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6
청이 바닥을 긁듯이 쭉 뻗어나갔다·
덕분에 월봉의 시야에선 일순간 신형이 아래로 훅 꺼지더니 돌연 지척에서 솟아나는 것만 같았다·
그에 월봉이 천근추의 수법으로 두 발을 대지에 딛고 두 팔뚝을 딱 붙여 철벽처럼 세웠다·
그리고는 톡·
잔뜩 내기를 집중한 팔뚝에 닿는 검격이 새털같이 가볍다· 명백히 공격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으므로 월봉이 슬그머니 팔을 내렸다·
그러자 가만히 검을 들고 선 청의 모습이 보였다·
“시주 무슨 일입니까·”
“방금 검격을 맨팔로 막으시려고 하지 않으셨나요?”
“그렇습니다·”
당당한 대답에 청의 말문이 막혔다·
그게 말이 되나?
검을 휘두르는데 팔뚝 두 개 세워서 막겠다는 게 아무리 비무라고 해도 그렇지·
날을 뭉툭하게 죽여놓은 비무용 검에는 검기를 씌워도 칼날이 서지 않는다·
검기 좀 씌운다고 해서 갑자기 없던 칼날이 생길 것 같으면 세상에 누가 검을 들고 다니겠는가·
얇은 철봉이나 들고 다니다가 먼 미래 우주 세기에나 나올만한 초고열 칼날이나 뿜지·
청이 사회자 겸 심판에게 시선을 돌렸다·
이게 지금 말이 되느냐는 소리였다·
심판 역시 표정이 미묘해졌다·
“크흠 월봉 자네· 만약 검기를 두른 칼날이었다고 해도 맨손으로 막을 수 있었겠는가?”
“소승은 금강불괴신공을 공부하였으니 이미 검기로는 상하지 않는 육신을 이루었습니다·”
“금강불괴신공!”
“시주께서 원하신다면 진검을 쓰셔도 좋습니다·”
심판이 청을 보았다·
“소저는 어찌하겠나? 법사가 이리 자신하니 혹여 진검을 쓰겠는가?”
어차피 면사 너머라서 청이 미간에 주름을 팍 잡았다·
이미 비무를 시작해 놓고는 이제야 진검을 가져오기도 구차할뿐더러 진검을 쓴들 마음 편히 공격할 수가 있을까· 그러다가 베이면 비무회에 피를 볼 뿐이었다·
게다가 맨몸 대 진검의 승부로 이겨봐야 나중에 뒷말이 나올 것이 뻔하지 않겠는가·
정파 무림의 태두泰斗니 정기니 어쩌니 하더니만 어째 저 유리한 대로만 치졸하게 구는 거 아닌가 하고·
한 합 부딪치나 싶더니만 대전자 둘이 멀뚱히 서서 대화나 나누고 있으니 수근수근 비무장에 웅성거림이 커졌다·
청이 그에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요· 그럼 다시 가겠습니다·”
그리하여 다시 비무 재개·
청이 일단은 검기를 살짝만 둘러 정말로 괜찮은 건가 하고 간을 보았다· 부드럽게 뻗어나간 검격은 유의 묘리보다는 힘 빼고 살살 휘두르기 때문이었다·
그에 월봉이 직각으로 세운 팔뚝을 가볍게 들어 올려 응수했다·
퍽· 손아귀로 전해지는 충격이 단단하기 그지없는 것이다· 무슨 바윗덩이를 후려친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청이 살살 공세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월봉이 그에 맞춰 척척 검격을 막아낸다· 벨 테면 베어 보라는 양 일부러 흘릴 만한 궤적조차 팔으로 막아내는 기예였다·
