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90
모용주희가 입만 뻐끔거렸다·
울화와 수치가 펄펄 끓는 물이 되어 목까지 차오른 것 같아서 말 대신 뜨거운 물기만 튀어나올까봐 소리를 낼 수가 없어서·
폐부 가득히 차오른 뜨거움에 그저 억억 목메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고작이었다·
“너 끄흡 감히··· 끄흐으···”
모용가 꼬맹이만 작은 게 아니라 그 누나도 체구가 작고 몸이 얇아 아담하니 몸이 작아 얼굴도 손바닥만 한데 거기에 유난히 크게 박힌 눈에 눈물방울이 주렁주렁 매달렸다·
그 모습을 보니 절로 안쓰러운 기분이 들어 청도 너무 심하게 굴었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하지만 신녀문 도복을 욕보이는 언행은 명백히 선을 넘었다·
팔다리 쭉쭉 길고 몸통도 여느 여인들보다 두꺼운 제자를 위해 사부님이 직접 옷감으로 지어주신 도복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신녀문 제자들이 모두가 같은 모양의 의복을 입었다·
그게 무슨 빈궁한 의복이냐 무슨 꼴이냐 말하다 말았지만 거지까지 들었으면 뒷말이야 안 들어도 알 만하다·
신녀문 전체를 싸잡아 욕하는 것과 같았으니 청으로서도 참아넘길 수 없는 큰 무례였다·
“모용 소저는 말을 조심하시는 게 좋을 거에요· 신녀문이 비록 구파일방 아주 이름난 명문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분들 중 신녀문 제자에게 감히라고 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답니다·”
사실 신녀문이 성세해서라기보다는 서문수린 여중제일인의 존재 때문이었다·
서문수린의 제자가 배분이 높은 것이지 신녀문의 어르신이라 존중을 받는 것이 아니다·
도문에도 급이 있으니 신녀문은 오히려 형산파가 속한 사방검파나 모산파 청산파 정통 도문보다 훨씬 아래로 치는 중소 도관에 불과한 것이다·
여인들의 신비문파라 하여 널리 알려졌을 뿐 달리 말해서 여인들의 신비문파를 빼면 남는 것이 없다·
“너 너무 심하신 것 아닌가요!”
“맞아 너무해요!”
어깨를 바들거리는 대장이 안쓰러웠는지 모용주희의 패거리들이 두둔하고 나섰다·
사실 청이 하는 말이 남 말 같지 않아서 같이 분노하고 슬퍼하고 있었으니 우르르 몰려 껴안으며 위로하는 모습이 퍽 끈끈한 정이 돋보이는 광경이었다·
“주희야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큰 년들 인성 수준이 저래· 아주 없다고 여인으로도 안 봐· 알지? 우리는 우리뿐인 거·”
“끄흑 끄으으···”
따뜻한 위로 속에 모용주희가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사실 이러한 때에 위로를 건네는 일은 너 울어야 한다고 뺨을 때리는 행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씨에 낙엽을 퍼붓는 꼴이다·
청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아 여기서 울어버리네·
청이 출도 전에 관찰하며 느낀 바로는 여인들의 기싸움이란 두 가지 부문을 종합하여 점수를 산정한다·
하나· 누가누가 더 돌려 멕이나·
여인들의 요설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묘리는 직접적인 공격을 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너를 생각해서 하는 말이라는 투로 화를 내면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만드는 우회의 도道를 발휘해야 하는 것이다·
무슨무슨 법에 따르면 이런 돌려까기 대결 양상에서는 먼저 화를 내는 사람이 패배한 것으로 친다·
그리고 둘 누가누가 더 불쌍한 년인가·
혹은 누가누가 더 피해자인가·
사실 하나에 해당하는 대결은 여인들의 사회에 있어서 숨 쉬는 일과 같은 평범한 일상에 속했다·
그렇기에 인사와 공격이 구분되지 않는 수준으로 대충 이러한 식이었다·
‘뫄뫄야 안녕? 와 뭐야? 신상? 너 오늘 되게 예쁘게 입었다· 혹시 오늘도 감성주점 가니? 나는 그런 데는 좀 그렇더라· 남자들이 말 걸고 그러는 게·’
이는 내가 저년하고는 사이가 안 좋다며 아군을 모아 결집하고 또한 적을 특정하는 전쟁의 기초 과정이기 때문이었다·
이때 신중하지 않으면 박쥐로 몰려 전쟁 전에 양측의 합공으로 개썅년이 되고 마니 전력을 잘 재서 승률이 높은 쪽에 합류해야 한다·
진정한 전쟁은 총력전 둘에 해당하는 저 누가누가 더 불쌍한 년인가 대결이었다·
이는 서로 피해자 호소인으로 더 불쌍한 사람인가를 겨루니 적절한 때에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고지였다·
너무 뜬금없이 울면 쟤 억지로 운다 뭘 잘했다고 질질 짜냐 소리를 들으며 그 순간 패배가 확정되고 만다·
그러니 누가 봐도 아 저건 좀 심했다 음 도를 넘었다 싶은 순간에 빡! 눈물 쫙!
