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9
사실 천유학도 다 계획이 있었다·
검수 훈련법이란 신투의 유구한 전통으로 감각을 극대화하기 위한 비책이었다·
투로가 부드러워지는 것은 일종의 부작용이라고 해야 할까 예상치 못한 성과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곁다리에 불과한 것이다·
칼날이 사람의 손을 대신할 수 없으니 그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예민한 감각과 아주 미세한 힘의 조정 그리고 균형 감각이 필요한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실패하고 이게 되느냐고 막 따지면 멋진 시범을 보여주면서 무공 하나를 권유할 생각이었다·
유류연련이라 하는 신공으로 부드럽게 흐르는 연한 신체의 정련이라는 이름처럼 신체를 유연하고 부드럽게 가꿔주는 외가기공이었다·
외가기공이란 내공을 쌓는 내가기공과는 달리 신체의 발달을 꾀하는 수련으로 유명한 것으로는 소림의 대반야금강불괴신공이 있었다·
“어 음· 그 그래· 그 정도는 해야지· 음 그래도 재능이 쪼오금 있구나·”
“오· 진짜요? 저 재능 있어요?”
청이 반색하며 되물었다·
상태창의 도움 없이 재능 있다는 소리를 듣기는 또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제 저녁 식사 시작으로부터 야밤 중의 의복 난도질 그리고 다시 아침 식사로 이어지는 여덟 시진 가량의 휴식 없는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해야 하나·
새삼 뿌듯하기도 하고·
하지만 상태창이 억울할 생각이었다·
막대한 능력치를 기반으로 무식한 반복 숙달을 통해 흉내나 조금 내는 수준이었지 어떤 요령을 깨우친 것이 아니라 그냥 인간을 초월한 신체 능력으로 때우는 중이었다·
예를 들자면 달리기와 비슷했다·
재능있는 사람은 금방 최적의 자세와 호흡 등등 달리는 방법 자체를 깨달아 발전을 꾀하겠지만 청의 경우 그냥 무식한 각력으로 땅만 쭉쭉 밀어내는 꼴이었다·
그래도 기록이 같으면 보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재능이 있다고 보일 수밖에는·
“그래도 아직 모자라다· 맨손으로 하나 단검으로 하나 같은 시간이 걸려야 하는 것 아니냐· 어제 밥 먹는 데 얼마나 걸렸어? 옷 입는 데에는?”
“음· 그건 그렇긴 한데요· 금방 나아지지 않을까요?”
“그리고 나면 왼손으로도 해야 하고 또 최후에는 양손에 단검을 들고 생활해야지· 그래야만 검수 훈련의 극의를 깨달았다고 할 수 있는 거다·”
“아····”
그러다가 청이 문득 다시 묻기를-
“그런데 제가 굳이 극의를 봐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저는 부드러움이 어떤 건지만 익히면 되는데요·”
“크흠 검수 훈련의 극의를 깨닫고 나면 자연스럽게 부드러움의 극의 역시 깨치게 되어있지 않겠냐·”
“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뜨끔한 천유학이 일단 달래 보았다·
“왜 너무 힘드냐? 사실 검수 훈련은 손에 검을 쥐고 생활하는 뿐만 아니라 병행하는 수련법이 있거든? 같이 하면 수련에 훨씬 빠른 성취가 있을 테다·”
“오 그런 수련법이 있어요?”
“그래· 유류연련이라 하는 신공이지· 으음? 지금 어딜 보냐? 뭐가 있나?”
“앗· 저기 뭐가 있길래요·”
이크· 청이 급히 딴청을 부렸다·
천유학의 직업이 직업인 만큼 그 잠깐의 시선이 빗나감을 놓치지 않은 것이다·
유류연련신공· 외가기공· 금색·
확실히 이름은 신공이진 하지만 그래도 금색 아닌가?
이 아저씨는 보라색 무공도 없나?
개털 아닌가?
천유학이 알았으면 길길이 날뛸 천인공노할 생각이었다·
이것도 신공이라고! 아주 최고만 알아주는 더러운 세상! 하고·
“그럼 그 유류연련 수련법도 가르쳐 주시는 거에요?”
“물론이지· 구배지례 한 번이면-”
“죄송합니다·”
“못된 계집이 아주 칼같이 끊는구나· 다시 한 번만 생각해-”
“죄송해요·”
“씨벌! 이것도 신공이라고! 자! 봐라! 너도 검객이면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건지 알겠지!”