청의 검기가 점점 짙어지며 가닥다각 다발로 얽힌 검사를 뽑아내고 나서야 비로소 어떤 확신이 드는 것이다·
음· 확실히 진검이라도 막긴 하겠는데·
하지만 여전히 애매하기는 마찬가지다·
목을 베면 베이나? 아니면 다른 급소는? 배는 어떻지? 명치를 찌르면? 아니 뭐가 이런 식인데·
그러나 월봉은 충분히 방어력 시연을 보였다고 생각한 모양· 그제야 소림권 절예의 초식을 펼쳐내니 육중한 껍질을 두른 맹수가 돌격하는 기세였다·
그나마 눈에 익은 것들이라 다행이었다·
쭉 뻗는 정권은 칠성권의 북두직렬이다· 가볍게 몸을 비틀고 나니 척 직각으로 접은 팔이 돌아가며 손등이 청의 얼굴을 향했다·
청이 상체를 젖혀내니 주먹 쥔 손등이 청의 턱 앞에서 멈춰 면사를 흔든다· 사람의 팔꿈치가 많이 돌아봐야 이 정도라서·
가벼운 연환을 흘려내고 나서는 다시 청의 차례다· 청이 완전히 모로 선 월봉의 발등을 밟고 남은 발등으로 오금을 밀었다·
뭐야 왜 안 밀려·
그러나 선상비무대에 굳건히 선 다리가 꺾이지 않으니 오히려 청의 균형이 흔들려 몸통이 넘어간다·
한 팔로 땅을 짚어 크게 두 바퀴 제비를 돌고 나니 어느새 바짝 파고든 월봉이 말을 탄 동작을 하고 양 주먹을 허리 양옆에 딱 장전해 놓았다·
앞? 뒤? 고민할 시간이 없다· 월봉의 허벅지가 두 배는 부푸는 것만 같다· 꽝! 청이 지면을 짓밟아 몸을 띄웠다·
동시에 월봉의 쌍권이 쭉 뻗는다· 대지에 디딘 발로부터 몸통을 쭉 펴며 뻗어내는 두 팔· 거력을 담은 쌍권이 솟구치는 청의 발 아래를 아슬아슬하게 스친다·
퍽! 청의 무릎이 월봉의 이마를 찍었다·
내 무릎! 무릎 관절이 삐꺽이는 통에 청이 비명을 삼키며 한 팔로 월봉의 까슬한 머리를 짚어 물구나무를 섰다·
도대체 얼마나 단단한 건데?
그냥 지나가기 뭐하니 손에 쥔 손잡이 끝으로 파르스름한 민머리를 후려치고는 그 반동으로 휙 날아 대지에 착지했다·
월봉이 살짝 비틀거렸지만 그뿐이었다·
청이 아쉬움에 입맛을 다셨다· 더 세게 쳤어야 하는데·
혹여 스님 머리통을 깨뜨리는 것이 아닌가 하여 손속에 여유를 두었더니 별 타격을 받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만 귓가가 슬쩍 붉어지는 것이 아마도 머리에 피가 몰리는 모양· 음· 빡쳤나?
“합!”
월봉이 다시 저돌적으로 달려들었다·
청이 큰 보폭으로 물러나며 연속으로 검격을 펼쳤다· 빡! 빡! 빡! 빡! 뒷걸음질을 치는 통에 힘이 제대로 실리지 못한 칼질이라고는 하나 주먹과 팔로 후려치며 맹렬히 돌진하니 굉장히 당황스럽다·
본래 병장기의 목적이 상대의 몸에 닿는 것이다· 사람의 피륙이 병기를 당해낼 수가 없으니 둘이 닿는 순간에 찌르건 베건 자르건 극적인 합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소림의 무승은 그 기본을 철저히 부정하는 꼴이었다·
그러고 나니 청도 감탄을 할 수밖에는·
어떻게 무기도 안 쓰는 소림의 스님들이 천하제일의 무인들로 꼽히나 했더니· 아니 칼을 손으로 막는 게 어디 있어·
음· 혹시 스님도 소수마공을 아세요?