다만 무슨무슨 법에 따르면 한쪽이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 엄중한 심사단의 판정이 따르기에 신중해야 한다·
마치 지금처럼·
“쟤는 맨날 시비나 걸고 다니면서 울기는 뭘 잘했다고 울어?”
“하 저년 내가 언젠가 사람 잘못 건드려서 제대로 당할 줄 알았다·”
“맨날 천박하니 다 까고 다니냐느니 사내에 미쳐가지고 음란한 꼴을 한다면서 정작 지는 옥기린 뜨면 아양을 떨기 바쁘면서·”
이것이 바로 총력전 전에 유난히 친절한 모습을 보이며 심사위원들 앞에서 선량함을 강조하는 이유였다·
갑자기 주어지는 피로회복제는 전쟁의 서막일 가능성이 있다·
울어도 공감받지 못하면 어이없는 년이 될 뿐이기 때문이었다·
줄타기의 달인인 청이 그 공기를 읽었다·
“이런 소저 정말 죄송해요· 스승님께서 직접 지어주신 정말 소중한 도복이어서요· 그걸 거지도 안 입을 더러운 걸레짝 귀한 옷감 버리도록 형편없이 기운 누더기라고 하시는 바람에 제가 좀 울컥하고 말았어요· 부디 용서해주시겠어요?”
듣는 진설의 등줄기가 서늘했다·
와 그렇게까지 심한 말은 안 했는데·
모용주희 역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우리 엄마가 해준 건데’ 공격이었다·
정신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남의 가족까지 욕한 나쁜 년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 그게 요· 흉을 본 게 아니라·”
그리고 나니 눈앞이 캄캄하다·
그렇게까지 심하게 욕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면 어쨌거나 욕을 하기는 했다고 실토하는 꼴이 아니던가·
“자세히 보니까 그 옷감도 참 고급이고 히끅 그 정성이 녹아든 훌륭한 도복 끕· 이에요· 제가 잘못 봐서 실수를 했어요·”
“아· 실수· 세상에 실수는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건데· 정말 죄송해요· 난 그런 것도 모르고· 미안해라· 내가 잘못했어요· 우리 그러면 서로 실수를 했으니까 없던 일로 하는 건 어떨까요?”
“네···”
“여러분 들으셨죠? 여러분들도 들으신 바가 없으신 거랍니다?”
진설은 조금 아쉬움을 느꼈다·
와 이걸 여기서 봐주는구나·
그냥 아예 무림대회 동안 용봉지회에 발도 못 붙이게 쫓아내 버릴 수도 있었는데·
청이야 괜히 더 원수질 일도 없고 동생 얼굴 봐서 이만하면 되었다 싶었다·
“이런 저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고 말았나봐요· 제가 자리를 좀 피해드려야 할 것 같아서· 진설 소저 다음에 뵈어요?”
“아! 넵! 살펴 들어가셔요·”
거기에 먼저 자리를 피해주기까지·
무슨 뒷담이 나올지 모르는데 판도를 굳히지 않고 떠나겠다고 하니 아주 관대한 승자의 아량이었다·
내려가는 계단참에서 당난아가 말했다·
“근데 좀 불쌍하기까지 하드라· 너무 심했던 거 아냐? 이제는 아예 원수잖아·”
“진설 소저랑 사이가 안 좋은가 했더니 나한테 하는 거 보니까 그냥 가슴 큰 사람한테 다 시비를 거는 모양이던데· 앞으로도 계속 신경 긁어댈 거 생각하면 미리 기강 좀 잡아둬야지·”
청이 굳이 모진 말 쏟아내며 꽉 내리눌러 두들겨 팬 이유였다·
저런 유형은 놔두면 기고만장 갈수록 더 기세가 올라 점점 선을 넘기 때문이었다·
이른바 제가 없는 것을 남이 가지면 그게 마음에 가시처럼 박혀 곪은 증오를 키우는 유형이었다·
청이 경험으로 익힌 교훈이었다·
무림 출도 이전 청은 고향에서 제일 잘 팔린 국산 중대형 차량을 몰았다·
땅값 오른 큰아버지가 외제차 뽑으시는데 사촌들이 아저씨 차 심지어 구형은 죽어도 안 탄다며 배부르고 고마운 투정을 부리는 바람에 청에게까지 넘어오게 되었더란다·
개꿀·
그런데 젊은 생산직 근로자가 중대형을 몰고 다니는 꼴에 발작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었다·
개중에서 심한 박씨 아저씨가 있었는데-
돈 잘 버나 봐? 요즘 젊은 것들은 저축은 안 하고 오늘만 사나? 좋은 차 뽑아서 뭐 여자 태우고 다니니 좋겠어?
