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시발 진짜로 죽을 뻔했네·
실제로 아찔한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다·
양소월의 도움 그리고 진장명을 낀 옆구리로는 공격이 거의 들어오지 않은 덕분에 겨우 살았다·
그런데 진장명에게 공격이 가지 않았다·
객잔에서 정모를 벌인 그 많은 악인의 목표가 요 싸가지 바가지인 꼬맹이라는 뜻이었다·
거기에 보쌈을 당하던 꼴이라니·
얘는 뭐지? 어디 공주님이라도 되나?
공주님이라기엔 좀 행색이 영····
그때 양소월이 아청에게 큰절을 올렸다·
아청이 기겁을 했다·
곱게 늙었어도 어머니뻘인지라 부담 백배 아주 왕부담이었다·
“대협께 또 한 번 은혜를 입었습니다·”
“뭘 은혜까지야· 어허이 넣어둬요· 넣 억·”
아청이 팔을 휘두르다 비명을 삼켰다·
팔에서는 피가 줄줄 새고·
남의 피는 좋지만 내 피는 아까운 나 이기적인가요?
“대협 상처가···!”
“괜찮아요· 침 바르면 나아요·”
아청은 감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냥 약 바르고 정양하면 낫는 상처였다·
기간이 좀 길고 많이 불편하겠지만·
“하지만 대협 팔이···!”
“아씨 이거 또 인내심이····”
“대협?”
“괜찮아요· 팔 하나 쯤이야· 애가 무사하니 다행이죠 뭐·”
내가 해냄! 아청이 바보처럼 실실거렸다·
“그보다 빨리 치료를 해야겠습니다·”
다행히 양소월은 간단한 의술을 할 줄 알았다·
괜찮은 금창약도 가지고 있었다·
다행치 않은 점도 있었다·
마취할 방법이 없단다·
결국 마취 대신 입가에 손수건 하나를 물었다·
그래서 비도를 뽑고 상처를 꿰매는 동안 아청은 인세의 지옥을 맛보았다·
깊은 상처는 안쪽이 뒤집혀 밖으로 튀어나온다·
그것을 인심 좋게 꾹꾹 눌러 담아 큰 바느질로 꿰메고 깊이에 따라 반복 작업을 해 준다·
이후에 바깥을 작은 바느질로 꿴다·
깨끗한 천으로 상처를 감는 중에는 아청의 눈이 시뻘겋게 변한 이후였다·
실핏줄이 다 터져서 그렇다·
물론 엉엉 울음을 터뜨린 것도 한몫했다·
사나이고 뭐고 인간적으로 너무 아팠다·
진짜로·
진정이 되어 민망해진 아청이 말을 돌렸다·
“그래서 그놈들은 뭐예요?”
“그것이····”
양소월이 말끝을 흐리며 망설였다·
그러다가 잠시 후 결연한 표정이 되었다·
“은인께는 말씀드리는 것이 예의겠죠·”
“어 그렇게까지 궁금한 건 아니었는데요·”
생각 없이 물었는데 이러니 부담스럽다·
진심이었는데 양소월은 믿어주지 않았다·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사실 이 아이는····”
워낙에 거창하니 그래도 큰 비밀이 있는 모양!
아청이 침을 꿀꺽 삼켰다·
“순음지혈을 타고난 아이랍니다·”
충격적인 결론이었다!
순음지혈이라니! 전혀 모르겠다!
