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1
청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제 동생에게 하소연이라도 한 모양이지·
“왜 뭐라고 하는데?”
“어떤 여자가 갑자기 시비를 걸고 사람들 앞에서 막 망신을 줬대요· 심지어 때리기까지 해서 아팠대요·”
“오잉? 때려? 어디를 맞았는데?”
“그건 모르겠어요·”
당난아가 하 말문이 막힌 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어이가 없다는 투로 말했다·
“이게 이제는 지 동생한테 거짓말두 해? 야· 시비 걸고 망신주는 건 원래 니 누나가 하는 일이거든? 니 누나는 원래 아무한테나 눈에 띄기만 하면 시비를 걸고 다녀· 정확히는 아니어도 대충 그래·”
“우리 누나가요?”
“그래· 다들 에휴 불쌍한 애다 하고 넘어가주니까 이제는 그냥 그래도 되는 건 줄 알고· 그러다 사람 잘 못 건드려서 지가 역으로 당한 것 뿐이거든?”
모용준의 눈동자가 떨렸다·
“진짜 진짜에요? 청 누나 당 누나가 한 말이 진짜에요? 우리 누나가···”
“음· 내가 보기에는 그런 사람이었기는 한데· 산 산은 혹시 알아?”
“모른다· 관심도 없고· 그냥 좀 귀찮게 구는 여인인 줄만 알았는데·”
“혼자 쏙 빠져나기 있기 없기?”
청이 팽대산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제 누나의 실체를 알고 혼란에 빠진 모용준을 끌어안으며 말했다·
“아무리 준이 누나가 그런 사람이라고 해도 준이는 가족이니까 편을 들어줘야지· 어떻게 그럴 수가 하는 표정이 아니라·”
“아! 네!”
“청아는 진짜 마음씨가 나 감동·”
당난아가 추임새를 넣자 팽대산이 쯧쯧 혀를 탔다·
“애한테 참 좋은 걸 가르치는군· 오히려 가족이니 더욱 따끔하게 말해줘야 하는 게 아닌가?”
“그건 큰 잘못을 했을 때나 하는 말이고· 뭐 보증을 섰다던가 하면 다리몽둥이 부숴서라도 교훈을 줘야겠지만· 사소한 건 그냥 편을 들어주는 게 맞지?”
“맞아· 청아 말이 맞아·”
“사소한 것들이 모여 버릇이 되지 않나·”
“흥 흥이다·”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서운해지는 거야· 어차피 억울한 사람은 바른말 해도 귀에 안 들어오거든? 겨우 말싸움 좀 하고 창피 좀 먹은 일에 네 잘못이라고 가족까지 그러면 오히려 더 서러운 법이지·”
“맞아맞아· 청아 말이 다 맞아·”
“···그렇게 오냐오냐한 결과물이 바로 네 옆에 있지 않나?”
“뭐야!? 한번 해 보자는 거야?”
당난아가 쌍심지를 켜며 품속으로 손을 쏙 집어넣었다·
청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난아야· 독은 집어넣고· 말로 해· 말로·”
“큭· 아깝다···”
“산도 조심해· 얘는 진짜로 독을 써·”
“흠· 마치 우리 개는 문다는 듯이 이야기를 하는군·”
그러자 당난아가 으르렁거렸다·
“하 내가 못 물 것 같애? 진짜로 물리기 전에 청아한테 떨어지는 게 좋을 걸· 아니 기회 보면 물어버릴 거니까 그냥 마음의 준비나 하고 있으시지· 흥·”
청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음· 확실히 조금 개 같은 뭔가 애완견 같은 느낌이 있기는 해·
사실 무림세가의 체형은 가문마다 뚜렷한 특징이 나타나는 성향이 있었다·
유전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어려서부터 무공을 수련하면 그에 맞는 이상적인 신체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오래된 무림세가란 그런 신체가 오래 대물림이 되며 점차 특성처럼 굳어져 나타나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제갈세가에서는 우락부락한 체형이 드물다· 제갈이현이 아주 특이한 경우일 뿐 근육은커녕 살도 잘 붙지 않으며 피부는 병약한 색을 띤다·
하북팽가는 긴 도를 다루는 특성상 키가 크면서도 몸은 두껍지 않고 다만 근육이 치밀하며 선명하다·
황보세가는 묵직한 중병과 권법을 추구하니 크고 두꺼운 신체를 가지며 흑룡조가는 그냥 새외 출신이라서 피부가 건강한 갈색빛을 띈다·
