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10
청의 고향에서 어떤 웃기는 인간이 말하기를· 인생은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지만 멀리서 보면 희극이라고 했다
청의 상황이 딱 이러했다·
멀리서 보면야 밥상머리에서 장난을 치다 호되게 교훈을 얻은 얼간이일 뿐이었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아프고 너무 아프고 미치도록 아프다·
“그 청아는 마취가 안 들으니까· 내가 뭘 어떻게 해 줄 수가 없네···”
혀를 호되게 베였으니 본래는 환부를 꿰메어 이어야 하는데 마취가 듣지 않으니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걸 저대로 놔둬야 한다고?”
팽대산이 연신 꿀꺽꿀꺽 제 피를 삼키는 청을 보며 말했다·
당난아가 고개를 저었다·
“관운장도 마취 없이 혀를 꿰매자고 했으면 순순히 마비약 먹고 뻗었을걸···”
혀는 온갖 신경이 뻗은 급소라서 아무리 참을성이 뛰어난 인간이라 해도 제정신으로 버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시도 자체가 위험했다·
사람은 아프면 이를 악물기 때문이다·
혀를 꺼내 꿰매다 이를 악물면 혀를 붙이려다 오히려 전부 잘리는 수가 있었다·
그리하여 당난아의 처방은 간단했다·
지혈산을 입에 퍼붓는 것이었다·
어떻게 출혈만 잡아내면 혀는 또 재생이 빠른 기관이라서 금방 아물고 말 거라고·
그런데 지혈산이 굉장히 쓰고 맵다···
청은 그저 울상이었다·
“나나야···”
“응? 왜?”
“혹씨 이거 나 저넝 머글스 잉니···”
당난아가 청의 어깨를 짝 소리 나게 후려쳤다·
“아니 혀를 반 토막을 내놓고는 지금 저녁 먹을 수 있고 없고가 중요해? 아니 혀 아프지도 않아?”
“한호막가지는 아니자나···”
“헹· 당분간은 양젖에 꿀이나 타서 마셔야지· 원래 사람이 뭐 씹을 때 혀가 놀고 있는 거 아니거든?”
혀라는 것이 음식물을 씹을 때 부지런히 움직이면서 잇새로 밀어넣어주는 역할이니 지금 아예 뭘 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아 앙대···”
청의 눈에 불빛이 꺼졌다·
그야말로 절망에 빠진 자의 눈이었다·
죽은 눈이라고도 표현했다·
“그리고 당분간은 대련도 금지야·”
“왜···”
“그야 격렬한 운동 금지니까· 그러다가 다시 출혈 나면 어쩌려고? 그 좋아하는 밥 못 먹는 기간이 도로 처음부터인데?”
“앙 할깨···”
“그리고 말도 하지 마· 한마디 할 때마다 밥 먹는 시간이 일 각씩 길어지는 거야·”
그에 청이 고개를 열심히 끄덕거렸다·
당난아도 큰 깨달음이 있었다·
청은 밥으로 협박하면 말을 잘 듣는구나·
“머리로 피 쏠리지 않게 심장 아래로 내리지 말고· 잘 때도 높은 베개를 베고 위로 누워서 자· 옆으로 눕지 말고·”
끄덕끄덕·
그렇게 청이 세상 다 잃은 표정을 하고 연무장 한 구석에서 대련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그러다가 문득 생각이 들기를 무공서 상인 아저씨라면 이대로도 할 수련법을 알고 있지 않을까·
청이 혹시나 거기 있을까 싶어 욕탕 가는 길로 향했다·
혹시나 하면 역시나라더니 여전히 돗자리 깔고 누운 천유학의 모습이 보였다·
드르렁 코까지 골며 자는 것 같더라니 청이 다가가자마자 자연스럽게 눈을 뜨며 몸을 일으켜 앉는 것이다·
“뭐냐? 이제야 구배지례를 올릴 생각이 드냐?”
