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49
-와아아아!
-우오오옷!
비무장을 뒤흔드는 함성이 쏟아져내렸다·
물론 이번에도 청의 배당이 매우매우 낮은 상태였기에 수없이 많은 꿈들이 나락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하지만 그러한 금전의 손실보다도 비무의 내용이 환상적이었던 까닭이었다·
청의 노을빛 진기가 사방으로 피어오르고 찬란한 황금빛의 강기까지 눈으로 견식하여 숨조차 쉬지 못하고 지켜본 전설적인 비무가 아니었는가·
그야말로 살아 숨 쉬는 내내 이 전율할 비무의 목격담을 떠들 수 있을 터이니 한 시대의 거대한 사건을 목격했다는 자부심이 피어오른 것이다·
그렇다· 한 시대의 거대한 사건이었다·
일개 여인이· 그것도 구대문파가 아니라 급수 많이 떨어지는 중소문파의 무인이·
재차 강조하기를 그것도 여류 무인이!
합쳐서 중소문파의 여류 무인이 천하제일소림의 그것도 천하제일인의 제자를 꺾었다!
심지어 또 또 심지어 그뿐이랴!
신녀문은 검문이고 서문청은 검객이다!
검을 쓰는 검객이 검을 거두고 권장술로 싸워서 소림의 신공을 깨부수고 천하제일인의 제자를 패퇴시킨 것이다·
물론 마무리가 조금 찝찝하기는 했지만 양민의 눈에 보기에는 화려한 회피와 쭉쭉 길어 선이 큰 청이 비무를 압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거기에 고수의 시선 역시 다르지 않았으므로 세상에 한 사람 월봉 말고는 모두가 인정하는 승부 결과이기도 했다·
청이 모습을 감추고 비무대 아래 통로를 지나가는 내내 잔뜩 흥분한 함성이 가라앉지 않았으니 음 야유는 별 생각이 없었지만 이러니 기분이 또 좋은 것 같기도 하고·
“제자는 늘 훌륭했지만 오늘은 더욱 훌륭하였구나· 다친 데는 없느냐?”
“그럼요· 제자가 얼마나 튼튼한지 아시잖악·”
청이 멀쩡함을 주장하다가 날카로운 신음으로 끝을 맺었다·
서문수린이 손가락으로 청의 가슴을 쿡 찔렀기 때문이었다·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거라· 미련한 것이 꼭 괜찮다고만 하는구나·”
“헤헤 사실 이쪽이 베거나 찌르는 데는 약해도 맞는 데에는 강하거든요? 그냥 멍이나 좀 들지 오히려 몸통으로 오는 충격은 효과적으로 방어를 해주는 방패 역할을-”
꽁· 서문수린이 가볍게 꿀밤을 놓았다·
“네가 딱히 마음을 쓰지 않으니 이 스승도 마음이 놓이는구나· 무인이 싸우다 보면 어떠한 일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을 가슴을 치고 얼굴을 노린다고 해도 당연한 일이니 원망하지 말라고 말하려 했을 뿐이란다·”
의외로 서문수린은 월봉의 부위 가리지 않는 공격에 대해서는 별 악감이 없었다·
오히려 초반에 엄한 급소라서 설설 피해 공격할 때가 더욱 괘씸했으니 어찌 같은 무인임에도 남녀를 가리느냐는 식이었다·
그래서 서문수린이 여인 취급을 당했을 때는 오히려 가랑이 사이를 올려 차버리곤 했으니 여광견의 악명이 허명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월봉이 진심을 내었을 때는 오히려 잘 되었다고 제자를 무인으로 인정하는 제대로 된 정신을 가진 놈이구나 싶었더란다·
물론 알고 보니 그저 얼굴 가린 추녀라 여인 취급을 하지 않았을 뿐으로 아주아주 괘씸한 놈이 되어 버리고 말았지만·
