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
아청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청의 모자란 상식 속에서도 무공을 배우려면 제자가 되어야 하고 제자가 되려면 문파에 가입을 해야 한다는 사실 정도는 알았다·
사실 처음에는 몰랐다·
출도 초기에 무공 좀 다양하게 배워볼까 기웃거리다가 알았다·
“신녀문에 안 들어가도 돼요?”
“내 솔직히 말해주마· 이제 스물도 안 된 아가가 절정 후기에 들었으니 그 재능이 무척이나 탐이 나는구나· 강호의 스승 치고 그렇지 않은 자가 없을 것이야·”
아청이 놀랐다·
“제가 그렇게 어려요?”
“아가?”
“이게 소녀스러운 몸매는 아닌데····”
어차피 얼굴은 용모 점수 최하점이었고·
“아가· 혹여· 나이를 모르느냐?”
“아마도요·”
“아청이란 이름도 아가가 지었고?”
“네·”
정확히는 컨트롤 CV· 잘라다가 붙여넣었다·
그래야 보라색 무공을 준다고 했으니까·
“본래 성씨는?”
“그것도 모르는데···”
서문수린의 표정이 안타까움으로 물들었다·
저기 하북 사는 누구와 같은 오해였다·
팽모씨가 멍청한 게 아니라 이 시대의 생각 좀 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같은 결론에 닿게 된다·
“아이고 아가· 어찌 그 어려움 속에 이리도 잘 자랐을꼬· 장하다 장해· 참으로 어여쁘다·”
대답이 궁해진 아청이 그냥 헤헤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그래 그래도 스승 복은 있었던 모양이구나·”
“스승이요?”
“···스승도 없느냐? 그럼 아가의 무공은 어디서 배웠느냐?”
“그냥 어쩌다가 알게 되어서····”
“독학이라고?”
“그렇겠죠?”
아청이 의문문으로 답했다·
온전한 방법으로 배운 무공이 아니었다·
서문수린의 표정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정순하고 도도한 흐름은 분명 정통한 도가의 정맥이었다· 그것도 신공이라 하기에 모자라지 않은 고절한 내공이 아니냐· 기연 중의 기연이라 혹여 그 기공의 이름이 무엇이더냐?”
“월녀심결이요·”
서문수린이 무릎을 탁 쳤다·
“오호라! 그래서 아가가 아청이로구나· 정말 놀라운 일이다! 전설에나 나오는 줄 알았던 신공이 존재하고 그 주인이 여기에 있었어· 과연 강호 천지가 광대하니 사람이 모르는 바가 이리도 많은 것이로다! 그런데·”
꽁! 아청의 정수리에 꿀밤이 날아들었다·
피하고 자시고 빛의 속도로 날아든 꿀밤이었다·
골이 흔들릴 정도의 충격·
그야말로 대륙간탄도탄으로 쏜 핵꿀밤이었다·
순식간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아청을 바라보며 서문수린이 엄하게 말했다·
“묻는다고 또 선선히 답하느냐? 모자라고 얼빠지고 아둔하고 멍청한 년아· 아가의 무공을 알면 온 세상이 욕심을 내어 쫓아다닐 것이거늘· 아주 지금까지 살아있는 꼴이 용하구나· 쯧쯧·”
“오우·”
또 귀한 지식을 얻었다·
상식 자판기 같은 사모님이었다·
툭 치면 중요한 지식이 막 쏟아졌다·
“오우? 그 막돼먹은 입버릇은! 도대체 그게 아가의 입에서 나올 소리란 말이더냐?”
“그게 입에 붙어서···”
“그래· 아가라면 그럴 수는 있겠구나·”
뭐가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아청이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하아· 그야말로 물가에 내어놓은 아가로구나· 이대로 속세에 나아가면 아가 명줄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 뻔하니·”
“제가요?”
