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61
흑시는 일종의 만물장터다·
정확히는 만물장터에서 품목의 제한을 풀고 상도덕을 제외한 야시장이었다·
무엇이든 팔지만 가짜와 장물이 난무하고 또 바가지와 등쳐먹기가 일상으로 펼쳐진다고·
“뭐 그딴 관광지 상인 연합회같은 쓰레기들이 다 있어? 칼부림 안 나?”
“흑시의 규율을 어기면 온 무림의 암살자들이 달려들 겁니다· 흑점주가 어마어마한 현상금을 걸거든요·”
“흑점주? 흑시에도 따로 주인이 있어? 음? 아니 주인이 있는데도 엉망인 꼬라지를 놔둔단 말야?”
“그게 더 돈이 되니까요· 그런 곳입니다·”
보통 중원 사람들은 이런 설명을 듣고도 직접 가 보고서야 어떤 말인지 이해를 한다·
그러나 청은 그 설명을 듣고 곧장 이해했다·
그러니까 중고나라라는 거네·
신품과 중고 신품과 가짜와 장물이 난무하고 바가지와 등쳐먹기가 일상으로 펼쳐지는 그곳·
“그래서 그게 어딘데?”
“위치는 매번 바뀝니다만 은자 몇 개면 곧장 장소를 알아낼 수 있습니다·”
“히야 우리 제갈이 없었으면 한참 헤맬 뻔했네· 역시 똑똑한 친구 하나 두면 편하다니까·”
“옳은 말씀이십니다 누님·”
기껏 칭찬했더니 얄미운 자찬이 돌아왔다·
이상하다· 얘가 원래 이랬나?
좀 겸손하고 그랬던 것 같은데·
친해지면 본색을 드러내는 유형인가?
청은 몰랐지만 완벽한 정답이었다·
제갈이현의 특징이라기보다는 제갈씨들이 대대로 물려받는 혈족의 기질이라고 할 것이다·
저 위대한 조상 제갈량부터도 친하면 친해질수록 사람 대 사람 개인으로는 잘난 척 심한 재수 없는 놈이었다·
실제로도 잘 나서 두 배로 재수가 없었다고·
덕분에 청이 할 말이 궁해진 때에 마침 의매가 방긋방긋 웃으며 돌아왔다·
“의매 나 왔어!”
“어? 오· 뭐야· 기세 뭐야·”
부쩍 기세가 늘었으니 영약 먹고 경지가 오른 모양이었다·
“응 응! 나도 이제 절정 무인이야!”
“깨달음을 얻으셨군요·”
“깨달음? 그런가?”
견포희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에 제갈이현이 정중하게 덧붙였다·
“본래 깨달음이 말로 이을 만큼 명확한 개념이 아니니 잘 모를 수도 있지요· 대성을 축하드립니다·”
“응! 고마워!”
견포희는 멍청할 뿐이지 눈치는 좋은 편이라 청이 굳이 뒷처리를 해달라 표현한 이유를 잘 알았다·
설 언니의 중원 상식 강의로 환희궁의 수련 방식이 강호에서 대단히 천대받는다는 사실도 배웠고·
그에 청이 당난아를 보며 말했다·
“당난아는 더욱 노력하도록·”
“뭐야 나는 독 있거든? 그거 더하면 내가 쟤보다는 쎄거든?”
당난아가 제갈이현에게 삿대질을 했다·
당난아는 청에게나 순둥한 돌팔이 의원이지 본래가 안하무인 버르장머리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성품 대신 미모에 몰빵한 악녀다·
청이 매끈한 턱을 잠깐 만지작거리며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당가의 독이라·
“음· 인정· 독까지 하면 절정 후기에서 초절정 초입 정도는 쳐줄 수도 있겠네· 그럼 제갈이는 더욱 정진하도록·”
“누님 모자람을 아는 것이 군자의 덕목 아니겠습니까? 우제는 제 모자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갈이현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똑똑한 놈이라 놀려지지도 않는다고 청이 흥 콧방귀나 뀌고 말았다·
이후로는 반가철방을 떠나 제갈이현이 이끄는 대로 허름한 다점에 자리를 잡았다·
역시 맛집은 좀 낡고 촌스럽게 생긴 법인가?
