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4
그러다 경담간이 끄흐흐 우는 것처럼도 들리는 기묘한 웃음소리를 냈다·
“그런데 아해야? 내 기이한 소리를 들었다만· 흑살마장을 썼다지? 정파의 여협이란 아해가 천하십대마공 중 하나를 익혔다? 정파 놈들도 이 사실을 아느냐?”
“이런· 들켜버렸네요· 역시 손이 까맣게 물들어버리면 숨길 수가 없죠? 자· 봐요· 이게 바로 흑살마장의 새까만 흑수랍니다·”
청이 희고 길쭉하여 아름다운 손을 쭈욱 펴 보였다·
흑살마장을 익히면 검은 살결과 더불어 나무 껍질 같은 질감으로 딱딱하고 우툴두툴하니 징그러운 흑수로 변하고 만다·
그러니 청이 예쁜 손가락을 한들한들 흔들며 보란 듯이 내보였으니 눈깔이 삐지 않았으면 이게 까맣게 보이냐는 뜻이었다·
“크흠· 도대체 요즘 것들은 기본부터가 안 되어가지고는· 차라리 소수마공을 익혔다고 할 것이지·”
경담간이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일이다·
정파의 여협이 사악한 마공을 개중에서도 강호인 모두가 알아보는 천하십대마공을 익혔다는 소리부터가 순 개소리였다·
하지만 여러 부하들이 동시에 증언하니 무시할 수 없어서 한 번 떠 보았는데 외려 무안만 잔뜩 먹었다·
“윽· 소수마공은 좀·”
찔끔한 청이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경담간은 소수마공에 대해서는 눈곱만큼도 의심하지 않는 상태였다·
그야 소수마파는 혈교의 거마이니 제자를 들였으면 경담간이 모를 리가 없으니까·
“어쨌거나 두고 보자꾸나· 네 방자한 행동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란다·”
맨날 두고보재·
청이 흥 콧방귀를 내쉬고 나서 엄살을 떨 준비를 했다·
그러나 경담간은 끄흐흑 웃음소리 흘리며 물러가 버리는 것이었다·
뭐야 싱겁게·
어차피 할 일 없는 청이 가부좌를 틀고 내공이나 빙빙 돌렸다· 그래도 심심하다고 발라당 드러눕지 않으니 이제야 좀 무림인다운 꼴이 되었다고 하겠다·
음·
수련치가 정말 쥐꼬리만큼 오르는구나·
겨우 반나절 운기조식을 해 놓고는 무슨 큰 성취를 바라는 심보부터가 글러 먹었다·
사실 청이 운기조식의 내공심법 수련에 게을렀던 이유가 있기는 했다·
소녀환희공과 빙천수라마공의 합작으로 청은 자나 깨나 먹으나 싸나 열두 시진 운기조식이 이루어지는 자동 수련 상태였다·
그러고 보니 소녀환희공도 어느새 십 성 빙천수라마공은 십일 성에 수련치가 거의 다 채워져서 얼마 안 있으면 십이성 대성 특수 능력치를 받기 직전이었다·
쫓아다닌 환희진기보다 쫓겨다닌 빙천마기가 더 열심이었던 데에다 금색과 빨간색의 수련점 요구 차이로 꽤 벌어진 모양·
혈마왕신공과 자전마공도 두 단계씩 올랐으니 부작용만 제외하면 소녀환희공이 참 큰일을 해줬다고 할 수 있겠다·
한편 떡하니 뇌옥 가운데에 앉아서 운기조식을 하는 청을 보며 주간 간수 임무를 맡은 혈교 무사는 어이가 없었다·
본래 운기조식이란 무인이 혈도에 집중해 무방비해지는 때다· 정파의 무인이 혈교의 비밀 감옥에 갇혀서는 운기조식이라니·
아무리 담대한 아니 담대하다기보다는 겁대가리가 없거나 생각이 없거나 아니면 이쪽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거나 중에 일부 혹은 전부이기 때문이리라·
어이가 없고 기가 막히고 중원을 공포에 떨게 만드는 혈교의 일원으로서 자존심도 상하는 일이었다·
사실 뇌옥의 간수 자리는 상급자들의 전유물이다·
왜냐하면 수감자들에게 직접적으로 손을 대지만 않으면 마음껏 괴롭혀도 되는 자리기 때문이었다·
아침 간수가 청의 주먹밥을 보란 듯이 짓밟은 이유가 인성이 터져서만은 아니었다·
그렇게 해도 되고 그렇게 해 왔기에·
그 외에는 말로 괴롭히거나 혹은 오줌을 싸 갈기거나 잘 때면 툭툭 건드려 방해를 하거나 등등 저마다 취향이 다 달랐다·
그렇게 수감자의 정신을 갉아먹어 병들게 만드는 것이 경담간의 의도였다·
하지만 아침에 본 광경이 워낙에 충격적이라서 굳이 건들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사실 가만히 눈을 감은 미인의 얼굴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쭉쭉 흘렀다·
시발 예쁘기는 진짜 시발 존나 예쁘네 하고 폐기하는 날만 기다리며 침만 꼴깍꼴깍 삼켜대다 보니 어느새 배가 고팠다·
간수가 제 점심 댓잎으로 싼 주먹밥을 꺼내 포장을 벗길 때였다·
청이 눈을 번쩍 떴다·
면이 쪼그라든 마름모꼴의 광채가 두 눈 가득 반짝이며 희번득하게 주먹밥에 맹렬한 시선을 쏘았다·
“저기요 무사님? 소녀의 식사는 어떻게 되는 예정인가요?”