청이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그에 천유학이 인상을 찌푸렸다·
“뭐냐 왜 주둥이 놔두고 고개를 저어?”
“허가···”
그러자 천유학이 낄낄 웃음을 터뜨렸다·
“오냐· 밥 먹다 베인 모양이지? 원래 다 한 번씩 겪는 시련 아니냐· 나도 어지간히 찔렀지· 입술이 반토막이 난 적도 있다·”
“····”
“뭐야 왜 미리 말해주지 않았냐고? 그야 말한다고 막아 질 것 같으냐? 스스로 겪어보지 않으면 천 마디를 해도 결국 일어나게 되어있어·”
“···?”
“어떻게 표정만 보고 맞췄냐고? 이것이 연륜이다 계집아· 네 표정이 워낙에 읽기 쉬운 것도 있고·”
“····”
“그건 모르겠다· 말로 해라·”
그러자 청이 천천히 느릿하게 말했다·
“경렬하지··· 아는··· 스련···”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지 않는 수련법이 있냐고? 하 보아하니 꽤 호되게 베인 모양인데 그 꼴을 하고서도 수련을 하겠다고?”
“내·”
“음 딱 알맞은 수련이 있기는 하다만·”
그에 청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러자 천유학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내 제자도 아닌데 내가 굳이 알려줄 이유라도 있냐? 이거 웃기는 계집일세· 아니면 지금이라도 구배지례를···”
청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꾸벅 허리를 접었다· 머리가 심장 아래로 내려가지 말라고 했으니 그 각도가 깊지는 않았다·
“아주 고집이 쇠심줄이네! 아오· 그래· 자· 이거나 받아라·”
천유학이 품에서 무얼 꺼내 툭 던지는데 받아 들고 나니 자잘한 장식 하나하나 옷의 주름 하나하나까지 아주 세밀하게 깎인 불상이었다·
불교 미술에 문외한인 청이 보기에도 아주 귀해보이는 물건이었다·
“청자검 있지? 주방에서 무를 씨알이 큰 놈으로 얻어다가 그거랑 똑같이 깎아 봐·”
“····”
“이게 도움이 되느냐고? 부드러움을 익히고자 한다며? 부드러움이란 결국 세밀함과 예민함에서 오는 것이다· 이화접목이니 사량발천근이니 말은 전부 다 거창하기 이를 데 없지만 결국은 아주 미세한 오로지 딱 정해진 몇 개의 각을 파고들어 흘리고 넘기고 되돌리는 기술이 아니더냐·”
“···?”
“강함이란 그저 힘이다· 더 강한 힘으로 더 빠르고 더 세게· 물론 사람이 가진 힘이 결국 정해져 있어서 팍팍 늘거나 하지는 못하지· 그러니 가진 능력으로 더 강한 위력을 내기 위해 기술을 연마하겠지· 그래도 부드러움에 비하면 어려운 것도 아냐· 무공 중에도 부드러움을 묘리로 삼는 것들이 많지 않은 이유다·”
부드러움을 묘리로 삼은 무공들은 일단 너무 어렵고 성취가 낮으면 위력조차 거의 나오지 않아 실전성이 없는 수준이라고·
“···!”
천유학이 계속 청의 침묵을 알아들었다·
“왜· 의외로 고수 같아서 놀랐냐? 나는 그냥 사람이 가벼울 뿐이다· 애초에 고수랍시고 무게 잡는 것도 웃기지 않냐? 체면이 뭐 밥 먹여 주나·”
청이 그에 고개를 격렬하게 끄덕였다·
아주 열렬한 동의였다·
천유학이 씨익 웃었다·
어째 보면 볼수록 탐이 나는 재목이다·
“도사답지 않게 마음이 통하는구만· 본래 체면 제일 따지는 것들이 말코들 아니었나· 진짜 내 제자 안 할테냐?”
