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08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내가 알기로 남의 객청에 함부로 침입하는 사람이라곤 세상에 한 명밖에 없거든?”
“역시! 검화 그년이 왔다갔구나!”
“아니· 너· 너 말이야·”
그보다는 흔해 빠진 수작질이라는 말이 더 신경이 쓰이기는 했다·
뭐지? 여인네들끼리 옷을 찢어놓는 식의 수작이 흔해 빠졌다고 할 정도인가?
“내가 그랬어· 단검으로 옷을 입으려니까 잘 안 되더라·”
“왜 그런 짓을 해?”
“그러게· 왜 이런 짓을 할까····”
단검의 날카로움이 조금만 덜했더라면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청자검이라고 했던가·
이름난 명검답게 옷자락이 칼날에 걸려 아주 조금이라도 무게가 실리는 순간 아주 자연스럽게 스르륵 잘려버리는 것이다·
결국 날과 닿는 옷자락에 힘이 실리지 않는 각도를 유지하며 칼날 끝으로 살살 긁어 옷을 끌어당겨야 했다·
하지만 칼날 끝이 워낙에 날카롭다 보니 십중팔구 옷감이 꿰뚫려 칼자루까지 닿아 손등을 사르륵 훑는 것이다·
그리고 빼낼 때 칼날이 스미는 탓에 잘린 부위가 보다 넓어져 버리고·
옷 하나 버렸다는 심정으로 밤새 연습을 거듭하니 어찌어찌 지금 차려입는 데에는 성공했다·
“그런데 뭐야 내가 언제 올 줄 알고 나한테 사다 달라고·”
그러더니 당난아가 소리를 빽 질렀다·
“청아 너! 그러고 나가면 안 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살이 다 보이잖아!”
“···? 당연히 이러고 안 나가지· 도대체 날 뭐라고 생각하는 건데?”
“하지만 너 신녀문에선 홀딱 벗고 돌아다니잖아· 그 보여주는 취미 같은 게· 잘 때도 그렇고· 아! 오해하진 말구? 백합도 맨날 가슴 다 까고 돌아다니잖아? 나는 다 이해할 수 있어· 응· 보기만 좋지! 오히려 좋아! 찬성! 감사!”
“무슨 소리야? 그리고 신녀문에서 내가 언제 벗고 돌아다녔는데? 분명히 옷 입었거든? 스승님이 직접 해 주신 옷이거든?”
“응· 응· 맞아· 그래· 청아 말이 맞아· 다 맞아· 청아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이거 열받네···”
“아! 그래도 내가 금방 다녀올 테니까 그러고 나가면 안 된다?”
“야!”
당난아가 마지막까지 울화를 돋궈놓고는 쌩 달려서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삼베 마포라 하면 중원에서 가장 저렴한 옷감이다· 실이 두껍고 거친 탓에 까슬하니 살에 닿는 촉감은 좋다고 하기 힘들지만 그만큼 튼튼하고 질기다는 장점이 있었다·
참고로 삼베는 대마를 짜서 만든다·
어쨌든 삼베옷은 관리가 굉장히 힘들다·
일단 때가 끼면 빠지지 않는 데에다· 한 번 구김이 지면 접힌 쇠처럼 자국이 남아 잘 펴지지도 않았다·
그리하여 중원 사람들은 이를 극복하기 위한 지혜를 짜냈다·
관리가 힘들다고?
그럼 관리를 안 하면 되지!
때가 끼면 빠지지 않는다고?
그럼 안 빼면 되는 게 아닌가?
그래서 삼베옷이라 하면 그냥 막 입다가 해지면 버리는 보통은 작업복이었다·
빨래도 안 하고 그냥 물에 휘휘 휘저어 말려버리는 것이다·
덕분에 몇 년 입으면 시꺼멓고 여기저기 구김이 남았으니 옛날 그림에 사람들이 구질구질한 옷을 입었다면 바로 삼베옷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막 입는 마포 무복에 칼을 대는 청의 심정도 훨씬 편안해졌다·
게다가 마음은 편하고 거기에 더해 옷감 자체가 원체 튼튼하고 까슬하니 검끝에 잘 걸리는 옷이라서 단검 든 손으로 입기에도 한결 편해진 것이다·
그리하여 청이 일취월장 겨우 반 시진(한 시간) 만에 구멍 없는 옷을 차려입는 데에 성공했다·
지난밤 한숨도 자지 않고 내내 낑낑거리며 무복 한 벌을 난도질하며 겨우 두 번 입는 데에 성공했다는 전적을 생각하면 이도 굉장한 성취라고 하겠다·
청이 의기양양 거 별거 아니네! 하고 콧대를 드높이고 나니 다음으로 해야 하는 일이 아침 식사였다·
그래도 아침은 만두에 소채와 탕국이라서 좀 사정이 나았다·
만두는 단검으로 받쳐 들어 입에 물면 그만이고 소채는 저들끼리 엉켜 대충 찍어다 들면 뭉탱이로 들리는 탓이었다·
탕국이야 뭐 흐물흐물하고 무게 중심이 엉망인 고깃덩어리도 단검으로 들어올리는 판에 딱딱한 그릇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무게 때문에 팔이 덜덜 떨리겠지만 청은 그릇 아니라 요리용 대접을 손가락으로 들고 먹을 수도 있는 괴력의 소유자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애쓴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어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당난아가 결국 한 소리 하고 말았다·
“밥이라도 좀 편하게 먹으면 안 돼?”