그리고는 천유학이 제 손을 들어 이리저리 꺾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유연하다 못해 기괴할 정도라서 뒤로 꺾으면 손등이 손목에 거의 닿을 지경이고 앞으로 꺾으면 손바닥이 손목에 거의 닿기 직전이었다·
좌우로도 직각이 넘게 꺽이니 그야말로 관절의 가동 범위 자체가 인간을 초월했다·
그런가 하면 팔을 쭉 뻗어 팔꿈치가 반대로 심하게 꺾인다는 수준으로 펼쳐지고 팔을 크게 한 바퀴 돌리니 바깥으로 조금도 새지 않아 완벽하게 일자를 이루는 것이다·
확실히 검객이라면 아니 검객 아니라도 무인이라면 눈이 돌아갈 만한 기예이기는 했다·
관절의 가동 범위가 저렇게까지 극단적으로 넓어지고 나면 할 수 있는 투로의 확장이 그야말로 수천에 가깝다고 하겠으니·
하지만 사실 청은 이러한 점에서는 무인 미달이었다· 가진 것이나 꺼내쓰지· 응용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었으니까·
“오우· 차력· 저번엔 책을 파시더니· 혹시 약도 파세요?”
“차력! 차력이라니! 누굴 싸구려 약장수로 아냐! 이걸 보고도 모르겠냐! 이런 가공할 신공을 공짜로 가르쳐 주겠다는데!”
“음· 탐이 난다고 쳐도 스승을 두 분을 모실 수는 없잖아요· 아쉽지만 다른 분께 양보해야지 어떡해요·”
“아이고! 이런 꽉 막힌 벽창호 같은 년을 보았나! 세상에 어떻게 이런 천치 같은 년이 다 있냔 말이다!”
천유학이 제 가슴을 꽝꽝 두드렸다·
청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하기로는 저러다 멍드는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주아주 격렬한 자해 수준의 타격력이었다·
“음· 그렇게 좋은 신공들을 갖고 계신데 굳이 제가 아니라도 제자 구하실 수 있지 않으세요?”
“흥! 널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세상에서 가장 귀한 원석을 보고도 굳이 다른 걸 고르는 놈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헤헤·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요···”
청이 쑥쓰러워하며 뒷통수를 긁었다·
그 모습에 천유학의 속이 더 터졌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더욱 오기가 치밀어 오르는 것이다·
처음에는 비급을 알아볼 정도로 눈썰미가 좋은 계집인 줄 알았고 다음에는 날래기가 아주 천하일절인 줄만 알았다·
그런데 검수 훈련을 시켜보니 신투에게 필요한 모든 자질을 전부 꽉꽉 채워 갖춘 최고의 인재였던 것이다·
게다가 저 의리를 보라·
제 스승에게 저리도 의리를 지켜낸다면 천유학이 거두고 나서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러니 어찌 욕심이 안 날까·
인제 와서 다른 놈을 후계자로 기른다고 해도 두고두고 생각이 나서 후회할 미래가 이미 정해진 바였다·
“흥· 두고보자꾸나·”
“안 보셔도 되는데···· 그럼 이만·”
청이 고개를 꾸벅 숙이고 물러났다·
—-
하남성 요리는 동서남북의 지방의 특색을 모두 갖춘 것이 특징이다·
달리 말하면 하남성만이 가지는 고유한 특징이 없는 짬뽕이라고도 하겠다·
그래도 굳이 채풍(요리색)을 따지자면 식사는 쌀이 주류이나 흰밥으로 먹지 않고 꼭 볶음밥으로 만들어 먹었다· 면 역시 쌀국수가 주를 이루는 편이고·
그리고 중원에서 가장 강대한 양파 사랑 정도가 되겠다·
즉 칼로 식사하기에는 좀 많이 불편했다·
볶음밥이라 하면 밥알 하나하나가 독립된 개체로 서로 붙지 않아야 명품으로 치고 양파는 얇게 채를 쳤다·
청이 칼날 위에 볶음밥을 쌓아 제 머리 위로 신중하게 옮겼다· 당연히 식탁 위에 우수수 밥알의 비가 내렸다·
그리고 고개를 치들고 혀를 쭉 빼어 입안에 털어넣으니 열을 옮겨 넷은 식탁에 떨구고 셋은 제 얼굴에 뿌리니 겨우 개중에 셋만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솔직히 팽대산이 처음에만 한 마디 했을 뿐이지 이후로 별말 하지 않았으니 수련에 매진하는 열의라기보다는 천하의 둘도 없는 미인이 보이는 추태가 제법 볼만한 구경거리라는 점이 컸다·
하지만 남궁신재까지 그러는 꼴은 도대체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도대체 밥상 두고 뭘 하는 짓인지· 남궁 형까지 도대체 왜 그러시는 겁니까?”