청이 다시 허리를 접었다·
천유학이 혀를 쯧쯧 찼다·
“그럼 모르는 어른 쉬는 데에 방해하지 말고 썩 꺼지거라· 지 필요할 때만 쪼르르 와서는· 에잉·”
그 말을 듣고 나니 찔리는 구석이 있는지라 청이 힘준 발음으로 감사를 표했다·
“앗· 감사합니다···”
“일 없다·”
천유학이 그리 말하고는 다시 드러누워 눈을 감아버리는 것이다·
청이 안절부절 잠시 서 있다가 코 고는 소리가 꺼지라는 뜻임을 알아듣고는 슬쩍 자리를 피했다·
그렇게 청이 주방에서 무를 한 아름 상자째로 얻어 연무장으로 돌아왔다·
“뭐야! 청아 너 먹으면 안 된다니까·”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얘는 무슨 사람을 순 처먹기만 하는 줄 아나· 게다가 굳이 먹으려면 맛난 거 먹지 생무를 씹어먹을까·
청이 인상을 한번 써 주고는 척 자리를 잡아 무를 깎기 시작했다·
그런데 음· 생각처럼 안 된다·
불상 깎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짐작은 했다·
그야 조각이라고는 해 본 적도 없고 게다가 불상의 세밀함이 보통 수준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어찌어찌 하다 보면 되지 않을까 싶었는데 개뿔이었다·
일단 도구부터가 큰 문제였다·
조각칼이 괜히 손가락 한 마디만 한 칼날에 각진 모양으로 기울기만 다르게 여럿을 쓰는 것이 아니다·
저마다 다 쓰임새가 있으니 면을 깎고 원을 깎고 세부를 조각할 때에 쓰는 칼이 다른 것이다·
게다가 세밀한 작업을 요하니 칼날이 짧게 만들어져 바투 잡도록 만들어졌다·
하지만 청자검이란 길이는 단검 중에서도 상당히 긴 편이고 날카롭기만 더럽게 날카로워 무 따위 가져다 대기만 하면 두부처럼 썰어대는 것이다·
그러니 불상은 커녕 가장 기본적인 조형조차 잡지 못하고 아까운 무만 버렸다·
“자꾸 먹는 걸로 장난을 치는군·”
청이 눈을 부라리며 말을 대신했다·
팽대산이 어깨를 으쓱하고는 제 누이와 다시 대련을 펼쳤다·
다만 청이 대련에 끼지 않으니 옆에 붙은 당난아만 아주 신이 났다·
“나도 조각 참 많이 했었는데· 손재간을 키우는데 즉효라서 암기술 수련할 때 참 도움이 되거든·”
그 말을 들으니 책 상인 아저씨의 수련법에 한층 신뢰가 가는 것도 같고·
당난아가 옆에서 표도를 꺼내 무를 깎아 그럴듯하게 흉내낸 불상을 뚝딱 깎아냈다·
물론 딱 모양과 자세만이고 천유학이 건네준 불상의 세밀함에는 전혀 미치지 못했지만·
“이것도 일단 요령이 있거든? 일단 큰 덩이로 균형을 먼저 잡아야지· 여기서부터는 머리 몸 발· 일단 조형의 균형부터 먼저 생각을 하고·”
그렇게 설명을 듣고 나니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알기는 개뿔 설명 좀 듣는다고 조각이 가능할 것 같으면 세상에 조각가 아닌 사람이 어디에 있겠나·
그래도 청은 포기하지 않았다·
청이 불굴의 사나이라기보다는 그렇다고 손 놓고 놀고 있을 수는 없으니까·
뭐라도 조금이라도 실력을 늘려야 하는 늘려야만 하는 때에 겨우 혓바닥 좀 쪼개졌다고 멈춰 설 수는 없으니까·
—-
시간을 돌려 며칠 전-
언연영은 아주 질색을 하는 표정이었다·
“어머 신파· 그 못생기고 더러운 개를 정녕 데리고 가실 생각이셔요?”
