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16
물이 상했다는 소리는 절대로 간단히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물은 곧 생명이다·
농경에 의존하는 원시 고대 미개 중원에서 물의 중요성은 별표 수백 개를 더해도 모자랐다·
과거 우왕이 홍수를 다스리고 중원의 강역을 바로 세워 치수로 세상을 안정케 했다·
그리하여 순 황제가 그 치수에 감동하여 제위를 넘겼다·
삼황은 신이요 오제는 반신이니 순 황제가 바로 이 오제의 마지막 황제로 인간에게 제위를 넘겨준 것이다
황제가 신화적 존재에서 인간의 소유로 이어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신화에서 인간으로 이어진 그 연결고리가 바로 치수 물을 다스림에 있었다·
이러하니 물의 중요성이야·
“물이 상했다니 그게 무슨 말이느냐?”
“잘 모르겠습니다· 항상 민장 상류 쪽에 있는 우물물이 좋아 길어다 쓰고 있습니다만 밤새 온 우물을 돌아다녀도 마찬가지라· 다만 타장 쪽 물맛은 여전하니 민장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런 쪽이야 당가의 협객분들이 전문이지 않습니까·”
사천은 동서로 두 물길이 흐른다·
흘러서 장강으로 합류하기에 동쪽을 타장강 서쪽을 민장강이라 했다·
장 자를 빼고 타강 민강이라고도 했다·
성도 시내에는 여러 하천이 흐르나 개중에 주된 물길이 민강에서 빠지는 네 하천이었다·
북으로 굽이흐르는 운양강으로부터의 순서로 백도강 주마강 도강까지 깨끗하고 맑은 물맛으로 사천요리가 중원 제일이라 우기는 근거로 쓰이고는 했다·
고작 물맛이 어떠느냐가 아니다·
중원의 강이란 대개 누런 색으로 텁텁하고 흙 맛이 나는 것이다·
곧장 식음이 가능한 깨끗한 하천은 사천에나 쉽게 깔린 것이지 타 지역에서는 흔치 않다·
“민강이야 항상 배 띄워 놀기 바쁘니 그러한 것이 아니느냐· 허나 그렇다고 쉬이 넘길 일은 아니로다만· 일단 당가로 가 보자꾸나·”
자유가 자연스럽게 일행을 이끌었다·
아니 이끄려고 했다·
청이 쓱 한 발 빠졌다·
고작 이런 분위기에 휩쓸리기에 청의 위장이 너무 쓰렸던 것이다·
강이니 치수니 그게 심각한지 아닌지 청은 또 모르기 때문이었다·
“나는 점심 먹어야 해서· 아침 겸 점심이라 더는 지체할 수 없네· 먼저 들어가· 할아범이랑 먹고 들어가지 뭐·”
그러나 자유도 이제 슬슬 청의 취급법을 알 것 같았다·
“아니 천하제일숙수가 여기 있는데 굳이 뭐하러 다른 숙수를 찾나? 당가의 주방에 한 번쯤 서 보고 싶었을 걸세·”
그러고 나니 백창자가 삐딱선을 탔다·
“당가의 제안은 이미 거절했습니다· 제가 서고 싶었던 장소는 당가가 아니라 왕부의 주방입니다만·”
그 왕부의 왕야를 앞에 두고 하는 소리였으니 눈 뜨고도 앞을 못 보는 꼴이었다·
답답하긴 한데 또 하는 말이 기특하여 자유가 어쩔 줄 몰랐다·
그러자 청이 피식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친구 마무리가 어설픈걸· 이봐요 숙수 아저씨· 자기 필요할 때만 도움이고 그래서 밥 한끼를 못 해 주시겠다?”
청이 손을 뻗자 최리옹이 어디선가 나타난 요술 피리를 그 손에 척 쥐어주었다·
그러자 백창자가 당당하게 말했다·
“하하· 사천의 숙수라면 당가의 주방에 한 번은 서 보아야하지 않겠습니까· 과연 어떤 식재가 있을지 너무너무 궁금합니다·”
—-
당가는 당가타라 하며 아예 당씨 씨족들만이 사는 도시 구획 한 동네를 통째로 먹었다·
당가타에 발을 들이니 어디선가 당가 직계의 둘째? 셋째? 넷째?가 나타났다·
쟤가 꼬리였나 목살이었나 검남춘이었나?
청이 귀담아듣지 않아서 잘은 모르겠다·
하지만 이후로 귀신같이 그 형제들이 몇 명 더 나타났으니 둘째든 셋째든 결국 부르면 자리에 있을 것 같기는 했다·
어쨌든 사정을 설명하니 당 아무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거면 우리 아아를 불러야겠군요· 지금 쯤 당가의원에서 환자를 돌보고 있을 겁니다·”
“걔가요?”
