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5
“저 정말로 살려주시는지 약속을 그래 사문과 스승의 명예를 걸고 약속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하여간 이렇다니까요· 만약 거짓 없이 아는 바를 전부 다 토해놓으신다면 스승님과 신녀문의 명예를 걸고 이번에는 무사히 보내드릴게요· 이번에만요· 혹시 정보 좀 토해놓았다고 영원히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는 건 아니죠?”
청이 그리 약속하면서도 토를 달았다·
오히려 이렇게 한 마디 덧붙이는 것이 더욱 신뢰를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었다·
“아닙니다· 어 일단 저는 유숭광이고 혈교의 고목존자님 휘하 이선혈고대의 이 번대 선임무사입니다·”
“이선혈고대?”
“이선혈고는 몸통에 두 줄이 있는 고독의 이름인데 저희 부대가 다루는 고독이 바로 이선혈고라서 그렇습니다···”
간수는 성실하게 아는 바를 털어놓았다·
혈교의 편제로부터 부대 편제 그리고 그 신상과 임무에 대한 것들이 두서없이 마구 풀려나왔다·
혈고독을 다루는 부대의 특성상 무림에 잠입하여 혈고독을 먹여 요인을 확보하는 행동이 주된 목적이라고·
다만 그저 고독을 먹여놓는 것만으로는 안심할 수가 없으니 고독을 제거하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 까닭이었다·
그러니 고독을 먹이고 정신적 육체적인 고문을 통해 완전히 굴복시켜 망가뜨리는 과정이 필수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고독을 제거하더라도 이미 완전히 병들어 순순히 명령을 따르는 하수인으로 만드는 과정이었다·
“그렇게 폐기된 협조인들로 하여금 주요 인사에게 고독을 먹인다거나 아니면 정보를 빼내거나 내부의 협조를 구하는 것이-”
“잠깐·”
청이 별로 알고 싶었던 내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개중에 신경이 쓰이는 대목도 있었다·
“폐기된 협조인이라니? 폐기되면 버렸다는 말 아닌가요? 너네들끼리 쓰는 말인가요?”
“그· 대주님과 부대주님의 취향인데···”
이어지는 내용이 아주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붙잡은 포로를 무너뜨리는 과정에서 가장 마지막에 취하는 행위로 돼지나 개 아니면 거지들에게 돌렸다·
다만 그전에는 직접적으로 성적인 고문을 가해서는 안 된다· 마지막의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가장 소중한 것을 무참하게 빼앗기 위해서라는 대부와 부대주의 취향이었다·
그렇게 마지막에 폐기를 한 번 겪고 나면 사내고 여인이고 다시는 거역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청이 간단히 감상을 토했다·
“음· 다 죽이고 싶어졌는데·”
“사 살려주신다고·”
“약속은 유효해· 사문과 사부님의 명예를 걸었으니 어쩔 수 없지· 그런데 혈고독? 좀 자세히 말해줄래?”
그리고 나선 고독에 대해서 전문가에게 직접 강의를 들었다·
“그럼 아는 바는 전부 다 말했습니다·”
“음· 그런데 나한테 거짓말을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잖아· 그러니 잠깐 기다려 봐· 한놈 더 잡아다가 교차검증을 해 보게·”
“저는 전부 진실만을-”
“됐고· 나한테 거짓말 한 거 있으면 지금이 정정할 마지막 기회야· 분명 거짓 없이 다 말한다면 살려준다고 했거든? 만약에 날 속였다?”
청의 눈동자가 바짝 쪼그라들었다·
사백안이라 하는 눈동자의 좌우 위 아래로 흰자가 드러나는 아주 흉악한 모양새에 불길한 보랏빛 광채가 은은히 일렁인다·
유숭광이라 했던 혈교 무인이 그에 숨이 턱 막혀 덜덜 떨었다·
모든 흉성을 통틀어 가장 사악한 거성 천살의 외로운 별이 드러내는 본색에 압도당하고 만 것이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빌게 될 거야· 일단 피부부터 싸악 벗기고 시작해볼까· 마지막 기회· 숨기거나 거짓말한 거 없어?”
“그것이 실은···”
몇 가지 정보가 수정되었고 그리고 별 영양가 없는 정보가 더 드러났다·
필사적인 표정을 보아하니 제대로 말을 한 것도 같고·
“그러면 다 말씀을 드렸으니 이제·”
“좋아· 약속은 지켜야지·”
청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그런데 무사님의 아버지 되시는 분의 성함은 어떻게 되시나요?”
그에 무사가 침을 꿀꺽 삼켰다·
“그걸 왜 물어 보시는·”
“나한테 말 안 해줬잖아요· 분명히 아는 걸 전부 토해놓으라고 했는데· 아직도 숨긴 것들이 있었네?”