“음· 이제 화장을 하자꾸나· 인사 전에 씻고 정돈할 시간을 주어야지 무어가 그리 급하다고· 쯧쯧· 하여간 무림맹에 순 사내놈들 뿐이니 섬세하지가 못해·”
서문수린이 혀를 쯧쯧 찼다·
준결승 비무 이후의 행사로는 잠룡비무회 결선에 진출한 무인들을 세인들 모두에게 소개하는 자리가 있었다·
잠룡비무회에서 출전자들이 그저 출신과 이름만으로 나온 이유가 바로 비무 그 자체에 집중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니 결승 전에는 세인 앞에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내 제 이름을 드높이는 자리가 마련이 된 것이다·
“어 화장을 꼭 해야 할까요? 무인으로 나서는 자리니까 무인답게-”
“스승이 누누이 말하였듯이 고수란 우아하고 아름다워야 한단다· 그 어린 땡중조차 하는 말이 그러하지 않더냐·”
서문수린은 청에게 미인행을 때려박았다·
무인 앞에는 남녀가 없다·
하지만 미추는 있기 때문이었다·
제아무리 천하를 발아래 둔 고수라고 해도 외모와 품행이 추하고 나면 인정받지 못한다· 사내든 여인이든 마찬가지였다·
못생겼으니 무공이라도 뛰어나야지 추하게 태어나서 남녀 관계도 없고 창피해 틀어박혔으니 무공에만 집중할 수 있었겠다며 조롱이나 받고 마는 것이다·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고는 하나 정확히 시비를 가리자면 여류 무인쪽이 훨씬 더 대우가 좋지 않았다·
못생긴 놈이라도 고수가 되면 미인 아내 꿰차고 재화와 명예도 잘만 모아 떵떵거리며 살 수 있다·
하지만 추녀가 고수라면 그저 평생 혼자 사는 일이 흔했으니 아내에게 매나 맞으며 살기 싫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맞을 짓을 하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으니 세상의 인심이 바로 이러해서·
서문수린이 화장용구를 꺼내들며 말했다·
“자· 그러니 세상에 당당히 보여줘야 할 것이 아니냐· 차기의 천하제일인이 이토록 아름다운 여인이라고·”
—-
월봉은 고개를 들지 못했다·
청의 미모에 당황하고 또 치솟는 양기가 수치스러워 머리가 어지러웠으니 나온 말들은 더욱더 어지럽고 수치스러운 것이다·
“죄송합니다· 스승님 소승이 불민하여 사문과 스승의 이름을 욕보이게 했습니다·”
그러자 무학 대사가 껄껄 웃었다·
“그게 무슨 소리냐? 이놈아· 욕보인 건 네 이름과 네 얼굴이지 왜 멀쩡한 소림과 스승을 팔아대고· 크흐흐흐 내 이럴 줄 알았다 이놈아·”
“스승님?”
“네가 무공으로도 지고 인간으로도 추하게 패배했다고 해서 소림이 천하제일문파를 내어주더냐? 신녀문이 갑자기 천하제일문파가 되고 그러냔 말이다· 제자가 졌다고 내 경지가 내려가더냐? 나는 여전히 천하제일인 무학이니 더럽혀진 것은 너 뿐이지 소림과 스승은 아주 멀쩡하다 멍청아·”
그 말대로였다·
창피를 먹은 사람은 월봉이지 무학과 소림이 그 정도에 흔들릴 체급이 절대 아니었으니 아무리 모진 바람 불어도 태산은 그저 굳건히 자리를 지키는 이치였다·
“네놈이 워낙 교만하여 내가 언젠가 크게 망신을 당하리라 생각했지· 우리가 미련한 중생이라 칭하는 것이 왜 그러하냐· 실제로 미련하기 때문이 아니냐? 미련한 것은 말로 하면 듣지 못하니 내 크게 당해보라고 잠자코 있었다· 기분이 어떠냐?”