청이 그래도 어른이라 꾹 참았다·
그러나 점점 심해지기만 하니 결국 그딴 소리로 비꼴 때마다 아예 차 자랑을 열 문단씩 퍼부어 주었다·
와 그럼요· 진짜 좋은데· 안 몰아보셔서 모르시겠지만· 언제 한번 뽑으셔야죠· 이게 준대형이라 아주 승차감이 다른데 다른 차 몰면 덜덜덜 떨려서 못 몰겠더라고요· 하하 역체감이라고 하죠? 시승 같은 거 하시려거든 그러지 마세요 역체감이 진짜 커요·
결국 ‘야이 어린놈의 새끼가’로 시작되는 대폭발을 하길래 곧장 인사담당관에게 일러바쳐 해결을 보았다·
이후로 시비 거는 사람이 싹 사라져버린 것이다·
““어르신 오셨습니까·””
다시 오 층으로 내려오자 엉거주춤 예의를 차리며 일어나는 도가의 청년들에 청이 난처한 기색으로 말했다·
“그리 예의 차리지 않으셔도 된답니다· 아직 어린 계집일 뿐이니 편하게 대해 주시겠어요?”
그에 도가 청년 무인들의 표정도 한시름 놓은 듯 편안해졌다·
사실 어린 놈이 배분 높다고 꺼드럭거리면 그만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어서 대개 존대 역전의 어려운 동생쯤으로 지내는 것이 보통이었으니까·
다만 낮은 쪽에서 ‘너는 어리니까 우리 친구로 지내자’ 하고 말할 수는 없으니 청이 이야기를 꺼내지 않으면 어르신으로 모실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음 검우· 이렇게 보니 도사는 도사였나· 창빈 형은 검우가 여인이라 어려운지 배분으로 어려운지 구분이 안 되다 보니·”
“창빈이는 둘 다일걸· 창빈이 어때?”
“커흠 저는 소저가 어르신이라· 여인이 어렵다니 나는 잘 모르겠다입니다·”
그래도 같이 여행했다고 좀 편한가 보네?
사실 같이 여행보다는 청이 워낙에 사나이다운 배포를 보여줬기에 편해진 쪽에 가까웠지만 청이 창빈의 속을 어찌 알랴·
청이 사악하게 웃으며 공손요예를 내밀었다·
“아 여기는 공손 소저야· 이쪽은 창빈이 화산 매화검수·”
“취면복마검 창빈 대협이시군요· 그 위명은 익히 들었습니다· 같은 검수로서 이리 뵙게 되니 참으로 영광입니다· 언제 한 번 검을 나누어 귀한 가르침을 베풀어 주시겠습니까?”
“····”
공손요예의 정중한 칭찬에 창빈이 시뻘건 얼굴을 하고 고개만 끄덕거렸다·
“오오! 소저의 말이 참으로 훌륭하오· 그래 검수라면 마땅히 인사와 함께 겨루어 실력을 키워 보자 소리가 나와야지! 검우는 과연 일행조차 범상치 않소!”
“그것이 검우이니까·”
청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그럼 나는 뭔데 하는 당난아의 중얼거림을 그냥 무시하고 청이 이번에도 소개를 건넸다·
“예 여기는 소검왕 남궁신재· 소검왕 치곤 경지가 좀 미천하긴 한데 그래도 검에 대한 열정으로는 중원 천지에 대적할 수 없는 그래 그야말로 열혈검객이지·”
“열혈검객! 이 무슨 아름다운! 오늘부터 별호를 바꿔야겠소· 소검왕보다 훨씬 감미로운 표현이 아닌가! 도대체 검우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마다 어찌 심금을 울리는지!”
“음·”
남궁신재가 버럭 외치는 통에 공손요예가 말을 할 순간을 놓쳐버리고 말았다·
“한 바퀴 둘러봤는데 용봉지회가 내 취향은 아니네· 차라리 몸이라도 움직이는 게 낫지· 검우 오랜만에 대련이나 할까?”
“안 그래도 그 말을 하려고 했네· 검우가 여인처럼 굴길래 내 말 꺼내기 어려웠건만 역시 검우 검으로 통한 사이가 이러하군! 자 가세! 이번에 새로 깎은 목검이 많아·”
“목검을 들고 왔어?”
“그럼 안 들고 오겠나? 상식 아닌가· 하인에게 맡겨 놓았지· 요 앞 다점에서 쉬고 있을 터이니 내 금방 찾아오겠네·”
그리고는 신이 난 기색으로 호다닥 달려 쌩 계단참으로 사라져버리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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