“아 아닙니다· 아버지께서는···”
그러고는 물어보지도 않은 나머지 가족 사항이 줄줄이 튀어나왔다·
“그래요? 그러면 무사님이 좋아하는 음식은 어떤 것인가요? 싫어하는 음식은? 못 드시는 음식은요?”
“갑자기 음식은 왜···”
“취미는요? 좋아하는 여인 취향은요? 친한 친구는 누가 있고 어릴 때의 부끄러운 추억은요? 분명 아는 바를 전부 말해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었나요?”
청의 눈이 가늘어졌다·
“왜 전부 말을 해주셨는데 나는 모르는 게 이렇게 많죠? 처음부터 속일 생각이었던 거죠? 세상에 날 속여? 약속대로 숨긴 게 있으니 죽어야지?”
“그게 말이 되는 소읍·”
혈교 무인의 입에 제 바지가 틀어박혔다·
화사하게 활짝 핀 청의 미소를 보며 그 역시 그제야 깨닫고 말았다·
애초에 살려줄 생각이 없었구나 하고·
아는 바를 전부 말하라는 것이 애초에 말도 안 되는 요구였으니 당연히 지킬 수가 없는 사항이었다·
“이게 위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따라갈 사람이 한둘은 아닐 거야· 그러니 혼자 당했다고 억울해 할 필요는 없어·”
전혀 위로가 안 되었는지 혈교 무인이 필사적으로 버둥거렸다·
그러다 청이 손벽을 짝 치며 다시 말했다·
“아 방음이 완벽하다고 했나? 미안· 입 막은 건 풀어줄게· 아픈 것도 서러울 텐데· 비명이라도 좀 질러야지·”
—-
[전조 (알 수 없음) 번째 위기]
[당신은 혈교의 사악한 목적을 마주했다·]
임무 수행을 위한 행동
······
···
···
“이게 다 듣고 나서 뒷북을 치네·”
내가 알아냈는데 왜 지가 알려주는 척 생색을 낸담·
청이 쯧 혀를 차고는 새로 갱신된 무공창을 치워버렸다·
그래도 뭐 즐거운 일에 겸사겸사 임무로 선업도 벌고 추가 수련점을 보상으로 받고 하면 좋은 거지 뭐·
차라리 뭘 해야 한다고 딱 시키면 놀아나는 기분이라도 들 텐데 누구 편을 들어도 나는 상관 안 하겠다는 태도는 대체 뭐야·
불성실하기 짝이 없으니 도저히 정이 안 간다니까·
그러나 불안이 도지지는 않았다·
청은 지금 그 언제보다 상쾌하고 후련한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청이 간수였으나 더는 아닌 것에서 뇌옥의 열쇠를 챙기고는 자리에서 두 번 일어났다·
두 번 일어난 이유는 일어나려다 휘청거리며 호되게 엎어져버린 통에 다시 일어나야 했기 때문이었다·
이게 피부에 피가 훅 끼치니까 음· 진짜 너무· 와 돌겠더라· 진짜·
그래도 뭐· 진짜 좋았으니까· 좋은 게 좋은 거 아닌가?
유난히 맑은 눈을 한 청이 피칠갑을 한 채로 뇌옥의 문을 열고 밖으로 향했다·
간수 역할은 하루에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한다고 했다·
온종일 수감자를 괴롭히면서 놀다가 밤에는 간이 침상 펴서 자도 되고 아니면 죄수가 못 자게 건드리며 여흥을 즐겨도 되고 어차피 건드리는 사람이 없는 아주 자유로운 임무였다·
게다가 다음 날에는 피곤하다고 온종일 쉴 수 있으므로 상급자들만이 맡을 수 있는 꿀 같은 임무라나 어쩐다나·
어째 익숙한 문화라서 부대라고 하는 것들은 어딜 가나 비슷하게 돌아가는 모양·
어차피 제 안위를 챙긴 청이라서 행동에 거칠 것이 없다·
고독은 그냥 독기 빨아먹는 자동 정화형 기생충이고 탈출이야 하려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청이었다·
걱정되는 바는 아무거나 함부로 주워먹다 고독까지 주워먹은 낭인들의 명줄 정도 뿐·
사람 갈아 넣은 사악한 환약을 두 알씩이나 먹고도 백 점 미만이었으니 살릴 수 있다면 살리는 것이 옳겠지·
누군가의 말대로 너희가 나를 가둔 것이 아니라 너희가 나와 함께 갇힌 거라고·
어느 영화에서 나왔지? 박쥐? 외계인?
정답은 둘 다 아니라 감시자지만 어차피 청은 알 수 없었다· 이제 한민족의 추억은 가물가물하니 가끔 꿈으로 보고 그런 때가 있었지 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렇게 꿈결에 고향 땅 보고 깨면 치미는 공포를 주체할 수가 없어 한동안 그저 덜덜 떨게 된다·
이러다 돌아가면 어떡하지?
