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37
모용주희는 내내 비명을 참고 있었다·
아니면 비명을 참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살을 헤집는 끔찍한 촉감· 간수는 연신 비명을 지르고· 귀가 먹먹하니 물 속에 든 것처럼· 자신의 비명도 함께 섞여 있었든가 아닌가 모용주희는 알 수 없었다·
사람의 해체는 더럽고 끔찍했다·
그게 그토록 미워서 죽이고 싶었던 원수라고 해도 그랬다·
그래도 다만 그저 귓가에 스며 달콤하기 그지없는 이 끔찍한 장소 온통 끔찍하고 끔찍한 세상 끔찍한 시간 끔찍한 나 끔찍한 기억 끔찍한 모든 것들 사이에서 속삭이는 깨끗한 목소리·
“정말 잘했어요· 다음은 우리 몸통을 한 번· 자· 복개해 볼까요? 여기를 이렇게-”
희고 길어 아름다운 손가락이 간수님의 간수놈의 뱃살을 슥 긋는다· 마치 날카로운 칼날이라도 달린 것처럼 피부가 부드럽게 갈라져 속을 다 드러낸다·
노랗고 뭉글한 지방질이 드러난다·
손가락이 한 번 지나가고 그제야 내부 맥동하는 장기들이 고스란히 드러났다가 곧 얕게 차오른 핏물에 잠겨 들었다·
“우웁·”
“이런· 모용 소저· 비위가 약하시네요·”
“아냐 아니에요 괜찮아· 버틸 수 있어·”
안돼 한심한 모습 보이면 안 돼·
모용주희가 필사적으로 구역질을 참았다·
서문 소저는 따뜻한 날 구하러 와줘서 내가 한심하면 버려버리고 말 거야· 다들 그랬듯이·
“징그러워 보여도 자세히 보면 참으로 불성실하게 만들어진 것이 정감이 간답니다· 오장육부라고 하지요? 오장이란·”
“읍 웨엑···”
모용주희가 결국 치밀어오르는 구역질을 참아내지 못했다· 열린 복강 안으로 든 것 없는 희멀건 위액이 쏟아진다·
그러나 산성액을 장기에 뒤집어쓴 간수가 고장이 난 것처럼 삐꺽거리는 모양새로 경련을 일으킨다·
그 서슬에 이미 뼈가 빠져 너덜거리는 팔이 제멋대로 휘둘러지다 철썩 힘없이 모용주희의 뺨을 때리는 순간-
아 안 돼···
“힛 하으···· 나는 죄송 죄송합니다· 더럽혀서 미안· 미안해···”
“이런· 괜찮아요· 괜찮아· 그래 그럴 수 있어요· 개 같은 놈들이 인간적으로 요강 하나라도 놔 줘야지·”
모용주희가 청의 허벅지 위 폭 안긴 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렸다· 안돼· 안 돼·
“괜찮아요· 그럴 수도 있어요· 모용 소저의 잘못이 아니에요· 모용 소저는 잘못이 하나도 없으니까·”
“놔! 놓으라고! 아냐· 미안해 놔 주세요· 더러워요· 나는-”
“쉿· 모용 소저는 더럽지 않아요· 소저가 제게 그랬잖아요· 더럽고 추잡한 일은 하나도 하지 않았다고· 잘 버텼다고· 훌륭해요·”
너무나 따뜻한 긍정·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그래 내가 말을 잘 들으면 이렇게 말만 잘 들으면-
“자· 슬슬 숨이 넘어가려고 해요· 우리 같이 이 버러지가 죽는 꼴을 지켜볼까요· 모용 소저를 괴롭히던 놈은 이렇게 하찮은 미물이었답니다· 두려워할 필요 없어요·”
모용주희가 죽어가는 간수를 보았다·
팔다리로는 뒤집힌 근육과 군데군데 희게 뼈를 다 드러내고 배와 가슴은 훤히 열려 드러난 채로 끄륵 끄륵 가래 끊는 소리로 간신히 숨만 붙어있는·
“자· 저기· 눈을 보세요· 필사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이잖아요· 재미있죠? 저리 나쁜 놈이 제 죽음 앞에서 도와달라고 비굴하고 간절하게 바라보는 게·”
“흐읍···!”
모용주희가 그 필사적인 핏발 선 눈으로 살려달라 외치는 시선에 필사적으로 비명을 삼킬 뿐이었다·
—-
먼 과거 청의 교양 심리학 학점은 최고점이었다·
청이 의욕적이면서도 학구열이 높고 또한 이해력이 뛰어난 학생이라고는 절대로 말할 수 없었으니 악명 높은 지루함에 출석이 오 할 자지 않는 태도가 오 할로 수강신청 망한 자들의 무덤에서 그저 깨어있는 데에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교양 심리학 강사가 지금의 청을 보았다면 두고두고 후회하며 땅을 쳤을 것이다·
내담자와의 상담이란 무조건적인 수용과 긍정 공감으로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하는 행위다·
개중 가장 큰 금기는 대안을 제시하는 일이다· 그게 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상처를 받지도 않았을 테니까·
청이 헷갈려서 정반대로 했다·
청 나름대로 마음을 써준 일이기는 했다·
복수는 원래 맥이 빠지면 허무해지고 또 그러면 삶이 허망해지고 그런 거 아닌가?