합리적 의심을 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단단함으로 따지면 금강불괴신공은 아예 그러한 목적의 외공이고 소수마공은 겸사겸사 얻어진 덤이었으니 어느 쪽이 강력한지는 굳이 대 볼 필요가 없다·
소림의 칠십이 절기 팔과 주먹과 손등 관수와 손날 거기에 발차기로까지 이어지는 무제한 연환기가 터져나왔다·
맨손으로 칼을 쳐내니 공격과 수비가 하나도 청이 그저 물러나며 검을 뿌리는 외에 달리 대처가 없었다·
순식간에 십여 합이 흐르고 청의 뒷걸음질도 서른 걸음이 넘었다·
하지만 뒤로 걷는 사람이 제아무리 날래다고 한들 앞으로 걷는 이보다 빠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심지어 소림의 보법이란 우직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그 맹돌에 있는 것이니 점차 그 거리가 좁혀지다가 어느 순간 쩍 벌어지는 가랑이에 한 발짝 앞에까지 앞발을 턱 디디는 것이다·
아· 큰 거 오겠는데· 청이 직감했다·
과연 그대로 뻗은 손바닥은 청의 눈을 향하고 뒤로 바짝 감긴 주먹이 부웅 살벌한 소리와 함께 뻗어나가니 청의 복부를 꿰뚫고 등 뒤로 빠져나왔다·
비무회에서 유혈이 낭자하지는 않았으니 청이 긴급 탈출 능파미보의 보법-진법 융합 신법으로 남긴 잔상을 꿰뚫은 것이다·
서문청 여장부님 축지법 쓰시듯 월봉의 여덟 걸음 뒤편 멋지게 짠 등지고 나타난 청이 급히 몸을 돌렸다·
갑자기 상대를 잃은 월봉이었으나 이미 청의 능파미보를 멀리서나마 보았으니 당황하지 않고 곧장 청을 찾아 주먹을 겨눴다·
그러다가 돌면 크게 한 발 내딛으며 몸을 완전히 일 자로 돌려가며 주먹을 뻗는데-
쎄한 기분에 청이 다급히 진기를 끌어올렸다·
한계까지 끌어올린 출력으로 검기가 치솟으니 순식간에 검날이 다섯 배는 불어나는 듯하다· 대도가 된 검이 일도양단의 기세로 떨어져· 쾅!! 굉음과 함께 청의 검기가 부채살 펼쳐지듯 쪼개지며 청의 뒤편을 향해 거칠게 흩날렸다·
청이 그대로 뒤로 쭈욱 밀려 나갔다·
소수마공으로 단련된 손아귀임에도 찢어질 듯한 통증이 전해져왔다·
소림의 유명한 신공 백보신권이었다·
와 제대로 맞았으면 그대로 누웠겠네·
아예 거리를 멀리 줘버리면 무식하게 센 공격이 날아오는 것이다·
양팔을 쭉 뻗고 굽힌 다리마저 완벽한 일자로 선 월봉의 뒷발의 발뒤꿈치가 슬쩍 일어서는 것이 보인다·
청도 슬그머니 발을 빼며 각을 쟀다·
마침내 월봉의 몸이 팩 뒤집히는 순간 청 역시 비무대 바닥을 부술 듯이 짓밟으며 뛰쳐나갔다·
휘잉! 귓가로 백보신권의 후폭풍이 스쳤다· 실상 거리를 꽤 두고 넉넉하게 피했음에도 그 후폭풍이 귓가를 간질일 정도였다·
청의 신법이 벼락과 같이 날카롭게 꺾이는 궤적을 그리며 좌우로 번갈아 앞으로 나아갔다·
우아하고 느긋한 월녀산보와는 완전히 다른 섬전 같은 신법이었으니 신투를 신투로 만든 절세의 경공 격공순신이었다·
다만 남에게 내보인 경공이 아니었기에 누가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청의 검기가 잔상을 그리니 청의 움직임처럼 한 줄기 벼락으로 월봉에게 내리친다·
그러나 닿는 순간 월봉의 몸이 돌연 자취를 감추니 청도 즐겨 쓰는 철판교의 수법이었다· 이 또한 소림의 공부에서 나왔으니 원조라고도 할 수 있겠다·