이제는 자신이 현대에서 결코 적응할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으니까·
에이 씨 또 나쁜 생각·
그래도 몸과 마음이 워낙 후련한 상태라 어렵지 않게 떨쳐버릴 수 있었다·
청이 밖으로 향하는 철문을 밀어붙였다·
끼이이익 철문이 비명을 지르며 열렸다·
기름칠이라도 좀 할 것이지 시설 관리가 아주 엉망이었다·
청이 이 번 교육실에서 나와 좌우로 번호를 확인한 후에 일 번 교육실의 철문을 똑 또똑 두드렸다·
그러자 철문 아래 개구멍 같은 철판이 옆으로 밀려나며 대답 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누구야?”
동시에 청이 철문을 힘껏 밀었다·
끼익! 육중한 철문이 괴력에 못 이겨 맥없이 밀려나다가 퍽! 무언가에 부딪친 듯이 거센 저항감이 청의 손목을 때렸다·
청이 냉큼 안으로 들어가 철문을 닫고는 일단 개구멍을 발로 밀어 닫아버렸다·
이러면 완전 밀폐· 안쪽의 소리는 하나도 들리지 않는다는 고인의 유언이 있었다·
그러고 나니 아뿔싸·
일 번 교육실의 간수가 머리에 피를 줄줄 흘리는 채로 나뒹굴었다·
“아씨 죽으면 안 되는데· 아깝게·”
청이 다급히 간수의 맥을 짚었다·
청은 산 것을 해체하길 좋아할 뿐 시체를 건드리는 추잡하고 더럽고 고인 모독에 해당하는 악취미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 간수는 그저 뇌진탕 증세로 잠깐 정신줄을 놓은 모양·
청이 위아래 벗겨다가 팔 묶고 발 묶어서 도망치지 못하게만 막아 두었다·
방음이 좋아서 굳이 입을 막을 필요까진 없다는 사실을 알았으니 아는 것이 힘이다 사람이 배워야 한다는 말이 바로 이런 때를 위한 선조들의 조언이었던 것이다·
뇌옥의 열쇠를 챙긴 청이 뇌옥의 문을 열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기겁하는 소리·
“히익·”
뇌옥의 중앙 조그만한 철 상자에서 들리는 목소리였다·
청의 방에도 하나 있었는데 화장실인 줄 알았더니 고문 도구 중 하나라나·
저 작은 상자 속에 스스로 몸을 우겨넣게 하고 나올 때마다 고독이 독을 뿜게 만들어 괴롭힌다는 것이다·
청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했다·
“소저? 괜찮아요?”
“저는 소저가 아니라 가축입니다· 저는 소저가 아니라 가축입니다· 저는 소저가 아니라 가축입니다···”
음· 얘가 상태가 영 맛이 가 버렸네·
청이 머리를 긁적거렸다·
멸화 작전·
청이 알아낸 혈교의 목적이었다·
굉장히 심각할 것 같은 작전명에 비해서 그 내용은 좀 굉장히 치졸하기는 했지만·
무림대회를 망치고 정파 무림의 위신과 체면을 땅에 떨구기 위한 작전이었다·
정파 무림맹이 떡하니 자리잡은 도시에서 그것도 가장 큰 행사가 열리는 때에 가장 유명인을 잡아다가 잔인하게 망가뜨려 전시하겠다는 계획이었다·
이선혈고대의 역량으로 건드릴 수 있을 만한 유명인이라면 일단 고수는 안 된다·
애초에 화경 이상의 무인이라면 보통의 고독으로는 그냥 독기째로 태워버린다나·
고수를 제외하면 유명한 후기지수가 될 텐데 개중에서도 큰 충격을 주려니 자연히 무림오화 정파 무림 모두가 사랑하는 아름다운 꽃을 노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멸화 꽃을 멸하는 작전이다·
최초 계획은 만만한 백합이었다·
다만 윗선의 명령으로 건드리지 말라는 명령이 내려왔기에 통과·
독화는 고독이 안 통할 테니 통과·
현화는 아예 무림대회에 참가를 안 했다·
그러니 남은 목표물은 설화와 검화 둘 중 하나 혹은 둘 모두였다·
설화는 틀어박혀서 잘 나오지를 않으니 기회를 노리는 중이고 검화를 지켜보던 중 비무회에서 낭인에게 패배한 일이 창피했던 모양인지 도시 밖으로 떠나가는 것을 냉큼 잡아다가 한참 교육 중에 있다는 것이다·
“모용 소저? 저 서문청이에요·”
“저는 소저가 아니라·”
그에 머리 윗부분이 빼꼼히 솟나 싶더니 철 상자가 마구 요동치며 흔들리다가 결국 옆으로 털썩 쓰러져 버리고 말았다·
그 사이로 모용주희가 겨우 몸을 빼내며 빼냈다기보다는 철퍼덕 바닥에 쏟아져버린 꼴이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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