그리고 모용세가의 경우는 크지 않은 키 얇은 상체와 튼튼한 하체가 특징이었다·
이는 모용세가의 무리 극쾌를 추구하는 쌍검에 어울리는 신체라 하겠다·
모용주희는 그 직계의 피를 아주 진하게 개중에서도 정말로 진하게 진짜 너무너무 진하게 타고났을 뿐이었다·
그래서 모용주희는 진작 가슴에 대해서는 그냥 포기한 상태였다·
풍만한 여체를 가꾸어주는 선녀공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면 종류는 한음한 성질을 가졌다·
모용주희가 익힌 건공무양신공과는 아예 정반대라서 아예 내공을 흩어야만 익힐 수가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가문의 무공을 포기할 수는 없으니 그저 희망은 단 하나뿐이었다·
초절정에 들어 환골탈태를 이루는 것·
모용주희가 의외로 검에 진심이라는 평가를 듣는 원인이기도 했다·
그리하여 모용주희가 세상에 그토록 바라는 것이 둘 있었으니 하나는 풍만한 아니 소담하기라도 한 가슴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무림세가의 여식들이 다들 바라듯이 천하제일미남 옥기린의 마음이었다·
그리고 그 팽대산이 용봉지회에 나타났다는 아주 드문 일이 일어났다는 말에 득달같이 달려온 모용주희였다·
그리고는 청천벽력(마른 하늘에 날벼락)같은 소리를 들었다·
모용주희가 세상에서 가장 원하는 두 가지를 모두 빼앗겼다는 소식이었다·
“말도 안 돼! 거짓말!”
“옥기린님이 아주 꽉 잡히셨다니까· 아주 고황후처럼 들들 볶는데 미안하다 미안하다 아주 눈도 못 마주치고 해 달라는 대로 다 하던데 아으 보는 내가 다 속상해서··· 진짜····”
그러고는 진짜로 눈가가 촉촉한 것이 속이 단단히 상하기는 한 모양·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 팽 공자님이 대체 뭐가 모자라서 그런 면사 쓴 추한 년을 모신단 말야!? 하 나는 안 믿어·”
그리고는 성큼성큼 거의 뛰듯이 다급하게 계단을 올랐다·
오르자마자 들리는 것이 듣기만 해도 황홀한 옥기린의 저음 낮은 목소리였다·
모용주희가 여인을 헤치고 본 것은-
팽대산과 나란히 앉은 채로 무릎에는 또 모용준을 턱 앉혀놓은 청의 모습이었다·
“아 안돼···! 준이는···!”
모용주희의 목소리가 떨렸다·
도대체 저년은 내게서 도대체 얼마나 더 앗아갈 생각이란 말인가·
오른쪽에는 옥기린을 끼고 그리고 왼쪽에는 음 쟤는 뭔데? 그리고 무릎에 오른 동생까지 셋 더하기 덤 하나가 화기애애하게 떠들고 있었다·
모용주희가 그만 자리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아! 누나!”
제 누이를 발견한 모용준이 폴짝 뛰어내려 쪼르르 달려나갔다·
막 누이에게 안기려던 모용준이 어느새 눈물이 그렁그렁한 모용주희의 눈과 마주쳐 엉거주춤 자리에 섰다·
“너 준이 너! 네가 어떻게 저 여자랑 같이 있어!? 대체 뭐야!? 누가 저런 여자랑 같이 있어도 좋다고 했냔 말야!”
“그 아버지가 좋은 누나니까 앞으로도 친하게 지내라고···”
“뭐라고? 다시 말해봐· 너 뭐라고 했어?”
“아버지가 그러셨는데···”
“뭐야! 너! 왜 아버지가 너 같은 년을·”
모용주희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였다·
청이 그에 대답해주었다·
“모용성익 대협을 말씀하신다면 일전에 준이랑 놀아주다 뵙고 인사를 드렸었지요· 아무래도 좋게 봐주신 모양이세요·”
“어떻게 어떻게···”
모용주희가 그렇게 중얼거리다 돌연 고개를 돌려 팽대산에게 간절한 눈빛을 쏘았다·
“팽 공자님 어떻게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으세요· 차라리 다른 오화라면 그래요 차라리 저기 당가의 계집이라도! 그러면-”
“뭐얏!? 저런 얼굴만 번드르르한 뺀질이는 나도 딱 질색이거든? 누구한테 누구를 갖다 붙여? 내가 뭘!”
당난아가 버럭 화를 내는 바람에 모용주희가 벙쪄 눈만 깜박거렸다·
뭐지 정실이니 어쩌니 독을 뿌리던 년이 왜 화를 내지? 하고·
“어 어쨌든· 다 두고 왜 왜 저런 추한 얼굴도 못 드러내는 면사 뒤집어쓴 년한테 목을 매시는데요 네? 역시 가슴 가슴 때문이신가요? 팽 공자님도 가슴 큰 여인이 좋으신 거죠?”
