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28
개소리 아니 고양이소리도 이쯤 되면 뻔뻔함의 수준을 초월했다고 할 수 있었으니 도어사 역시 잠시동안 뇌의 기능이 정지하여 혼미할 뿐이었다·
그러다 버럭 소리를 지르기를·
“그 그게 말이 되는 소리더냐!”
“저희도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사실인 것을 어찌합니까? 믿지 못하실 것 같아 거짓을 고해야 하겠습니까?”
“낯짝이 한철로 만들어졌다더냐? 도대체가 말이 통하지 않는 놈이로다· 글쎄 그 말이 진실인지는 내 확인해 보아야겠다· 거기 너· 네가 들어가 너희 가주의 말을 증명해라·”
그러자 지목을 받은 당가 고수 하나가 손바닥을 내보이며 대답했다·
“소인이 말입니까? 저는 가주님 믿는뎁쇼·”
“믿음이 아니라 증명을 하라 하지 않았느냐·”
“그 말이시면 그 고양이를 소인이 이 눈으로 똑똑히 보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죠·”
도어사가 그러고 나니 더 채근해봐야 듣지 않을 것임을 깨달았다·
그렇다고 당장 군졸을 몰아쳐 당가타에 들이면 때는 이때다 하고 준비된 독을 뿌릴 것이 분명하지 않은가·
그에 도어사가 이를 으드득 갈았다·
청이 그 모습을 보며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옆으로 두 발짝쯤 움직여 무슨무슨 높은 어르신이라 소개받았던 노인에게 슬쩍 물었다·
“저기 우리 쪽에서 성질을 긁어도 되는 거였어요? 되게 치욕을 견뎌야 하는 것처럼 말씀하셨었는데·”
“우리 쪽이라· 아아가 진실로 좋은 친구를 사귀게 되었구나· 기특하니 내 이걸 주마·”
“아 감사합니다·”
노인이 아주 자연스럽게 무언가를 품에서 꺼내 쥐여주었다·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작은 약병이었다·
“견혼수를 개인적으로 만져본 것이란다· 미운 놈이 있으면 단 술에 타서 먹이렴· 일 각 후에 근육이 풀려 똥오줌을 지리게 될 것이란다·”
그야말로 한 방에 사회적 말살을 시키는 극독이 아닌가·
“와! 감사합니다! 이런 귀한걸·”
청이 화사하게 웃으며 특제 견혼수를 챙겼다·
청의 표정이 대단히 정직했으므로 그 해맑은 기쁨을 본 노인의 얼굴에도 웃음이 번졌다·
그런데 이 어르신은 뭐지? 독 자판기인가?
말 걸면 물건이라도 하나 챙겨주는 주는 마을 사람 같은 원리인가?
정답은 손녀딸 걱정되어 옆에 붙어계신 당문 최고 어르신 태상가주가 되시겠다·
당난아에게 어릴 때부터 선물을 안겨주면서 온갖 몹쓸 독에 취미를 붙이게 만든 장본인이기도 했다·
태상가주가 그리고 나서야 설명을 붙였다·
“당가는 원한을 잊지 않으니 감히 사천당가의 정문을 박차고 들어온 방자함은 죽음으로 다스려야 할 중죄란다· 그걸 참고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모멸스러운 것을 그럴 바에야 저 속이라도 좀 긁어주어야 하지 않겠느냐·”
“아·”
“그러나 뭐 크게 말실수라도 하면 더 좋지· 말꼬투리 잡아 명분 생기면 칼질해도 되는 것이 이 중원의 법도가 아니겠느냐·”
세상 천지에 그런 법도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있었던 적이 없다·
하지만 오래 산 늙은이가 그 연륜으로 찾아낸 세상의 법칙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다만 우리는 한 명이 실수하면 몰살이요 저 치는 혼자 죽고 다른 놈이 대체할 뿐이니 우리 당가가 너무나 불리한 싸움이란다· 알겠니?”
뭐야 이쪽에서 긁어도 되는 거네?
그러면 그게 또 내 전문 아닌가?
청의 눈이 반짝반짝 빛났다·
“그럼 저도 같이 약 올려도 돼요?”
