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4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다· 처맞기 전까지는·
아청에게도 그럴듯한 계획이 있었다·
아청은 독을 탄 술을 마셨다·
일단 그 죄과는 원인 미상 이유로 점소이를 협박해 독을 탄 놈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그 다음은 고객 대응 미숙 및 점원 관리를 잘못한 객잔에 있었고·
그러나 아청은 객잔을 탓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내일 탓하려고 했으니까·
하루 묵고 나서 느지막한 아점 먹고 출발할 때 술과 요리를 한상 가득 시킬 것이다·
그리고 나면 손해배상을 핑계로 공짜 연회를 즐기고 떠나야지·
아청이 이런 사악하기 그지없는 음모를 계획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죄송하다고 빌면서도 끝끝내 뭐 하나 공짜로 해 주겠다고 말을 꺼내지 않는 주인장이 괘씸해서였고·
둘째는 당장 공짜를 요구했다가 내일 아점을 시켜 먹을 때에 요리에 무슨 장난질을 칠지 알 수 없으니까·
침이 듬뿍 든 요리를 먹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내일 요리 다 뒤졌다고 킥킥거리며 잠에 들었는데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야 이렇게 좋은 밤에·
챙챙챙 병장기 부딪치는 소리에 잠에서 깨고 말았다·
층간소음 뭐야·
아청이 다시 눈을 감았다·
하지만 원래 아예 눈치채지 못하면 몰라도 한 번 신경이 쓰이면 거기로 집중을 하고 마는 것이 인간의 슬픔이었다·
챙 챙 창 창 즐거운 놀이·
쿵 쿵 쾅 쾅 다함께 뛰어뛰어·
툭 아청의 인내심이 끊어졌다·
무림 출도 이후로 두 시간 불어 터진 국수 면발보다 약해진 아청의 인내심이었다·
아청이 검을 뽑아 들고 뛰쳐나갔다·
“이 씨발 새끼들아! 잠 좀 자자! 잠! 좀! 시! 발! 너네 애미애비가 그따위 핫·”
아청의 사자후가 끝나기도 전이었다·
콱 죄는 살기가 밀려들었다·
아청의 허리가 활처럼 휘었다·
검날이 가슴께를 훅 스쳤다·
아청이 허리를 폈다· 그 반동을 실어 왼주먹을 뻗는다· 습격자의 겨드랑이 아래에 콱 처박는다·
또각· 뼈 부러지는 그 간질간질한 촉감·
억 하고 숨구멍 막히는 소리· 굽혀지는 허리·
그순간 월광검이 수직으로 떨어졌다·
칼날이 정수리를 썰고 들어가 미간과 코를 지나 인중에 닿아 틀어박혔다·
형님! 격분한 외침· 짓쳐오는 일직선의 검격· 아청이 시체의 멱살을 잡아채 끌어당겼다· 시체의 명치께로 칼날이 튀어나온다· 아청이 그대로 밀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깔아뭉개며 쓰러진다·
아청이 장작에 낀 도끼 꼴의 월광검(6호)를 뽑았다· 좌우로 갈라진 대가리 사이로 뭔가 주룩 흘러내린다· 붉은 것은 피 허연 것은 뇌수· 둘이 섞여 연분홍빛으로 어우러졌다·
아래 깔린 놈이 비명을 질렀다·
시끄럽기는·
아청이 시체의 허리께를 콱 밟아 역수로 잡은 검을 등판에 밀어 넣었다·
몸뚱이가 두 개 두께가 두 배 손맛도 두 배·
몇 번 바닥을 찍었더니 비명이 멎었다·
근성도 없는 자식 같으니라고·
아청이 입맛을 다시며 검을 털었다·
“대체 뭔 일이여 이게·”
중원 표준으로 좀 나간다 싶은 객잔은 ㅁ자 형태로 쌓아 올려 바깥쪽에 객실 안쪽으로는 복도와 난간 가운데는 뻥 뚫려 채광이 든다·
복도에서 삼면의 위아래가 다 보이는 구조다·
그리고 달밤 아래 사방이 광란의 칼부림 중·
그야말로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었다·
이게 뭐야?
중원 2년 차는 모르는 어떤 문화일까?