쉽게 죽이기보다는 고통스러워하는 꼴을 보면서 최대한 위로를 받아야지 하고·
사람은 본래 제 생각이 으레 보편적이라 착각하는 면모가 있었으므로 천살고성의 흉험한 해부학이 모용주희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 여겼다·
“모용 소저 이제 괜찮죠?”
하지만 과격한 해부학으로 마음의 치유가 될 것 같았으면 모용주희도 천살까지는 아니더라도 지살성이나 지흉성 같은 흉흉한 악성을 타고났어야 할 것이다·
차라리 청이 그래도 원수를 교살하도록 내어뒀으면 후련할 수 있었겠지만 나름의 친절을 발휘한 것이 모용주희에게는 결국 버텨야 할 또 다른 고문이었다·
“네 응 나 저 잘했죠? 네가 서문 소저가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요· 안 버릴 거죠? 버리고 가는 거 아니지?”
“버리다니· 그런 소리 하지 말아요· 물론 모용 소저가 좀 밉상이긴 했는데-”
“내가 잘못했어요· 미안해요· 죄송합니다· 죄송해요· 미안해요· 내가 다 잘못해서 내가? 아니 네가! 다 너 때문이잖아! 너만! 너만 아니었으면! 너 때문이라고! 책임져! 당연히 책임져야 할 거 아냐!”
이런· 청이 아뿔싸 싶었다·
얘가 아직 정신을 덜 차렸구나·
농담도 못 하겠네·
아니 이래버리면 내가 뭐가 돼?
청이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그에 모용주희가 소스라쳤다·
그리고는 무릎팍이 까질 기세로 기어와 또다시 다리를 붙드는 것이었다·
“아냐 아니에요· 진심이 아니라· 버리지 말아요? 네? 이젠 서문 소저밖에 없어요· 나 시키는 대로 다 했잖아요· 앞으로도 말 잘 들을게요· 내가 뭘 뭘 하면 그래 저거 망가뜨리는 거 좋아하시는 거죠? 내가 머리라도 부술까요? 아니면 눈알이라도 빼면 내 말 믿어줄 거에요?”
“시체를 가지고 장난치는 거 아니에요·”
“앗· 그럼 그럼 내가 뭘 해야 말만 하면 내가 다 할 테니까···”
청이 모용주희를 다시 꼭 끌어안았다·
“미안해요· 농담이었어요· 버리고 가는 일은 절대로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고· 자· 뚜욱·”
“네· 네· 네·”
청이 다시 한숨을 내쉬려다 꾹 참았다·
하긴 지금이야 놓고 갈까 얼마나 두려운 마음이 들겠는가 싶기도 하고·
“음· 일단 지상으로 돌아가야 할 텐데· 모용 소저 잠시만 여기서 기다려 줄래요? 나가는 길에 혈교 놈들 좀 정리해야-”
“같이 같이 가요! 놓고 가면 안 돼!”
“놈들이 혈고를 부리면 또 아프실 텐데· 아픈 건 싫잖아요· 잠깐만 기다리고 있으면 제가 금방 가는 길을 정리해서-”
“괜찮아! 괜찮으니까 같이 가요· 아픈 거 참을 수 있어요· 참을 테니까 놓고 가지마 혼자 두지 말고···”
청이 머리를 북북 긁었다·
얘가 왜 이리 귀찮게 굴지·
“고독이 뿜는 독은 아프긴 해도 목숨에 지장이 가는 건 아니긴 한데 정말 버틸 수 있겠어요?”
“네! 버틸 수 있어요· 그러니까-”
“자· 일어나요· 일단 나가서 얘기해요·”
그에 모용주희가 청의 손을 잡고 비틀비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파들파들 떨리는 발걸음으로 두 발짝쯤 떼다 휘청이며 몸이 쏠리니 청이 급히 넘어지는 모용주희를 받아들었다·
“모용 소저? 발이 개 같은 새끼들 사람 발톱을-”
“괜찮아요· 나 걸을 수 있어· 좀 아파서·”
“발톱이 다 빠졌는데 어떻게 걸어다녀요? 안 되겠다·”
“아니야 걸을 수 있어요· 걸을 수 있어!”
