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5
훔친다고 마음을 먹었으면 해내야 하는 것이 신투의 자격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남의 제자를 어찌 훔칠 것인가·
물론 물리적으로 훔칠 수는 있다·
납치해다가 어느 심산유곡 수직으로 곧게 뻗은 절벽 동굴에 도망가지 못하도록 가둬두고는 ‘히힛 다 배울 때까지 못 간다’ 하고 강짜를 놓는 방법이 있었다·
다만 이는 첫째로 대상이 납치를 당할 만큼 만만해야 할 텐데 이미 경공이 일절에 이른 것을 보았으니 일단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 방도가 없다·
둘째로 사내놈이라면야 그렇게 해도 결국 마음을 열고 신투 두 글자에 홀리게 되어있는 법이지만 여인에게 그리했다가는 신투가 아니라 색투로 무림공적이 되게 생기지 않았는가·
어찌어찌 무공은 전수할 수 있겠지만 유구하게 이어진 신투의 명맥은 그대로 끝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므로 훔쳐야 하는 것은 제자의 몸이 아니라 제자의 마음이다·
그러니 아직 어린 아해의 마음을 훔쳐 두 스승을 모시게 만들어야 한다·
당장 전대 신투만 해도 이름만 대면 아는 유명한 무림 방파의 어르신으로 과거는 없는 척 점잔을 빼고 있지 않은가·
신투는 전업이 아니라 겸업인 것이다!
그리하여 신투가 제 스승을 추억했다·
스승께서 자신을 꼬실 때 무어라 하셨던가·
‘애야 혹시 천하제일의···’
‘할래요! 할게요!’
‘험험 말은 다 듣고···’
‘다 알아요! 무공 전수하시려는 거죠!’
신투의 출신이 출신이라 무공이란 말에 검 찬 도인이 말을 걸자마자 따라나섰더란다·
생각해 보니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음····
그럼 어떻게 꼬셔야 하지?
신투가 눈을 끔벅거렸다·
—-
오월 보름·
무림대회 개최를 열흘 앞두고 잠룡비무회의 예선이 먼저 시작되었다·
물론 이는 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왜냐하면 이미 실력이 검증된 빼어난 기재들은 예선 없이 곧장 본선부터 시작하기 때문이었다·
예선이라고 하면 중소방파의 제자나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무명인들이 본선의 몇 자리 두고 다투는 자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구파일방 십대세가의 참가자들은 기본이 본선부터고 그 외에 무림맹에서 판단해서 예선 심사가 필요 없다고 판단한 자다·
사실은 순전히 인맥빨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 무림맹 돌아가는 꼴이 참으로 더럽다’ 하며 한탄할 필요는 없었다·
오히려 예선 참가자들의 입장에서도 이 편이 낫기 때문이었다·
이름 좀 날려보겠다고 공명심 가득 품고 비무대에 올랐더니 반대편에 소림 제자가 떡하니 서 있더라고 하면 그 얼마나 억울하고 슬픈 일이겠는가·
어차피 본선까지만 올라가도 그럴듯한 별호 하나 떡하니 받아낼 수 있으니 쟁쟁한 신공 익힌 후기지수들 피해 고만고만한 무명들을 상대하는 편이 나은 것이다·
그리고 이미 본선이 확정된 이 특권층들도 만족스러운 것이 요주의 인물이 비무하는 모습을 미리 염탐함으로서 시작하자마자 무명인에게 패배하는 불상사를 방지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바로 지금처럼·
“흔치 않은 지당권을 쓴다고 하더군·”
“지당권이면 땅에 눕는 그거? 제갈아?”