“당장 신창양가와 척을 지지 않았더냐· 분명 그 옆에 새까만 놈은 살막의 살수가 틀림없으렷다·”
아청은 아무것도 몰랐다·
멀뚱멀뚱 바라보는 표정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서문수린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하아· 이 모자란 것이·”
말은 좀 험해도 속에 깃든 염려는 알았다·
아청이 그저 멋쩍은 미소만 지어 보였다·
“그런데 그 아가 소림의 대환단을 먹었더구나·”
“대환단이요?”
아청이 되물었다·
그게 뭔지 전혀 몰라요 하는 반응이었다·
서문수린이 허허 웃었다·
“대환단은 천하 영약 중 제일로 치는 소림의 영약이란다· 천금을 주어도 살 수 없다고들 하지·”
“아····”
양소월이 사기를 쳐 금액을 끌어당긴 이유였다·
“하아· 소월이 그 년이·”
“어 장명이네 어머님을 아세요?”
“그럼 모르겠느냐 한때는 식구였던 아이를·”
신녀문은 여인들의 문파다·
그리고 신녀문도는 혼인을 해서는 안 된다·
다만 사람의 본성이 제 아이를 보고 싶어하는 것이어서 대신 여아를 양녀로 들여 키울 수는 있다·
“그럼 설마 장명이가···”
“아니· 아가는 그년 딸이 맞아· 그년은 사내랑 눈 맞아서 도망쳤으니·”
“아·”
그렇다고 신녀문이 무조건 결혼 안돼 결혼 멈춰를 외치는 극단적 여성주의 집단은 아니다·
사내와 정분이 나서 혼인을 하고 싶어졌다?
신녀문에게서 받은 것을 내려놓고 떠나면 그만이었다· 즉 단전 깨고 나가면 된다·
서문수린이 인상을 구겼다·
“욕심만 가득한 년이었지·”
양소월은 그게 싫어서 도망을 쳤다·
그냥 도망만 친 것이 아니었다·
지참금으로 신녀문의 창고를 탈탈 털었다·
그것도 아주 작정을 하고 털었다·
값나가는 물건들만 골라 아주 몽땅 털어갔다·
진장명이 기억하는 과거가 유복했던 이유였다·
아청은 어이가 없었다·
아니 그 아줌마· 그렇게 안 봤는데·
“그때 세상 끝까지라도 쫓아가 요절을 내 놓았어야 했단다· 손에 쥔 것도 놓지 못하고· 끝내는 제 사문까지 등쳐먹는 막돼먹은 년이 살아봐야 얼마나 잘 살겠냐고 넘어가지 말았어야 했어·”
그게 화근이었다·
순음지혈을 타고난 아이는 스물이 되기 전에 죽고 만다·
지독한 저주의 천형이었다·
다만 무인에게 그 저주는 최고의 축복이 될 수도 있었다·
천하의 고수가 될 수 있는 최고의 자질이라서·
순음지혈을 타고난 아이는 충분히 천하에 이름을 떨치는 고수가 될 수 있었다·
문제는 순음지혈을 타고나면 무공을 익히기가 불가능에 가깝다는 점이었다·
몸은 연약하고 기운만 드세서 단전을 형성하는 가장 입문의 단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다·
“그러면요?”
“고수의 도움을 받아야 한단다· 최소한 화경에 든 진짜 고수의 도움이 말이다·”
화경에 든 고수는 격체전력을 통해 강제로 기를 주입하여 억지로 단전을 만들어 줄 수 있었다·
다만 격체전력이란 고수의 수십 년 내공을 대가로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년이 제 딸을 데리고 올 수가 있었겠느냐· 사문의 법도를 어기다 못해 재물을 훔쳐 달아난 년이·”
그래서 대환단을 구해 먹였다·
대환단의 약성으로 내기를 대신할 수 있으면 고수가 손해를 볼 필요가 없다·
곧장 약성을 이끌어 단전을 이뤄줄 수 있다·
“아마 제 목숨을 내놓을 각오는 했을 것이야· 대신 제 아이라도 살려달라고· 이미 영약을 먹은 아이니 그저 쉬이 이끌어라도 주시라고·”
“아···”
“빌어먹을 년! 사문을 등졌으니 이 대모가 어느 성취를 이뤘는지 알 리가 있나! 하!”