청이 두근두근 과자를 잔뜩 주문했으나 금방 나온다 싶더니 미리 만든 지가 한참인 모양새로 바짝 마른 것들이 튀어나왔다·
맛도 없었다·
청이 오갈데 없는 분노를 과자에게 풀었다·
돼지처럼 처먹었다는 뜻이다·
그 사이 제갈이현이 다점 주인을 찾아 일어서기에 항의라도 하나 싶었더니 형편없는 과자 이야기는 쏙 빼고 흑시가 동쪽 숙압호 인근에서 열린다는 소식만 물어왔다·
“아니 과자가 이 따위로 나왔는데 지금 흑시가 중요해? 나도 주인장 낯짝 좀 봐야겠다·”
“이미 다 드시지 않았습니까· 그리고 애초에 흑점의 위장 사업체라 실제로 과자를 주문한 손님은 올해에 누님이 처음이실 겁니다· 근데 그거 용정차가 아닙니까? 왜 찻잔에 서리가· 아무리 위장 사업체라 해도 용정을 차게 내어놓는 것은 도를 지나친 장난이 아닙니까· 감히 제갈가의 손님들에게 이런 끔찍한 수작을···”
제갈이현이 진심으로 분노한 기색을 띠었다·
이대로 형편없는 다점을 뒤엎도록 두는 것도 좋겠지만 청이 대신 순순히 털어놓았다·
“아· 내가 빙공으로 살얼음 좀 띄웠어· 나는 좀 시원하게 마셔야 좋드라구· 제갈이 것두 좀 차게 해줄까?”
“세상에! 누님 미치셨습니까!?”
따악!
청이 머리로 맞으며 배운 핵꿀밤을 시전했다·
“아악!”
“이게 점점 기어오르네· 제갈아 형이 아니 내가 미치는 꼴 보고 싶니? 보여줄까?”
“아니 누님! 이게 무슨 절세의 신공 아으·”
제갈이현이 머리에 불 나도록 문지르느라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청이 흥 콧김을 내뿜었다·
덩치는 산만한 놈이 엄살은·
사부님 원조 손맛 봤다가는 대가리 쪼개지겠어 아주·
“이 무슨 괴력··· 괴력···”
머리를 벅벅 문지르던 제갈이현이 돌연 진지한 표정을 했다·
“그 혹시· 제갈가에 머무르실 때 국사무쌍 수련장에 들르셨습니까?”
“국사무쌍?”
청의 표정이 제갈이현에게 속삭였다·
그게 뭐야 혹시 먹는 거니 하고·
“국사무쌍이란 사기의 회음후열전에서···”
대충 나라 국 선비 사 없을 무 둘 쌍·
나라에 둘도 없는 선비라는 뜻으로 최고의 인재를 뜻한다는 말을 거의 반 다경동안 떠드는 것도 아주 놀라운 재주였다·
청이 그제야 가끔 쓰는 무쌍의 의미를 깨달았다·
아· 그게 그런 뜻이 되는구나·
설명하다 까먹었는지 수련장 이야기는 어디로 가버리고 양껏 지식을 뽐낸 제갈이현이 만족스레 다음 이야기를 꺼냈다·
“저녁을 미리 든든하게 먹고 숙압호로 떠나는 것이 좋겠습니다· 흑시에서도 요깃거리를 팔긴 하나 자칫하면 인육을 먹을 수도 있으니 아예 입에 대지 않는 것이 좋지요·”
저녁을 미리 먹는다는 소리는 반갑다·
든든하게 먹는다는 소리도 반가웠다·
하지만 야시장 가서 구경만 하긴 가혹하다·
“그럼 고기 말고 다른 걸 먹으면···”
“지네나 거미 전갈 따위를 드시고 싶으시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만·”
“음· 그건 거지로 살 때 너무 많이 먹었어· 맛없더라· 아니 생으로 먹진 않을 거 아냐? 양념 뿌리고 구우면 좀 다를까?”
그러자 당난아가 불쑥 끼어들었다·
“뭐야 너 거지였어?”
청이 말문이 막혀 잠깐 벙쪘다·
“음· 난아야·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지? 지체높은 당가의 아가씨께선 거지와 겸상을 하지 않는다는 뜻?”
“아니아니아니 내 말은 그런 게 아니라· 그냥 신기해서 그런 거구 너 기분 나쁘라고 한 소리는 절대 아니라· 미안 청아야 우리 친구지? 응?”