“진정하고· 그래요 모용 소저는 걸을 수 있겠지만 그럼 너무 아프잖아요· 업어줄 테니까요· 자·”
결국 청이 모용주희를 등짝에 붙인 채로 간수의 상하의로 단단히 묶었다·
음· 이거 전세계가 놀라고 경의를 표한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민족의 발명품 포대기·
왜 또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네·
—-
듣기로는 대주는 어젯밤부터 안 보이고 부대주는 아침 사건 이후로 할 일 있다며 나가버렸다고 했으니 모용주희를 빼돌리기에는 아주 적기라고 하겠다·
청이 지하의 길을 대충 듣기는 했지만 말로 들은 설명으로 길을 찾기는 영 쉽지 않았다·
그래도 청은 딱히 걱정하지는 않았으니 내가 모르면 아는 사람을 찾으면 되기 때문이었다· 똑똑한 사람은 원래 남을 부리는 법이라고·
그렇게 천천히 집중하여 인기척을 찾아 설렁설렁 거닐고 있다가 마침내 목표물을 찾아낸 것이다·
“누 누구냐! 여기 읍·”
청이 발을 구르자 새까만 그림자가 출렁이고는 가공할 속도로 쏘아져나가 혈교 무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다만 고독은 말로 부리는 것이 아니다·
명치께가 화하니 화끈하게 타오르는 것이 이러면-
“아윽···!”
귓가에 고통스러운 신음과 함께 갑자기 청의 머리에도 불꽃이 확 튀었다·
사람의 고통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수준을 넘어가게 되면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잡아채고 온 힘을 다해 힘껏 쥐어짜 터뜨리려 드는 것이다·
그것도 손아귀의 인대가 상할 정도로·
평소 뇌가 부상을 방지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제한하는 상한선을 무시하는 괴력이었다·
모용주희는 청에게 업혀있었으니 하필 큼지막한 손잡이가 딱 쥐기 좋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억·”
청의 머리가 새하얗게 물들었다·
유류연련 수련과 맞먹는 격통이었다·
여류 무인에겐 사내보다 더 많은 급소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에 청 역시 자연스레 손아귀에 힘을 주었으니 청이 혈교 무인의 하관을 턱 붙잡아 소리를 막고 있던 도중이었다·
결국 혈교 무사의 위턱과 아래턱이 으스러져 박살나 순식간에 숨통이 끊어졌다·
그리고 청도 쓰러졌다·
모용주희는 무인이고 하필이면 쌍검을 쓰는 무인이었다· 각각에 쥔 한 손으로만 검을 다루기에 손아귀 힘이 보통의 검객과 도객보다도 훨씬 강력한 것이다·
그 강대한 손아귀의 힘이 평소의 출력을 초월한 괴력으로 청의 급소를 쥐어짜는 중이었다·
청은 놓으라는 소리조차 못하고 쓰러져 꿈틀거렸다·
혈교 무사는 죽었지만 고독은 아직 살아 자극 신호를 계속 보내왔으니 결국 숙주의 죽음을 깨닫고 진정하기까지 약 일각이나 이어진 끔찍한 고통이었다·
이것이 바로 업보라는 것이다·
모용주희에게 끔찍한 강제 살육 체험을 하게 강요한 죄를 돌려받았다고 하겠다·
“미안해요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버리지 말고 미안해요· 그러려던 게 아니었는데· 정말로 죄송해요· 정말로 제가 그러려던 게 아니라 저를 때리셔도 아! 서문 소저 손톱 빼는 거 좋아하시죠? 서문 소저가 원하신다면 저는 열 개나 있으니까···”
이러니 화를 낼 수도 없고·
청이 슬쩍 제 앞섭을 들춰보았다·
뜯겨나가진 않은 것 같은데· 혹시 터진 거 아냐?
계속 욱씬거리는 게 너무 아파· 이거 괜찮나? 좀 너무 아픈데····
“하아· 괜찮아요· 그리고 손톱 빼는 걸 좋아한다니 누가 그런 끔찍한 모함을 해요? 물론 좋아하긴 하지만· 그래도·”
청이 혈교 무사의 소매를 북북 뜯어 모용주희의 손에 뭉치로 쥐여주는 것으로 재발을 방지했다·
한 번의 시행착오 덕분에 두 번째 시도는 성공할 수 있었다·
혈교 무사가 고독을 부리다 배에 구멍이 뚫리는 기생충 제거 시술을 받은 후 감동하여 친절한 길잡이로 직업을 바꾸는 실시간 전직의 현장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리로 나가시면 서북로 구석입니다· 저 그러면 이제 약속대로···”
“약속은 지켜야지· 근데 모용 소저랑은 약속 안 했잖아요? 모용 소저? 부탁 좀·”
그에 모용주희가 양팔을 뻗어 혈교 무사의 머리를 그대로 꺾어버렸다·
목이 구십 도 넘게 돌아간 혈교 무인을 내버려 둔 채로 청이 계단을 착착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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