“어떻게든 돕고 싶어하는 그 마음씀이 참으로 어여쁘구나· 기특하니 내 이걸 주마· 탈백미망산을 개인적으로 만져본 것이란다·”
태상가주가 또다시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안쪽에 염소 똥 같은 환단이 세 개 들었다·
“일단 입속에 쳐넣어 삼키게 하면 약효가 돌고 나서 음심을 돋우는 동시에 헛것을 보이게 한단다· 필히 허공에 좆질하는 모습을 구경할 수 이크· 여아에게 못 하는 소리가 없군· 주책이야·”
“와! 감사합니다! 재미있을 것 같으니까 꼭 써먹어 볼게요·”
또다시 사회적 죽음을 불러오는 극독이었다·
자꾸 뭘 개인적으로 만지는지는 모르겠지만 귀한 것이라 청이 역시 기쁘게 받았다·
“허나 투죽이 저놈이 본래 입을 기막히게 털어서 가주 자리를 꿰차지 않았겠느냐· 본 가문에서 저놈만큼 혓바닥을 잘 놀리는 놈이 없으니 맡겨두어도 알아서 잘 할 것이야·”
과연 그러고 나니 도지휘사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러나고 마는 것이었다·
“크흠· 수색이 여의치 않은 듯 하니 오늘은 이만 돌아가도록 하겠다· 한시바삐 독을 다스려 황상의 지엄한 명에 순응하도록·”
당가의 판정승이었다·
—-
도어사도 마냥 당할 생각으로 오지 않았기에 다음으로 한 일이 당가타에 대한 봉쇄였다·
군졸을 빙 둘러 당가타의 모든 출입구를 틀어막으니 사람은 물론이거니와 물류조차 들어가지 못하게 막았다·
물류 중에는 식재가 있고 사람이 먹지 않고서는 살 수 없으니 이대로 굶어 죽든 역모죄로 죽든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그러나 청은 잘 먹었다·
당가의 인원들도 잘 먹었다·
왜냐하면 이미 비밀 통로가 여럿이라 식재를 들이기 귀찮아졌을 뿐이므로·
당가에게 필요한 것이 시간이었으므로 당가 역시 순순히 당해주는 척을 했다·
“아이고 나리들· 식재까지 막으면 어찌 살라 하십니까·”
“흠 흠· 우리도 다 명령받고 하는 거라·”
이런 식이었다·
그렇게 나흘째에 이르러서는 도어사도 뭔가 수상함을 느끼기는 했다·
좀 이상하지 않은가 식량 비축을 그리 많이 해 두었던가 하고·
그 사이에 사천 지도에 점이 두 개 찍혔으니 벌써 포대의 위치를 둘이나 찾았다·
그렇게 칠주야째에 이르러서야 도어사도 아차 싶어 다시 군졸을 우르르 이끌고 몰려왔다·
이번엔 도어사 뿐만 아니라 새 식구들을 대동했으니 찬란한 금빛 비단으로 무복을 지어 입은 한 무리의 무인들이었다·
“내 분명 경고했거늘 아직도 죄인의 모습을 하지 않았구나·”
“죄인이라니· 여기 어디 죄인이 있소?”
“흥 위지휘첨사· 내 뭐라 했소? 무도한 역적 놈이 하는 저 뻔뻔한 거짓말을 보란 말이오· 당장 몰아쳐 도륙을 내 버려야 하는데·”
청이 그 광경을 보며 물었다·
“저 반짝반짝한 놈들은 뭐예요?”
“금의위라 하는 놈들이다·”
금의위는 말 그대로 금의 금색 옷을 입은 위사들이다·
다만 이 금색 무복은 황제 직속의 무력 집단 전용의 제복이기에 한 명 한 명 전부가 제법 높은 관직에 속했다·
청의 고향에서 독일이 제국이던 때 친위대라 하는 집단과 거의 일치하는 직업이기도 했다·
군대 겸 비밀경찰 겸 황제의 칼날이었으니·
설명하는 독 할아버지 아니 태상가주의 안색이 조금 흐려졌다·
“아무래도 황제가 단단히 마음을 먹은 모양이 아닌가 싶구나· 위지휘첨사라면 금의위에서도 세 번째로 높은 대가리이니 어지간해서 지방까지 내려오는 일이 없건마는·”
어쨌거나 다시 가문의 명운을 건 말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이레가 지났으니 필경 제독을 이뤄냈을 것이다· 이번에야말로 수색을 받아들여서·”
“이런· 실은 간밤에 못된 들고양이 한 마리가 창고를 휘저어 난동을 부렸사온데 하필이면 극독이 든 주머니를 물고 뛰어다닌 통에 당가타가 온통 사지와 다르지 않습니다·”
마치 복사 붙여넣기라도 한 듯한 똑같은 대사였다·
“저번에도 그 소리를 하지 않았나?”
