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7
청이 그리고 나서 다시 교환창에 집중했다·
일단 얘도 딱 효율적으로 육 성만 찍어두고 나머지는 보류해 주자·
나중에 정신 홰까닥하면 조금씩 올려서 정화 주문처럼 써야겠다 하고·
그렇게 이천 점 교환을 마치고 다음 교환창을 불러낸 청이 인상을 팍 썼다·
“왜 삼천 점···”
이천 점 다음이면 이천 오백 점 아닌가?
왜 삼천점이 나와?
억울한 마음에 중얼거려 보지만 사실 수많은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런 류의 교환이 점차로 많은 자원을 처먹는 것은 상식이 아니던가·
이제부터는 오백 점이 아니라 천 점에 하나씩 교환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후에 천오백일지 이천일지 알 수도 없다는 점이 더욱 무섭고 천 점으로 몇 개나 교환할 수 있을지 모르니 더더욱 두려웠다·
이럴 줄 알았으면 역근세수경은 좀 미룰걸·
그러나 후회는 항상 이미 늦은 법이었다·
역근세수기가 알았다면 ‘시주가 이미 배우고 난 것을 어찌하실 것이오? 본 불이 이미 단전에 자리를 잡았으니 소승의 승리가 아니겠소·’ 하는 낙장불입의 가르침을 내려주었을 터다·
두 개 남은 줄 알았던 공짜 무공이 실은 하나뿐이었다·
앞으로의 기대 수입 또한 반절 이하로 뚝 떨어져 버리고 말았다·
청이 한숨을 내쉬며 교환창을 치워버렸다·
이건 나중에 사부님한테 은근히 돌려서 물어보고 결정해야겠다는 판단이었다·
그리고나선 무공창을 불러들여 역근세수경을 육 성으로 올리고·
청이 한참이나 무공창을 노려보았다·
그러고는 한 지점에 시선을 두니 막대가 쭉 차올라 숫자가 변하더니 마침내 십이 성 대성까지 이르렀다·
소수마공· 대성·
분명 대성에 이르면 팔꿈치 아래로 금강불괴에 이른다던가·
초절정이 감도 안 잡히고·
강기에 대적할 수단이 더 있어야 하니까·
게다가 성능 시험을 도와줄 할아범도 있고·
무엇보다 맨손으로 강기를 막는다?
너무 멋지지 않나?
대충 남은 수련점을 가늠해본 청이 보라색 무공 하나를 끝까지 올려 십이성으로 올렸다·
여래신장 대성·
생각해보면 손맛은 영 맹탕이어도 여래신장 만큼 도움이 된 무공이 또 없었으니까·
청이 뇌 속으로 파고든 기생충 같은 새 초식들을 대강 펼쳐보았다·
오른손으로 소수마공을 왼손으로 여래신장을 휘두르는 기막힌 광경이었다·
누가 보았다면 눈을 비비고 다시 확인하면서 ‘뜬 눈에도 헛것이 보이는데 시력이 있으나 없으나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하고 한탄할 만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서로 완전히 다른 무공을 왼손 오른손 따로따로 자유롭게 펼치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기예인 것이다
오죽하면 절세의 신공들이나 상단전을 개발한 결과물로 가능케 하는 어려운 기술이었다·
하지만 청은 애초에 몸으로 익혀 무예를 단련하지 않았다·
그저 뇌에 박힌 어떤 동작을 꺼내오는 식이었으니 오른손 왼손이 무슨 상관이랴·
아주 여러모로 날로 처먹는 청이었다·
아니면 음· 발차기라도 좀 배우면?
한손엔 칼 한손으로는 찢고 장풍도 쏘다가 또 필요할 때는 발길질까지 하는 거지·
청이 딴에는 좋은 생각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정작 무공창으로 퇴법을 찾으니 아예 보라색은 없고 금색은 딱 하나 무상각 그 외 심지어 빨간색 테두리조차 몇 개 없는 것이다·
뭐지? 각법은 개발이 덜 됐나?
앞서 해보기였어?