팽대산이 한탄했다·
남궁신재는 아예 장검을 들고 낑낑거리고 있었으니 칼날이 식탁 위를 오가는 것부터가 언짢은 일이 아닌가·
“음· 내 검우가 하는 것을 보았는데 이 수련이 확실히 효과가 있더군· 자네도 오늘 경험하지 않았나·”
“그게 저 수련 덕분이라는 보장이 없지 않습 음· 누님· 왜 도를 쥐시고· 제 아니시라고 믿겠습니다·”
“생각해보니 내가 참으로 게을렀구나 싶더라· 스스로 도려라고 칭하면서 도와 혼인했다 떠들었는데 부끄럽지 그지없구나· 음· 청아를 보니 알 것 같아· 숨 쉬는 모든 순간이 수련이어야 하는 법인데·”
팽대산의 표정이 와락 일그러졌다·
생각해 보니 팽초려 역시 제정신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제법 이름난 여인이었다·
그저 옥기린의 누이라는 점 하나 때문에 모두의 언니 취급을 받고 있을 뿐 기본적으로 도광 도치 도에 미친 수련광이었다·
“도대체 이게 무슨 꼴인지·”
팽대산이 한숨을 푹 내쉬며 큰 집게를 들어 큼직한 동파육 덩어리로 가져가는 바로 그때였다·
“얍!”
귀여운 기합성과 함께 돌연 표도 하나가 날아 동파육을 꿰뚫는 것이다·
그리고는 표도에 이어진 실을 따라 고깃 덩어리가 허공으로 붕 날더니 당난아의 앞접시에 예쁘게 착지했다·
“훗 이래서 병기를 잘 골라야 해· 이거 봐· 얼마나 편해?”
그리고 손에 쥔 것은 장침이었으니 사실 얇은 젓가락과 다름이 없는 꼴이었다·
팽대산이 당난아를 보며 생각했다·
저건 아주 하루하루 볼 때마다 점점 밉상이로군· 음? 아닌가?
팽대산이 잠깐 헷갈렸다·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났을 때도 정실이니 뭐니 아주 밉상이었으니 사람이 한결같은 밉상으로 달라진 것이 없는 것도 같고·
팽대산이 한숨을 내쉬여 다시 집게를 뻗었다·
“얍!”
그리고 또 표도가 푹·
“···무슨 짓이지?”
“청아 주려고· 청아야 이거 먹어· 수련도 좋지만 일단 사람이 먹어야지· 자자·”
그러고는 요령도 좋게 실을 휘둘러 청의 접시 위로 고깃덩이를 척 날려놓는 것이다·
“···환장하겠군·”
팽대산이 제 얼굴을 쓸어내렸다·
그리고 환장할 노릇인 사람이 한 명 더·
바로 청이었다·
청은 입안 가득히 양 볼이 미어터지도록 가득 밀어 넣고 씹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하지만 단검으로 볶음밥 부스러기만 계속 밀어넣고 있으니 울화통이 터질 수밖에는·
결국 견디다 못한 청이 소병으로 칼을 뻗었다·
이는 고로소병이라 하여 하남성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로 쌓아 올린 화덕에 붙여 굽는 것이 특징이다·
청이 소병의 아래를 칼로 찍어 살살 들어 올리고는 제 입에 앙 크게 한입 물었다·
그러고는 입술을 꿈지럭거리며 제 입 안으로 조금씩 밀어 넣는데 겉이 바삭한 것이 특징인 고로소병이 좀체 먹히려 들지 않는 것이다·
그 이후에 일어난 사고는 순전히 평소에 하던 버릇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입에 문 빵이 잇자국을 따라 찢어져 떨어지려고 하니 입안 가득 음식을 씹고자 하는 청이 저도 모르게 손으로 밀어 넣으려 했을 뿐이었다·
다만 손에 든 것이 단검이라 끝을 세워 곧게 찔러 넣었고 천하에 날카롭기로 소문이 난 명검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소병 안으로 쭈우욱 파고들었다·
쨍그랑! 단검 떨어지는 소리와 동시에-
“악!”
당황과 고통이 듬뿍 함유된 비명이었다·
순간 검 들고 낑낑거리던 한 놈 도 들고 낑낑거리던 한 여인 그리고 나머지 남녀의 시선이 청에게 향했다·
청은 손을 들어 제 입을 막은 채였는데 그 아래로 시뻘건 선혈이 줄줄 흘러내렸다·
뚝뚝이 아니라 줄줄이었다·
“청아! 왜 왜 그래!”
“허 허럴 허럴 낄럿·”
대충 혀를 찔렀다는 뜻·
얼마나 제대로 찔렀길래 출혈량이 심상치 않았다·
하지만 청이 얼굴에 부끄러운 빛이 잔뜩으로 눈을 내리깔고 들지 못하는 것이 아픔보다는 창피함이 큰 모양이었다·
그에 큰 부상은 아니구나 하고 안도한 팽대산이 그러고 나니 한숨을 참을 수가 없어 결국 크게 내뱉고 말았다·
내 이럴 줄 알았지 하고·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수능날이로군요·
우리 한민족은 수능날 꼭 어른으로서 조언을 한 마디 모두가 보는 곳에 올려야 하는 오래된 전통이 있답니다·
이는 수박도에도 나와있는 사실이지요·
그리하여 저 역시 수능을 친 어린 친구들에게 금과 같은 조언 한 마디 하겠습니다·
놀지말고 운전면허 꼭 따세요
지금은 할인까지 해 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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