양소월이 연륜다운 눈치로 그 사실을 알아챘다·
“대협 순음지혈이란···”
—-
양소월은 본래 무림인이었으나 남편과 결혼한 이후 은퇴하고 먼 복건에 자리를 잡았다·
남편은 자상한 사람이었고 어쩌고·
대충 남편과 행복했다는 내용·
그 행복의 절정은 태중에 아이가 들어선 때다·
아이는 허약했다·
손발이 늘 차고 쉽게 체하며 한 번 잠에 들면 잘 깨지 못했다·
물론 그 사실이 행복을 방해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아이가 좀 자라 기본적인 호신경을 가르치던 중 아이의 체질이 이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종류의 절맥이었다·
절맥을 타고난 아이는 서른을 넘기기가 힘들다·
깜짝 놀란 부부는 백방으로 소문하여 절맥으로 용한 의원들을 데려왔다·
결과는 최악이었다·
선천진기·
사람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기를 말한다·
선천진기의 양은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다 거기서 거기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기의 성질도 사람마다 조금씩 달랐다·
흔히 음양오행이라 하는 그것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거기서 다 거기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아주 가끔 정말로 아주 가끔 이 성질이 극한으로 치달아 태어나는 아이가 있다·
음과 양은 각자 두 가지 성질을 가진다·
음기란 차고 어두운 것·
이중 찬 기운만 따로 분리해 순음이라 불렀다·
어두운 기운만은 사음·
양기란 밝고 뜨거운 것·
마찬가지로 밝음이 정양 뜨거워서 순양·
아주 가끔 태어나는 여섯 극한의 아이들이다·
순양 극양 정양의 기운을 타고난 남자아이·
사음 극음 순음의 기운을 타고난 여자아이·
개중 순음지혈을 가진 여아가 가장 귀했다·
아이가 바로 그 순음지혈이었다·
한편 강호의 사악한 수법 중에는 채음보양이란 것이 있었다·
여인과의 성관계를 통해 음기를 빼앗는 행위·
도가의 방중술과는 달랐다·
방중술은 서로 기운을 나누고 순환시키며 키워 남녀 모두 이득을 본다·
그래서 방중술은 망측할지언정 사악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도선술의 일종이기도 하고·
그리고 여섯 음양 중 순음은 너무 편리했다·
양의 기운과 만나면 아래로 깔려 그 뜨거움과 밝기를 더해준다·
양강의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그만한 영약이 없었다·
음한의 무공을 익힌 무인에게는?
음기가 더욱 정순해지는 빼어난 영약이었다·
그리고 무림인이 영약에 대해 가진 생각들·
영약에는 충분히 목숨을 걸 가치가 있다·
영약에 목숨을 안 건다면 대체 목숨을 아껴서 어디다 쓸 것인가·
무림인은 영약이라면 죽음도 불사하는 족속·
순음지혈을 타고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아이는 살아남을 수 없었다·
잔혹한 고통 속에서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차마 말로 담기도 참담한 위협들로부터 아이를 지켜줄 수 있는 배경이 필요했다·
적어도 아이가 일류의 경지에 도달해 더 이상 어떤 방법으로도 선천진기를 빼앗을 수 없는 몸에 이를 때까지·
다행히 강호 무림에 그러한 문파가 있었다·
무산 신녀문·
그러나 복건성의 후미진 시골에서 호북성 무산에 이르는 여정은 아이에게는 너무 가혹했다·
안 그래도 몸이 약한 아이를 데리고 대륙 절반을 가로지르는 여정이라니·
하지만 남편이 죽고 나선 양소월에게는 더는 망설일 시간이 없었다·
그렇게 모녀는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
“잠깐만요· 그럼 이 미친 씨발놈들이 지금·”
그 많은 새끼들이 전부 여중생 하나 따먹겠다고 모여서 이 지랄을 떨었다는 뜻이었다·
이딴 게··· 무협?
그와는 별개로 꼬맹이의 정체가 조금 경악스럽기도 했다·
너··· 여중생쟝이었니···?