청의 공식적인 주석 요청에 제갈이현이 신이 나서 주석을 붙였다·
“아 누님! 지당권이란 말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는 일단 무공의 기본적인 성질에서부터 이야기를 해 드려야 하는데 말입니다···”
무공의 기본적인 특징이라 하면 보법으로 시작되어 발바닥에서부터 이동하는 무게의 중심이 병기 끝에서 폭발하는 파괴력에 있다고 하겠다·
그렇기에 기본적으로 무공은 서서 펼치는 것이다· 입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니 무인이 넘어졌을 때의 대처 방법이란 즉시 일어나거나 굴러서 거리를 벌린 후에 일어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에 반해 지당권으로 분류되는 무공은 땅에 눕는 것을 전제로 했다·
이른바 와식 무공이었다·
무공은 사람을 상대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고 그렇다 보니 의외로 바닥에 누운 상대를 공격하는 초식이란 어떤 무공에서도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게다가 지당권 무공들의 무게중심이 아예 지면에 붙어 적의 허리 아래를 노리면 그에 대처하기도 쉽지 않다·
“그럼 되게 강력한 수법 아닌가? 스승님은 그런 거 안 가르쳐 주셨는데? 누워서 싸우는 놈들이 있으니 조심해라 라고만·”
“음· 일단 익히는 자들이 거의 없습니다· 외견상 좀 좋지 못한지라· 무림에서 체면이 어떤 것인지 잘 아시지 않습니까· 바닥을 몇 바퀴 구르기만 해도 당나귀냐고 비웃는 판에 말입니다· 그래서 지당권을 다른 말로 구권이라고 합니다·”
타구봉법 할 때 그 글자 개 구狗자다·
구권이란 개나 쓰는 무술이라는 뜻이다·
“헹· 죽고 사는데 체면은 무슨· 다들 말이야 그렇게 해도 잘만 구르드만· 아 여기 지금 배당이 어떻게 마 소협이 네 배 하고 칠 푼이요? 그럼 마 소협으로 은자 한 개만 주세요·”
마침 승패권을 파는 이가 지나가기에 청이 아주 물흐르듯이 구매를 마쳤다·
승패권은 승패를 두고 겨루는 도박으로 금전을 주고 사서 맞추면 승률에 따른 배당으로 돌려받을 수 있었다·
원시 미개 고대 중원에는 아직 도박과 복표에 관한 죄가 규정되지 않았기에 이러한 대회 전에 아예 상단들이 입찰을 해서 공식 도박판을 펼치는 것이다·
청이 승패권을 받아들고는 말했다·
“네 배 하고 칠 푼이면 승률이 굉장히 낮다고 치는 것 같은데? 지당권이 위협적인 거 맞아?”
팽대산이 코웃음을 쳤다·
“위협적이라고 했지 강력하다고는 안 했다만· 그런데 그리 낮은 승률에 거나?”
“원래 역배가 정배거든? 어차피 승부는 이기거나 지거나 반반 싸움 아냐? 어차피 반반 싸움에 이기면 은자 세 개를 넘게 따고 지면 은자 하나를 잃는 거 아냐· 그럼 안 거는 사람이 손해인 거 아닌가?”
“···? 그게 반반이-”
“오 시작한다·”
팽대산이 뭐라 반박하려 했으나 곧장 땡땡땡 요란한 소리와 함께 비무가 시작되는 바람에 때를 놓치고 말았다·
지당권을 쓴다는 마 소협 대 중원 어딘가 존재하는 화천문 제자 성 소협의 대결·
마 소협의 지당권은 생각보다 모양새가 막 빠지지는 않았다·
무공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각법을 주로 사용하니 몸을 날려 붕 날아 호쾌하게 발을 모았다·
훌륭한 날라차기였다·
가슴을 제대로 차인 성 소협이 비틀거리는 때에 마 소협이 바닥에 낙법으로 누운 채 착지하고는 풍차처럼 하체를 돌리며 두 팔로 일어나 발길질을 이어나갔다·
오우 비보잉· 놀 줄 아는 놈인가?
청이 간만에 고향 말로 감탄사를 삼켰다·
“음· 의외로 멋있잖아?”
“저게 말인가?”
“내가 보기엔 멋있는데···· 오 오오·”
청이 눈을 빛내며 마 소협의 공연 아니 지당권을 구경했다·
현대 출신의 정서에는 제법 멋있게 보였으니 고향에 비슷한 춤사위가 있으며 또 격투기에 땅기술이 있으니 어색하지 않은 탓이었다·
“제대로 펼치는 꼴을 못 봐서 그렇다·”
“왜 저 정도면 나쁘지 않 으음·”
순간 마 소협의 움직임이 돌변했다·
두 발 두 다리를 쫙 펼쳐 땅을 짚었으나 배가 거의 땅에 닿도록 바짝 붙은 자세·
팔다리가 기묘하게 허우적거리는데 그 속도가 빨라서 더욱 기묘한 꼴이었다·
거의 바닥을 기듯이 마구 뽈뽈거리다가 몸을 뒤집어 거미의 자세를 취하며 성 소협의 정강이와 오금을 노리기도 하고 제비를 돌다 차고 걸고 때리니 팔과 다리의 사용이 거의 경계가 없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좀 추하다·
“···음· 좀 그렇네·”
“그렇겠지·”
팽대산이 그러면 그렇지 하는 태도로 피식 바람 새는 소리를 냈다·
이미 관객들도 폭소를 터뜨리거나 혹은 냉소하는 이가 많은 판이었다·
특히 등을 땅에 붙이고 두 다리로 밀어 빠르게 나아가며 팔을 휘두르는 장면이란·
도대체 살면서 언제 다시 볼까 싶은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였다·
그리고 마침내 승패가 갈렸다·
추한 무공에 패배한 성 소협은 아예 고개도 들지 못한 채 눈물 뚝뚝 떨구며 퇴장해버리고 말았다·
이기고도 비웃음을 잔뜩 산 마 소협도 승리했다고 하기에는 애매하리라·
그리하여 진정한 승자는 은자 한 냥으로 네 냥과 동전 칠십 문을 가지게 된 서문청이었다·
최종 승자가 소감을 발표했다·
“근데 내가 붙어도 이길 자신이 없네· 실전이라면 단박에 때려죽이겠지만·”
저렇게 땅에 찰짝 붙어서야 천마군림보 한 방이면 내장을 터뜨려 버릴 수도 있다·
하지만 상대를 상하게 하지 않고 제압해야 하는 대련이라고 하면 도대체 방도가 없는 것이다·
“일견 복잡해 보이지만 결국 노리는 부위가 한정되어 있지 않나· 발을 후리거나 오금을 밀어 쓰러뜨리려 드니 그를 염두에 두면 그렇게까지 자신이 없다고 할 상대는 아닐 텐데·”
“맞습니다 누님· 기묘해 보이는 동작 중 여럿이 그저 관심을 흐리는 용도이니 허와 실을 끝까지 보아 판단하면 누님의 경지로 어렵지 않은 상대입니다·”
그러자 청이 뺨을 긁적였다·
“그게· 그쪽으로는 내가 좀 약해서·”
“약하다니·”
“아씨 꼭 설명해 줘야 알아? 나는 내 아래로 파고들면 아예 안 보이거든?”