청이 영 미심쩍은 당난아를 떠올렸다·
걔도 얼굴은 독한데 어딘가 사저 호소인을 떠올리게 만드는 구석이 있으니 영 미덥지 못한 인선이었다·
“당가에서 아아만큼 독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독제사는 없습니다· 제 동생이라 하는 말이 아니라 그야말로 하늘이 내린 재능이지요·”
당난아는 항상 수제 조합독을 가지고 다녔다·
하나같이 상대의 체면만을 노리는 무시무시한 독들이었다·
먹고 나서 숨 몇 번 쉬면 효과가 도니 실은 그 해독조차 어려운 맹독이기도 했다·
가문의 독제사들이 보기에는 하늘이 내려준 귀한 재능으로 만드는 독약이 연속 재채기나 티 나지 않는 눈물 약 정도라 속이 쓰리지만·
당난아는 당가 최고의 독제사인 것이다·
해어독화의 독은 그저 아이가 영 표독스럽고 음험하며 성질이 나빠 붙여준 것이 아니다·
물론 당가가 이제는 딱히 독에 집중하지 않으니 독제사들이 그저 있는 것이나 분석하여 수준이 높지 않은 까닭도 있었다·
당가가 현재 집중하는 부문은 따로 있었다·
“와· 의원····”
청이 거대한 당가의원의 정경에 감탄했다·
일곱이나 붙여 만든 대문을 활짝 열고 너른 대지에 줄을 선 자들이 환자들이었다·
대청을 개조하여 길게 앉은 의원들이 저마다 근엄한 표정을 하고 환자를 보았다·
약탕을 달이는 한약 냄새가 벌써부터 구수하여 식욕을 돋웠다·
“당가의원의 칠대문입니다· 환자라면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으니 심지어 깊은 밤이라 할지라도 두 개는 열려있습니다· 성도 땅에 다른 의원이 없는 이유이기도 하지요·”
“오·”
당가가 집중하는 부문은 의술에 있었다·
무천대제 이후 성도에 적이 없으니 당가의 독심도 누그러지고 만 것이다·
그리하여 당가의원의 문을 활짝 열고 무료로 환자들을 돌보니 진맥 한 번에 오히려 손해를 봐 가면서 하는 장사였다·
그러나 자선 사업은 아니다·
본래 의학이 선험적 체험의 누적이었다·
수많은 사례가 쌓여 당가의 의학이 폭발적으로 발전했다·
무제한 공짜 치료라는 말에 청이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당가 사람들의 선업이 낮지 않더라니·
당난아가 예약을 밀어버렸을 때 사람들이 툴툴거리면서도 더럽다 욕을 하지 않았으니 평소 벌어놓은 인심이 있어서였다·
자유가 쓰게 웃었다·
친왕이 굳이 야금야금 재산 빼먹는 기생충들을 때려잡지 않고 놔둔 이유이기도 했다·
안하무인 패악질을 좀 부려도 사람이 상하는 경우는 별로 없고 오히려 의술로 사람을 살리는 놈들이라서·
광산을 빼돌리거나 화약 밀조의 반역적 수준이 아니고서야 눈감아 줄 수도 있으니·
외려 먹기만 하고 나오는 게 없는 도가 문파들보다 유익하다 할 수 있었다·
당가의원의 한편 여인들을 돌보던 당난아를 찾아가니 눈깔을 사납게 뜨며 말하는 것이다·
“하 뭔가요? 난아가 해 달라면 해주고 봐 달라면 봐주는 할 일 없는 사람인 줄 아셔요? 또 오빠들도 부끄런 줄이나 알아· 저 불여시한테 홀랑 넘어가서는 예쁜 동생도 내팽개치고· 흥이다·”
아· 성질이 더럽다더니·
성질이 더럽다고 한 치고는 의외로 순둥하지 않나 생각했었다·
이게 팽초려 미탑재 사양의 당난아였다·
“이보게· 다른 것이 아니라 치수에 관한 문제이지 않느냐· 사사로운 감정에···”
“뭐래· 덤으로 붙은 비실이가 입만 살아선·”
그리고는 가져온 물을 찍어 맛보고는 고개를 모로 좌우로 여러 번을 틀다가 결국 크게 퍼다 꿀꺽꿀꺽 마셔버리는 것이다·
“아무렇지도 않잖아? 별걸로 다 호들갑이야· 웃겨· 다 꺼져욧· 난아는 환자나 볼 거야·”
얼굴이 이쁘니 이름으로 스스로를 이름으로 자칭해도 핵꿀밤 참기가 발동되지 않았다·
받침대나 진장명이었으면 아무래도 핵꿀밤이 마려웠을 테지만·
어쨌거나 도울 생각은 없어 보이고 그렇다고 의원이 환자 돌보겠다는데 붙잡기도 영 뭐한 상황이었다·
그때였다·
“흠· 여기 어디 난아가···· 오· 청아야· 면상에 뭘 뒤집어쓰고 있으니 멀리서도 잘 보이는구나·”
손수 달인 십전탕을 준비해 뒀다는 말에 당가의원으로 찾아온 팽초려였다·
“아·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죠?”