팽대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실 이래서야 청의 얼굴을 내보이건 아니건 어느 쪽이건 추문이 될 뿐이었다·
심지어 자신은 거지와 붙어먹었다는 소문이 났음에도 불구하고 심지어 여인들이 거지꼴을 하고 눈앞을 서성거리지 않았던가·
이 이상 어떤 연인 비슷한 모양새를 보여봐야 그저 제게 오는 관심 일부를 청이 증오로 분담할 뿐이 아니겠는가·
“뭔가 오해가 있는 모양인데· 서문 소저와는 그냥 친우로서 사귀고 있을 뿐이다· 서문 소저께 폐가 될 소리는 삼가도록·”
그러자 좌중이 일시에 내뱉는 안도의 한숨들이 회장을 가득 메웠다·
수군수군 밝은 속삭임이 퍼져나간다·
사귀는 사이가 아니셨구나· 다행이다·
확실히 아까 말고는 연인 같은 분위기는 전혀 아니었긴 했지· 그냥 장난이었나 봐·
하긴 옥기린님이 저런 여인과는 애초에 말도 안 되지·
용기를 얻은 모용주희가 쐐기를 박았다·
“그 정말이신가요? 정말로 아주 조금도 정말 눈꼽만큼도 다른 감정이 없다고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신가요?”
팽대산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그러나 이 추문을 끝내기에 딱 좋은 질문이기는 했다·
“그래· 순수한 우정이다·”
팽대산이 그 뒤로 말을 이었다·
“그런데 소저가 내 어머니라도 되나? 내 살다 보니 별소리를 다 듣는군· 내 어이가 없어서· 대체 소저가 무슨 자격으로 묻는지 모르겠군·”
“앗· 소녀는 그저 그러니까 그 저는· 그냥 팽 공자님이 걱정이 되어서···”
“걱정이라· 무슨 걱정 말이지?”
“그 혹시 저런 여인하고 어울리신다고 소문이라도 나면···”
“내가 누구와 어울리건 소저가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군· 그리고 내가 서문 소저는 친우라고 방금 말하지 않았던가? 소저는 함부로 남의 친우를 헐뜯는 그것도 본인이 듣는 자리에서 말하는 취미라도 있는 모양이지? 뒷담은 본인이 없는 자리에서 하지 않던가? 본래 성정이 그러한 모양이지?”
모용주희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게 그게 아니라· 소녀는 그저···”
그러나 변명거리가 있을 리가 있나·
모용주희의 눈망울에 습기가 어렸다·
억울하고 야속해서 저절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이다·
그러자 모용준이 제 누이 앞을 척 가로막으며 소리쳤다·
“우리 누나 괴롭히지 말아요!”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준이나 준이네 아버지를 모르는 사이도 아닌데 아예 뭉개지는 꼴을 두고 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만· 그냥 모용 소저랑 나랑 투닥투닥 막말을 좀 하는 사이라서 무심코 한 소리니까 그렇게 몰아붙이진 말고· 난아도 너를 보고 이게 저게 하지만 딱히 사람이 막돼먹어서 하는 소리는 아니잖아?”
“아니· 저건 그냥 막돼먹은 게 맞다· 아주 오냐오냐 다 받아주다보니 아주 사람이 글러먹었지·”
“뭐얏! 지금 해 보자는 거지?”
“거봐· 너도 난아한테는 막말 하고 그러잖아? 모용 소저랑 나도 원래 좀 막말도 나누고 그래· 모용 소저도 알고 보면 착한? 음? 착한가? 나쁜 사람은 아니거든?”
“방금 너도 확신이 없지 않았나?”
“그러니까 이런 사이라니까· 그렇지 않나요? 모용 소저?”
“마 맞아요· 우리가 좀 막말하는 사이랍니다·”
그에 팽대산이 미심쩍은 눈빛을 감추지 않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내 잘 몰라서 실수를 한 모양이군· 모용 소저 내 사과하리다·”
“아 아니에요· 저도 무심코 오해하실 말을 하고 말았답니다· 하 하하····”
모용주희가 어색하게 웃었다·
그에 청이 다시 입을 열었다·
“나는 모용 소저랑 못다한 막말을 조금 나눠야겠거든? 산은 잠깐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래? 모용 소저 칠 층에서 잠시 이야기를 좀 나누고자 하는데 괜찮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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