“그· 참담하고 수치스럽습니다···”
“뭐· 다들 그런 지우고 싶은 추억 하나는 가슴에 품고 가는 법이다· 됐으니 가서 그 면상 내밀고 세인께 인사드릴 준비나 하거라· 쯧 이거 대가리에 손자국이 아주 선명하구만· 지 스승 닮아서 손이 맵나···”
아닌 게 아니라 청이 내리친 손바닥의 자국이 월봉의 이마로부터 머리로 정수리에 아주 선명하게 낙인처럼 박힌 상태였다·
“스승님 그 추태를 보이고 어찌 세인들 앞에 나서겠습니까· 두렵습니다· 사람들이 비웃고 조롱할까 너무 두렵습니다·”
“임마 거 별 거 아니다· 앞으로 오십 년은 넘게 살 놈이 그거 하나로 중놈의 삶이 오욕으로 물들고 그럴 것 같으냐? 지나고 나면 그저 웃기는 추억이니 두고두고 떠올리며 네 모자람이나 탓해야지·”
“하지만·”
“뭐· 그 아이가 미색이 워낙에 뛰어나니 크흐흑 크하하핫!!! 마라 마라라고 하지 않았느냐! 아주 걸작이로다! 마라 파피야스! 네놈이 무슨 석가씩이나 되는 생불이라고 제육천마왕이 직접 유혹하러 내려온단 말이냐! 크하핫!”
마라가 유혹해도 석가모니 정도는 되어야 직접 행차하니 고작 소림의 젊은 무승 하나를 꾀자고 내려오겠냐는 소리였다·
그러며 무학 대사가 폭소를 터뜨렸다·
그에 다른 소림의 고승들도 웃거나 미소를 짓거나 어쨌든 비웃었으니 월봉만 혼자 어쩔 줄을 몰랐다·
“내 그러니 네놈이 교만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응당 창피를 당해야지· 가서 창피를 잔뜩 당하고 와라· 사내새끼가 말실수 좀 할 수 있지· 게다가 뭐 그 아이의 미색이 보통은 아니기는 하니 세인들도 네 심정을 이해해 주긴 할 수도 있을 수도 있을 가능성도 있지 않겠냐·”
마지막의 긴 의문문은 아니면 말고 하는 식의 화법이었다·
스승의 태도가 이러하니 월봉의 부끄러움 역시 그 산불같이 치솟던 기세를 죽였다·
“가서 옷이나 갈아입거라· 괜히 삿갓 뒤집어써 가릴 생각은 말고· 아래에 바짝 붙은 시주들이 훤히 보고 소문내는 편이 더 추할 테니까 차라리 까는 게 낫지·”
그에 월봉이 어깨를 축 늘어트린 째로 의복을 정돈하기 위해 떠났다·
그리고 나서야 무학 대사가 진지한 표정을 하고 중얼거렸다·
“음· 그나저나 여래신장이라· 대체 무얼 내주어야 신공의 값어치를 할 수가 있을꼬· 자칫하면 무가지보에 가격을 매기는 우를 범하는 것이 되겠다마는···”
—-
청 대 월봉의 비무가 끝나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후로 잠룡비무회의 영웅들을 소개하는 자리가 이어지는데 가까이서 보기 위해 선상비무대의 자리를 산 사람들이었다·
무림맹 역시 당연히 금이 필요한 집단이라서 벌 수 있을 때 아주 쪽쪽 빨아먹는 알뜰한 모습이었다·
무림맹의 무사들이 갑석이니 을석이니 하며 사람을 부리니 복잡한 행사 가운데서도 소란 없이 차근차근 선상비무대 위에 척척 사람들이 차올랐다·
물론 이는 결코 중원 사람들의 뛰어난 질서 의식 때문이 아니라 무림맹의 진행 요원들이 칼을 차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칼 찬 놈들 말은 잘 듣는 것이 이 미개한 시대의 미덕이었던 것·
그리하여 소개 무대에 가장 가까운 아주 비싼 갑석(물론 입석이다)부터 시작해서 척척 가득 사람이 채워졌다·