“아침? 청아야 무인은 부지런해야 하는 법이란다· 이미 해가 중천인데 그런 소리 하면 못 써· 모름지기 무인이란 새벽이 비명을 지를 때 일어나 수련으로 땀을 흘려야·”
“언니!”
그럴 것 같지 않았던 팽초려가 갑자기 잔소리를 쏟아다·
다행히 그 말허리를 가르며 당난아가 뛰쳐나가 잔소리꾼의 팔을 껴안았다·
“헤헤 언니 오셨어요?”
“어머· 환자를 돌보고 있는 중이었니? 그리 안 봤는데 기특한 구석이 있었구나? 여의라· 참 좋은 일이야·”
“헤헤· 뭘요· ···어라?”
뭐지? 이상한데? 칭찬 맞나?
당난아가 살짝 헷갈리는 도중이었다·
“그런데 서운한걸· 나만 빼고 이리 몰려다니나? 청아야 뭐 재미있는 일이라도 있니?”
“재미있는 일이라고는 여기 천하제일숙수가 점심밥 해준다는 것밖에는 없는데요· 거 말고 재미없는 일은 있지만· 물이 상했대요·”
그러자 팽초려의 얼굴도 상한 것처럼 진지해졌다·
청만 빼고 다들 심각한 문제임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거 확실히 심각한 문제로구나· 아· 그래서 난아가 확인하려는 참이로구나?”
“물론이죠! 천하에 저 아니면 누가 이런 심각한 일에 자처하여 나서겠어욧!”
그러면서 독기 어린 눈빛을 뿌리는 것이 입만 뻥긋 해봐라 하는 기세였다·
청과 자유가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개 같지 않나?
뭔가 개 같은 꼴이로구나·
—-
뭐가 나오기는 나왔다·
당난아도 놀란 기색이었다·
“오양즉이라고 독기를 품은 붕어가 있기는 해요· 그게 대량으로 퍼지면 물에도 어느 정도 녹아날 수 있겠지만· 딱히 몸에 해롭거나 하진 않아요· 먹고 나서 홍두쌍려봉에 쏘이면 또 모르겠지만· 근데 어차피 걔네는 운남에만 사니 굳이 사천에서 조심할 필요는·”
“아! 맞습니다! 익숙한 맛이다 했더니 오양즉 비린 맛이었군요! 엇?”
백창자가 당난아의 말을 끊고 소리지르다 돌연 제 목덜미를 잡았다·
이내 가는 세침을 하나 뽑아드나 싶더니 코가 벌겋게 달아오르고는 콧물을 콸콸 쏟아내기 시작했다·
“감히 숙수 주제에 누구 말을 끊고· 흥·”
당난아가 떫은 기색으로 백창자를 보았다·
“근데 사람이 맞아? 강에 사는 물고기가 좀 바뀌었다고 물맛 바뀐 걸 눈치챈다구?”
“영시· 청하제잉숭수인 재 허가 틍니지 앙앙승미다· 이거이 청하제잉숭수의 풍혁잉미다· 그엄 뭉마시 영영 이대로랑 망잉니까?”
백창자가 콧물에 굴하지 않고 물었다·
어찌 보면 참 한결같은 인물이었다·
“어차피 오양즉은 겨울을 못 나니까 올 겨울 지나면 싹 사라지긴 할 테야· 그런데 좀 이상하긴 하네·”
당난아가 고운 이마를 구겼다
“오양즉은 운남에서나 사는 고기라서 사천 땅에는 아예 맞지 않는데? 애초에 물부터 맞지 않으니까· 그런데 독기가 물에 녹을 정도로 번식을 했다고?”
“이상항니다· 시장에 땅키 오양즈기 더 나오징 앙악승미다·”
숙수나 알 수 있는 접근이었다·
오양즉이 번식했으면 낚시꾼이 당장 잡아다 시장에 내어놓지 않았겠느냐고·
“그럼 누가 양식이라도 하려 드나 본데? 민장강 전체가 그러면 그 위쪽이니 두장언인데· 뭐야· 당가의 허락도 없이 두장언에 양식장을 차려? 감히·”
자유가 표정을 구겼다·
두장언에 양식장을 차리려면 관아에 신고를 하고 마땅한 주인인 왕부에 허락을 구해야지 왜 당가가 허락을 받나·
“어쨌거나 직접 확인해 보면 알 거 아닌가?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되었군·”
팽초려가 씩 웃으며 상황을 정리했다·
청이 거기에 한 마디 덧붙였다·
“일단 점심부터 먹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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