용수철처럼 튀어오른 월봉이 손가락을 말아 아래로 향한 장타를 뻗었다· 장타라고 하면 손바닥의 가장 아래 손목과 맞닿은 부분으로 단단하기가 뼈와 같고 힘의 손실이 없어 강력한 수법이다·
월봉의 장타가 청의 배로 파고들었다·
퍽! 미리 복근에 힘을 잔뜩 주었음에도 숨이 턱 막히며 꺼흑 바람이 빠진다·
보법에서 이어지는 회전을 담은 정타가 아닌 엉거주춤한 자세에서 손목의 탄력만으로 급조한 공격이기에 위력은 보잘것 없다· 그렇기에 버틸 수 있었다·
청이 아예 검을 비무대 바닥에 푹 꽂아버리고는 주먹을 쥐어 월봉의 턱을 후렸다· 검객이 검을 놓을 것이라 예상하지 못했던 월봉이기에 그대로 턱이 돌아가고 만다·
사실 청도 소림 칠십이 절기 중 서른 개 정도는 익히고 있는 상태다· 저자에서 흔히 파는 맨손 무공들이 죄다 그 열화판이라서· 그리고 그런 흰색 테두리 잡무공들은 얻는 대로 죄다 십 성을 올려두었으니 그래봐야 수련점도 거의 안 드는 하찮은 것들이라서·
비틀거리는 월봉에게 청이 쓰리고 아픈 복근의 원한을 담아 명치를 매우 세게 때렸다· 그러나 제 명치 앞을 가로막는 월봉의 손바닥이 청의 주먹을 가로막았다·
하지만 청에게는 괴력이 있었으니 자기 손등으로 자기 명치를 강타한 월봉이 커헉 허파에서 바람을 빼고 말았다·
청의 눈이 번뜩였다·
주먹을 회수함과 동시에 몸을 기울여 나아가니 바닥을 짓밟은 파괴력으로 팔꿈치가 뻗어나간다·
그림 같은 외문정주의 수법이었다·
빡!! 명치에 한 대 더 적립한 월봉이 그나마 남은 숨을 뱉어내니 청이 그대로 역방향으로 몸을 돌려 어깨뼈를 들이미는 철산고의 수법으로 이어나가려다-
“악!”
너무 흔한 수법을 그것도 정통한 원류를 어려서부터 제대로 배워온 달인에게 써먹으려는 시도는 너무 안일했다고 하겠다·
안일함의 대가로 옆구리를 호되게 얻어맞은 청이 비무대에 박아둔 검을 낚아채 냉큼 거리를 벌렸다·
“아으· 아파라····”
청이 배를 문지르고 옆구리를 주무르며 눈살을 찌푸렸다·
월봉 역시 짧은 숨을 후후 불어대며 명치를 두 대나 맞아 빠져버린 호흡을 다잡으려 애를 쓰는 모양새였다·
청이 어떻게 두들겨야 패배를 인정하고 물러나게 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때였다·
갑자기 월봉이 척 반장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소승이 사과드리겠습니다· 소승이 감히 시주님을 얕보았으니 스승님께서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하신 이유가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최선이 아니셨다는 말씀처럼 들리는데요· 맞나요?”
“예· 혹여 상처를 입으시거든 지체하지 않고 항복하여 주시기를 바라겠습니다·”
그러고는 주먹에 황금빛 내기가 일렁이나 싶더니 반짝반짝 자체발광을 하는 것이다·
-오오! 권강이다!
-초절정! 초절정 무인!
동시에 숨쉬는 것조차 잊고 비무를 구경하던 관람객들의 함성이 터져 나왔다·
그와는 별개로 청에게 있어서는 영 좋지 못한 소식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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