“이리 닿은 것도 인연인데 거두지 못할 이유가 또 무엇이냐·”
“견공이란 자고로 일단 들개가 되고 나면 사람을 문답니다? 가축이 아니라 들짐승이나 다름이 없어요?”
“클클 설마 이 노인네가 개한테 물릴까 걱정이냐?”
그러자 언연영이 다시 설득을 시도했다·
정말이지 오죽 싫으면 물에 물 탄듯 술에 술 탄듯 조용하던 계집이 웬일로 열변을 토했다·
“게다가 개는 냄새가 난답니다· 게다가 털이 길어 온통 휘날리는 데에다 산책을 나가면 산과 들에 온통 빈대며 벼룩이며 버러지와 오물을 다 묻히고 돌아올 텐데·”
“하· 누가 널더러 키우라더냐? 내 집에 내가 키우겠다는데 왜 엄한 계집이 질색이야?”
“어머 신파· 같이 사는 사람을 좀 배려해주셔야 하지 않으시겠어요? 저는 싫어요· 짐승은 딱 질색이란 말이어요·”
“빌붙어 사는 계집이 까탈은· 정 싫으면 독마나 검마네 가서 살면 될 것 아니냐·”
“정말 너무하시네요···· 집이 없으니 사람이 이리도 서러운 처지로구나····”
언연영이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더니 이내 눈에 흉흉하여 살기가 가득했다·
“정 그러시겠다면 별채 쪽으로는 주둥이도 내밀지 않도록 단단히 교육시키셔요· 한 발짝이라도 들어오면 도륙을 내어 육간에 던져버릴 테니까요·”
그리고 지금-
“어머 추구야! 이런 진흙밭에 굴렀나요? 안 돼· 앉아· 어여쁘게 말도 잘 듣지· 자· 씻으러 갈까요?”
추구라 하면 못생긴 개라는 뜻이니 개의 이름으로 지어주기에는 좀 심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누가 봐도 못생긴 개라서 딱 보면 알맞는 이름이라 할 것이다·
“추구라니 대복이다· 대복이란 말이다·”
“어머 신파· 누가 봐도 추구가 딱이지 않나요· 추구야 너는 어느 이름이 마음에 드니?”
컹 컹· 개가 짖으며 언연영의 발치에 엎드려 꼬리를 흔들어댔다·
“보세요 신파· 추구도 좋다잖아요·”
그에 소수마파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도륙을 내느니 어쩌느니 하던 년이 아주 제일 신이 나서 난리로구나·”
“으음·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고 말씀을 드릴까요·”
“조금 바뀌었다고 아주 낯빛을 싹 바꾸느냐· 뻔뻔하기도 하지·”
그에 언연영이 희미한 미소를 띄웠다·
“신파· 혹시 그런 경험이 없으신가요? 누군가와 함께 있어도 줄곧 외로운 정말로 뼈에 사무치도록 고독한 적이 없으세요? 세상에 혼자 덩그러니 던져진 듯한····”
“흥· 인생이 본래 혼자 사는 게지·”
“신파는 이해하지 못하실 거예요· 남들과 다르다는 게 세상에 단 혼자 외톨이라는 그 기분이 어떤지 짐작도 못하시겠지요·”
“사람이 본래 그러한 법이다· 물길은 알아도 사람 속은 모른다고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해도 어느 순간 전혀 모른다는 것을 깨닫게 되지·”
회한이 가득한 목소리였다·
그에 언연영의 미소가 짙어졌다·
“제가 드린 말씀은 마음 따위보다는 본질에 대한 것이었는데···· 어쨌든 세상에 혼자 뿐인 건 너무 가혹한 일이지 않나요? 저는 자신이 없답니다· 그래서 바꿔 보았어요· 추구야 어떠니 이제 저를 이해할 수 있겠지요?”
컹 컹·
그러자 추구가 이해한다는 듯이 짖었다·
그에 언연영의 미소가 더더욱 짙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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