문득 객잔에 이상하게 나쁜 놈들만 가득 모여 있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나쁜 놈들끼리 날 잡아서 서로 죽고 죽이는 문화가 있는 것이 아닐까·
그때·
-명아!
애끓는 목소리에 아청의 고개가 휙 돌아갔다·
1층에 아이를 둘러맨 사람 형태 아청이 복도를 내달려 훌쩍 뛰어내렸다·
아청이 유괴범 앞으로 두 발과 한 무릎 한 손을 사용해 착지했다· 영웅이 출현하는 방식이었다·
수평으로 곧게 편 오른손에 월광검이 정확히 뚝 떨어져 잡혔다·
달빛 아래 아청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후우····”
아청이 무릎과 손바닥이 아픔을 꾹 참았다·
영웅들의 고통인 모양이다·
사실 이는 전혀 충격 분산이 되지 않는 엉망진창의 착지법이었다·
그렇다고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몇 세기나 건너뛴 진보한 멋짐!
유괴범이 주춤 한 발자국 물러났다·
기세에서 밀린 것이다·
상대의 경지는 알 수 없었지만 방금 한 수가 굉장히 있어 보였다·
“아이를 놓고 사라져라· 목숨은 살려주마·”
아청이 검기를 뿜었다· 검날 위에 휘감겨 가닥가닥 피어오르는 검사· 무력 시위였다·
아무리 아청이라도 아이를 둘러맨 유괴범에게 대뜸 칼질을 날릴 수는 없었으니까·
눈치를 보던 유괴범이 돌연 아이를 내던졌다·
깜짝 놀란 아청이 몸을 날렸다·
다행히 받아내기는 했다·
대신 푹 팔이 화끈하니 불타올랐다·
상박에 틀어박힌 비도 한 자루· 손잡이만 비쭉 솟았다·
“내가 해냈다!”
빽 지르는 소리· 아청의 고개가 확 돌아갔다·
비도 던진 새끼와 눈을 마주쳤다·
놈이 등을 돌렸다·
그 와중에 소리를 질러댄다·
“죽여! 칠보독에 중독됐으니 얼마 못 가!”
씨발 놈이· 내가 독주 처마시는 거 못 봤나·
아청의 눈빛에서 광택이 빠졌다·
내가 저 새끼는 죽인다· 아주 쳐죽일 거다·
그러나 그 전에 새치기하는 놈들이 있었다·
칠보독으로 용기를 얻어 달려드는 부나방들·
아청이 진장명을 옆구리에 끼우며 검을 던졌다· 한 놈이 검을 쳐내느라 주춤하는 사이 아청의 손이 여래의 손 모양을 취했다·
데엥-! 종 치는 소리· 가까운 머리 하나가 폭발했다· 온 사방으로 날리는 잔해· 머리카락 붙은 거죽과 부서진 뼛조각들 뇌수와 꼬리 달린 눈알 두 개·
왼쪽에서 치솟는 살기· 그쪽 옆구리에 꼬맹이·
아청의 몸이 낮추며 두 바퀴 반 회전했다· 가속이 붙은 발끝에 적의 발목이 걸렸다· 적의 두 다리가 날았다· 적이 달려들던 관성으로 직선 비행을 한다·
아청이 놈의 목을 짓밟고 뛰쳐나갔다·
창날이 허벅지로 날아들었다·
창대를 잡아챈다· 당기려는데 쐐액 공기를 가르는 소리· 거대한 도신이 쇄도했다·
아청이 아이를 끌어안으며 자리에 누웠다·
적의 도검이 바닥을 향했다· 아청이 옆으로 마구 굴렀다· 파바바박 무기가 바닥을 때리는 소리가 아청을 따라다녔다·
팔에 박힌 비도가 상처를 헤집는다·
너무 아파서 비명도 나오지 않았다·
세상이 돌고 팔이 아파· 너무 아파· 아파· 아파·
발목 하나가 손에 잡혔다· 주먹을 꽉 쥔다·
내력 실린 아귀힘에 으스러지는 발목· 뼈가 갈리고 깨져 가죽을 찢고 튀어나와 손바닥을 간지럽혔다·
단전쯤에서 뭉근하게 피어오르는 기이한 열기·
고통이 조금 가셨다·
아청이 넘어지는 발목 주인을 발로 밀었다·
바닥을 내리치던 무인이 날으는 발병신과 함께 나동그라졌다·
아청이 허리를 튕겼다· 반동으로 냉큼 일어서 손을 뻗었다· 내기가 격렬하게 휘몰아친다·
데엥-! 여래신장의 흉악한 권장이 쏘아졌다·
머리 없는 몸이 아청에게 쏟아졌다·
아청이 꼬맹이를 다시 옆구리에 끼며 목 없는 시체에서 검을 자연스레 빼앗았다·
돌아왔구나 월광검!