막 대나무 잎을 다 풀어 주먹밥을 크게 베어 물려던 간수가 인상을 팍 찌푸렸다·
무슨 객잔에라도 든 줄 아나 하고·
“점심이라니?”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아무리 사람이 밉다고 해도 밥은 먹게 해줘야 하지 않겠어요?”
“멍청하긴· 우리가 정파 놈들에게 한 끼라도 줄 것 같으냐? 앞으로도 식사는 영영 없으니 그딴 병신같은 소린 하지도 마라·”
“식사가 없다니요? 그게 무슨· 분명 아침에는-”
“그건 주 선배 아니 그 간수가 사적으로 준비한 사식이다· 배가 고프거든 우리들의 자비를 구해야지· 아양을 떨든 크크크·”
원래 밥은 간수 마음대로라는 것이다·
청이 이 악의가 가득한 체계를 이해했다·
간수가 비웃음을 흘리며 말을 이었다·
“배가 고프냐? 그럼 이 어르신의 좆이라도 좀 빨아볼 테냐? 마음에 들면 주먹밥 한 개 정도는 못 줄 것도 없지·”
“하아· 사내들이란·”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사내란 본래가 슬픈 짐승이었으니 수감자에게 손만 안 대면 마음대로라는 이 체계에서 참을 수 있을 리가 없는 것이다·
비켜봐 시켜볼 게 있어 하고·
“어쩔 수 없네요· 그럼 이리로 와 주시겠어요?”
“뭐? 정말? 이렇게 쉽게?”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간수가 급히 허리춤에 손을 가져가다가 문득 청을 세로로 가르는 창살에 붙은 붉은 얼룩에 시선이 닿았다·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는 바람에 솟아오르던 흥분이 한방에 팍 식었다·
“너 개 같은 년 가까이 끌어들이려고·”
“이런· 눈치가 좋은 분이시네·”
청이 생긋 웃으며 그리 말했다·
간수가 저린 오금으로 의자에 철푸덕 엉덩이를 낙하시켰다·
“그래서 제 밥은 언제 챙겨주실 생각이신가요? 참고로 제가 식사에 대한 원한이 좀 깊답니다? 굳이 원한 살 일 만들지 말고 우리 서로 좋게좋게 넘어가도록 해요?”
죽고 싶지 않으면 밥 달라는 협박이었다·
간수 무사가 순간 진지하게 갈등했다·
사람을 철창에 둘둘 말아버리는 년이다·
고작 밥 가지고 원한을 사는 것이 진정 현명한 일인가? 그냥 원하는 대로 밥 주고 넘어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고·
그러나 그도 잠시였다·
어차피 갇힌 년이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세가 등등한 것도 얼마간이지 부대주의 수완 아래에 울며불며 자비를 구하지 않은 재료가 없었던 것이다·
특히 재료가 여인이라면 폐기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된다·
“멍청한 년· 네 처지를 알아야지· 그래 알몸으로 춤이나 좀 춰 봐라· 보기에 흡족한 꼴이면 이 정도는 줄 수 있지·”
간수가 주먹밥을 손가락 한 마디만큼 떼어내 들어 보였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나쁜 놈들이란 왜 다들 이 모양인지·
“도대체 왜 말로 하면 들어먹지를 않을까요? 평화롭게 대화로 해결을 하면 좋을 일을 굳이 사람을 번거롭게 만들고·”
“흥· 네가 번거로우면 뭘 할테냐? 철창 안에 든 년이 말이 많···”
간수가 돌연 말을 하다 말았다·
사람을 열받게 하기 위한 수작이 아니라 버들가지처럼 좌우로 쩍 벌어지는 철창을 보고 놀란 말문이 막혀버린 것이다·
철창을 무슨 가게 입구에 늘어뜨린 주렴 가르듯이 사악 벌려버린 청이었다·
본래 강철이란 당기거나 누르는 힘에는 강해도 휘는 데에는 그만큼 강하지 못한 법이었다·
그리고 청의 근력은 강철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이나 넘겼다·
청이 곧장 벌린 철창 사이로 몸을 날렸다·
간수가 급히 칼로 손을 뻗었지만 복도의 너비라고 해 봐야 얼마나 되겠는가·
순식간에 목덜미를 잡힌 무사가 숨이 콱 막혀 버둥거렸다·
그러나 그도 잠시·
뇌로 가는 혈류가 차단되고 나면 고수와 하수의 차이는 기절하기 전까지 얼마나 격렬하게 저항하는가 정도였다·