“본래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습니까·”
“무 무슨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도어사가 질린 얼굴로 치를 떨었다·
청은 그저 감탄했다·
훌륭한 이 절이 아닌가·
게다가 이후로 삼 절 사 절 도돌이표 찍고 뇌절까지 알뜰하게 우려먹겠다는 의지의 표명이었다·
앞으로 찾아오기 전날 밤마다 만독불침 무적 고양이가 무한의 독주머니를 탈취해 당가타 여기저기 꼼꼼하게 뿌릴 예정이라고·
그러나 도어사도 보통의 인물은 아니었으니 이대로는 대치해봐야 방도가 없다는 것을 곧장 깨닫고는 바로 몸을 돌리는 것이었다·
그때 돌연 청이 목소리를 높였다·
“맞다! 도어사님! 잠시만요! 긴히 드릴 말씀이 있사온데·”
막 걸음을 떼려던 도어사가 청의 면사를 바라보며 미심쩍은 한편으로는 조금의 기대가 담긴 시선을 보내왔다·
“···무엇이더냐? 혹시 저 무도한 반역도들을 고발하려는 것이거든 내 이름을 걸고 너 계집 하나만은 구명에 힘써주도록 하마·”
그러자 청이 당투죽을 향해 말했다·
“그게 가주님? 저희 음식 쓰레기가 넘쳐서 요즘 냄새가 많이 나잖아요· 저분들 돌아가시는 길에 좀 치워달라 부탁드리면 안 될까요? 문 막고 오도가도 못하게 하던데 막은 사람이 좀 치워야지·”
“오· 좋은 생각이로구나· 도어사 내 간곡히 부탁을 좀 드려도 되겠소이까? 숙수가 워낙에 손이 크다 보니 당가 인원이 풍족하게 먹고도 남는 것이 보통이여야지·”
너네가 아무리 봉쇄해봐야 따로 들어오는 길 있으니 소용없다는 조롱이었다·
당가 인원들이 일부러 낄낄거리며 웃음소리로 그에 화답했다·
“닥치지 못할까! 상종 못할 역적 놈들! 사지를 찢어 개먹이로 던져줄 놈들! 꼬챙이로 꿰어 구워다 자식새끼 처먹일 놈들!”
“아· 역적의 최후에 대해 말하자는 것이오? 그럼 뱃살에 심지 꽂아서 촛불로 쓸 놈들은 어떠시오? 도어사도 한 칠 일은 넉넉하게 탈 것 같소만·”
도어사가 동탁과 같은 풍채를 갖추고 있음을 격조 높게 비꼬는 한 수였다·
“이 이···! 가자! 개 같은 씨발놈들····”
결국 얼굴이 시뻘개진 도어사가 욕설과 함께 빠져나갔다·
사천당가 이 승·
그 후에는 또다시 독 할아버지가 유리병을 내미는 것이었다·
“아이의 기지가 참으로 훌륭하구나· 기특하니 내 이걸 주마· 신선폐를 개인적으로 만져본 것이란다·”
이번에는 텅 비어 밀봉된 유리병이었다·
“코나 입으로 들이마시게 하면 보름 동안 숨소리가 못난 피리 소리로 변해 거칠게 뺙뺙거리게 만들어준단다 거기에 목소리는 더 우습게 변하는 것이니 제가 말하고도 제가 폭소를 참지 못할 것이야· 웃음이 헤픈 놈이라면 그에 또 웃겨서 계속 웃다가 숨이 넘어갈지도 모르겠구나·”
도대체가 만지는 것마다 하나같이 집요하게 체면을 노리는 독들이었다·
“와! 진짜 감사합니다· 이걸 바란 건 아니었는데요· 헤헤· 잘 쓸게요·”
청이 또 기쁘게 병을 받아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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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었던 연휴가 겨우 끝났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일거리는 그대로인데 가족 구성원으로서 의무까지 더해 몸살이 날 정도로 힘든 나날이었습니다만··
빨간날 다 없어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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