아청이 자신의 허벅지를 베고 새근새근 잠이 든 꼬맹이를 내려다보았다·
치료를 빙자한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수건 문 입에는 흐느낌이 막히고 대신 눈물만 주룩주룩 흘리던 고통 호소인의 허벅지를 대뜸 차지했다·
정말로 사악하기 그지없는 꼬맹이었다·
“저 이런 말씀 드리기는 면목이 업사옵니다만 혹시 아이를 가여히 여기신다면 혹여 무산까지 동행을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그야 당연하죠! 그 발정난 개새끼들을·”
갑자기 떠오른 임무창이 아청의 말문을 막았다·
[전조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일생의 기연 앞에 섰다·]
임무 수행을 위한 행동
선업)아이를 신녀문에 데려다주기
ㄴ 혹은 아이를 적당한 문파에 데려다주기
선업)영약을 정당한 주인에게 양도하기
악업)영약을 팔아넘기기
악업)영약을 자신이 취하기
천살성)영약을 부수고 정혈을 취하기
[이 선택은 천하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서식의 임무창이었다·
임무창이라 해 봐야 돌발 임무 이러면서 나쁜 놈 죽이기 아니면 나쁜 짓 같이 하기 정도?
더 나아가서 나쁜 놈 친구까지 죽이기·
나쁜 놈 착한 놈 가리지 말고 다 죽이기·
항상 대충 이랬다·
이럴 줄 알았으면 임무 공략이나 좀 읽을걸·
캐릭터 메이킹과 초반 파밍런 동선·
아청이 게임에 들어가기 전에 본 정보는 이 둘 뿐이었다·
다른 정보를 알아볼 시간도 없었다·
게임의 용량이 애초에 크지 않았다·
설치가 금세 끝나 곧장 게임을 켰으니까·
전조는 뭔데? n번째 위기는 또 뭐고?
두 번째 선업 달성 조건도 마찬가지였다·
영약을 정당한 주인에게 넘기라고?
게다가 단어 선정이 불쾌하도록 노골적이었다·
진장명을 사람으로 취급하는 임무 방식은 단 하나뿐이고·
영약?
멀쩡히 숨 쉬는 애를 두고 영약이니 뭐니·
까득· 아청이 이를 갈았다·
대체 뭔데?
나더러 뭘 어쩌라고· 나는 뭔데?
내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나? 내가 주인공이야? 이 세상은 뭔데?
아이는? 엄마는? 사람 아니면 프로그래밍?
왜 내가 왜 나만 왜 어째서·
전조는또뭐야
여중생쟝은나랑왜만났을까
우연이아니라마주치게되어있는거라먄
내가무선택을든내가모는어떤게속에정해진트대로이어져정햐결말을향해다면나는체끝이후-
문득 찬 것이 손목에 닿았다·
아청이 색이 바랜 텅 빈 눈으로 뚝뚝 끊기는 녹슨 기계처럼 목을 움직였다·
손목을 잡은 작은 손·
차가워서 정신이 확 드는·
“추워····”
아이가 가냘픈 힘으로 손목을 잡아당겼다·
그에 따라간 아청의 손이 아이의 유달리 서늘한 뺨에 닿았다·
“하아·”
아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말 좆같은 기분·
상태창만 보면 발작하는 이것도 병인데 병·
이거 정신병인가? 내가 정신병자라니!
그거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군요·
근데 님들도 당해보면 알 텐데·
아청이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억지로 삼켰다·
식도를 순간 타고 넘어 혀뿌리까지 닿았던 쓴 위액이 나오지 못하고 되돌아갔다·
그 화풀이로 목청을 거칠게 할퀴면서·
“대협?”
“아· 네· 무슨 이야기 하다가· 아 맞다· 당연히 같이 가야 한다· 이런 말씀을 드릴 수가 있겠습니다· 아무렴요·”
아청이 그리 대답했다·
설정창 같은 건 없나·
불쑥 튀어나오는 임무창을 꺼버리게·
아주 씨발 것·
아청이 욕 대신 아이의 얼굴을 내려다보았다·
잠든 아이란 본래 심신을 안정시킨다·
사람은 아마 그렇게 진화했을 것이다·
약한 아이를 지켜주기 위해? 아마도?
임무고 뭐고 아청이 할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여중생쟝은 아가야· 아가는 지켜줘야돼·
교양 있는 현대 한국인의 당연한 상식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개글이 그렇게까지 인상이 나빳나용··
조금의 거짓도 없는 참참말인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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