그러니 값비싼 유황을 고작 오리에게 먹이는 것은 황금을 개에게 먹이는 꼴이었다·
물론 당가에게는 권력과 재력이 있었다·
“오늘은 본가에서 제대로 대접을 해 드릴게요 네? 언니이·”
청이 고개를 갸웃했다·
황제내경이 뭐지? 무슨 미식 지침서인가?
청이 한번 구해다 읽어봐야겠다고 다짐하던 참이었다·
팽초려가 청의 어깨를 툭 쳤다·
“청아야· 가자· 당가에서 대접해준다고 하지 않니·”
“아· 그런 거였어요? 쟤가 날 데려갈 것 같진 않았는데·”
청이 보기엔 딱 치와와 같은 느낌이랄까·
팽초려에게는 꼬리 파닥거리며 앵기지만 그 품에서 청을 향해 아르르 이빨을 보이는 듯한·
당난아에게 그 하찮아서 귀여운 견종이 겹쳐 보였다·
“앗 언니· 잠깐만요· 저는·”
“우리 청아 배분이 배분인데 어찌 그럴 리가 있겠니· 대모님의 기명제자를 두고 혼자 초대받을 리도 없고 그렇다 쳐도 어찌 따라갈 수가 있겠니? 그런데 난아야· 왜?”
청은 배분상 도가의 큰어르신이었다·
한 자리에 있어서 저녁 초대를 쏙 빼놓는다면 그야말로 도가 문파들 체면을 뭉개버리겠다는 선전 포고가 되는 것이다·
팽초려가 거기 좋다고 따라가봐야 그에 동참하는 꼴이 될 뿐이었고·
눈치 빠른 당난아가 급히 말을 바꿨다·
“아 헤 헤헤 아무것두 아니랍니다····”
물론 동시에 여러 가지 독을 떠올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뭐야 면사녀 주제에 배경이 좋아?
그럼 독을 썼다가 들키면 큰일나겠네?
그리고 곧장 생각하기를·
그럼 안 들키면 되지 않을까?
몰래 하독할 수 있는 것 중에 뭐가 있지?
분합독으로 몇 개 조합해야겠다·
분합독이란 각개로는 독이 아니되 합쳐져서 그 효과를 드러내는 독을 말했다·
예를 들어 탕국에 독 하나를 넣고 따로 덜어 적셔 먹는 건더기나 개인 수저 따위에 나머지 하나를 발라두는 식이었다·
당난아의 눈에 독기가 서렸다·
건방진 면사녀!
오늘 밤에는 변소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야·
어차피 들켜도 초절비기 만천화루 한 방이면 해결되지 않겠나 하고·
당난아가 그렇게 사악하기 짝이 없는 음모를 꾸미며 독기를 끌어올렸다·
그 꼴에 팽초려가 그냥 한 마디 했다·
“얘가· 싱겁기는·”
청은 반색했다·
“그럼 그럴까요? 친구도 같이 가자?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오대세가의 대접을 받아 보겠어?”
“고 아니 내가 말인가?”
자유가 돌연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말을 이었다·
“그것도 좋겠구나· 당가의 대접이라· 언제고 한 번은 받아야겠다고 생각했으니·”
—-
당가는 그날 예기치 못한 손님을 받았다·
미래의 시누 여항적 팽초려와 식사를 하겠다며 나간 딸은 식사는커녕 혹만 주렁주렁 달고 돌아왔다·
덕분에 당가주도 예정에 없던 손님 대접에 나서야 했다·
그 대모의 기명 제자라지 않은가·
아직 어리다곤 하나 최소한 가주가 얼굴 한 번은 비춰야 하는 배분이었다·
그렇다고 직접 찾아갈 정도는 아니다·
저쪽에서 인사를 올려야지 당가주가 받으러 갈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러니 얼굴이나 보자고 부른 참이었다·
그렇게 문이 열리고·
심드렁하니 반쯤 누워 있던 당가주가 튕기듯 벌떡 몸을 일으켰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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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만 감사합니다· 感謝し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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