그에 팽대산과 제갈이현의 시선이 한 곳에 쏠렸다가 이내 민망한 표정으로 저 멀리 있지도 않은 먼 산을 찾는 척을 했다·
청은 발아래에 사각이 남들보다 월등히 넓은 것이다·
“그래도 미리 봐서 다행이네· 모르고 당했으면 그냥 꼼짝없이 질 뻔했어· 구경 온 보람이 있었어· 또 봐둬야 할 대련이 있을까?”
“기문병기를 쓰는 무인이 몇 있다더군· 의자에 주판 철필· 한번 봐두면 좋기는 하겠군·”
“의자? 앉는 의자?”
“그래· 그 의자다·”
“상상이 잘 안 되는데·”
청이 상상하는 의자의 사용법이란 아직 중원에 발명되지 않은 접이식으로 호쾌하게 후려치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누님 기문병기라고 해도 별것 아닙니다· 익숙하지 않으니 까다로울 뿐이지 진정 강력한 것이라면 진작에 주류가 되지 않았겠습니까?”
“그건 그렇지· 다들 검 쓰는 이유가 있는 거니까·”
무인들이 도검을 주로 쓰는 이유가 달리 있지 않았으니 관부의 방해로 발전하지 못한 장창과 월도 등의 거병을 제외하면 그 외의 특이한 병기라고 해봐야 그저 특이할 뿐이었다·
그리하여 무천각으로 돌아와 남은 시간 대련에 힘쓰다가 그렇게 보람찬 하루를 다 보내고 잘 시간이 되었을 때·
청이 그제서야 중대한 사실을 깨달았다·
복신적을 도둑맞았다!
복신적 대신에 처음 보는 옻칠해 둔 나무 피리가 허리춤에 딱 꽂혔는데 끄트머리로 삐져나온 것을 잡아당기고 보니 얇은 천에 쓴 편지가 드러났다·
-복신적은 잠시 맡아두마·
유시 경에 여희루에서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혼자서 와 줄 수 있겠나·
다만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니 정 걱정이 된다면 목적지와 목적을 다른 이에게 밝혀도 좋다·
“음· 이걸 이제 봤네····”
유시 경이라 하면 대충 여섯 시쯤 된다·
그리고 지금은 해시 말 밤 열한 시 잠자리에 들기 직전이었다·
청이 복신적을 쓸 일이 없으니 옆구리에 장식처럼 끼워두기만 하고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던 탓이었다·
자기 전에 놓아두려고 보니 복신적이 아닌 웬 엄한 피리가 손에 잡히더라·
이걸 어쩌지? 지금이라도 가 봐야 하나?
하지만 이미 밤이 늦었다·
악의는 없다고 했으니 다른 방식으로 또 만나자고 연락이 오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서문 소저? 왜 그러시나요?”
저녁부터 이 시간까지 내내 함께 대련에 어울려준 공손요예가 청을 불렀다·
어차피 내 손 떠난 것이니 발 동동 구르고 걱정해봐야 뭘 하겠어·
다시 연락이 오겠지 뭐·
그렇게 걱정을 애써 털어버린 청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너스레를 떨었다·
“아냐· 아으 오늘도 수련에 열중했더니 아주 벌써부터 잠이 솔솔 쏟아지네· 자자·”
—-
참고로 신투는 계속 기다렸다·
혹시 남들 눈을 피해 밤에 오지 않는가 하고 밤이 새도록 내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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