아청이 월광검(7호)를 붙잡았다·
그러자 단전의 열기가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그 순간 아청이 자신을 잃었다·
무아지경·
신기한 경험이었다·
안온하니 따뜻하게 누워 남이 움직이는 자신의 몸 안에서 쉬고 것만 같았다·
아청은 곧 적당한 단어를 찾았다· 자동 사냥!
아청이 걸어나갔다·
춤추듯 경쾌하게 회전하고 내디디며 나아가니 기분이 좋아 노니는 아리따운 여인의 태였다·
한 줄기 은빛이 잔상을 그리며 그 곁을 따랐다·
때로는 멀리 돌아 적의 손목을 자르고 비명은 피고 여인은 몸을 떨었다·
동그라미 그림을 그려 소용돌이 굽이치던 낙서가 심장을 꿰뚫고 비장을 가르며 내장을 그었다·
나긋한 손길이 한 일 자 획을 그어 귀와 귀를 이으니 뚜껑처럼 자연스레 머리통이 열렸다·
가는 걸음걸음 피가 흘렀다·
생명이 지고 여인이 웃었다·
마침내 객잔의 중앙에서·
흐드러진 달빛 아래 아이를 낀 여검객이 홀로·
아청이 그제야 몸을 되찾았다·
무지근하게 짓누르는 피로·
하마터면 휘청거릴 뻔했다·
뭐야 내 몸 다시 가져가요· 아까가 편했는데!
“명아!”
피투성이가 된 꼴로 양소월이 뛰쳐나왔다·
위험할 때마다 계속 젓가락을 날려주던 든든한 아군이었다· 실제로 어설픈 합격보다 훨씬 나은 도움이 되었다·
양소월이 아이를 받아들고 검을 뽑아 아청의 곁을 지켰다·
그렇게 전투는 끝났다·
시신과 주인 잃은 손발로 객잔이 엉망이었다·
상처를 움켜쥐고 신음하는 자들·
누군가들은 제 손목 발목을 찾아 기어다니고 지친 어깨의 생존자들이 아청의 눈치를 보았다·
“잔치는 끝났다· 다들 돌아가·”
웃으며 말했지만 사실 허세였다·
아청이 하는 좋은 대사가 으레 그렇듯이·
이제 남은 내력이 없다·
사실 후들거리는 다리를 애써 펴기도 힘들었다·
대개 무공의 위력은 내력 소모와 비례한다·
월녀검은 절세의 신공이었다·
게다가 두 방의 여래신장도 한몫을 했다·
내가 기공이 본래 그렇지만 개중에서도 정종의 최고봉인 여래신장은 고작 절정의 무인이 사용할 기술이 아니었다·
생존자들이 아직도 눈치를 보았다·
아청이 다시 말했다·
“사실 나도 썩 좋은 상황은 아냐· 그래도 여기 셋 중 두 명은 데리고 갈 수 있어· 삼분의 일· 어때 해볼 만한 확률인가? 해 보쉴?”
그 말이 결정적이었다·
“우리는 이만 물러가겠소· 시체를 수습해도 되겠소이까?”
“죽은 놈 전낭만 놓고 가·”
“···배려에 감사드리오·”
누군가는 쓸쓸히 등을 돌리고 누군가는 동료의 시신을 챙기고 또 누군가는 원한을 이야기했다·
“나는 강릉장의 최번이다· 네년은 언젠가 이 피 값을 치러야 할 것이다·”
“그러시던가·”
진 새끼가 말이 많아· 성질대로라면 대판 긁어 결판을 내고 싶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청은 적들이 전부 빠져나갈 때까지 한참이나 자리를 지켜야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플러스 신청이 프롤로그 빼구 15화엿내요·· 넘모 엄격한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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