“그래· 친구지· 나 말곤 친구 없잖아· 고마운 줄 알아·”
“응· 고마워···”
아무 생각 없는 소리에 아차 싶어 중언부언 매달리기까지 딱 친구 없는 찐따가 하는 모양이라서 청이 그런갑다 이해하고 넘어갔다·
그 이후로는 저녁을 먹고 주마점을 나섰다·
소속을 알 만한 문양은 금지라서 제갈세가의 특급 마차는 못 탄다고·
그게 아니라도 마차를 타고 가면 도둑맞거나 다른 승객이 채가기 때문에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두런두런 일행끼리 이야기나 좀 하면서 걸어가는 길이 어둑하니 이른 초봄 밤에 달리 구경할 경치도 없고·
“의외로군요· 저치에게도 요리를 베푸실 줄은 몰랐습니다· 누님이시라면 바닥에 그릇 두고 쉰 밥이나 채워 개처럼 처먹으라 하실 줄 알았는데요·”
당난아가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청이 어이가 없어서 말했다·
“너네들 머릿속에 나는 도대체 뭐 하는 사람이길래· 그리고 아무리 사람이 미워도 먹는 거로 장난치는 거 아냐· 당장 쳐 죽일 놈이라도 밥은 먹이고 죽여야지·”
그에 나면파 무인이 움찔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아무리 개잡놈이라도 먹는 것을 못 먹게 해서는 안 된다·
굳이 죽여야 할 놈이라면 맹독을 듬뿍 쳐서 먹이든가 해야지 아예 못 먹게 하거나 구경만 하게 만드는 건 너무하잖아·
무슨 거창한 신념 같은 건 아니고 그냥 청이 먹는 것에 서러움이 많다 보니 그렇게 됐다·
그렇게 떠들며 언덕을 하나 넘자 큰 호수를 뒤로하고 벌판에 거대한 야시장이 펼쳐졌다·
노오란 등불이 일천 개는 넘어보이니 거기에 처진 천막들의 모임이 어지간한 소도시와 같은 위용이었다·
“누님 면사는 이제 벗어두셔야 할 것 같습니다· 흑시에서는 얼굴을 가리면 안 되거든요·”
“응? 소속을 알 만한 문양은 금지라며? 근데 얼굴은 또 까야해?”
“그건 말입니다 흑시의 연원에서부터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 이야기로군요· 과거 흑점···”
요약하면 정체를 감춰서도 너무 드러내서도 안 되는 장소였다·
그러다 서로 아는 사람을 만나더라도 그 뿐 밖에서 공개적으로 만난 이야기를 해서는 안 된다·
그저 꿈속에서 얼굴 마주친 걸로 치고 없던 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신분을 드러내는 문양 등은 금지·
공식적으로는 흑시에 방문한 적 없는 사람이 문양까지 달고 활보해서는 안 될 일임으로·
그러나 얼굴은 드러내야 한다·
이건 그냥 흑시가 깽판을 놓는 손놈 막으려고 일방적으로 정한 규칙이었다·
“판매자의 횡포라는 거네·”
어쨌거나 면사를 안 써도 된다니 반가운 소리라서 청이 훌러덩 벗어 옆으로 내밀었다·
당연히 챙기는 일은 견포희의 몫이므로·
“야· 나면이· 이제 어디로 가야 해?”
“그 아상牙商은 항상 가장 깊숙한 곳에 있습니다요·”
“혹여라도 상품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지요·”
제갈이현이 주석까지 척 덧붙였다·
도대체 저 조동아리는 쉬지를 않네·
입에도 근육이 꼈나?
아상은 중원에서 인신매매업자를 말했다·
여섯 글자가 길어 따로 부르는 직업 명칭까지 가질 정도로 고대 미개 원시 중국에 인신매매 문화가 널리 퍼져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청의 고향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인신매매범은 중화 인민들이 가장 사랑하는 직업 일 위이며 세계 전체에서 두 번째 규모를 자랑하며 체계적인 유통과정 그리고 분류에 따른 해체 및 수출까지 이르는 아주 효율적이고 과학적인 체계를 가졌다·
물론 세계 일 위가 아니기에 당의 자존심이 상해버려서 걸리면 사형이라고 주장은 한다·
그러나 사실 사람 하나 팔아서 남는 금액의 육 할 정도는 공산귀족에게 넘어가기에 실제로 사형보다는 연극에 가까웠다·
참고로 인신매매의 고향 인신매매의 천국 인신매매의 위대한 종주국이자 압도적 서열 일 위는 중원 남서쪽에 높은 산맥 넘어서 자리한 인구 많은 나라다·
인구의 전체가(이 나라에서는 여인은 사람이 아니라서 인구에 포함하지 않는다) 성범죄자 겸 강도살인자에 부업으로 소매치기범을 겸한 끔찍한 범죄자들의 국가이기도 했다·
혹시라도 혼자 여행을 갔다간 돌아올 확률이 반반밖에 안 된다·
여자는 무조건 편도 여행이 되니 사내라면 통계의 힘을 믿고 시도해봐도 좋을 것이다·
어쨌거나 일행이 척척 흑시를 통과했다·
그러다가 온통 고소하니 맛있는 냄새가 피어오르기에 군침이 돈다 싶더니 그러고도 꽤 지나서야 왕부정이라 걸린 깃발이 나타났다·
한 골목이 전부 철판을 달궈 요리를 만드니 그 냄새가 멀리멀리 퍼질 수밖에는·
그리고 놀랍게도 맛있는 냄새의 정체는 온갖 종류 벌레들의 꼬치구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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