청이 궁금함을 참지 않았기 때문에 최리옹이 쯧쯧 혀를 차며 대답해 주었다·
“발이란 대저 모든 무공의 시작이다· 창칼을 뻗든 주먹을 뻗든 먼저 발이 나가고 몸을 받쳐 힘이 떨치니 거의 모든 무공은 발과 함께 쓰는 것이 아니냐· 그러니 퇴법이란 익혀봐야 좌수의 결지나 공수법처럼 같이 쓸 것도 못 되며 한 수의 노림수로나 하나 익혀두면 그만이지·”
“아· 그럼 무상각이라는 무공은····”
“무상각은 소림의 절기가 아니더냐· 근본이 공수를 취하는 놈들이니 그나마 발재간이라도 몇 개 만든 게지·”
“오· 소림·”
“다만 여인이라면 하나 정도는 배워 두면 좋기는 할 것이다· 본래 여인의 골격이 각법에 유리한 바도 있고 군자각으로 쓰면 상대하기 영 까다로운 것이니· 네 스승께 물어보면 한 개 정도는 알려줄게다·”
군자각이란 따로 정해진 무공이 아니라 그저 여인이 치마를 입고 펼치는 각법을 말했다·
치마 아래로 다리의 모양을 숨길 수 있기에 그 위력이 배가되는 것이다·
어찌 보면 비열한 속임수에 가깝지만 여인이 치마 입는다고 뭐라고 할 이가 누가 있겠는가·
사내가 군자각으로 재미를 보겠다며 치마를 입지만 않으면 문제가 될 일이 없는 것이다·
다만 치마를 입고 싸우는 행위 자체가 불편하고 휘감겨 보법을 방해하여 불리한 상황이니 딱히 노려서 수련할 만한 것은 아니라고·
여류 무인들이 옆이 트인 망측한 치마를 즐겨 입는 이치가 바로 이러했다·
그리하여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다·
각법은 쓰레기였던 것이다!
소림승들이 알았다면 구겨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 말 결론이었다·
무상각이니 항마연환신퇴가 뛰어난 절기라고 못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럴 바에야 다른 신공을 익히는 게 나은 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음 할아범 그럼 내가 무공 한 개 딱 배워야 한다 하면 뭘 배워야 할 것 같아요?”
“글쎄다· 내 우려로는 자하신공을 배웠으면 좋겠구나 한다마는·”
“자하신공이요?”
“네가 특별한 공능으로 여러 진기를 다루지 않느냐?”
“어? 알고 있었어요?”
“그럼 그도 모를까·”
최리옹이 콧방귀를 뀌었다·
최리옹이야 마공 흩어버리고 더 귀한 신공을 얻었으니 결국엔 큰 이득을 봤지만 결국 모든 적공을 깨고 말았기는 했다·
그러나 청은 넙죽넙죽 잘 받아서 배워놓고는 여러 색의 진기를 다루니 충돌하지 않고 쓰는 방법이 있겠거니 한 것이다·
그런데 자전마공의 보라색 기운을 보지 못했으니 사람들 눈을 신경쓰는구나 싶어서·
“자하신공과 자전마기는 눈으로 보아 비슷해 구분이 되지 않으니 배운다면 눈치를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느냐·”
다만 최리옹이 오해한 바가 있었다·
청은 자전마기를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저 못 쓰고 있을 뿐이었다·
자전마공은 본래 주인의 감정에 따라 멋대로 떨쳐 일어나 벼락의 형상으로 나타나야 하는 무공이다·
그러나 실상은 자나 깨나 소녀환희공에 쫓겨 도망다니기 바쁘니 다른 마공들과 같이 무얼 해 볼 새도 없이 서글픈 달리기를 이어가는 중이었다·
마공들이 그렇게 자동 수련으로 기운을 키워 환희진기에 대항하려는 깜찍한 음모를 세웠었으나 붓다 하나에 좌절하고 이번 붓다 둘에 무너져내렸다·
어쨌거나 딱히 자전마기에 신경쓰지 않는 청이 다른 대답을 원했다·
“내공심법 말고는요?”
“검술이라면 태극혜검이 제일이 아니곘느냐? 가진바 묘리로는 세상 이치와 통하니 성취에도 도움이 될 테지·”
“와· 태극!”
자하신공 태극혜검·
청이 훑어보니 둘 다 영롱한 보라색 테두리를 가진 신공이었다·
생각해보니 검술에 너무 소홀하긴 했다·
대성을 이룬 월녀검법부터가 사실 월녀검법이 아니라 월녀칼법이었다!
신녀검결은 호쾌한 맛은 있지만 파란색이고·
서문수린은 새 검법보다는 딱딱하게 형식화된 절세의 검공인 월녀검법을 체화하는 편이 훨씬 낫다고 평가하며 그저 대련(을 빙자한 핵폭격)만 열심히 했다·
결국 제대로 된 검법은 하나도 없는 셈이다·
물론 청의 기준에서 제대로 된 무공이란 오직 보라색 테두리 세간의 시선에서 절세의 신공이라 하는 것들 뿐이었지만·
금색이나 되어야 조금 쓸만한 것이고·
그러고 보니 금색 검법을 등록해 놓은 것이 있기는 있었던 것도 같은데?