“밥 먹고 옷 입는 거 빼면 수련밖에 안 하잖아· 그리고 힘들다고 피하면 영영 못 하는 거지· 하다 보면 익숙해질 테고·”
원래 정론에는 항변하기가 힘들다·
대신 듣는 사람은 조금 억울해진다·
예를 들자면 친구가 이딴 소리를 하는 것이다·
너 왜 책 펴놓고 졸고 있어? 어차피 밤에 자는데 성현들 말씀이라도 한 줄 읽는게 낫지 하고·
대답할 말은 없지만 짜증은 날 것이다· 지는 뭐 얼마나 책을 읽는다고 하고·
마찬가지로 당난아의 표정이 불퉁해졌다·
도대체 언제부터 수련에 그리 열심이었다고 같이 밥 먹는 그것도 아침부터 유난을 떤담·
하지만 당난아가 불만이 있다고 해서 뭘 할 수 있겠는가·
어제처럼 삐져서 돌아가 봐야 이후에 곰곰이 생각하니 공손가 계집만 이득을 볼 것 같아서 이른 아침부터 급습까지 했으니·
아침을 먹고 나선 연무장에 자리를 잡고 아는 초식들 천천히 펼쳐내며 몸을 풀었다·
턱 괴고 앉아 심심한 당난아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덤이었다·
“아 맞다· 난아 너 설이리 소저 알아?”
“응? 빙설화 말야? 알기야 다 알지· 근데 알기만 하고 친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걸· 근데 왜?”
“음? 그냥· 저번에 한 번 봤는데 미인이시더라고· 뭐랄까 눈 밑에 눈물점 찍힌 거 봤어? 되게 단아한 인상인데 거기에 점이 딱 찍혀 있으니까 와·”
“뭐야 미인을 앞에 두고 미인을 찾니? 자 이것 봐라· 이게 뭐게?”
“꽃받침이라고 하진 않으리라 믿어·”
“왜 내가 바로 독화거든? 꽃을 받쳤으니 꽃받침 맞지·”
그렇게 당난아와 시답잖은 잡담이나 나누고 있자니 으레 가장 먼저 도착하면서도 지금까지 빠지지 않고 개근한 남궁신재가 찾아왔다·
“검우? 음· 혹시 상중인가? 내 애도를 표하겠네·”
“뭐야 왜 갑자기 초상집으로 만드는데?”
“검우가 마의를 걸쳤길래 혹시나 했네· 음 그리도 곤궁한가? 검정을 나누는 사이에 뺄 것 없으니 의복 정도야-”
“돈 없어서 사 입은 거 아니거든? 어제 그 수련의 연장선이라 그래· 으음 그래도 마음은 고맙게 받을게·”
“대체 무슨 효용이 있을까 싶은 수련법이다만· 그럼 어디 한 번 효과가 있나 없나 확인이나 해 봄세·”
“좋지! 이번엔 먼저 간다!”
청이 빼지 않고 곧장 달려들었다·
어차피 목표가 부드러움을 추구하는 공격법이라서 방어만 해서야 별 도움이 되지 않으니까·
청이 안쪽으로 바짝 접은 팔을 바깥으로 뿌리며 반원을 그렸다·
그에 남궁신재의 검이 경로를 막아서니 순간 청의 손목이 슬쩍 돌아가 날이 아닌 검면이 서로 스쳤다·
동시에 청이 제 목검의 검면을 왼손으로 받쳐 쭉 밀었다·
“좋군!”
외치는 순간 바로 빈틈!
청이 눈을 번뜩이며 초식을 펼쳤다·
월녀검 이 초식 아무유사·
아이가 춤추듯이 경쾌하게·
음? 경쾌하면 안 되지 않나? 부드러워야 하는-
“억”
그 순간 전신에 힘이 쭉 빠지며 숨통이 콱 막혔다· 그리고 나니 어느새 뺨에 자글자글 연무장 고운 흙먼지가 바슬거렸다·
“허 허억 후 헙 후우· 야 허억·”
청이 필사적으로 숨을 들이켰다·
명치를 목검 끝으로 강하게 찍히면 인간 초월의 내구도고 뭐고 바닥을 굴러야 하는 법이었다·
“음 검우· 방금은 너무 부드러움에 매몰이 된 것이 아닌가 싶네· 차라리 그대로 펼쳤으면 되었을 것을 이도저도 아닌 공격이 되어버리지 않나·”
“아흐· 어째 점점· 후우우· 손속이 잔인해지지 않냐···”
“이 검우가 엄살은· 멀쩡한 거 아니 그만 드러눕고 일어나게나 검우·”
그야 뼈 상하고 근육 상해서 후유증 생기고 막 그런 건 아니긴 하지만·
청이 남궁신재가 뻗은 손을 잡아 몸을 일으켰다· 숨은 돌아왔지만 호흡이 들고 날 때마다 아주 몸통 전체가 뻐근했다·
“그래도 첫 수가 아주 좋았네· 강공에서 유함으로 이어져 밀어내는 수법은 가히 일절이라 부를 만한 거의 구명절초에 가까운 절묘한 한 수라고 하겠어·”
“음· 수련이 효과가 있나?”