대모는 이미 십 년 전에 대공을 이뤘다·
넘치고 흘러 몸을 망치는 순음의 기운을 붙들어 단전을 만들어 줄 수 있는 경지에 있었다·
애초에 격체전력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데려오기만 했어도 대모는 진장명을 살려주었을 것이다·
“애초에 없어도 그만이었던 것을·”
애초에 진장명의 체질을 알고 곧장 데려왔다면·
아무리 그 죄과가 괘씸하다 해도 대모가 직접 살린 아이의 어미를 차마 죽이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 아비가 목숨을 잃을 일도 없었을 테고·
신창양가의 가주는 결국 식인마군과 싸워 부상을 입겠지만 아이는 이미 신녀문에 적을 둔 이후가 될 테고·
그러면 오래도록 왜적에 맞서 동해를 지켜왔던 위대한 가문이 사기를 당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업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악업이 수많은 이들을 슬픔의 구렁텅이로 쳐넣었으니 곧 악업의 사악함이 이와 같은 것이다·”
서문수린이 엄히 당부했다·
“그러니 아가 역시 이를 꼭 명심하려무나· 더군다나 가장 흉험한 별을 지닌 아가는 더욱이·”
—-
아청은 무협을 몰랐다·
그래서 중원에서 스승과 제자가 어떠한 관계인지도 잘 몰랐다·
중원에서 스승이란 곧 사부다·
곧 스승은 어버이와 동격인 것이다·
그러나 선생과 스승을 구분하지 않는 현대 한국인에게 사제 관계란 너무나 가벼운 것이다·
아청이 크게 생각하지 않고 제자 할래요 하고 넘어가버린 이유에는 이런 인식이 가장 컸다·
게다가 은근히 온정이 고픈 아청이었다·
할머니 기운을 풀풀 날리는 서문수린에게 홀라당 넘어가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었고·
그렇게 아청은 서문수린에게 큰절을 올렸다·
그래서·
“이대로 강호에 나갔다간 제자 목숨이 위태로워 금방 끊어지고 말겠구나· 그러니 일단은 네 정체를 감추는 것이 우선이다·”
“정체를 감춰요?”
“그래· 이미 제자의 얼굴이 팔리지 않았느냐· 특히 초절정 고수와도 악연을 쌓았으니 제자 역시 같은 경지에 올라야 삶을 도모해 볼 것이 아니겠느냐· 그때까지는 정체를 숨기는 것이 현명하겠지·”
“아·”
그런 쪽으로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냥 만만하면 싸우고 아니면 튀어야지 정도·
아청이 신법에 자신이 있기도 했다·
“그러니 이제부터는 서문청이라 하자꾸나·”
“문청· 그럼 이제부터는 문청으로 할게요· 성은 스승님이랑 같은 거죠?”
어차피 문청이나 아청이나 거기서 거기다·
성씨까지 주는 건 좀 부담스럽지만 강호에서 다들 성씨로 부르는 것 같은데 혼자 이름 쓰기가 좀 이상한 것 같기도 했으니 뭐·
그럼 이제 서씨인가?
생각해보니 원래 내 성을 그냥 썼어도·
따악!
“악!”
끔찍한 고통에 아청이 비명을 질렀다·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어쩔 수 없는 비명이었다·
핵꿀밤을 능가하는 수소핵꿀밤이었다·
아니 무슨 꿀밤이!
이거 머리 쪼개진 거 아닌가? 피나는 거 아냐?
아청이 머리를 문지르면서 중간중간 자신의 손끝을 확인했다·
그래도 피는 안 나네· 피나는 줄 알았는데·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재 날이 만이 서늘해졋내요·
가스 빠진 에어컨으로 고생하는 날도 얼마 남지 안은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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