왜 안 익히고 있었지?
뭔가 부작용이 있었나?
청이 진지하게 떠올려 보았으나 기억나는 것이 없어 금방 결정을 내렸다·
천하십대마공 백팔수라검·
육 성 성취·
—-
당난아는 다른 사람과 가까이 자는 것이 꽤 힘든 일임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같이 자자는 소리를 안 하는 것을 보면·
그럼·
오직 나처럼 무딘 정신을 가진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지·
함부로 시도하면 짐짓 잘못되어 수면 회전이 엉망이 될 수도 있는 큰 실수인 것을·
그렇게 며칠 수련으로 시간을 보내다가 결국 결전의 날이 밝았다·
아침부터 거만하게 당가타의 대문을 박차고 들어온 패거리들이 나타난 것이다·
물론 기습이 아니라 대로로 당당하게 걸어와 들이쳤으니 미리 소식을 전해 들은 사천당가의 정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적을 맞이했다·
개중 가장 중앙에 선 뚱땡이 딱 동탁을 형상화한 것처럼 생긴 놈이 입을 열었다·
“하 이 천하의 역적 놈들 같으니· 감히 황상께서 명하신 자격으로 너희 모두 스스로 출타하라 하였거늘 어찌 그 무거운 엉덩이를 들지 못해 이 도어사 어르신께서 직접 행차하게 만든단 말이냐? 도대체 얼마나 많은 백성의 고혈을 빨아먹고 똥통에 든 것이 많아 무거운 엉덩이를 가졌느냔 말이야·”
오우· 시작부터 좀 센데·
청이 당투죽의 말을 떠올렸다·
대놓고 긁으러 오는 것이니 먼저 쳐서는 안 된다고·
그러자 당투죽이 공손하게 대꾸했다·
“출타라니요? 분명 전해 듣기로는 찾아오실 터이니 기다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쯧쯧· 그 말이 그 말 아닌가?”
그리고는 도어사가 다시 혀를 찼다·
“그렇다고 쳐도 역적 놈들의 태가 아주 불손하기 짝이 없구나· 내 분명 죄인의 모습으로 대기하라 하였거늘 이것이 죄인의 모습이냐?”
죄인이라면 머리 풀고 삼베옷 입은 채로 팔뚝과 무릎을 땅에 붙여놓아야 했다·
그러나 모두 당당하게 두 발 딛고 서 있으니 하는 말인 것이다·
그러나 당투죽은 여전히 당당했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하늘 아래 죄를 지은 바가 없거늘 어찌 모함 따위에 죄인을 칭한단 말입니까· 죄가 없는 이가 죄를 칭하여 진범을 흐리는 것이야말로 황상께 죄를 짓는 일이 아닙니까?”
“하· 말이야 아주 청산유수로구나· 좋다· 그럼 진정 역모를 꾸몄는지 아닌지 이제부터 알아보면 될 일이 아니냐· 이봐라 모두 들이쳐 글자 하나 놓치지 말고 싹싹 긁어내·”
“아· 그건 좀 곤란합니다·”
당투죽이 도어사의 말을 끊었다·
“뭣이야? 그럼 너희가 역모를 꾸몄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냐? 저 안에 그 증거가 있다는 증거렸다!”
“그게 아니오라· 실은 간밤에 못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창고를 휘저어 난동을 부렸사온데 하필이면 극독이 든 주머니를 물고 뛰어다닌 통에 당가타가 온통 사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애초에 말도 안 되는 변명이다·
독 창고라면 개중에서도 가장 위험하게 다룰 금지일진데 거기 고양이가 들었다는 말부터가 어이가 없다·
게다가 극독 주머니를 물고 뛰어다니는 고양이는 무슨 만독불침 무적 고양이라도 되는지·
좋게 봐 줘서 무적 고양이가 실존하여 독 창고를 털었다고 한들 무한의 주머니가 아니고서야 어찌 이 넓은 당가타에 독을 흩뿌려 사지로 만든단 말인가·
그에 도어사도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며 개소리에 정신이 혼미하고 말문이 잘려나가 입만 뻐끔거릴 뿐이었으니·
이에 청이 감탄했다·
와! 판사님!
전부 고양이가 한 짓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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