간수 무인은 해 봐야 일류 정도였으니 벽면에 박아버릴 기세로 짓누르며 목을 콱 쥐는 적에게 별다른 저항조차 하지 못했다·
마침내 간수가 축 늘어지고 말았다·
“누가 나갈 줄 몰라서 이러고 있나· 좋은 말로 하니까 사람 성질을 긁고· 하여간 꼭 매를 벌어요 매를·”
청이 툴툴거리며 한 손으로는 주먹밥을 챙겨 우물거리고 다른 손으로 간수의 머리채를 잡아 질질 끌며 감옥으로 되돌아갔다·
그리고는 간수의 상의를 벗겨 팔을 뒤로 꽁꽁 잘 묶어두고 바지도 벗겨서 입을 야무지게 잘 막아둔 후에 휜 철창으로 다가가 붙들었다·
아씨 이거 휘기는 쉬운데 펴기가 쫌·
한참이나 철창을 붙들고 낑낑거린 후에 거의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쇠창살을 복구한 청이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나니 허리에 찬 주머니에서 댓잎에 쌓인 주먹밥이 다섯 개나 더 나왔다·
하긴 겨우 주먹밥 여섯 개가 점심이면 나눠주기는 싫기는 하겠다·
청이 그리 생각하며 일단 음냠냠 점심부터 즐겼다·
그런데 왜 고명도 없이 맨밥에 소금이야? 혈교가 자금 사정이 안 좋나? 무슨 사람이 밥에다 소금간만 해서 처먹고 살아?
그래도 댓잎에 향긋하니 대나무 향이 밴 짭쪼름한 찰밥이 쫀득하니 먹을 만은 했다·
그렇게 간수가 꺼낸 한 개와 쟁여둔 다섯 개 총 여섯 개 큰 대접으로 세 그릇 분량의 밥을 호로록 처먹고 나서·
그제야 청이 간수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그러자 청의 희고 길쭉하니 우아한 손가락이 아무런 저항도 없이 스윽 파고드는 것이 아닌가·
사람의 어깨뼈가 무슨 두부라도 되는 양 아주 자연스러운 침입이었다·
순간 청의 표정이 몽롱해졌다·
와···· 진짜 너무 좋아· 미친 것 같아·
그러나 어깨가 뚫린 간수는 좋지 않았던 모양·
간수가 눈을 번쩍 뜨며 꿈틀거렸다·
“읍· 으읍·”
바지 한 벌을 통째로 써서 야무지게 입을 틀어막았으니 비명도 거의 새지 않았다·
“쉿· 조용히· 그러니 좋게 말로 했을 때 밥 주면 좋았잖아요· 왜 굳이 사람을 귀찮게 만들고 그래요?”
“으우 으으으·”
“자· 이제 입을 풀어줄 건데 소리라도 지르면 여기서 죽는 거예요? 사람들 몰려오고 나면 과연 여기까지 들어와서 너님을 구해줄까요 아니면 발이나 동동 구르면서 처참하게 죽는 꼴을 구경하고 있을까요? 알아들었으면 고개를 끄덕여 보시겠어요?”
그에 간수가 격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의 그 현장에 있었으므로 동료들을 소리쳐 불러봐야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본인이 바로 그 도움 안 되는 동료였기 때문이었다·
“음· 어쨌거나 밥은 얻어먹었으니 밥의 원한은 없는 걸로 칠게요· 하지만 사람을 귀찮게 만든 대가는 치러야겠죠? 오른팔 왼팔 모가지 중에 제일 소중한 걸로 하나만 골라요· 덜 소중한 건 뽑아버리게·”
세상 끔찍한 협박이었다·
결국 양팔을 뽑아버리겠다는 소리였으니·
“자 잘못했습니다· 용서를···”
“오· 바로 공손해지네? 말이 잘 통할 것 같아서 기뻐요· 너님이 사지 멀쩡하게 돌아가는 방법이 딱 하나 있는데· 들어볼래요?”
“네 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거짓말 안 하고 아는 걸 전부 다 말하면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아 어깨는 미안해요· 이미 건드렸으니 제외· 어쨌든 정직하게 다 말해주시면 온전히 여기서 나가실 수 있을 거랍니다?”
“전부 다라고 하시면···”
그에 청이 생긋 상큼하게 미소를 지었다·
“전부 다요· 여기는 뭔지 여러분들께선 또 어떤 분들인지 그리고 뭐 동료들 무공이나 여기서 하는 일이나 혈교에 대한 것들 등등 아시는 사항 전부 다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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