“글쎄· 더 해보면 알지 않겠나· 자 검우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나? 검생은 짧으니 이 시간에도 태양이 지고 있다네·”
아침나절부터 태양이 진다는 표현은 조금 이상하지 않나 싶지만·
어쨌거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리하여 이십 전 이십 패·
이번에는 전패였다·
다만 남궁신재의 평가는 달랐다·
“확실히 그 기묘한 수련이 효과가 있는 모양이긴 하네· 나도 잘 드는 단검을 하나 구해야 아니 정도를 걷는 검객이 단검을 들 수는 없으니 장검으로 해야겠어·”
“다 졌는데?”
“그야 나 역시 이제는 검우를 더 이상 봐주기가 어려워서 그렇다네·”
“내 검력이 그만큼이나 상승했다고? 검우에 비빌 만큼?”
“그렇지는 않네· 그저 봐주지 못할 정도라고 할까· 검우의 외공이 워낙에 뛰어나니 검력은 여전히 경지에 비해 미천하지만 그렇다고 얕볼 수가 없게 되었어·”
“미천하다는 소리를 꼭 해야하냐···”
청이 툴툴거리자 남궁신재가 부드럽게 웃으며 진단을 내렸다·
“초식에 무리해서 부드러움을 섞으려고 하니 빈틈이 컸을 뿐이지 그 외에 휘두름에 유함의 이치가 이미 녹아들었다네· 어제와는 확연히 다른 태세이니 그 수련이 효과가 있었다고밖엔 할 수 없지 않겠나·”
일단 목검이 부딪치는 소리부터가 확연히 줄었으니 강함을 유함으로 흘리는 이치가 많이 손에 익었다는 뜻이라고·
이후 팽대산이 팽초려와 함께 도착해 또 청이 열심히 바닥을 굴렀다·
그래도 둘을 상대로는 승률이 쪼끔 늘었으니 확실히 수련이 효과가 있기는 있는가 싶기도 하고·
그러다가 점심 앞두고 땀과 흙을 한 번 씻어내기 위해 욕탕으로 향하는 길이었다·
“쯧쯧 아주 꼴이 추레하구나·”
“앗 아저씨· 또 오셨어요?”
어제 그 자리에 천유학이 떡하니 아예 이번엔 돗자리까지 깔아 그늘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수련을 해 보니 어떻더냐? 힘들지?”
“아유 말도 마세요· 밥 먹는데 세 시진이 걸렸다니까요·”
청이 넌더리를 내며 하소연했다·
그러자 천유학이 낄낄 체신머리없는 웃음소리를 냈다·
“본래 손가락이 하는 일이 그만큼이나 섬세한 거다· 손가락이 손마다 다섯 개가 붙어있지 않냐· 그걸 그저 날카로운 날붙이 하나로 대신하는 것이 쉽겠냐 어렵겠냐·”
“어렵겠죠···”
“마의를 보아하니 면포보다는 쉬울 것 같아서 마련한 모양인데· 옷자락 멀쩡한 꼴을 보니 결국 포기해버렸구나? 크큭 그러면 내 조금 더 요령을 붙일 방법을-”
“아닌데요· 칼로 입었는데요·”
“쓰읍· 이것아 어른 앞에서 거짓말하는거 아니다·”
“거짓말 아닌데요·”
“음? 진짜? 느이 스승 걸고 맹세할 수 있겠냐?”
“네· 다섯 벌쯤 버리긴 했는데 그래도 뭐 어찌어찌 꿰어 입었어요·”
“····”
천유학이 잠시 할 말을 잊었다·
원래 성공하라고 알려준 방법이 아니다·
애초에 날카로운 예기로 이름이 높은 귀물인 청자검을 쥐어주지 않았던가·
물론 천유학도 같은 수련으로 청자검을 들고서 온갖 일을 할 수 있기는 했다·
하지만 천유학이 스승에게 배울 때에는 처음에 날이 거의 없는 데에다 칼날도 손가락만하니 단검이라 하기 민망한 수준의 조각칼이나 들고 시작했던 것이다·
그렇게 익숙해지고 나서야 조금씩 날을 더 세우고 길이를 늘렸다·
심지어 청자검이 보통 날카롭던가·
천유학이 수련할 적에는 아직 훔치지 못한 상태였으므로 본인이 수련한 최고 단계보다도 더 난이도가 높았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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