돈이 없거나 굳이 가까이서 볼 이유가 없다고 생각한 사람들은 그냥 비무대 관중석에서 지켜보는 중이었고·
다만 그들 역시 생각하기를 이럴 줄 알았으면 기왕 보러 온 김에 금전 좀 써서 저 아래로 좀 내려갈걸 하고·
소림승마저 홀려버리고 만 신녀문 제자의 미모가 너무 궁금해서 그랬다·
그리하여 마침내 빠른 탈락자부터 모습을 드러내며 세인들에게 비무회의 잠룡들을 소개시켜주는 것이었다·
그저 출신과 이름만이 아닌 나이며 활동 지역 및 내역 별호가 있으면 별호도 소개하고 사문이 있으면 사문의 내력과 스승이 있으면 스승의 이름도 소개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낭인 출신의 소개들이 조금 부실한 경향이 있었지만 애초에 낭인들이라는 치들이 딱히 내세울 이야기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왕노필과 마영전은 그래도 팔 강 진출을 했기에 한참 나중에나 올라왔다·
팔 강의 탈락자들 넷이 나란히 선 자리에서 왕노필과 마영전이 서로의 눈치를 보고 고개를 저었다·
본래 낭인들끼리 회의하여 결정을 내리기로는 이 자리에서 세인들에게 혈교와 얽힌 이야기를 조금 가공하여 털어놓기도 했다·
서문 소저가 대신 잡혀갔느니 하면 하루 밤에 불과하더라도 추문이 돌 수 있으니 그렇게 불리한 이야기만 쏙 빼고 어리석은 낭인들을 구한 의기와 혈교의 악종을 무찌른 무용담으로 그 이름을 드높여 주자고·
그리하여 이야기를 맞춰본 후에· 이러한 식으로 공표하면 서문 소저에게 누가 되는 일은 전혀 없지 않겠느냐고 서문수린에게 허락을 구해 보았다·
다만 괜한 짓 하지 말라면서 핵꿀밤만 한 대씩 처맞고 말았으니 그냥 없던 일로 하게 되고 말았지만·
그리고 나선 준결승의 탈락자인 월봉과 하필이면 같이 등장한 이가 천하제일미남 옥기린이었다·
꺄아아악 하는 새된 비명에 천지가 진동하고 귀청의 고통을 호소하며 눈살을 찌푸리는 자가 속출했다· 물론 실신한 여인들 역시 속출했고·
-옥기린! 사랑해요!
-옥기린! 잘생겼다!
-옥기린! 내 몸과 마음을 다 가져요!
내용은 순애보지만 찢어지는 괴성으로 악을 지르는 소리라서 옆에서 듣는 월봉마저 섬뜩할 지경이었다·
연심을 넘어 귀기 서린 집착까지 느껴지는 통에 월봉이 팽 소협은 괜찮은 것인가 하고 곁눈질을 해 보았다·
안 괜찮았던 모양인지 아주 이를 갈면서 눈살을 찌푸리고 있더라·
먼저 비무를 치렀던 팽대산의 소개가 끝나고 나선 월봉의 차례였다·
올해로 스물 일곱·
소림사의 최연소 나한승·
천하제일인 무학 대사를 스승으로 둔 소림의 젊은 고수!
사회자의 외침에 와아아! 하는 환호성이 장내를 휘감았다·
그에 잔뜩 움츠렸던 월봉의 어깨도 조금은 펼쳐질 수 있었다·
-하핫 머리에 계인이 아니라 수인을 찍으셨군 그래!
-기권이오! 내공 다 쓰면 기권해야겠다!
-흐흐! 이제 최선을 다해보겠소이다!
물론 개중에 비웃는 소리가 없는 것은 아니나 그저 야유가 쏟아지며 큰 치욕 속에 멀거니 서 있다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공포에 떨었던 월봉으로서는 감내할 만한 수준이기는 했다·
그리고 나선 드디어 대망의 결승 진출자들이 등장할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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